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있는 산행기-관악산 암릉
-말바위에서 본 기상관측소, 관악산 정상, 연주대
-산행일정 : 서울대건설환경종합연구소~자운암능선길~정상~제1국기봉~육봉능선~과천정부종합청사역
-세부코스 : 서울대입구역(2호선4번출구,5513번)~서울대건설환경종합연구소앞~갈림길(계곡길과 자운암능선길)~토끼바위~제3왕관바위(K24)~국기봉~정상~기상관측소~연주대포토존~말바위(K23)~제3깔딱고개(K32)~KBS송신탑~8봉입구~제1국기봉~6봉능선~산불감시초소~중앙공무원교육원~과천정부종합청사역(4호선)
-거리 : 약7km
-소요시간 : 3시간 50분
-자운암능선길에서 본 서울대 캠퍼스
틀에 박힌 말이지만 관악산은 서울시 관악구와 금천구, 경기도 안양시와 과천시의 경계에 있는 서울의 남쪽에 솟아있는 산이다.
높이는 632m로 700m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암봉이 줄을 이어 솟아 있는데다가 계곡이 깊어 산의 변화가 다양하여 언제 찾아도 나름 산행의 재미를 볼 수 있는 산이다.
도심에 위치한 산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은 서울에 있는 산이 갖는 어쩔 수 없는 환경이다. 관악산만의 문제는 아니고 북한산과 도봉산도 매한가지다.
따라서 어느 능선에 가든지 암봉과 암릉이 줄을 이어 나타난다. 팔봉능선이나 육봉 능선이 대표적인 암릉 구간이다.
능선의 암릉이 재미와 다양한 산행을 보장하여 산행의 즐거움은 강열하게 해주고 암릉의 특색인 시원한 조망은 관악산 산행의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큰 특징 중 하나이다. 관악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언제가도 그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품이 널널한 산이다. 3개의 구간으로 나누어 정리해 본다.
제1구간 : 자운암능선길(암릉길)
서울대건설환경종합연구소앞~갈림길(계곡길과 자운암능선길)~토끼바위~제3왕관바위(K24)~국기봉~정상, 1시간 30분
서울대입구역에서 5513번 버스를 타고 서울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 버스정류장에 하차한다. 서울대입구에 내리지 않는게 포인트다. 서울대입구에서 본 정류장까지는 도보로 30분은 족히 걸린다. 버스에서 내리면 곧장 등산로 입구 이정표가 나온다.
시월로 접어들자마자 가을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내달린다.
소나무잎도 하루가 다르게 빛이 바래진다.
인생으로 치면 가을은 중년이다.
청춘의 허물을 막 벗었지만 여전히 어정쩡한 시기이기도 하다.
정류장에서 평탄한 길을 10여분 걸으면 계곡길과 암릉길이 나누어지는 삼거리에 이른다. 우측 계곡길이 아닌 직진하면 자운암능선길, 즉 암릉길이다. 이 길은 가파르고 기어오르는 구간이 많지만 관악산을 가장 빠르게 올라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걷는 산객들에게 안성맞춤길이다.
자운암능선길은 글자그대로 가파른 바위와 암릉으로 이루어진 급경사길이다. 가쁜 숨을 몇 차례 들이키고 나면 곧장 암릉이 나타나고 조망권도 확보된다. 암릉길은 건너편 삼성산 능선을 조망하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서울대캠퍼스와 63빌딩, 도심의 조화가 멋지다.
저 멀리 아스라히 펼쳐지는 북한산은 구름 위에 있는 것 같다. 조금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도심은 여전히 스모그를 잔뜩 머금고 있다.
쏟아지는 강렬한 가을 아침 햇살을 온몸으로 담아내는 관악산 정상부의 모습, 토끼바위에서 본 전경이다.
호흡이 가빠지고 발걸음에 무게가 느껴질 즈음이면 토끼바위를 만나게 된다. 수없이 오르내린 길이었지만 허투루 보았던 탓에 토끼바위 형상의 바위를 알지 못했다. 이정표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기를 여러번... 이정표 뒤에서 보면 토끼형상을 한 바위가 나타난다.
토끼 눈을 그려넣은 정성은 기특하지만... 이런 걸 두고 도로아미타불이라는 말이 제격이다.
