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여! '르네상스 경영'을 펼쳐라
경영,예술과 만나다/CEO여! '르네상스 경영'을 펼쳐라
합격자 1000명 시대를 맞이하면서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지름길인 사법시험 회계사시험 합격자에게도 취업난이 나타나고 있다. 변호사 회계사 변리사 세무사 의사 등 고소득 전문직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몰아치던 MBA(경영학석사) 출신 우대 역시 사라진 지 오래이다. SKY도 모자라 이제 미국의 하버드 프린스턴 예일 스탠포드 등 IVY 정도는 들어가야 명문대 출신 소리를 들을 정도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들은 여전히 권력과 명예, 부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중·고교생 자녀를 둔 부모에게 “당신의 자녀가 어떤 직업을 갖기를 원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십중팔구 앞서의 직업들을 나열할 것이다.
상황을 바꿔 보자.
기업에 있어서 기업이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는 이윤창출을 위한 가장 우선하는 척도(degree)이다. 이를 위해 기업과 그 최고경영자들은 상품의 품질과 디자인, 서비스의 개선을 위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노력한다. 대다수의 CEO들은 “당신의 회사가 어떤 회사가 되길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최고의 기술력, 최고의 제품,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이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세계 초강대국 미국에서 최고의 기업으로 불리는 제너럴모터스(GM)도 과연 같은 생각일까.
수 년 전 GM자동차의 사장, 현재는 부회장인 밥 루츠(Bob Lutz). 그는 여러모로 전형적인 자동차 회사의 CEO이다. 백발의 머리에 70년대 해병대를 나온 백인이었다. 그런데 한 리포터가 그에게 전임자들과 다른 접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말했다. “오른쪽 뇌가 발달했다고 할까요. 나는 우리의 사업이 예술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 엔터테인먼트 모빌(Mobile Sculpture)을 했구요. 그러다 운송수단(자동차)을 얻게 된 것이죠. ” (좌뇌는 언어 기업 의식 논리 같은 이성적 측면을, 우뇌는 이미지 무의식 창의 직관 등 감성적 측면을 담당한다)
예술사업(Art Business)이라. 해병대 출신의 자동차회사 부회장이 제너럴모터스가 예술사업을 한다는 말은 충격적인 말이다. 《프리에이전트의 시대가 오고 있다》의 저자 다니엘 핑크(Daniel H. Pink)는 2차 대전 후 미국 국방부 장관을 지내기도 한 찰리 윌슨(Charlie Wilson) 전 GM 사장의 말을 떠올렸다. “GM에 이익이 되면 미국에도 이익이 된다.”
다니엘 핑크는 “윌슨의 말을 새로운 세기에 다시 말해야 할 것 같다”면서 “GM에서 일어나는 일은 미국에서도 일어난다. 이제 우리는 예술사업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핑크는 2004년 5월 미국 유명 예술학교인 링글링예술디자인학교 졸업식 연사로 나와 이 말을 했다. 그는 ‘예술 마음 그리고 미래’라는 주제의 연설에서 자신은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는 말로 시작했다.
