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경영/토익책을 덮고 군주론을 펼쳐라

토익책을 버리고 군주론을 펼쳐라-7장 관대함과 인색함

김부현(김중순) 2013. 4. 4. 09:56

제7장 관대함과 인색함

 

세습군주는 신생군주에 비해 백성들을 괴롭힐 이유가 많지 않다. 따라서 군주가 상식 밖의 사악한 행동, 즉 재산이나 여인을 빼앗는 짓을 하지 않는 한 백성들이 그를 따르게 된다. 따라서 군주 가문의 통치가 오래 지속될수록 급진적인 변화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진다. <군주론>2장

 

페라리 공작은 1484년의 베네치아인들의 공격과 1510년의 교황 율리우스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물리칠 수 있었다. 그의 가문이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통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세습군주국의 경우에는 선조의 기존 질서를 바꾸지 않으면서 불의의 사태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것만으로도 안정적으로 나라를 통치할 수 있다.

 

회사를 물려받은 경영자에게 변화는 개혁보다 어렵다

 

부잣집에서 태어난 재벌 2세들은 선친의 기업을 고스란히 물려받는다. 부의 세습이자 세습기업이다. 이런 회사일수록 변화가 어렵다. 경영자가 선두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고 총대를 메도, 직원들은 겉으로는 따르는 척 하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있기 일쑤다. 직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철학의 부재와 신뢰감 결여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 잘 만나 회사를 물려받은 2세 경영자가 구성원의 신뢰와 믿음을 쌓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구심점이 약하다보니 조직 전체가 쉽게 피로감이 누적되기 때문이다.

이런 조직피로감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뒷담화 문화와 약점 캐내기 문화’를 없애는 일이다. 뒷담화는 상사들의 업무외적인 부분을 안주거리로 삼는 것이다. 약점 캐내기 역시 그 사람의 가장 치명적인 흠집을 들추어 모멸감을 주는 것이다. 역린이다. 역린은 ‘용의 턱 밑에 거꾸로 난 비늘’을 말한다. 이것을 건드리면 용은 누구든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인다.

<사기>에서 약방의 감초 역할을 하는 진나라의 장수 백기에 대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진나라가 조나라를 무지막지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백기는 병석에 누워 있어 전쟁에 참가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진나라 왕은 무리하게 전투를 치르다 유능한 장수 다섯 명을 한꺼번에 잃고 말았다. 욕심이 부른 참패였다. 시간이 흘러 백기가 병석에서 일어나자 왕은 백기를 선봉장으로 다시 전투를 벌이려고 했다. 놀란 백기는 왕을 만류했다.

“지금 전투를 하면 패배가 있을 뿐입니다. 지금은 우리의 상황이 불리하오니 전세를 살피면서 새로운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그러나 왕이 고집을 꺾지 않자 백기는 병이 아직 완쾌되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고 왕의 명을 거역했다. 이번에도 왕은 과욕을 부려 전투에 나섰다가 백기의 말대로 다시 대패하고 말았다.

그러자 백기는 주변 사람들에게 왕에 대해 이렇게 뒷담화를 했다.

“왕이 내 말을 듣지 않아서 결과가 이렇게 된 것이다.”

이 말을 전해들은 왕은 심한 모멸감과 더불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왕의 약점 즉 역린逆鱗을 건드린 것이다. <한비자>의 세난편(稅難編)에서 역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용은 두껍고 단단한 비늘로 되어 있어서 어떤 무기로도 용의 비늘을 뚫을 수는 없을 만큼 완전무결하나 단 하나 거꾸로 붙어 있는 비늘 즉 용의 목 밑 부분 심장위에 있는 비늘 하나만은 매우 약하다. 이 비늘을 ‘역린’이라고 한다. 용의 가장 약한 급소인 셈이다. 용을 죽이는 방법은 오직 여기를 공격하는 것 하나 밖에 없다. 그러나 용은 자기의 약점이 역린에 있는 것을 잘 알기에 역린을 건드리려고 하면 화를 내며 폭발하게 된다. 만일 이 비늘을 건드리는 자가 있다면, 용은 그 사람이 누구든 죽여 버린다. 그렇게 총명한 백기도 왕의 역린을 건드린 결과 모든 직위를 박탈당하고 하루아침에 병졸 신세가 되고 말았다.

‘부하-상사’간 가장 중요한 역린은 ‘권위’이다. 권위는 회사가 부여한 것이다. 상사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회사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 된다. 퇴근길 술자리에서 뒷담화에 휩쓸리지 않는 것이 상책이지만 설령 분위기를 맞춘다고 해도 상사의 역린, 즉 권위‘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를 빗대어 왕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을 ’역린지화‘라 한다.

앞서 군주론에서 말하는 세습군주는 오늘날 독재정권과 유사하다. 독재는 일개인 또는 일정한 집단에 권력을 집중시켜서 지배하는 비민주적인 정치를 말한다. 우리나라도 유신독재, 군부독재와 같은 독재의 역사가 있다. 세습군주는 백성의 재산을 빼앗지 않는 한 신생군주보다 정권 유지가 쉬우며, 독재가 오래 지속될수록 변화에 대한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역사인식이다.

