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있는 산행기-관악산
"당신이 그렇게 걷고 또 걸으면, 누군가 길이라고 부르겠지"
-판화가 이철수-
-말바위능선에서 본 기상대 & 정상부 & 연주대
-관악산 기상대 & 구름다리
-관악산 정상
-산행여정 : 서울대입구 관악문화원~호수공원~제3야영장~토끼바위~국기봉~헬기장~정상~연주대포토존~말바위능선~제3깔딱고개~관악문화원
-소요시간 : 널널하게 3시간 30분
5월의 시작, 근로자의 날이다.
익숙한 관악산 산행에 나섰다.
바로 산행 출발점 관악문화원 앞 만남의 광장이다.
오월 햇살이 벌써 진을 치고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다.
살짝 덥기까지하다.
눈이 부시다 못해 시리다.
관악산 기상대의 슈퍼컴퓨터가 제공하는
관악산 현재 날씨다.
정상과 입구의 기온차는 3도 정도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물론이고,
표정도 자연과 계절을 닮아가는 것 같다.
관악에 든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인간과 자연은 하나일게다.
해를 피할수 있는 명당자리에는
어김없이 산객들로 가득하다.
관악산호수공원 갈림길...
호수공원 분수는 휴식중이다.
밖에 적이 없고, 안에 우환이 없는 나라는 망한다.
-맹자
그러니 우환이나 힘겨움이 있더리도 툴툴 털어버릴 일이다.
일상이 덜컹거리고 삶이 삐그덕거린다면 자연에 몸을, 마음을 맡겨볼 일이다.
성인을 내가 만나볼 수 없다면,
군자라도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
군자를 내가 만나볼 수 없다면,
선한 사람을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
선한 사람을 내가 만나볼 수 없다면,
한결같은 사람이라도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
없으면서 있는 체하고,
비었으면서 가득 찬 체하며,
곤궁하면서도 부유한 체를 하는 세상이니
한결같은 마음을 지니고 살기도 어려운 일이다.
-<공자>
호수공원에서 제3야영장까지는
계곡길을 따라 평탄한 길이다.
야영장을 지나
서울대 뒤 암릉능선으로 오른다.
시작부터 가파른 암릉이다.
뒤돌아보면,
삼성산 정상부가 지척이다.
3분 간격으로 비행기가 오간다.
암릉 하나를 오르면 바로 눈이 시원해진다.
서울대와 남산서울타워,
인왕산과 북악산,
그리고 북한산과 도봉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금, 5월의 산들은 새로운 시간의 관능으로 빛난다.
봄 산의 연두색 바다에서 피어오르는 수목의 비린내는 신생의 복받침으로 인간의 넋을 흔들어 깨운다.
봄의 산은 새롭고 또 날마다 더욱 새로워져, 지나간 시간의 산이 아니다.
봄날, 모든 산은 사람들이 처음 보는 산이고 경험되지 않은 산이다.
그리고 이 말은 수사가 아니라 과학이다.
-김훈, <자전거여행>
토끼바위 쉼터...정상이 한뼘 남짓이다.
그러나 제법 멀다.
하루도 작은 일생이다
날마다 잠에서 깨어 일어남이 그 날의 탄생이요
시원한 아침마다 짧은 청년기를 맞는 것
그러나 저녁, 잠자리에 누울 땐
그날 하루의 황혼기를 맞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쇼펜하우어-
암릉을 오를수록
서울대는 멀어지고
서울 도심이 한눈에 들어온다.
꿈꾸지 않는 자, 청춘을 포기했네
단 한 번도 이룰 수 없는 꿈을 꾸어보지 않은 청춘,
단 한 번도 현실 밖의 일을 상상조차 하지 않는 청춘,
그 청춘은 청춘도 아니다.
허무맹랑하고 황당무계해 보이는 꿈이라도
가슴 가득 품고 설레어보아야
청춘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것이야말로 눈부신 젊음의 특권이 아니겠는가?
-한비야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은 펜을 쥔 자들의 엄살이거나 자기기만이기 십상이다.