그것은 1970년대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로스쿨을 다닌 것. 당시 학부모들은 자녀에게 조금의 재능이라도 발견되면 엔지니어 변호사 회계사 의사를 시키고 싶어했다. 핑크 역시 대학에서 언어학을 그리고 예일대 로스쿨에서 JD학위(Juris Doctor; 변호사과정)를 땄다. 하지만 그는 인생 어느 순간에서도 이 학위를 이용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핑크에 따르면 2003년 하버드비즈니스스쿨-세계 최고의 MBA프로그램-의 입학률은 10%였다. 반면 UCLA 예술대학원은 3%였고 MFA(예술학석사학위)를 따려는 지원자는 계속 늘고 있다. 하버드 MBA보다 UCLA의 MFA가 더 들어가기 어렵게 됐다. 전직 부통령 앨 고어의 수석연설문 작성자이기도 한 핑크는 지금과 미래는 분명 달라졌다고 강조한다. “이제 미래는 엔지니어나 법조계 인사, 회계사들의 것이 아니다. 미래는 예술가와 디자이너, 사진가와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달려있다. ”
자동화와 세계화가 미래의 직업, 미래의 직종의 지형도를 바꾼다는 말이다. 미국은 지난 세기 블루 칼라들이 사라진 것만큼 자동화된 컴퓨터는 화이트 칼라들을 없애고 있다. 변호사 상담을 위해 시간당 180달러를 써야 하지만 인터넷에선 15달러 밖에 안 든다. 온라인을 통해 이혼하려면 249달러만 있으면 된다. 핑크의 주장은 결국 남는 일자리는 미를 창출하고 인간의 영혼을 자극하는 사람들이다. 예술과 감성, 이것은 절대 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래를 준비하라》의 저자 톰 피터스(Tom Peters)는 경영은 단순한 매니지먼트(Management)가 아닌 창조 파괴 혁신 감성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모두 예술(Art)이다. 피터스는 앞으로 상품(Product)은 경험(Experience)으로 서비스(Service)는 꿈(Dream)으로 완전히 대체하라고 지적한다. GM같은 선진 기업들이 문화와 예술을 전면에 내세워 기존 브랜드의 새로운 가치 창출에 힘쓰고 있다. 문화·예술이야말로 경제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리더 조직원 상품에 예술을 접목시키려는 노력과 가시적 성과물들은 국내에서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상품 마케팅과 기업홍보의 부수적 역할이 아니다. 예술적 마인드를 갖추려는 CEO들이 늘고 있고 조직문화, 제품의 기획 생산 뿐만 아니라 생산공정, 유통에까지 예술의 접목이 늘고 있다.
-경영은 종합예술, CEO는 총감독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앞으로 CEO의 직무는 매우 복잡한 조직인 오페라단을 운영하는 일과 닮을 것 같다고 말했다. 주연과 조연, 반주를 맡는 오케스트라가 있고 조명 음향효과 무대장치, 여기에 청중도 있다. 주어진 역할, 상황이 모두 다르지만 오페라가 끝나기 위해서는 총감독의 지시 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관객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판을 벌이는 남사당패의 꼭두쇠, 꽹과리를 들고 앞서나가 징 장구 나팔수 태평소 등 모든 악기의 장단을 이끄는 풍물패의 상쇠와도 같다. 신박제 필립스전자 대표 역시 한 인터뷰에서 “CEO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다. 종업원 위에 군림하지 않고 개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케 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사장은 자신의 저서 《영혼이 있는 승부》에서 기업경영은 배울수록 종합예술과 같다고 말한다. 성공적 경영자가 되는 길은 험난하며 그래서 인격과 철학을 겸비하고 원칙을 지켜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예술을 아예 직접 체험하려는 CEO들도 늘고 있다. 한국종합예술학교는 지난 2003년 CEO들에게 예술을 체험하여 경영에 접목시키자는 취지에서 최고경영자 문화·예술과정(CAP)을 개설했다. 매 기수 30명씩 현재 2기 졸업생을 배출했다. 김승유 하나은행장, 도익성 우리건설 대표, 방지희 일신 회장, 신호주 코스닥증권시장 사장, 하원만 현대백화점 사장, 윤일중 환금 회장, 조영주 KTF 부사장, 이상민 LG텔레콤 상무 등 60여 명이 졸업했다.
김은지 팀장은 “많은 한국의 CEO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매우 독창적이고 소중한 경험을 했다”면서 “기업이나 조직으로 돌아가 감성과 창의력으로 리더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회사를 아예 예술공간으로 만드는 곳도 있다.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현대산업개발의 신사옥 ‘아이파크 타워’는 지하 4층, 지상 15층 규모로 미국의 유명한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드(Daniel Libeskind)가 설계했다. 외부는 원과 직선의 과감한 채택이 돋보이고 내부는 분수, 잔디밭, 정원 등이 설치됐다. 작년 연말 준공된 서울 을지로의 SK텔레콤 신사옥 ‘SK T타워’는 전체 33층 중 27층부터 15도 각도로 기울어진 기하학적 모습으로 화제를 모았다. 고개를 숙인 듯한 빌딩은 예술을 통해 사람과 건물의 소통을 나타냈다.