<손자병법> 구변편(九變篇)에서는 "길에도 따르지 말아야 할 것이 있고, 싸움에도 공격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고, 성에도 공격하여 뺐지 말아야 할 것이 있고, 땅에도 다투지 말아야 할 것이 있고, 임금의 명령도 받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고 했다.

지금 우리나라 곳곳에서 이른바 ‘경제민주화’를 부르짖고 있다. 일부 대기업들은 문어발식 경영을 통해 비행기부터 두부까지 만들고 있다. 관련 조사에 의하면, 2012년 4월 현재 10대 기업 전체 계열사수는 모두 638개다. 개수보다는 그 업종의 넓이가 문제다. 아무리 자유 시장 경제를 추구하지만 대기업도 하지 말아야 할 사업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있다. 대기업은 일반 기업들보다 더 큰 공공의 역할이 필요하다. 사회적 책임이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고 했는데 대기업들의 하는 짓을 보면 멀리 가기는 글러먹은 것 같다.

기업이 단순히 사회의 일부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가 기업의 모델과 논리에 따라 재조직되는 오늘날의 사회를 성공회대학교 김동춘 교수는 '기업사회'라고 부른다. 바야흐로 국가보다 기업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말이다. 기업이 정부 정책에까지 ‘감 놔라 배 놔라’하면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실현시키는 것이다. 그러니 권력을 가진 사람은 자본가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가계-기업-정부’라는 메카니즘이 붕괴되는 것이다. 기업은 국가가 아니다. 기업이 국가 행세를 하려고 하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군주론 2장 말미에서 마키아벨리는 세습군주들도 변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변화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파괴적이거나 혁신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재벌 2세들이 귀담아 들을 만한 대목이다.

 

만약 주변국에게 포위당하여 나라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을 경우, 강력하고 용감한 군주라면 백성들에게 이 위기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득하고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적의 잔혹함에 대해 당당히 맞서고,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자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군주국>10장

 

적군이 성에 도착하자마자 성 밖의 지역들을 모두 파괴하고 약탈하겠지만, 어떤 경우에도 백성들에게 성을 지키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조만간 고난이 끝날 것이라는 희망을 동시에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면 이를 계기로 백성들은 군주를 중심으로 더 강하게 뭉치게 된다.

 

희망은 고난을 견디게 하는 원동력이다

 

"사람은 40일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고, 3일 동안 물을 마시지 않고도 살 수 있으며, 8분간 숨을 쉬지 않고도 살 수 있다. 그러나 희망이 없이는 단 2초도 살 수 없다.“는 스위팅의 말처럼, 인간의 고통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단어가 ‘희망’이다.

한니발은 포에니 전쟁 당시 보병 5만 명, 기병 9천 명과 40마리의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피레네 산맥을 넘고, 알프스를 넘는 고난의 행군을 감행했다. 그는 병사들을 설득하여 눈보라가 몰아치는 산맥을 넘는 기상천외한 전술을 펼쳤다. 적들은 한니발 군대가 편안한 바닷길을 두고 눈 덮인 산을 넘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알프스를 넘은 고난의 행군에서는 승리하였으나 로마의 성에 들어가자마자 군대는 문란해지고 말았다. 고난에 처했을 때는 힘이 하나로 모였지만 편안해지자 이합집산이 된 것이다. 한니발 군대가 알프스 산맥을 넘을 수 있었던 이유는 산맥만 넘으면 승리가 있다는 희망을 병사들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을 참기는 어렵다. 끝이 보이고 목표가 보이면 고난은 이겨낼 수 있다.

2010년 8월 5일, 칠레 북부에 있는 산호세 탄광이 무너졌다. 지하 622미터 갱도에서 일하던 광부 33명이 갇히게 된다. 생사의 기로에서 서로를 이해해 줄 수 있는 리더를 필요로 하게 되자 축구 코치 경력이 있는 우르수아를 내세운다. 그러나 그의 철두철미한 원리원칙은 죽음 앞에서는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래서 광산에서 개그맨이라 불리던 마리오 세풀베다에게 새로운 리더를 맡기게 된다. 그의 긍정적인 마인드는 지쳐가는 광부에게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오랜 연륜과 경험을 바탕으로 생존지혜를 가지고 있던 마리오는 광부들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경을 받으며 33명의 장단점을 서로 보완하여 지하세계에서 생존해 간다. 마침내 동굴에 갇힌 지 69일 만에 모두 지상으로 무사히 구조되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이들을 버티게 해준 건 서로를 위한 배려와 웃음과 질서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준 리더의 역할 때문이다. 각자의 장점은 살리고 약점을 보완해주는 상호 배려의 리더십이 33명의 목숨을 살린 것이다.