그 말은 정치적이다. 칼을 쥔 자들은 ‘칼이 펜보다 강하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문(文)은 세계를 개조하는 수단으로서의 무(武)를 동경한다고 말하는 편이 오히려 정직하다.
-김훈, <자전거여행>
나대로 살고싶다
나대로 살고싶다
어린 시절 그것은 꿈이었는데
나대로 살 수밖에 없다
나대로 살 수밖에 없다
나이 드니 그것은 절망이로구나
-김승희의 시, <꿈과 상처>
삼성산 능선에도 신록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여름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여름의 숲은 어둑신하고 서늘하다.
숲 속에서, 빛은 사람을 찌를 듯이 달려들지 않는다.
나뭇잎 사이로 걸러지는 빛은 세상을 온통 드러내는 폭로의 힘을 버리고 유순하게도 대기 속으로 스민다.
숲 속에서, 빛은 밝음과 어둠의 구획을 쓰다듬어서 녹여버린다.
그래서 숲 속의 키 큰 나무들은 그림자도 없이 우뚝우뚝 홀로 서 있다.
스며서 쓰다듬는 빛이 나무와 나무 사이에 가득 내려쌓여 숲은 서늘한 음영에 잠긴다.
-김훈, <자전거여행>
나는 절약하자고 하지만 낭비할 때도 있습니다.
나는 약속을 하고나서 지키고 싶지 않아 핑계를 찾기도 합니다.
나는 남의 성공에 박수를 치지만 속으로는 질투도 합니다.
나는 실패도 도움이 된다고 말하지만 내가 실패하는 것은 두렵습니다.
나는 너그러운 척하지만 까다롭습니다.
나는 감사의 인사를 하지만 불평도 털어놓고 싶습니다.
나는 사람들 만나기를 좋아하지만 두렵기도 합니다.
나는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미워할 때도 있습니다.
흔들리고 괴로워하면서 오늘은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다음이 있습니다.
그 내일을 품고 오늘은 이렇게 청개구리로 살고 있습니다.
-정용철의 <마음이 쉬는 의자>
국기봉이다.
관악산에만 해도 국기봉은 여럿이다.
능선에 국기만 날리면 국기봉이다.
부상자 발생?...
난데없는 헬기 등장이다.
좌측능선은 사당역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파이프능선이다.
한강도 선명하다.
2013년 5월 1일 근로자의 날, 12시 20분 30초의 관악산 정상부 모습이다.
인산인해지만 바위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김훈은 <자전거여행>에서 오월의 휴일 관악산을 이렇게 노래했다.
휴일의 서울 북한산이나 관악산은 사람의 산이고 사람의 골짜기다.
봉우리고 능선이고 계곡이고 간에 산 전체가 출근길의 만원 지하철 안과 같다.
평일 아침저녁으로 땅 밑 열차 속에서 비벼지던 몸이 휴일이면 산에서 비벼진다.
휴일의 북한산에서는 사람이 없는 코스를 으뜸으로 치고, 점심 먹을 자리를 찾을 때도 사람 없는 곳을 명당으로 여긴다.
사람들이 다들 저도 사람이면서 한사코 사람 없는 자리를 다투다가, 사람 없다는 코스로 너도나도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니 가엾은 일이다. 이래저래 비벼지기 마련이다.
관악산 기상대는 오늘 잠들어 있다.
좌측으로 연주암이다.
책장을 덮고, 내 세계는 변했다
책들은 내 마음속 물음표에 피와 살을 보태주었다.
취재 현장에서 쌓은 경험이 글에 활기를 불어넣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잡다하게 어울리던 물음과 대답은 레고 블록처럼 제자리를 찾아가 한 편 한 편의 글이 돼갔다.
길게는 평생을, 짧아도 몇 년간 하나의 주제를 붙들고 고심한 위대하거나 집요한 작가들과의 대화는 숨 막혔다.
카페에 앉아 책을 읽을 때면 그 무언의 대화가 내 귓속으로 파고드는 온갖 잡음을 차단했다.