-예술과 경영은 하나, 우림건설
건설회사이면서도 예술이 경영과 완전히 접목된 우림건설. 심영섭 사장의 주도 하에 경영전략 조직문화 사회공헌 전반에 예술이 녹아들었다. 1년 이상 재직한 전 직원에게 가족을 동반하지 않는 휴가를 주어 자기회복과 재충전의 시간을 주고 있다. 아침8시 출근이 정상이지만 매주 1회 늦게 나와도 되는 ‘게으름의 날’을 지정하고 있다.
이 회사의 조회 문화는 경직되고 딱딱한 형식적인 정기 모임이 아니라 공연과 문화행사가 어우러지는 파티 개념이다. 매달 1일 전임직원이 문화홍보관에 모여 펼쳐지는 우림가족 조회는 시상으로 시작된다. 시상은 우수 독후감상, 겅호(Gungho,충용, 멸사봉공)상, 자랑스러운 우림인 상들을 수여한다.
심영섭 사장은 리더의 생각이 전달되어야 함께 회사의 비전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거칠고 동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을 부드럽게 보는 시각을 갖게 하고 세상을 밝고, 깊게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울 수 있다. 지난 10년간 126회 이상의 문화강좌를 실시한 데 이어 자발적인 임직원 급여 1% 나눔 운동(회사도 지원)을 펼치고 있다. 우림건설은 특히 1996년부터 시작한 책 나눔 캠페인과 매달 이어오는 문화초청강연, 각종 무료공연, 문화행사를 인정받아 2004년 4월 우수메세나기업으로 선정됐다. 심영섭 사장은 “문화·예술을 접할 기회가 늘어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우리 사원과 그 가족에게도 문화향유의 기회를 주게 되는 것이다. 직원이 함께하고 즐길 수 있는 활동을 하고 기업과 사회가 건강하게 소통하는 기회가 된다”고 말했다.
-예술가의 예술경영, 이메이션코리아
이메이션코리아는 올해로 한국에서 영업활동을 시작한 지 9년. 여러 우여곡절 속에 250억원 대의 건설한 구조를 가진 법인으로 성장한 데 이어 2005년에는 300억원 이상의 매출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이 회사 이장우 사장은 경영학 박사학위 소지자로 현재 성균관대에서 공연예술 석·박사과정 강의도 맡고 있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 사장이 기업과 고객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분야를 찾은 것이 바로 예술이었다. 초기에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분야가 영화였고, 매년 10여 회가 넘는 시사회 행사를 지원했다. 올해에는 아예 정기적인 시사회 행사를 정착시킨다는 계획. 사내에서는 책과 사진을 통해 조직문화를 다지고 있다. 매 분기마다 베스트셀러 도서를 구입해서 제공하고 카메라클럽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이장우 사장은 “어려웠던 외환위기 시절, 자본잠식의 위기를 앞두고 직원들의 교육은 못 보내 주더라도 보고 싶은 책은 마음 놓고 볼 수 있도록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경영에서 성과는 바로 나타났다. 작년 초 이 회사는 디지털 카메라용 메모리카드 사업분야에 뛰어들었다. 기존 제품과 전혀 판이한 사업분야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것이 문제였다. 그런데 직원들이 전문적인 카메라를 구입하여 전문사진 클럽을 만들고, 이를 통해 고객을 매료시킬 수 있는 감성마케팅 아이디어를 자발적으로 창출하고 있다.
이장우 사장은 “기업은 브랜드, 디자인, 마케팅 시대의 중심에 서 있고, 이 3가지 요소의 가장 큰 원천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분야는 문화·예술이다. 가장 경쟁력 있는 기업의 요소로 문화·예술과 기업의 만남은 필수이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