로널드 레이건(Reagan)이 대통령으로 재임했던 1980년부터 1988년 사이 미국에는 유난히 많은 일이 일어났다. 2차 오일쇼크와 연 12%에 달했던 인플레이션, 러시아와의 냉전, 레바논 사태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심각하고 복잡한 문제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레이건의 경제 정책은 정부 지출 삭감과 감세(減稅)로 대변되는 '작은 정부'와 규제 완화, 그리고 안정적인 금융정책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이 '레이거노믹스'도 그의 첫 번째 임기가 끝날 무렵인 1984년까지 미국 경제를 부흥시키기에는 역부족이란 평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재선(再選)에 도전해 미국 50개 주(州) 가운데 49곳에서 대승을 거둔다. 미국 대통령 선거 사상 가장 일방적인 승리였다. 그 비결은 바로 확신에 찬 위기극복에 대한 희망적인 청사진과 위기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유머러스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취임한 지 몇 달 만에 저격을 당했고, 심장에서 불과 1인치 떨어진 곳을 관통한 총알은 폐를 손상시켰다.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는 동안 줄곧 피를 토하며 심각한 호흡곤란을 일으켰다. 수술이 끝난 후에 그를 찾아온 부인 낸시 레이건에게 "여보 미안해. 총알이 날아왔을 때, 머리 숙이는 걸 잊어버렸어!"라며 깜짝 조크를 날렸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이런 유머를 했다면...? 가볍다고 입방아에 오르기 십상이다. 하지만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희망리더십과 위기를 긍정의 에너지로 바꿔주는 유머이다.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관대함이라는 미덕을 정직하게 실천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현명한 군주라면 인색하다는 평판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 시대에 위대한 업적을 성취한 사람들은 모두 인색하다는 평판을 들었으며, 그렇지 않은 군주들은 대부분 실패했기 때문이다. <군주론>16장

 

인색함이란 통치를 위해 허용된 악덕들 중의 한 가지다. 군주가 되는 과정에는 관대하다는 평을 받는 것이 필요하지만 군주가 된 경우에는 관대함보다는 악덕이 낫다. 카이사르는 관대함을 통해 절대 권력을 얻었지만, 군주가 된 이후에는 악덕으로 통치를 했다. 악덕은 소수에게 피해가 가지만 관대함은 과도한 세금으로 인해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현명한 군주는 인색하다는 평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라면 가능한 백성들로부터 관대하다는 평판을 듣는 것이 좋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대한 처신을 통해 통치가 쉽지 않다면 그것은 오히려 해가 된다고 주장한다. 지나치게 관대함에 관심을 가질 경우 군주는 사치스러운 방법을 강구해야 하므로 모든 자원을 다 소모해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관대하다는 명성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군주는 결국 과도한 세금과 부정 축재를 위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여 백성들에게 부담을 주게 된다. 결국 군주의 관대함을 유지하여 피해를 입는 백성들은 많고, 이익을 얻는 백성들은 거의 없기 때문에 백성들의 지지가 생명인 군주에게 사소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백성들은 등을 돌리게 된다.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는 ‘영혼이 있는 기업’을 이야기하지만 전쟁터와 같은 비즈니스의 세계에선 사치에 불과하다.

<손자병법>에도 “장수가 다정하게 반복해서 말하는 건 부하들의 마음을 잃었다는 뜻이고, 상을 남발하는 건 사정이 급해졌다는 뜻이며, 벌을 남발하는 건 상황이 딱하다.”는 반증이라고 했다. 상과 벌을 잘못 사용한다면 조직의 생동감을 유지하기 어렵다.

권력자의 가장 큰 무기는 침묵이다. 권력자일수록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의 효과는 크다. 힘없는 자의 침묵은 침묵일 뿐이지만, 권력자에게 침묵은 침묵이 아니다. 침묵은 말이고 말이 곧 침묵이다. 절대 권력자는 침묵으로 말한다. 긍정도 침묵, 부정도 침묵이다. 상과 벌을 줄 때도 침묵이다. 그 침묵을 긍정으로 해석해도 좋고 부정으로 해석해도 좋다. 그래서 절대 권력자의 침묵은 무섭다.

실적이 좋지 않은 경영자일수록 말이 많아지고, 능력이 부족한 경영자일수록 월급으로 직원들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 손자의 표현을 빌리면, 능력 있고 실적이 좋은 경영자는 자상하지 않고 불친절 하다는 것이다. 또한 마키아벨리는 그가 혼란기에 처했던 역사 속 군주들의 사례를 조사해본 결과를 토대로 군주는 미덕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인색하다는 평판을 듣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얼마 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한 주일 담화에서 '침묵(Silence)의 힘'을 강조한 바 있다. 예년의 담화는 주로 현대사회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복음을 적극적으로 전파할 것을 독려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교황은 현대인들이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가져다준 말의 성찬(盛饌)시대를 살고 있지만, 오히려 소통 능력은 잃어가는 데 대해 예언자적 목소리를 낸 것이다. 교황이 지적한 것처럼, 우리는 복잡하고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환경에서 인간 실존에 대한 궁극적 물음에 부딪치고 있다. 버스와 지하철에서도 스마트폰으로 누군가와 쉴 새 없이 말을 주고받지만 내적 공허는 깊어만 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특히 말을 짧고 빠르게 주고받다 보니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능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때로는 자신만을 향한 독백을 늘어놓기도 하고, 걸러지지 않은 말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이런 소통 방법으로는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참다운 대화가 어렵다. 침묵의 시간을 단순히 입을 닫은 수동적 상태나 낭비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말은 침묵에서 나와서 다시 침묵으로 돌아간다."는 격언이 있다. 침묵은 내가 해야 할 말을 생각하게 하고, 내뱉거나 들은 말을 성찰하게 해주는 은총의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침묵하는 사람이 무서운 것이다. 절대자의 침묵은 매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조직에서도 직급이 낮을수록 말이 많다. 아니다. 말이 많으면 직급이 올라갈 수 없다고 하는 게 맞겠다.

