청춘경영/꿈과 비전

21세기 왜 꿈이어야 하는가?

김부현(김중순) 2012. 1. 10. 15:09

왜 꿈을 이야기 하는가

 

"不禁其性, 不塞其源(불금기성 불색기원)"

 

중국 위(魏)나라의 학자 왕필(王弼)의 말이다. 먼저 '불금기성'은 '사물의 본성을 막지 마라'는 뜻이고, '불색기원'은 '사물의 근원을 막지 마라'는 뜻이다. 즉 사물의 본성을 막지 마라는 것은 만약 꽃을 키울 때 충분한 햇빛이 필요한 꽃이라면 햇빛이 많은 곳에서 꽃을 키워라는 말이다. 하지만 햇빛이 없는 곳에서 키울 경우, 꽃은 죽게 된다. 그리고 사물의 근원을 막지 마라는 것은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꽃이라면 물을 많이 주어야 한다. 만약 물을 충분히 주지 않으면 역시 꽃은 죽는다. 꽃뿐만 아니라 우리의 꿈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꿈에 집중하지 않으면 그 꿈은 말라 죽는다.

 

지난 역사를 보면 우리는 광복과 건국, 6.25동란과 4.19혁명 그리고 6.10항쟁 등과 같은 굵직굵직한 역사적 소용돌이들을 슬기롭게 극복하며 숨 가쁘게 달려왔다. '보릿고개'라는 배고픔을 경험했기에 먹고 사는 것이 우선이었다.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오직 한 길, 나라도, 정부도, 기업도 그리고 국민도 모두 경제를 위해 뛰고 또 뛰어왔다.

 

그 결과로 우리는 이른바 '선진국 클럽'이라 불리는 OECD와 G20가입국이 되었고 2011년 무역 1조 달러 클럽에 가입하여 세계에서 9번째 경제규모를 달성하는 등 경제적으로는 세계의 모범이 될 정도로 단기간에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냈다. 비록 IMF 외환위기와 미국 발 금융위기를 겪기는 했지만 이 역시 단일민족이라는 강력한 에너지원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빨리 극복했다.

 

일제식민지와 전후 복구 그리고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은 우리에게 '경제'는 유일한 대안이자 희망이었는지도 모른다. 건국 60주년 기념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건국 60년은 성공의 역사, 발전의 역사, 기적의 역사"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어두운 부분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간 외형적인 경제성장에 전력투구한 나머지 그에 따른 어두운 그림자가 나타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외형적인 경제는 비만이지만 내면적인 정신은 빈곤했다. 물론 민주화도 눈에 띄게 진행되었지만 경제성장에 비할 바는 못 된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정신은 늘 무시당했고, 당장 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경제에 밀렸고, 그리고 우리의 관심 밖이었다.

 

지금 우리는 모두 선진국 진입이라는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물질자본과 정신자본이 공존하지 않은 나라가 선진국이 된 사례는 없다. 물질자본만 넘쳐나고 정신자본이 없다면 국가든 개인이든 그것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물질자본을 창출하는 근원은 정신자본이다.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도 그 뿌리가 있기 마련이다. 화려한 꽃을 피우는 외형적 모습에 즐거워만 할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하는 보이지 않는 양질의 토양과 뿌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인문학은 꿈의 기초자산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의 부재'를 우려하고 있다. 인문학은 정신자본의 근간이다. 서점에는 경제서적들로 넘쳐나고 인간 본성에 접근하기보다는 수단과 방법이 난무하는 책들만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대학에서는 재정 문제를 내세워 철학과의 통폐합으로 요란하다. 대학들도 이른바 '돈이 안 되는' 학과를 없애겠다는 논리다. 대학이 경제논리에 휘둘리는 단적인 면이다. 사실 대학은 학문을 하는 곳이지 어떤 기법이나 비법을 배우는 곳이 아니다. 어찌됐던 문제는 대학을 졸업해도 학교에서 배운 것을 그대로 써먹을 곳이 없다는 데 있다. 나아가 어렵게 일자리를 구했다 하더라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학교 교과서를 덮고 다시 사회교과서와 기업교과서로 공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취업한 대졸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곳에 취업하여 일하는 비율이 30.5%, 특히 인문대의 경우에는 무려 53.9%였다고 한다. 인문학의 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2010년 1월 <조선일보· 한반도선진화재단 공동기획>의 '서울 컨센서스 10대 전략' 중 첫 번째로 강조한 것이 우리나라 '정신자본의 부재'였다. 이제 정신자본을 무시한 경제성장은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정작 정신자본이 가장 시급한 것은 우리 개인이다. 개인의 힘이 모여 국가의 힘이 된다. 세계는 갈수록 우리에게 집단보다는 개인의 창의력을 요구하고 있다. 21세기는 조직의 시대가 아니라 개인의 시대다.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살아남는 시대다. 개인이 강해야 그가 속한 조직도 나아가 국가의 힘도 강해진다. 세계화의 가장 원초적인 힘은 개인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우리나라 역시 이젠 개인의 힘을 키워야 할 때이다. 개인의 힘을 키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이른바 지금까지 중요시되어 왔던 물질자본보다는 사회적자본, 정신자본을 강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서울 컨센서스 10대 전략'에서는 '절제'와 '배려'가 곧 선진경제의 열쇠라고 강조했다. 한 사회의 신뢰가 10% 오르면 경제성장율이 0.8%P 증가한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은 연고 집단으로 뭉쳐 낮은 신뢰지수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삼성경제연구소에서 2009년 9월 발표한 'OECD 국가의 사회적 자본지수 순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25개국 중 22위에 불과했다. 10점 만점에 5.70점 이었고, 1위는 8.29점으로 네덜란드가 그리고 덴마크와 호주가 각각 8.23, 8.12점으로 2,3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 정신자본, 사회적자본의 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의 경우엔 최고경영자뿐 아니라 월스트리트의 투자 고수들 중 경제학이나 경영학을 전공하지 않은 인재들이 많다. 오히려 철학·역사·문학 등 인문학 지식이 장기적으론 투자활동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게 상식이다. 전설적 펀드 매니저인 피터 린치(Peter Lynch)는 대학에서 정치학과 심리학을 전공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투자 조언엔 복잡한 경제 이론과 전문용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국제 자본시장의 '큰손'인 조지 소로스(George Soros)의 대학 시절 스승은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쓴 세계적인 철학자 칼 포퍼(Karl Raimund Popper)였다. 그는 당시 학습한 논리적 사고와 추리 및 논증을 바탕으로 현실 경제를 보는 안목을 키웠다.