그들이 내게 던진 물음에 진정을 담아 내 생각은 이렇다고 답할 수 있어 뿌듯했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바라본 것밖에는 없다고 한 뉴턴의 말이 뭘 의미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삶은 남을 통해 완성된다는 아프리카의 우분투 정신을 이해했다는 마음이 들었다.
글을 쓰면서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영생을 누리는 일은 부질없다고 생각했다.
생명은 고인 물이 아니라 큰 흐름이고 누구의 것도 아니고 서로 보태가는 과정일 따름이라고 이해했다.
그래서 이 책을 내가 썼다고 우길 생각도 없다.
다만 이 책을 쓰는 데 기꺼이 내게 달려와준 많은 작가들이 독자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충실하게 전했기만을 바란다.
다행히 그동안 살면서 소홀했던 경제나 과학 분야의 책도 비교적 열심히 읽어 상실(경제), 뒤틀림(역사), 인간, 행성(과학) 등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네 가지 분야로 글을 고루 배분할 수 있어 안도했다.
-문정우, <나는 읽는다>, 머리말 중에서,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오자
연주대는 붉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연주대포토존을 지나 깔딱고개로 가는
말바위능선이다.
나무사이로 암릉 사이로 점점히
뿌려진 인파가 산을 짓누른다.
휴일 관악산은
인파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시름시름 몸살을 앓기 일쑤다.
제3깔딱고개로 서울대로 하산한다.
편안한 계곡길이다.
관악산 입구에 있는 작은 정원에 들렀다.
호박벌만큼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자리에 드는 곤충도 드뭅니다.
하루 종일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꿀 따는 일에만 집중합니다.
호박벌은 일주일당 1,600킬로미터를
날아다닙니다.
그런데 몸길이가 2.5센티미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엄청 먼 거리입니다.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몸에 비해 날개가 너무 작고 가벼워
과학적으로 날수가 없게 되어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박벌은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자신이 왜 날 수 없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지 꿀을 채취하려는
열망하나로 날고 있는 겁니다.
자신의 결함을 생각지 않고
'꿀을 만든다' 는 목적이 확실하기 때문에
지금도 쉼없이 날고 있는 것입니다
-<호박벌의 꿈>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나빠지고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좋아질 뿐
사람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다
세상도 하루아침에 좋아지지 않는다
모든 것은 조금씩 조금씩 변함없이 변해간다
-박노해,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 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살아지지 말아라>
원점산행 END...
(.....)
이순신의 내면은 무겁게 짓눌려 있고 삼엄하게 통제되어 있다.
그는 이 통제된 내면의 힘으로 무수한 아수라를 돌파한다.
<난중일기>와 그가 조정으로 보낸 전황 보고서들은 무인다운 글쓰기의 전범이라고 할 만하다.
그는 정치적 불운에 목숨을 저당 잡힌 상태에서 전쟁을 수행했다.
그러나 <난중일기>는 의주 피난 정부에서 벌어지는 이전투구의 정치 상황을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는 바다의 사실에만 입각해 있었다.
매일매일 바다 날씨의 미세한 변화를 그는 기록했다.
그는 늘 병고에 신음했고, 슬픔과 기쁨에 몸을 적시는 정한의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의 슬픔은 “나는 오늘 슬펐다”라고까지만 기록되는, 통제된 슬픔이었다.
그의 슬픔과 기쁨에는 수사적 장치가 없다.
이 통제된 슬픔의 힘이 “저녁 무렵에 동품이 잠들고 날이 흐렸다.
부하 아무개가 거듭 군율을 범하기로 베었다.” 같은 식의 놀라운 문장들을 쓰게 한다.
바람이 잠든 것과 부하를 죽인 일이 동등한 자격의 관심일 뿐이다.
이순신의 죽음이 ‘의도된 전사’였으며, ‘위장된 자살’이었다는 주장은 매우 신빙성 있는 정황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에게는 전후의 권력 재편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정치적 여백이 없었다.
다케다 신겐이 허수아비를 앞세우고 통과해나간 아수라를 이순신은 자신의 죽음으로 정리했다.
영웅이 아닌 우리는 이도 저도 할 수 없다.
역사는 모순이며 비애이다.
-김훈, <자전거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