 

소비자에게는 구루, 직원에게는 잔혹한 경영자였던 스티브 잡스

 

끊임없는 혁신과 영감으로 전 세계 소비자들을 매혹시켰던 스티브 잡스였지만 노동자들에겐 한없이 잔인한 CEO였다. 해마다 최고의 프레젠테이션으로 세계개발자컨퍼런스(WWDC)에 모인 IT팬들을 홀딱 반하게 만들었던 그였지만 직원을 해고할 때는 어떤 관용도 내보이지 않은 냉정한 CEO였다.애플의 하청업체 폭스콘(foxconn)에는 다리가 부어 제대로 걷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20명이 방 3개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독성 화학물질에 중독되어 후유증에 시달리는 노동자만 137명이다. 주 노동시간 70시간을 초과하는 일은 다반사다. 생전에 잡스는 개인적으로 주고받은 이메일에서 "노동력 착취는 없었다."라며 "모든 자살이 비극적이기는 하지만 폭스콘의 자살률은 중국의 평균보다 훨씬 낮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잡스는 분명 세상의 영웅이지만, 무관용을 대변하는 CEO이기도 하다.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직원에게 맡고 있는 업무를 물은 뒤 제대로 답하지 못하자 내리면서 "당신 해고야"라고 말했다는 일화도 있다.

반면 리더십이 부족하고 지나치게 도덕적인 리더는 직원들에게 인심을 쓴다. 회사 경비로 불필요한 워크샵이나 회식, 과도한 상여금 남발과 같은 물질적 수단으로 리더십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직원들에게 호의적으로 보이기 위해 동업계의 평균보다 높은 월급과 상여금, 분에 넘치는 경비집행을 하다보면 결국 회사는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그 피해는 결국 구성원들에게 되돌아간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리더보다는 직원들에게 잔인하다는 평가를 받더라도 기업의 발전을 꾀하는 리더가 진정한 리더라는 것이다. 호의를 베풀다 회사를 망하게 하는 리더보다는 악인으로 평가받더라도 회사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리더가 참된 리더라는 것이다.

전옥표의 <동사형조직>에 이와 유사한 부분이 있다. 바로 ‘명사형 리더’과 ‘동사형 리더’의 구분이다. 명사형 리더의 특징은 구호와 슬로건을 좋아하고, 형식을 중시하며,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반면 동사형 리더는 실천 중심적이며, 일에 대한 사명과 열정이 있고, 과정이 아닌 결과 중심이다. 따라서 스티브 잡스는 동사형 리더의 전형이다.

 

21세기는 감성과 공감의 시대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관대함만으로 통치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므로 때로 인색하다는 평을 듣는데 주저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비교적 순항하고 있는 오늘날의 기업으로 들어가 보면 경영자에게 필요한 더 중요한 미덕은 감성과 공감지수이다.

국내 100대 기업의 상장회사 매출액 기준으로 여성 임원 숫자가 2013년 처음으로 100명을 넘어섰다. 여성 임원 승진이 점차 일반화되고 있어, 향후 10년 이내에 여성 임원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이른바 ‘퀀텀 점프’ 시기가 올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헤드헌팅 기업인 <유니코써어치>가 내놓은 최근 자료를 보면, 100대 기업 가운데 33곳에 여성 임원 114명이 포진하고 있다. 재벌 총수 등 기업 소유주 일가 여성 임원은 제외한 숫자다. 유니코써어치가 처음 조사했던 2004년엔 여성 임원이 13명에 불과했다. 이후 2006년에는 22명에서 2011년에 76명까지 늘었다. 2013년에는 전년보다 50%나 증가한 것이다.