 

반면 우리나라 경영자들 중엔 경영·경제 전공자들이 많다. 지난해 10대 그룹 계열사의 사장급 이상 CEO 471명을 대상으로 한 재벌닷컴의 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5명 중 2명(39.7%)이 경영학이나 경제학을 전공했고 이공계 출신은 35.9%였다.

 

그리고 정신자본의 부재는 우리나라의 자살률에서도 나타난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08년 우리나라의 사망원인을 보며 20,30대 사망률 1위는 자살이다. 연간 1만 3000명이고, 하루에 35명꼴입니다. 이것은 인구 10만 명당 26명으로 다른 OECD 국가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치다. OECD 국가 중 5년 연속 1위다. 분명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는데도 왜 자살률은 줄어들지 않는 것이 개인의 꿈과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구가 멸망하는 것은 천연자본이 사라졌을 때가 아니라 꿈과 희망이 사라졌을 때이다.

 

사회적 자본이 중요하다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세계은행의 연구에 따르면 저개발국의 경우 국부 창출에 천연자원의 비중이 중요하지만 선진국일수록 천연자원이나 인적자원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자본이 국가의 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저소득 국가들의 경우 천연자원이 국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6%이고 보이지 않는 무형자본의 몫이 59%인 반면, 고소득 OECD 국가들에서는 천연자원과 무형자본의 비중이 각각 2%, 80%라고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급속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거치면서 권위적 사회에서 민주적 개방사회로 옮겨가는 전환점에 와 있다.

 

최근 KBS 사회적 자본 제작팀에서 출간한 <사회적 자본>이라는 책에서 "이제 '더불어 함께 잘 사는 사회'로의 질적 도약을 위해선 인적, 물적 자본에 더해 제3의 자본인 사회적 자본 축적이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다."고 지적하였다. 심지어 얼마 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GDP는 틀렸다>라는 책을 출간하여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경제지표로서 국내총생산(GDP)가 가지는 한계를 지적한 책인데 결국 GDP는 삶의 질을 반영해 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삶의 질을 가늠할 수 있는 확실한 도구가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므로 사회적 자본을 꽃피우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조성에 기인한 지식자본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

 

