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치경영/예술-기업문화

메디치 가문은 왜, 당대 베스트셀러 대신 고전을 사모았나

김부현(김중순) 2014. 6. 10. 13:33

 

메디치 가문은 왜, 당대 베스트셀러 대신 고전을 사모았나...

 

富를 축적하기보다 플라톤 책 보며 진정한 행복 탐구

고전 책 소장위해 세계 첫 공공도서관도 건축...

 

 

피렌체의 명문가였던 메디치 가문 사람들은 책을 사 모았다. 전문 '책 사냥꾼'을 고용해 북유럽의 수도원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고전을 사들였다. 알프스 산맥 이북의 수도사들은 피렌체의 부자 가문이 닥치는 대로 책을 매입한다는 소문을 듣고 고서(古書) 가격을 터무니없이 올렸다. 이른바 고전의 '알박기'가 자행되었다.

 

 

 

 

 

 

-메디치 가문의 도서관 실내 전경. 미켈란젤로의 설계와 공사로 작업이 시작돼 1571년에 완성된 세계 최초 공공 도서관

 

 

무조건 책을 팔지 않겠다는 사람도 나왔다.

이럴 경우 메디치 가문은 필경사를 파견해 책을 필사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그동안 중세의 수도원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서고에 꽂혀 있던 인류의 고전들이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그 책 중에는 역사가 타키투스, 지리학자 플리니우스, 비극작가 소포클레스, 그리고 철학자 플라톤의 초기 필사본이 포함되어 있었다.

 

 

메디치 가문의 도서관 실내 전경. 미켈란젤로의 설계와 공사로 작업이 시작돼 1571년에 완성된 세계 최초 공공 도서관이다. 부자가 되면 무엇인가를 수집하게 되는데, 그것은 책이 아닐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피렌체의 최고 부자였던 메디치 가문은 돈이나 금괴를 모은 것이 아니라, 책을 사 모았던 것이다. 그것도 동시대의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고전을.

메디치 가문은 예술 작품도 수집했다. 피렌체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프리마베라', 미켈란젤로의 조각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을 사 모았다. 이렇게 수집된 예술 작품들이 지금의 우피치 미술관으로 탄생하게 된다.

 

 

메디치 가문은 사 모은 책을 소장하기 위해 도서관도 건축했다.

산 마르코 수도원 도서관과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이다.

 

왜 메디치 가문은 책을 모았을까?

 

메디치 가문은 부와 권력의 축적이 초래할 결과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돈과 권력과 명성은 축적되면 될수록 잉여의 해독이 그 사람의 영혼을 집어삼킨다.

 

문제는 계속되는 성공, 주체할 수 없는 성공이 일으킨다.

단언컨대 인간은 성공하면 변하게 마련이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게 되고,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는 관대해지는 대신 남의 실수에 대해서는 가혹해진다. 힘이 강한 사람 앞에서는 비굴해지고, 힘이 약한 사람 앞에서는 강해진다. 메디치 가문 사람들은 이 점을 분명히 알았던 것이다. 메디치 가문의 초기 지도자였으며 '이탈리아의 현자'로 불렸던 코시모 데 메디치는 "우리 가문은 50년 이상 존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실제로 메디치 가문은 1494년에 1차 몰락을 겪게 된다. 그리고 훗날 결국 문을 닫았다.

 

 

그러나 가문의 정신은 소멸하지 않았다.

메디치가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한 가지 가치를 잊지 않았다.

그것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한 통찰이었다.

 

   

메디치 가문 사람들은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았다.

코시모 데 메디치는 자신이 후원하던 철학자 마르실리오 피치노와 함께 플라톤의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피치노에게 이런 편지를 쓴 적이 있다. "마르실리오, 나는 오늘 카레지 별장으로 왔네. 내 땅을 경작하러 온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경작하러 왔다네. 마르실리오, 빨리 오게나. 그리고 서둘러 오더라도 자네가 번역했던 플라톤의 책을 가져오는 것은 잊지 말게. 나는 무엇이 내게 진정한 행복을 주는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라네."

 

진정한 행복을 매일매일 삶에서 구현하기 위해, 메디치가 사람들은 늘 고전을 읽었다.

책을 가까이 두고 늘 자신을 성찰하기 위해 메디치 가문은 그렇게 열성적으로 인류의 고전을 모았던 것이다.

 

-<Weekly BIZ>, 2014.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