경영학의 대부 피터 드러커는 `21세기를 여성의 세기`라고 했다. 여성 리더십은 피할 수 없는 역사의 조류다. 흔히 남성은 권위와 복종, 명령과 통제의 리더십으로 표현한다. 농경·수렵·사냥에 적합한 리더십이다. 그러나 여성은 배려와 포용, 감성의 리더십으로 통한다.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 것은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 리더들이 등장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말이다. 여성들은 감성과 창의, 소통과 이해, 공감과 협업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기존 전통산업에 IT를 융합하는 막강한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리더로써 여성이 남성보다 낫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앞으로 여성 리더가 지금보다 더 각광받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데는 별다른 이의가 없다. 하나의 조건만 충족된다면 말이다. 그 조건은 여성 스스로가 여성을 구속하는 것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남성들 탓으로 치부했던 모든 장벽들을 걷어내는 것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한다. 알은 하나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는 <데미안>의 글처럼 한 세계를 깨트려야 여성이 가진 강점들을 살려나갈 수 있다. 기회가 왔는데도 여성 스스로가 과거의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역사는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 뿐 아니라 가정에서의 위상도 크게 높아지고 있다. 집안을 한번 둘러보자. 집안을 가득 채운 수많은 물건들을 구매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사람이 누구인가? 아마도 가장 큰 의사 결정권을 행사한 사람은 바로 아내다. 가장 큰 목돈이 드는 집을 구매하는 데도 집안의 가장인 남편의 출퇴근 편의성 보다는 아이들의 교육이나 쇼핑, 문화 환경 등이 우선시되고 있으며, 몇몇 전자 제품들을 제외하고는 집안에 있는 물건 대부분이 여성들의 의견에 따라 구매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여성들의 성공 비결을 살펴보면 여성성을 강조한 감성경영(感性經營)과 성과를 중시하는 기업문화(企業文化)의 정착을 들 수 있다. 이것은 기존의 수직적이고 조직적인 사고에 익숙해져 있던 많은 남성들이 별반 대수롭지 않게 생각 했던 부분이었다. 여성 리더들은 특유의 유연하고 감성적인 마인드를 적절히 활용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으며 소비자들에게 감성적으로 다가감으로써 그들을 감동시키고, 차별화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얼마 전 <이코노미플러스>는 커버스토리로 ‘대한민국 신 성장 동력 여풍’에서 여성들의 소비심리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 바 있다.

“여성들의 성공은 근본적으로 여성들의 소비 심리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여성들의 소비에 있어 가장 큰 특징은 제품을 구매하는 데 있어 상품의 품질이나 기능이라는 이성적인 측면보다 그들의 감성적 욕구를 얼마나 충족시키느냐를 더욱 중요시 여긴다는 것이다. 점심 식사는 떡볶이나 김밥으로 간단히 먹더라도, 후식으로 식사보다 더 값비싼 스타벅스 커피 한잔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것은 그것이 충족시켜 주는 감성적인 만족 때문이다.”

여성과 남성은 태어날 때부터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는 사회적인 학습 과정을 통해서 더욱 커진다. 여성은 감성적인 측면이 크게 발달하는 반면, 남성은 이성적이고 계산적인 측면이 더 발달하게 되고, 이러한 차이가 일상생활 속에서 여러 가지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게 된다. 자동판매기 커피 한잔으로 충분히 카페인에 대한 욕구 충족이 가능한 남성들로서는 비싼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다니는 여성들의 구매 패턴이 사치나 겉멋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따라서 변화를 읽는 경영자라면 여성들이 소비의 주체가 된 현실에서 그들의 감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겉멋만 화려하게 치장하여 현혹할 것이 아니라 세심한 배려를 통해 그들의 감성을 이해하고 감동시킬 수 있는 활동을 끊임없이 추구해 나가야 한다.

관대함을 실천하는 군주는 가난해지거나 경멸당하게 된다. 나아가 가난을 피하기 위해 탐욕을 부리게 되거나 미움을 받게 된다. 따라서 군주는 다른 그 무엇보다 경멸이나 미움을 받게 되는 것만큼은 경계해야 하는데, 관대함은 군주를 이 두 가지 길로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움이 섞인 비난을 불러일으키는 탐욕스럽다는 평판보다, 비난은 받겠지만 미움이 섞이지 않은 인색하다는 평판을 얻는 것이 더욱 현명한 처신이다. <군주론>16장

 

관대함보다 인색하다는 평판을 듣는 것이 낫다

 

<사례1> 목공의 관대함

진(秦)나라 목공이 양산(梁山) 일대로 사냥을 나갔을 때 일이다. 평소 왕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던 명마 몇 필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곧 대대적인 수색 작전이 시작되고 인근 부락에서 주민들이 왕의 말을 잡아먹는 현장이 발각되었다.

관리들이 왕에게 주민들을 중형에 처해야 한다고 아뢰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신하들을 꾸짖고 "이미 말은 사라지고 없다, 하물며 말을 잡아먹었다고 그들을 처형한다면 이는 인간의 목숨이 한낱 말보다 못하다는 것이 아니냐. 이미 죽은 말은 어쩔 수 없는 것" 그들을 방면하도록 하라고 명했다. 부락민들은 이 같은 목공의 관대함과 자애로움에 감동되어 한없이 감사하며 그를 위해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 할 것을 맹세했다고 한다. 훗날, 적군의 침입으로 목공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를 구하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포위망은 뚫은 군사들이 바로 이들 주민들이었다.

 

<사례2> 순우곤의 치(治)

제나라 위왕 8년, 초나라가 대병을 이끌고 제를 공격해왔다. 위왕은 순우곤(淳于髡)에게 조나라로 가서 구원병을 청하게 했다. 그러면서 황금 100근과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 10대를 예물로 주었다. 그러자 순우곤은 관의 끈이 떨어질 만큼 큰 소리로 웃었다. 무안을 당한 위왕이 물었다.

"선생은 이 예물이 적다고 생각합니까?"

순우곤이 말했다.

"어찌 감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 어찌하여 그토록 웃으시오?"

순우곤이 비로소 정색을 하며 말했다.

