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큐레이터의 <헐렁한 군주론>- 도덕적 명분론은 현실적 실리론에 항상 패한다
군주론은 지금까지 정치에 관한 책 중 으뜸으로 꼽힌다.
이웃 사촌은 플라톤의 <국가>가 될 것이다. 내용적으로 좀 더 연관지어보면 리쭝우의 <후흑학> 정도다. 정치교과서라 불리면서도 '나쁜 짓을 하고도 벌을 면할 수 있다'는 마키아벨리즘식 표현으로 인해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카톨릭교회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으며 금지도서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통해 무명이었던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수많은 비난과 저주에도 불고하고 군주론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프리드리히 대왕, 나폴레옹, 레닌, 무솔리니, 그람시, 카스트로와 같은 세계사적 인물들이다. 내면적으로는 마키아벨리의 사상에 공감하면서도 공개적으로는 마키아벨리를 비난하는 역설적 이중성이야말로 군주론의 대단함을 반증한다.
제2장 세습군주국
한 번 부자는 영원한 부자다.
평범한 우리 소시민들은 간혹 “부자 3대 못간다”는 말에 위안을 삼으며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인다.
하지만 이 말은 사실이 아니다. 특히 지금은 ‘한 번 부자는 대대손손 간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예전처럼 오직 자연환경에 의지해 땅의 크기로 ‘부자다, 아니다‘를 판별하던 시대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조선 말기에 3대가 아니라 무려 12대 300년 동안 존경받는 부자로 명성을 누렸던 가문이 있다. 경주 최부잣집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부자로 남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최씨 가문의 자녀교육법이었다. 6가지가 자녀교육의 핵심이었다.
첫째, 찾아온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둘째,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 없게 하라.
셋째, 재산은 만석 이상 갖지 마라.
넷째, 흉년에 땅 사지 마라.
다섯째, 과거를 보되 진사이상 벼슬은 하지 마라.
여섯째, 새댁며느리는 3년 간 무명옷을 입혀라.
기업도 마찬가지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세습 기업은 신생 기업보다 더 적은 노력으로 더 큰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대부분 이런 형태다. 경주 최부잣집의 6가지 교육철학을 실천하는 대기업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힘없고 기반이 약한 신생 기업이나 중소기업들을 배려하기는커녕 오히려 군림한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배려는 못해줄 망정 공정한 경쟁을 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특권과 반칙이 난무하여 기업질서를 흐리고 있다. 어찌보면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마키아벨리즘적 경영방식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틀리다, 맞다’라는 이분법적 논쟁은 무의미하다. '적자생존, 약육강식'이라는 자연법칙은 기업에도 인간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도덕군자 논리에 매몰되어 수익을 내지 못해 기업을 망하게 한다면 진정한 리더라 할 수 없는 측면도 있다.
확장을 통한 생존은 본능이다.
기업 역시 인간과 마찬가지로 시장점유율과 고객확보라는 확장을 통해 발전해 나간다. 500년 전 죽은 마키아벨리가 무덤에서 나온다면 작금의 대한민국을 위해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까? ‘그 어떤 찬사도 이토록 위대한 인물을 찬양하는 데 적합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묘비명이 당시 그의 인간됨을 반증해 준다. 국가도 마찬가지지만 기업 역시 수명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영속성(going concern)을 추구하는 이익집단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사는 사람은 ‘법인(法人)이다. 법으로 만든 사람이 곧 법인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기업형태를 띄는 주식회사 역시 법인이다.
골리앗의 시대는 가고 다윗의 시대가 도래 했다.
자연계에서 덩치 큰 공룡이 가장 오래 살아남았던 것처럼 덩치 큰 기업들이 오래 살아남을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덩치가 크다는 것은 곧 부자라는 의미다. 대차대조표상의 자산이 많다는 말이다. 하지만 용기를 내자. 덩치가 클수록 오래 간다는 기업법칙은 이제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대차대조표라는 하드웨어적 자산으로는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되었다. 외형적인 것에 집중했던 기존의 경영패러다임이 이제는 보이지 않는 것이 큰 소리 치는 패러다임으로 급속히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대차대조표라는 하드웨어에 문화, 제도, 시스템과 같은 소프트웨어가 필요해졌다. 과거에는 대차대조표가 기업생존의 필요조건이었다면 이제 소프트웨어적 자산이 필요조건이 되었다는 말이다.
아무리 설비와 자산 같은 하드웨어가 많아도 소프트웨어가 부족하다면 영속성을 담보하기 어렵게 되었다. 소프트웨어의 함정은 창업자의 2세, 3세들에게서 자주 나타난다. 창업자가 자산을 물려줄 수는 있지만 정신을 물려줄 수는 없다. 자주 거론되는 기업이 1990대 우리나라 유통산업의 한 획을 그은 유통업계의 기린아 ‘뉴코아’다. 창업주가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켰지만 1인 지배적 경영으로 규모와 기술 습득을 등한시한 채 확장을 계속하다 파산했다.
창업자로부터 대차대조표상의 설비와 자산 같은 외형만 물려받은 2세들은 이른바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에 도취될 가능성이 높다.
주전 3세기에 헬라에 피로스 왕이 있었다. 피로스는 한니발이 지목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세 명의 장군 중 한 사람이다. 피로스는 25,000명의 군인과 20마리의 코끼리를 이끌고 로마를 침공했다. 격렬한 전쟁에서 그는 승리했지만 자신의 코끼리도 다 죽고 군인들도 4분의 3이나 죽었다. 피로스의 승리는 흔히 ‘상처뿐인 영광’으로 비유된다. 많은 희생과 대가를 치르는 승리를 가리킨다. 이러한 승리는 최종적으로는 패배와 다름이 없는 승리다.