가파른 암릉을 오를수록 도심의 전경은 작아져만 갔다.
이름모를 한 무더기의 돌탑이다.
누군가에게는 의미없는 길가의 돌무더기에 불과하겠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생을 건 간절함의 기원이 담긴 것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손에 잡힐듯한 관악산 정상부와 기상관측소, KBS송신탑이 줄지어 도열하고 있다.
토끼바위를 지나 한 능선을 넘으면 자운암과 연주대의 중간쯤 되는 제3왕관바위를 만난다. 119는 산불, 산악사고 신고 전화다. 무슨 연유인지 아까 베낭을 메고 지하철에서 본 술과 관련한 119가 생각났다. 술을 섞지말고 한 가지 술을 1차만 마시고 9시까지 술자리를 마치는 것이 '음주119'라는군요.
인맥과 사회생활이 대부분 술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에서 쉽지 않은 일일게다.
지난달 3차례의 큰 태풍에 집도 무너지고 차도 부서지고 사과나무도 중상을 당했지만 소나무 밑둥에서 온전히 옥체를 보존한 한 떨기의 가녀린 꽃을 만났다. 인간이 만든 튼튼한 구조물들은 날아가고 부서지지만 자연의 가려린 손길은 태풍에도 바람에도 끄떡없었다.
굳이 퇴계 이황 선생의 "유산여독서"(산을 오르는 것은 책을 읽는 것과 같다)라는 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간은 자연에서 배워야 한다. 지혜도 사랑도...삶과 죽음조차도...
걸어온 자운암능선길 암릉구간이다. 부드러운 삼성산 능선길도 한 눈에 들어온다.
자운암능선길에서 만난 국기봉이다.
관악산엔 유독 국기봉이 많다.
웬만한 바위에는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관악산에서는 태극기가 이정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쉼이란 이런 것이어야 한다.
휴식이란 이래야 한다.
정상부 소나무 그늘을 친구삼아 쉬고 있는 산객의 모습이다.
우측능선은 파이프능선이라 불린다.
사당역에서 정상을 오르는 능선길이다. 사당역~관악산 정상 코스는 편도 5km로 제법 긴 코스다.
관악산 정상이다.
정상석은 갓모양을 하고 있으며, 정상부는 암릉으로 이루어진 경사지다.
제2구간 : 정상능선길
기상관측소~연주대포토존~말바위(K23)~제3깔딱고개(K32)~KBS송신탑~8봉입구~제1국기봉, 50분
축구공 모형의 관악산 기상관측소다. 10시부터 입장이 가능하다. 기상해설자가 수퍼컴퓨터를 이용해 기상에 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해 준다. 누구든지 입장이 가능하다. 연주대포토존에서 본 정산부와 연주대에도 햇살 천국이다. 연주대와 사당역까지 이르는 파이프 능선길이다. 오르내림이 심하다. 연주대포토존에서 말바위로 가는 길에서 조망되는 연주암 석탑이다.
말바위 근처에서 만난 위태로워 보이는 작은 돌탑이다.
불심의 힘으로 모진 바람과 햇살을 이겨내고 있다. 정성이 정성이 느껴진다.
말바위와 기상관측소, 정상부와 연주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관악산을 축약해 놓은 대표적인 사진이라 할 수 있다. 서울대입구 방향 제4야영장과 연주암 그리고 KBS송신소로 나누어지는 삼거리 갈림길, 제3깔딱고개다. 깔딱고개를 지나 KBS송신탑에 다다른다. 하늘로 치솟은 위용이 대단하다. KBS송신탑에서 평탄한 길을 30여분 걸으면 팔봉입구에 도착한다. 팔봉은 8개의 기암괴석 봉우리가 춤을 추는 구간이다. 혹자는 8봉을 일컬어 설악산 공룡능선과 비교하기도 한다. 그만큼 아기자기한 암릉들이 줄지어 있어 산행의 재미도 배가된다. 팔봉입구까지 오는 길은 작은 오르내림이 있는 능선길이지만 한낮 기온은 여름을 방불케한다. 팔봉입구에서 본 육봉능선길이다. 각양각색의 바위들이 암릉을 이루어 울퉁불퉁 능선을 이어간다. 능선길에서 눈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팔봉능선이 한손에 잡힌다. 육봉능선 입구이다. 봉우리가 6개여서 6봉으로 불린다. KBS송신탑에서 걸어온 능선길이 편안해 보인다. 제3구간 : 육봉암릉길 6봉능선~산불감시초소~중앙공무원교육원~과천정부종합청사역, 1시간 30분
육봉하산길은 제1국기봉에서 시작된다. 작은 임시 슈퍼가 있다.