"예. 다름이 아니옵고 신이 오늘 아침 대궐로 들어오는데 길가에서 어떤 농부가 돼지 발 한 개와 술 한 잔을 밭두렁에 놓고 ‘제발 풍년이 들어 온갖 곡식이 집 안에 가득 차게 하소서’라며 비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물에는 인색하면서 그 바라는 바가 심히 사치스러우니 도저히 웃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습니다."

왕은 그제서야 순우곤의 말을 깨닫고 황금 1000근과 흰 구슬 10쌍, 마차 100대를 예물로 가지고 가게 했다. 이에 순우곤이 조왕을 찾아가 10만 명의 구원병과 전차 1000대를 얻어 돌아왔다. 이 소식을 들은 초나라는 싸울 생각도 하지 않고 밤중에 서둘러 군대를 철수시켜 퇴각해 버렸다.

 

<사례1>은 ‘관대함’에 관한 예시다. 목공은 자신이 아끼던 명마를 잡아먹은 주민들을 너그럽게 용서한 결과, 결국 자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 주민들의 도움으로 자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사례2>는 ‘인색함’에 대한 예화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좋은 것 심으면 좋은 것 거두고 악한 것을 심으면 악한 것을 거둔다. 땀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마키아벨리의 조언은 무조건 관대함을 배척하고 인색함을 추구하라는 뜻이 아니다. 국가 전체의 경제적 관점에서 지나친 관대함은 결국 과도한 세금으로 이어져 국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군주의 현명한 잔인함은 나라를 살리는 진정한 자비가 될 수 있다. 우유부단한 군주의 지나친 관대함은 나라 전체에 해악을 끼치게 된다.

군주가 관대함을 실천하는 방법은 백성들에게 후하게 대하는 것이다. 백성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면 우선은 박수를 받는다. 그러나 관대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든다. 관대해질수록 국가재정은 바닥을 드러낼 것이고, 바닥난 재정을 보충하려면 방법은 하나다. 백성들로부터 다시 과도한 세금을 징수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과도한 세금징수는 필히 백성들의 저항을 가져오고 마침내 군주는 미움을 받게 되어 파멸한다. 관대함과 인색함을 동시에 추구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공동의 번영을 위해서는 인색하다는 평을 듣는 것이 좋다. 관대함과 인색함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선택과 집중은 “세계 시장에서 현재 1위를 하고 있거나, 곧 1위를 할 수 있는 사업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때려치워라”는 의미다. 그런데 갈수록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은 본래 취지와는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선택은 없고 집중만 있다. 선택이 먼저고 집중은 그 다음이다.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를 선택한 후 나머지는 다 버리라는 말이다. 그런데 선택은 온대 간데없고 버리는 것 없이 모든 것을 다 잘 하겠다는 집중만 난무한다.

<손자병법>에 “모든 곳을 다 지키려면 모든 곳이 다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따라서 전쟁을 하기 전에 군의 배치형태, 즉 군대를 어떻게 움직이는 것이 좋은가 하는 것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힘을 자만하여 마구 휘두르지 말고, 상대의 허점을 알아내 스스로 무너지도록 하는 것이다.

전쟁을 잘 하는 장수는 먼저 적이 아군을 이길 수 없도록 만들고, 적을 이길 수 있는 때를 기다린다. 적이 아군을 못 이기는 이유는 아군에게 있고, 아군이 적을 이기는 이유는 적에게 있다. 적의 태세에 빈틈이 보일 때가 승리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산 밖으로 끌어내라

최고의 병법서라 불리는 <손자병법> 모공편謀攻篇에서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최고로 친다. “적국을 온전히 보존하면서 이기는 것을 으뜸으로 치고 적국을 쳐부수는 건 그 다음이다. 적군을 온전히 보존하면서 이기는 것을 으뜸으로 치고, 적군을 전멸시키는 걸 최고라 하지 않는다.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것을 최고라 한다.”고 했다. 싸움의 목적은 승리하는 것이다.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이기는 싸움이야말로 최상수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라”는 속담이 있다. 무모한 짓이다.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은 교과서적인 생각이다. 적의 힘이 강한 곳에서 싸우는 것은 효과적인 전술이 아니다. 호랑이를 손쉽게 잡는 방법은 호랑이굴로 들어가기보다는 호랑이를 산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호랑이가 맹수인 것은 산속에 있기 때문이다. 산 밖으로 나온 호랑이는 맹수가 아니다. 상대의 강점에 맞서 싸우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무모한 짓이다.

이순신 장군의 강점은 해상 전투였다. 남해안의 지형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항명으로 갖은 고초를 겪은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로 돌아와 다시 항명을 저지른다. 불과 12척의 전선만 남은 수군을 폐지하고 육군에 합류하라는 선조의 지시에 “지금 신에게는 전선 12척이 있습니다. 비록 전선은 적지만 제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한 적은 감히 우리를 깔보지 못할 것입니다.”라는 답신을 선조에게 보내고 왕의 명령을 거역한 것이다.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전쟁에서 승리한 장수와 왕의 명령에 따라 싸우다 전투에서 패한 장수 중 목이 달아나야 할 사람은, 비록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왕의 명을 거역한 장수다. 이순신이 그랬다. 그는 왕의 명령보다 전시 상황을 더 잘 아는 본인의 전략적 판단으로 전쟁에서 이겼다. 그러나 결국 갑옷을 벗어던진 채 배의 선단에 서 전사한다.