조선 태종은 즉위에 성공하였으나 사병 해산을 반대하던 매부 이거이 부자를 처형했다.
처남인 민무구, 민무질 형제도 처단했다.
그 뒤로 개국 공신이었던 이숙번, 이무 등도 숙청했다.
역사는 말한다. “태종의 연이은 숙청은 신생국 조선의 왕권을 확고하게 했으며, 뒤이어 왕권을 물려받은 세종은 500년 조선왕조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500년 역사를 연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조선의 세계화에는 실패한 것이다. 아무도 그를 독재자라 부르지 않는다. 정치학적으로 보면 조선의 역사는 대부분 세습의 역사였다. 따라서 세습의 역사를 독재의 역사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마키아벨리스트적인 역사의 편린들이 일부 녹아 있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수단과 방법’에 총칼로 신민들을 죽이는 것까지 포함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탁상공론적인 도덕적 명분론에 매몰되어 중국이 서구 열강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고 주장한 ‘후흑학’(厚黑學)의 창시자 리쭝우(李宗吾)의 말에 일견 공감은 하지만 그렇다고 도덕보다 무력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회풍자가였던 리쭝우가 말하는 후흑학의 백미는 결국 인의(仁義)와 정의(正義)를 내세우는 정치인들의 내면을 꿰뚫었다는 데 있다. 겉으로는 선한 척 하지만 통치자 대부분의 이면에는 ‘두꺼운 낯(厚)과 시커먼 마음(黑)’이 자리 잡았기에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한마디로 지고지순하거나 이상적인 목표에만 집착하는 순진무구(純眞無垢) 형으로는 권력을 잡기 어렵다는 것이다. 후흑학은 오늘날의 후안무치(厚顔無恥)란 말과 상통한다. 자신 스스로 잘못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두꺼운 낯과 부끄러워하지 않는 마음으로 끝까지 우겨야 권좌에 오르고 부귀도 얻을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게 리쭝우가 이야기하는 후흑학의 ‘패러독스’다. 후흑학은 결국 군주론과 가장 닮은 책이다.
세습군주는 신생군주에 비해 사람들을 괴롭힐 이유나 필요가 많지 않다. 따라서 군주가 상식 밖의 사악한 비행-재산을 뺏거나 여인들을 빼앗는 것-을 하지 않는 한 신민들이 그를 따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더욱이 군주 가문의 통치가 오래 지속될수록 급진적인 변화에 대한 기억과 그 원인은 희미해지기 마련이다.<군주론> 3장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세습군주는 오늘날 독재정권과 다름없다.
독재(Dictatorship, 獨裁)는 일개인 또는 일정한 집단에 권력을 집중시켜서 지배하는 비민주적인 정치를 말한다. 우리나라도 유신독재, 군부독재와 같은 독재의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세습군주(독재자)는 신민의 재산과 여인을 빼앗지 않는 한 신생군주보다 유지하기가 쉬우며, 독재가 오래 지속될수록 변화에 대한 기억이 사라진다는 마키아벨리의 지적은 통렬하다.
이웃나라 일본은 메이지 유신 때 이미 대기업을 모두 정리했다. 순기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기능이 더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속성산업화를 거치면서 국가 차원에서 대기업을 육성하고 발전시켰다. 규모의 경제와 효율성 측면에서 순기능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대기업의 순기능을 인정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변화를 추구하고는 있지만 산업화의 산물인 대기업들이 여전히 산업화적 사고와 경영방식을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손자병법> 구변편(九變篇)에서는 "길에도 따르지 말아야 할 것이 있고, 싸움에도 공격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고, 성에도 공격하여 뻿지 말아야 할 것이 있고, 땅에도 다투지 말아야 할 것이 있고, 임금의 명령도 받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 곳곳에서 경제민주화를 부르짖고 있다. 문어발식 경영을 통해 비행기부터 두부까지 만드는 것이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모습이다. 10대 기업 전체 계열사수(2012.04)는 모두 638개다. 개수보다는 그 업종의 폭이 문제다. 대기업도 하지 말아야 할 사업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있다.
기업이 단순히 사회의 일부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가 기업의 모델과 논리에 따라 재조직되는 오늘날의 사회를 성공회대학교 김동춘 교수는 '기업사회'라고 불렀다. 바야흐로 국가보다 기업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말이다. 기업이 정부 정책에 ‘감 놔라 배 놔라’하면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실현하는 것이다. 가계-기업-정부라는 메카니즘이 붕괴되는 것이다. 기업은 국가가 아니다. 기업이 국가 행세를 해서는 곤란하다. 기업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2장 말미에서 마키아벨리는 세습군주들도 변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변화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파괴적이거나 혁신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것은 국가나 기업도 마찬가지다. ‘점진적 변화’라는 말은 권력을 가진 자와 대기업들이 가장 즐겨 써먹는 말이다. 변화를 넘어 혁신을 이야기해도 될까 말까 한데 점진적으로 변하겠다는 것은 현상유지를 하겠다는 말과 같다.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겠다는 논리다. 힘들게 자전거 페달을 밟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속에 집어넣으면 놀라 뛰쳐나오지만 미지근한 물에 담그면 편안하게 죽어간다. 개구리의 죽음은 익숙한 편안함에서 비롯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