'런치(Lunch) 2.0', 이 말은 세계에서 가장 창조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 산업단지라는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들이 즐기는 공짜 점심을 뜻한다. 그러나 단순한 공짜 점심이 아니다. 경쟁관계에 있는 회사에 다니는 엔지니어들이 서로 상대방 회사의 구내식당을 차례로 돌아다니며 아이디어를 나누고 협력방안도 모색하는 점심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꽃피울 수 있으려면 이렇게 경쟁과 협력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생태계'가 중요하다. 창조와 혁신을 잘하려면 가장 먼저 지식자본(知識資本)이 커야 한다. 새로운 기술을 만들고 시장기회를 포착하는 능력이 지식이다. 역사상 한 시대를 풍미한 경제대국들은 모두 지식자본으로 무장한 나라들이었다. 지식자본은 인간이 가진 욕망과 이기심을 고취함으로써 키울 수 있다. 우리가 세계 4위의 특허 출원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우리의 교육열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하기 위해선 신뢰와 협력의 정신자본 또한 중요하다. 신뢰와 협력은 사회의 거래비용을 낮추고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게 한다. 세계은행의 한 연구원이 낸 논문에 의하면, 한 국가에서 신뢰가 10% 상승하면 경제성장이 0.8%포인트 증가한다고 한다. 21세기는 융합의 시대다. 창조를 위해서 신뢰와 협력은 더욱더 중요하다. 전화와 PC의 기능을 합한 아이폰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앱스토어(App Store)라는 협력 모델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의 정신자본을 강화할 것인가에 대해 앞의 보고서 '서울 컨센서스 10대 전략'에서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학교와 사회의 도덕교육을 강화하여야 한다. 국,영,수에 밀려 사라진 도덕교육, 전문지식에 점령당한 문,사,철(文史哲·문학 역사 철학) 교육을 살려야 한다. 경영학이나 공학이 물질자본의 증대에 기여한다면, 인문학은 정신자본의 축적에 기여한다. 오늘날같이 인문학이 제 역할을 못해 인문교육이 죽는다면 한국의 경제 선진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인문학 연구가 인문교육과 긴밀히 연계되어야 하며, 이를 구조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경영학과와 사범대학을 학부에서 폐지하고 전문대학원으로 격상시키는 교육구조 조정이 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자기성찰을 할 줄 아는 리더를 만들어내는 교육이 필요하다. 기업가는 사회적 책임의식, 공직자는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정신, 지식인은 선비정신을 가져야 한다. 정약용은 군자의 일은 '수신(修身)이 반이고 나머지 반은 목민(牧民)'이라고 했다. 지도층의 수기치인(修己治人)이야말로 하나의 살아 있는 교과서이다.

 

셋째, 한국 공동체에 대한 자긍심을 키우는 교육이 필요하다. 나라와 역사에 대한 사랑과 자긍심이 없이는 선진경제가 될 수 없다. 리아 그린펠드(Liah Greenfeld) 교수는 애국심이야말로 경제발전의 동인이라 하였다. 도덕과 신뢰의 사회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동시에 발전하는 사회이다. 이기적 냉혈한만 득세하는 사회, 무책임한 평등주의자만 넘쳐나는 사회로는 선진경제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그려야 할 미래는 경쟁 속에도 절제와 배려가 있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자유 속에서도 책임과 소통을 아는 성찰적 민주주의다.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에서 저자는 인문학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과학 기술시대에 '높이 더 높이'를 외치며 첨탑만을 쌓아올리고 인문학이라는 땅을 다지지 않는다면 정작 그 탑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끝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다. 즉 과학기술이 하드디스크라면 인문학은 운영체제에 해당하는 셈이다."

 

'높이 더 높이'를 외치며 첨탑만을 쌓아올렸던 우리의 안타까운 역사의 단면을 보자. 백화점이 무너지고 한강 다리가 끊어지고 OECD 국가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던지는 이 모든 것들이 '빨리 더 빨리'를 외쳤던 압축성장의 결과물인 동시에 인문학의 부재에서 기인한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세계 역사를 보면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하면 모두 지적 즐거움을 추구했다. 인문학은 역사의 뿌리이자 인간을 바로 세우는 근간이다. 인문학을 등한시한 나라가 선진국이 된 사례는 없다.

 

제품이 아닌 꿈을 팔아라

 

인문학을 개인의 영역에 반영한 것이 꿈이다. 인문학과 사회적 자본 그리고 정신자본과 지식자본에 발맞춰 꿈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나아가 요즘은 드림케팅(dreamketing, dream + marketing의 준말)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하고 있다. 제품을 팔지 말고 꿈과 스트리를 팔아라는 의미이다. 영국의 정신의학자 도널드 칼네(Donald Calne)는 "이성은 결론을 낳는데 반해 감성은 행동을 낳는다."고 했다. 고객의 감성을 자극하는 색다른 마케팅 기법인 드림케팅은 세계적인 경영학자 톰 피터스(Tom Peters)가 <미래를 경영하라>라는 책에서 처음 소개했다. 드림케팅은 꿈(dream)과 마케팅(marketing)의 합성어로 페라리 노스 아메리카(North America)의 사장 겸 CEO 롱지토니 뷔토니(Gian Luigi Longinotti-Buitoni)가 드림마케팅을 역설하면서 만든 신조어이다.

 

상품 자체보다는 상품이나 브랜드에 담긴 꿈과 스토리를 강조한 새로운 마케팅 기법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이제는 아이케팅(iketing)시대다. 아이케팅은 나를 마케팅하는 것이다. 학력이나 외모와 같은 아날로그형 이력서가 아니라 자신의 꿈과 스토리를 무기로 한 디지털형 마케팅 말이다. 명품들은 이제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를 팔고, 감성을 판다. 개인들은 자신의 꿈과 스토리를 팔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