나라를 위해 용기 있게 싸워 이겼지만 기다리는 건 왕의 명을 거역한 반역죄뿐이었다. 그 이후 장수들은 전시의 판단이 아니라 ‘알아서 기는 아부적 전략’을 선택하게 되었다. 싸움 잘 하는 군인보다 아부 잘 하는 군인들이 더 출세한다는 것을 400년 전 이순신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국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최고 권력자를 위한 보고가 난무하게 된 것이다.

 

권력을 잃은 이탈리아 군주들을 살펴보면 세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군사적으로 취약했고, 백성들의 적대감이 심했으며, 귀족들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군주론>24장

 

나폴리의 왕, 밀라노의 공작 등과 같은 나라를 잃은 군주들의 특징은 군사와 관련한 문제에 있어 용병제를 택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관대함을 유지하기 위해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여 국민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고 엎친대 덮친 격으로 귀족들로부터도 환대받지 못했다. 이런 결함들만 없었다면 군대를 구성할 병사만 있어도 국가를 잃지 않았을 것이다.

 

망한 국가나 기업에게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망한 국가/기업들의 세 가지 특징>

 

구분

 

국가

 

기 업

마키아벨리

필자

공병호⓵

LG경제연구원⓶

맥킨지 컨설팅

1

약한 군사력

유능한 직원의 부재

변화에 둔감

과거의 성공에 안주

외부환경에 둔감

2

백성들의 적대감

구성원들의 적대감

비체계적인조직관리

부서 간 높은 업무장벽

비효율적인 조직관리

3

귀족들의 비협조

키맨들의 배신

편중된 리더십

전시성 조직관리

지나친 자만심

 

-⓵ 공병호, <대한민국 기업흥망사> 참조

-⓶ LG경제연구원, ‘이런 기업 망한다’ 보고서 참조

 

망한 기업들의 세 가지 공통점을 정리해 보면, ‘환경적(외부적 요소)-조직적(내부적 요소)-업무적(관리적 요소)’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각 요소별 공통점을 보면, 먼저 환경적 요소에서는 변화에 둔감하다는 것이고, 조직적 측면에서는 적재적소의 인원관리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업무적 요소에서는 과거의 성공한 업무방식을 고수한다는 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 번 성공을 맛 본 기업일수록 경쟁우위에 있는 하나의 사업에 집중하지 않고 무리한 사업다각화와 확장을 꾀하다 파멸의 길을 걷는다.

 

아프리카 초원을 호령하는 사자는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쥐를 잡아먹지 않는다. 뱀이나 살쾡이는 쥐를 보면 미친 듯이 달려들지만, 사자는 눈앞에 생쥐가 얼씬거려도 잡지 않는다. <서유기>에도, “용유천수조하희, 호락평양피견기(龍遊淺水遭蝦戱, 虎落平陽被犬欺)”라는 말이 있다. “용이 개천에서 놀면 새우의 조롱을 받고, 호랑이가 평지에 가면 개한테 속는다.”

동물학자들에 따르면, 사자의 생존율은 10%에 불과하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특허기술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한 벤처기업도, 10년 이상 일식 주방에서 갈고 닦은 솜씨로 개업한 초밥집도 생존율은 10%다. 경험과 연륜이 성공을 보장하던 시대는 물 건너갔다.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경험이 성공을 막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과거에는 하나의 성공방식을 여러 번 변형시켜 이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또 하나의 성공방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었다. 이제는 그러한 성공방식이 한계에 이르렀다. 지금의 성공방식은 철저하게 개별적이고 독립적이기 때문이다. 즉 하나의 성공은 그 한 번으로 끝난다. 군대에서도 직속상관이 가장 무섭고 조직도 마찬가지다. 과장은 대리를 엄하게 대하지만 사장이 대리를 닦달하지는 않는다. 또 아버지는 아들을 엄하게 대하지만 할아버지는 손자를 엄하게 대하지 않는다.

 

상식의 길을 따르되 상식을 배반하라

 

기업경영의 화두로 떠오른 ‘선택과 집중’은 경영학의 전유물이 아니다. 손자병법이나 한비자, 클라우제비츠의 군사전략에서 처음 만들어 낸 말도 아니다. 그 원조는 자연이다. 선택과 집중은 생존과 확장의 본연이다.

