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머리에
김훈의 에세이 <자전거여행>
☑ 필사 : 10쇄 발행-2001.05.26자
☑ 별첨 :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가 덧붙임
☑ 저자 소개
1948년 5월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바 있는 언론인 김광주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돈암초등학교와 휘문중·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입학하였으나 정외과와 영문과를 중퇴했다. 1973년부터 1989년 말까지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시사저널」 사회부장, 편집국장, 심의위원 이사, 국민일보 부국장 및 출판국장, 한국일보 편집위원, 한겨레신문 사회부 부국장급으로 재직하였으며 2004년 이래로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자는 모 월간지의 인터뷰에서 문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피력하기도 했다.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무슨 지순하고 지고한 가치가 있어 가지고 인간의 의식주 생활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현실을 관리하고 지도한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요. 나는 문학이란 걸 하찮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 문제가 참 많잖아요. 우선 나라를 지켜야죠, 국방! 또 밥을 먹어야 하고, 도시와 교통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애들 가르쳐야 하고, 집 없는 놈한테 집을 지어줘야 하고…. 또 이런 저런 공동체의 문제가 있잖아요. 이런 여러 문제 중에서 맨 하위에 있는 문제가 문학이라고 난 생각하는 겁니다. 문학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언어행위가 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펜을 쥔 사람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가지고 꼭대기에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데, 이게 다 미친 ...(하략)[YES24 제공]
<목차>
프롤로그 16 |
꽃피는 해안선 20 |
흙의 노래를 들어라 29 |
지옷 속의 낙원 41 |
망월동의 봄 49 |
만경강에서 57 |
도요새에 바친다 67 |
가까운 숲이 신성하다 75 |
다시 숲에 대하여 93 |
찻잔 속의 낙원 101 |
숲은 죽지 않는다 111 |
땅에 묻히는 일에 대하여 120 |
그리운 것들 쪽으로 126 |
그곳에 가면 퇴계의 마음빛이 있다 133 |
무기의 땅, 악기의 바다 152 |
복된 마을의 매맞는 소 162 |
고해 속의 무한강산 172 |
태양보다 밝은 노동의 등불 188 |
원형의 섬 197 |
충무공,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 208 |
길들의 표정 226 |
산간마을 사람들 233 |
문경새재는 몇 굽이냐 240 |
가마 속의 고요한 불 249 |
가을빛 속으로의 출발 260 |
마지막 가을빛을 위한 르포 265 |
노령산맥 속의 IMF 273 |
시간과 강물 280 |
꽃피는 아이들 286 |
한강, 흐르지 않는 세월 301 |
강물이 살려낸 밤섬 310 |
조강에 이르러 한강은 자유가 된다 319 |
에필로그 326 |
너의 빈자리를
너라고 부르며
건널 수 없는
저녁 썰물의 갯벌
만경강에 바친다
책머리에
벗들아, 과학과 현실의 이름을 들먹여가며 이 가엾은 수사학을 조롱하지 말아다오. 나는 마침내 내 자신의 생명만으로 자족할 수 없고, 생명과 더불어 아늑하지 못하다. 그리고 이 부자유만이 나의 과학이고 현실이다. 나는 나의 부자유로써 나의 생명을 증거할 것이다.
살아서 아름다운 것들은 나의 기갈(별첨 1 참조)에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 그것들은 세계의 불가해한 운명처럼 나를 배반했다. 그러므로 나는 가장 빈곤한 한 줌의 언어로 그 운명에 맞선다. 나는 백전백패할 것이다.
만경강(별첨 2 참조) 저녁 갯벌과 거기에 내려앉은 도요새들의 이야기를 쓰던 새벽 여관방에서 나는 한 자루의 연필과 더불어, 말하여질 수 없는 것들의 절벽 앞에서 몸을 떨었다. 어두워지는 갯벌 너머에서 생명은 풍문이거나 환영이었고 나는 그 어두운 갯벌에 교두보를 박을 수 없었다. 나는 아무 것도 만질 수 없었다. 아무 곳에도 닿을 수 없는 내 몸이 갯벌의 이쪽에 주저앉아 있었다.
1999년 가을부터 2000년 여름까지 전국의 산천으로 끌고 다닌 내 자전거의 이름은 풍륜(風輪)이다. 가을의 마지막 빛 속에서 풍륜은 태백산맥을 넘었다. 눈 덮인 소백, 노령, 차령산맥들과 수많은 고개를 넘어서 풍륜은 봄의 남쪽 해안선에 당도하였다. 거기에 원색의 꽃들이 피어 있었다. 이제 풍륜은 늙고 병든 말처럼 다 망가졌다. 2000년 7월에 풍륜을 퇴역시키고 새 자전거를 장만했다. 이 책을 팔아서 자전거 값 월부를 갚으려 한다.
사람들아 책 좀 사가라.
갈 수 없는 모든 길 앞에서 새 바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 아무것도 만질 수 없다 하더라도 목숨은 기어코 감미로운 것이다, 라고 나는 써야 하는가.
사랑이여, 이 문장은 그대가 써다오.
52살 여름에
김훈은 겨우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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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첨>
1. 기갈(飢渴, 배고픔과 목마름을 아울러 이르는 말-사전)
2. 만경강(萬頃江) : ①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발원하여 북서부 일대를 흘러 익산시, 김제시, 옥구군 경계의 호남평야를 거쳐 서해로 흘러드는 강 ② 길이는 98킬로미터이다-(글:다음백과사전, 사진:한국내셔널트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