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MBA, 뜨는 MFA
지는 MBA, 뜨는 MFA
<새로운 미래가 온다>의 저자 다니엘 핑크(Daniel H. Pink)는 <지는 MBA, 뜨는 MFA(The MFA is the new MBA)>’라는 글을 통해 최근 기업 경영에서 예술 관련 학위가 가장 인기 있으며, MFA(인문학 석사, Master of Fine Arts)가 MBA경영학 석사, Master of Business Administration)를 대체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석학 헨리 민츠버그는 <MBA가 회사를 망친다>는 책을 통해 MBA가 지나치게 분석에만 치중한다고 맹비난 했다.
하지만 MBA가 필요 없다는 논리적 비약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건을 훔쳤다고 사람을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보다는 이제 MBA도 경영기법과 관리에만 중점을 둘 것이 아니라 예술에 대한 중요성도 인식하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실제로 최근 들어 예술적 감성과 인문학적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 기업에서 우대받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또 다른 도약! 창조경제'라는 주제로「2013 전경련 제주 하계포럼」을 개최, 러셀 버만 스텐포드 대학 교수를 초빙하여 '인문학적 상상력을 통한 비즈니스 가치창출'을 주제로 강연을 들었다. 그는 인문학을 중시해야 하는 이유로 "인문학이 재조명 받는 이유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것과 인문학의 본질이 같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핵심은 상상력과 혁신, 실천이다. 아이디어는 상상을 통해 나오고 아이디어가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 낸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신입 사원을 뽑을 때 포괄적인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인재를 뽑으라"고 조언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경제학이나 공학을 전공한 인재들을 선호하지만 기업문화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인재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또한 그는 "과거 방식을 고집하면 패자가 될 수밖에 없고 인문학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인도해 줄 수 있다"며, "폐쇄된 마인드를 개방시킬 수 있는 외부 인문학 전문가 영입도 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구글은 철학자를 영입해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소개하면서, 시인이나 철학자를 영입해보라"고 제안했다.
경영에서 예술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러나 경영은 예술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여전히 MBA의 필요성은 크다. 다만 기존의 접근 방식에서 좀 더 확장 혹은 진화하여 예술적 감성을 경영의 관점에서 다루려는 시도가 앞으로 더욱더 확산되어야 한다. 단순히 기능과 품질이 뛰어난 제품으로는 더 이상 경쟁할 수 없다. 감성적인 접근을 통해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이른바 창조경영이 요구되고 있다.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일리노이공대는 이미 MBA에 MFA 개념을 가미해 새로운 리더들을 육성한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국내에서도 최고디자인책임자 CDO(Chief Design Officer)나 최고문화책임자(CCO, Chief Culture Chief)를 두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에서 MBA가 지고 있는 이유는, 인도와 같은 나라에서 유능한 인재들이 MBA를 취득하여 인력 공급이 많이 되고 있는 탓도 있지만 MBA를 보는 사회의 눈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도 한몫을 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미국의 MBA는 경영자로서 배워야 할 관리 기술, 다시 말하면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지만 가르친다. 그것도 가능하다면 법을 적당히 피해가면서 버는 방법이다.
또한 MBA는 직업윤리가 없다.
초창기 MBA를 도입했을 때 중요하게 여긴 직업윤리 같은 것은 더 이상 가르치지 않는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 미국 기업에서 대규모 회계 부정 스캔들이 발생하자 직업윤리가 부족한 탓이라는 비판이 일게 되었다. 당시 미국 굴지의 기업들인 엔론, 월드컴, 타이코와 같은 회사의 CEO들이 회계 조작으로 줄줄이 감옥에 가는 일도 벌어졌다.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면서 돈을 잘 버는 것보다는 올바르게 버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자성이 일게 되었다.
MBA는 관리기법만 가르친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관리할 것이냐의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렇게 관리기법에만 치중하다 보니 CEO로서 꼭 갖춰야 할 덕목인 모험심, 상상력, 창의력은 배우지 못한다. MBA에서 배우는 것은 모든 것이 자로 잰 듯이 정확하고 정형화되어 있다. 얼마를 투자하면 얼마를 벌고, 그렇게 벌면 수지가 얼마가 되니까 돈이 얼마 남는다는 식이다. 그 수익률을 정부 채권 수익률과 비교해 볼 때 수지 타산이 맞으면 투자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식이다.
하버드 MBA 과정의 합격률이 약 10%인 반면, UCLA 예술대학원의 합격률은 고작 3%에 불과하다. 왜 그럴까? GM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앞다투어 예술사업을 표방하고 있는 현 시대에 MFA는 가장 인기 있는 자격조건 가운데 하나다. 기업의 인사담당자는 인재들을 채용하기 위해 명문 예술대학원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아시아의 부상에 따라 MBA 졸업생들은 현 시대의 블루칼라 노동자가 되어가고 있다.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MBA 과정을 밟았던 사람들은 이제 자신들의 일자리가 해외로 건너가고 있는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투자은행들은 재무분석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인도 MBA들을 고용하고 있으며, 미국 내 금융서비스 기업들의 50만 개 일자리가 인도를 비롯한 저비용 국가로 이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업들은 공급 과잉의 시대에 자신들의 상품과 서비스를 다른 상품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소비자의 감성에 호소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예술가의 하이컨셉 재능을 경영대학원 졸업자들의 좌뇌형 기술보다 귀중한 가치로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10년간 미국의 그래픽 디자이너의 수는 10배가 늘어났다. 이는 화학 분야 엔지니어들을 단숨에 추월해 4배나 많아진 수치다. 또한 1970년 이후 미국에서 글 쓰는 직업을 생계로 삼고 있는 사람은 30% 늘었으며, 노래를 작곡하거나 연주하는 일을 생계로 삼는 사람의 수는 50% 늘었다. 그렇다면 우뇌적 창의력은 예술가 집단에만 발휘되는 것일까? 다행히도 그렇지 않다. 인도의 프로드래머들이 뭔가를 제작· 유지· 시험·업그레이드 하기 전에, 그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 내고 '부분' 조각들을 어떻게 조합할 수 있는지, 다음에 어떤 중요한 해결과제가 있는지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는 하이컨셉 능력을 지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게는 새로운 프리미엄이 생겨날 것이다. 독창성, 개인 간의 소통능력, 본능적인 직관이 필요한 일인 것이다.
경영은 종합예술이라는 말이 실감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