동물학자들에 따르면, 늑대들도 사냥을 할 때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편다고 한다. 먹잇감에 대한 늑대들의 전략은 주도면밀하다. 오랜 관찰을 통해 하나의 목표물을 정하면 아주 세세한 정보까지 파악한다. 먹잇감의 습관이나 행동거지 등을 신기할 정도로 자세하게 지켜본다. 늑대들은 기분 내키는 대로 쫓거나 대책 없이 뒤쫓아 가지 않는다. 무리하게 쫓다가 치명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지 않는다. 늑대들은 어린새끼나 나이든 녀석들을 쫓다가 무리를 이탈하는 한 놈에게 집중한다.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경영학자이자 ‘유럽의 피터 드러커‘로 불리는 헤르만 지몬 교수는 20년간 동안 조사하고 연구한 방대한 자료를 <숨은 강자들 Hidden champions>이라는 책으로 내놓았다. 세계 시장을 호령하고 있는 독일 중소기업의 성공비결을 분석하였다. 이 책에 나오는 강자들은 자신이 속한 산업에서 60~80%라는 경이적인 세계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는 기업들이었다. 그 아래 경쟁사들보다 4~5배 의 경쟁력을 갖고 있는 그야말로 숨은 챔피언들이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히든챔피언은 세간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기업들이다. 그가 꼽은 히든 챔피언들의 명부에는 고속 담배제조기 회사 하우니(Hauni), 관상용 물고기 사료업체 테트라(Tetra), 자동차의 개폐식 지붕과 전차·선박 등의 보조 난방장치를 만드는 베바스토 등이 올라있다. 그러나 이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단 이들의 제품이 대부분 제조공정에서 사용되거나 완성품의 부품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론 대부분의 학자와 애널리스트, 언론이 대기업이나 초대형 기업에만 관심을 기울여 왔기 때문이다. 독일의 500개 히든 챔피언들은 1993년 한해에만 333억 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렸고, 20만개의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경기가 나빠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할 때도 이들은 견고한 성장세를 보여줬다.

히든챔피언들은 상식의 길을 따르되, 상식을 배반한다. 그들은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하면서도, 대기업으로 규모를 키우는 데는 소극적이다. 얼핏 모순처럼 들리지만, 이런 전략이 먹혀든 것은 시장을 재해석해낸 그들의 능력 때문이다. “우리는 소시장에서 큰 기업이 되고 싶다”는 게 히든 챔피언들의 모토다.

우선 거론되는 것은 경영권의 안정이다. 대부분 가족기업 형태인 히든 챔피언들의 경영자들은 평균 20년 이상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외주를 주지 않고 자체 제작하는 부품의 비율이 평균 57%가 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툭하면 비용절감, 규모의 경제 운운하며 하청, 아웃소싱에 집중하는 우리나라 CEO들에게 전하는 엄중한 경고다.

<숨은 강자들>은 중소기업 경영자를 위한 실전 지침서다. 비록 쇠를 깎고 플라스틱을 뽑아내는 전통제조업 기업들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시장을 해석하고 고객관계를 유지하는 이들의 방법론은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준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관료화된 조직 행태의 한계를 물리치기 위해 고심하는 대기업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예컨대 GE의 항공기 엔진 부문 분사처럼 거대한 조직을 히든챔피언들로 분할하는 방법도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하지만 필자는 모든 중소기업은 독일로 통한다고 말하고 싶다.

몇 년 전까지도 세계에서 수출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는 독일이었다. 국가 브랜드는 물론 경제규모 분야에서도 독보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세계의 경찰’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는 최대강국 미국도, 타국으로부터 ‘경제적 동물’이라는 시기 섞인 조소를 당할 만큼 빠르게 성장해온 경제대국 일본도, ‘인해전술(人海戰術)’이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로 세계 최대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강성대국 중국도, 수출에서는 독일에게 뒤쳐진다.

지몬 교수는 2006년 가을 삼성전자 초정으로 방한한 적이 있었다.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물었다.

“책을 출간한 지 10년이 지났으니 숨은 강자들도, 강자들의 특징도 많이 변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무엇이 그 첫 번째 특징입니까?”

그는 곧바로 ‘NO’라고 답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아닙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명확하고 야심찬 목표는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헤매지 않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세계는 평평하다>를 쓴 토마스 L. 프리드먼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세계는 넓어지고 평평해지고 있다. 평평하고 넓어질수록 지도와 나침반이 더 필요하다. 목적도 중요하지만 방향성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몬 교수는 인터뷰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히든 챔피언의 성공비결을 두 마디로 압축하면 집중화(focus)와 세계화(globalization) 전략이다. 히든 챔피언들은 세계 시장을 주도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분명하게 내걸고, 시장을 좁게 정의 내린다. 가령 ‘빈터할터 가스트로놈’이라는 식기 세척기 회사는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식기 세척기로 집중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작은 회사일수록 연구개발비도 빠듯하다.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혁신을 통해 세계 최고의 기술을 보유할 수 있다. 강력한 선도자가 있으면 경쟁을 피하는 지혜를 발휘할 필요도 있다. 오토바이 헬멧 분야에서는 한국의 ‘홍진HJC’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한다. 그러자 ‘포크’라는 스웨덴 회사는 ‘홍진HJC’와 경쟁하는 대신 스키 헬멧이라는 틈새시장을 개척, 현재 이 분야 1위를 달리고 있다.”

히든 챔피언 ‘카르고불’의 CEO인 슈미츠도 “1990년대 생존의 위협을 받은 우리는 품목의 90%를 줄이고, 오로지 4가지 기본 모델들만 생산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포기를 통한 성장’이 바로 당시 우리 구호였다”고 증언한 바 있다. 우리나라의 경영자들에게 ‘포기를 통한 성장’이라는 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진 것을 버리지 않고 다시 쥘 수는 없다. 버려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