막걸리와 아이스크림은 물론 오뎅 등등이 준비되어 산객들의 발걸음을 멈춘다.
육봉코스의 일부분은 상당한 담력을 필요로 하는 암릉구간으로 되어 있다.
6봉 코스는 8봉코스와 함께 관악산 암릉미의 백미를 이루는 중요한 능선이다. 초행자는 조심해야 하는 구간이다.
관악산 산세는 일견 무질서해 보이는 바위들이 들쭉날쭉 급격한 경사면을 혼란스레 뒤덮고 있는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육봉능선이 시작되는 국기봉에 들어서면 6봉의 전위봉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을 이루고 있다. 잠시나마 일상을 벗어던질 수 있어 참 편안해 보인다. 산에 들면 꼭 이런류의 산객들이 있다, 없다. 가파른 바위를 오르내리는 모습이 위태롭다. 등산로는 소외되어 있다. 삼봉의 모습이다. 삼각형의 침봉과 암릉, 깊은 협곡, 폭포가 관악산에 길들여져 있는 사람들에게도 놀라움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규모와 형태를 보여준다. 6봉의 전위봉격인 돌올한 침봉은 위험을 예상하기에 적절한 높이와 형태를 하고 골짜기를 내려다보고 있어서 산행이 꽤 위험할 것이라는 위압감마저 준다. 실제로 3개소에 설치된 6봉능선의 로프 중 맨 나중 로프인 15미터 이상되는 긴 로프를 잡고 직벽에 가까운 암사면을 올라가는 구간의 스릴은 관악산 어디에서도 느끼기 어려운 다소 충격적인 구간이라 할 수 있다. 이 위험한 놀이에 오늘도 많은 산객들이 참여하고 있다. 암봉위 바위사이에 끼어 풍상을 겪어온 노송의 무리들은 암봉과 어울리며 가을바람의 노래를 받아주고 있고 배경을 이루는 산사면과 계곡의 바위들은 육봉의 호방하고 역동적인 암릉과 바위사이로 바라볼 때 그것은 이미 평범한 산지형, 평범한 계곡은 아니다. 바위산 관악산의 풍모는 육봉암릉의 모퉁이에서 그리고 인접한 암봉과 암봉 사이에서 바라볼 때 더욱 선명한 석산의 모습으로 다가선다. 관악산의 바위들은 도봉산이나 북한산의 바위에 비해 규모가 미세하여 태생적으로 웅대한 느낌을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아기자기한 맛이 적지 않다. 그것이 가장 잘 나타난 곳이 육봉과 팔봉능선이다.
하산이 완료될 무렵,
만나는 다섯 분의 스님 얼굴이 바위에 조각되어 있는 용운암 마애승용군 유적이다.
과천의 중소기업청(구 공업진흥청)부지가 끝나는 지점에서 정부종합청사역으로 이어지는 6봉코스는 관악산에서도 이색적인 코스이다. 하산이 끝나는 기술표준원에서 정부청사역까지는 1km, 도보 15분 거리다.
종합청사역까지는 은행나무길과 전나무길이 길게 이어진다.
고즈넉하니
산책하기에도,
데이트 하기에도,
가족나들이 하기에도 제격이다.
도종환의 <산경>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산도 똑같이 아무 말을 안 했다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산도 내가 있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하늘은 하루 종일 티없이 맑았다
가끔 구름이 떠오고 새 날아왔지만
잠시 머물다 곧 지나가 버렸다
내게 온 꽃잎과 바람도 잠시 머물다 갔다
골짜기 물에 호미를 씻는 동안
손에 묻은 흙은 저절로 씻겨내려갔다
앞산 뒷산에 큰 도움은 못 되었지만
하늘 아래 허물없이 하루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