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강의
군주론 강의
1강 마키아벨리즘은 악마의 속삭임인가?
-『군주론으로 본 마키아벨리의 현재성
- 강의에 앞서 -
우리가 인간과 세계에 대해, 그리고 자아에 대해 생각한다고 해서 갑자기 인류가 올바르게 되거나 세계가 바람직해지거나 자가 두터워지거나 하는 현실은 빚어지지 않습니다. 저나 여러분이 올바른 인간, 바람직한 세계, 두터운 자아를 꿈꾼다고 해서 꼭 그렇게 되리란 보장도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과 세계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조금씩이라도 더 나아지려면, 우리는 스스로 부단히(아니, 이번 강의 동안이라도 꾸준히) 인간, 세계, 자아에 대해서 생각하고 꿈꿔야만 합니다.
현재 우리가 사는 세계는 동물적 세계이며, 인간 자신이 동물입니다. 그러나 이 세계가 동물적이라는 것을 부끄럽게 느끼는 사람은 단순한 동물은 아닙니다. 자기가 동물이라는 것을 아는 인간만이 동물성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야 이 세계도 동물의 세계에서 조금씩이나마 벗어날 수 있습니다. 동물성에서 벗어날 것을 고무-권장하는, 제가 존경하는 두 분의 말씀을 소개하는 것으로, 강의에 임하는 제 마음을 전언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이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 같다.
- 황현산, <과거도 착취당한다> (한겨레. 2009, 7. 18)
삶에 있어서 절실한 것, 절절한 것은 거의 대부분 환상처럼 보인다. 그것이 환상처럼 보이는 것은 그것이 삶의 밋밋함과 대립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절실한 것이 이뤄지는 순간은 너무나 짧고 아름답기 때문에 밋밋한 삶 속에서 지속되기 힘들다, 아니 지속되지 못한다. 그것은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환상의 빛과도 같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도박사?의 주인공에게 그 절실한 것은 도박에서의 성공인 데, 그것은 언제나 짧다. 그래서 그 성공은 환상적으로 보이는 데, 그는 그것을 오래 지속하려 한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미치광이 도박꾼 취급을 한다. 그러나 그가 견딜 수 없는 것이 삶의 밋밋함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절실하기 때문에, 도박할 때 육체는 떨리고 마음은 급해진다.
일상인들은 그 순간을 환상으로 돌리고 삶의 밋밋함으로 곧 되돌아온다. 그 돌아오는 속도가 빠르고 정확할수록 그는 잘 적응한 일상인이 된다. 된다니! 그는 잘 적응한 성공한 일상인이다. 그는 일상 속에 되돌아와 중얼거린다. “저 놈은 돌았어.”
- 김현, 『행복한 책읽기』에서
마키아벨리즘은 악마의 속삭임인가?
- 『군주론』로 본 마키아벨리의 현재성
“악을 악이라고 하지 않는 것이 바로 악(惡)이다.”
- 루이 알튀세, 『마키아벨리의 가면』
1.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에 대한 풍문과 오해
마키아벨리는 흔히 “서양의 근대 정치사상의 효시嚆矢”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프란시스 베이컨이 일찍이(1605년, 『학문의 진보』 2권에서) 마키아벨리를 “인간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일깨워준 인물이라고 평가하였듯이, 그는 선험적 당위나 형이상학적인 도덕주의의 관점이 아니라 세속적worldly 관점에서 현실정치에 대해 납득할만한 설명을 제시했습니다. 『군주론』의 역자인 강정인 교수가 논평(초반 번역본 해제?)했듯이, 그의 주장은 “권력정치power politics가 전개되는 상황이면 어디서나” 적용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현실정치의 세계를 적나라하고 ‘까발리고’, 그에 걸맞게 행동할 것을 조언했기 때문에, 마키아벨리는 극단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학문 영역의 바깥의 일반대중에게, 그는 어쩐지 가까이 해서는 안 될 기분 나쁜 인물”처럼 취급됩니다. 아마 오늘날 어떤 정치인도(아니, 누구라도) ‘당신은 마키아벨리스트야’라고 불리면, 달가워하진 않을 것입니다. 마키아벨리스트란 이름에는 “정치적 야욕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지지 않는 파렴치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위험인물”이라는 ‘주홍 글씨’가 아로 새겨져 때문입니다.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분석해야할 근대사회의 여러 주제들을 선구적으로 제기한 인물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부도덕하고 불길하며 위험한 사상을 전파한 인물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는 점에서, 마키아벨리는 “문제적 개인”임에 틀림없습니다. 저는 이런 긍정/부정의 관점 가운데 다소 긍정적 입장에서, 마키아벨리의 문제의식을 좀 더 ‘생산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 마아벨리를 둘러싼 수많은 오해와 풍문을 빚어낸, <마키아벨리즘=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사상>으로 보는 견해는 착각에 가깝습니다. 마키아벨리의 강조점은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나쁜 수단들을 마구 써도 무방하다’에 놓여 있는 게 아니라 ‘나쁜 수단을 탓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수단을 통해서나마 좋은 목적을 이루었느냐를 따지는 게 더 합리적’이라는 데 놓여 있습니다(물론, 그도, 우리도 좋은 수단을 써서 좋은 목적을 이루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지요). 오늘 저의 이야기는 마키아벨리(즘)를 둘러싸 풍문과 오해를 넘어서 그의 전언에 담긴 문제의식을 새롭게 조명하는 길을 찾는데 맞춰져 있습니다. 행여 시간이 허락되면, 불가피하게 나쁜 수단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고 500년 전에 마키아벨리가 간파한 정치적 공간의 속성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현대 사회의 특성(“순치된 적대관계”의 세계)이기도 하다는 이야기까지도 해보려 합니다.
2. 마키아벨리(즘)의 해석 변천사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풍문과 오해를 벗겨내기 위해서는, 우선 두 가지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그의 정치사상에 대한 해석이 시대별로, ‘시대정신’과 해석자들의 정치적 관점에 따라서, 계속 변해왔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마키아벨리가 르네상스Renaissance 시기의 피렌체에서 활동한 인문주의자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종종 잊는 사실이지만, 『군주론』 (1512년 집필, 출판은 1536년)은 현대의 우리에게만 문제적 고전은 아니었습니다. (마크 트웨인은 “고전이란 모두가 칭송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그럴 듯하게 말한 바 있습니다만, 그것도 그저 그럴 듯한 말이지요. 얼핏 타당해 보이지만 타당한 말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자기 주변에 고전을 읽은 사람이 없다고 다른 사람 주변에도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고전을 읽지 않는다고 어제의 사람들도 그랬거나 내일의 사람들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고전은 시간적-공간적으로 우리의 ‘전후좌우前後左右’에서 누군가 읽었고, 꾸준히 읽고 있기 때문에 ‘클래식’이 된 것입니다. 마키아벨리의『군주론』도 바로 그렇습니다. 더욱이 『군주론』이 출간된 이래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의 면면은 매우 화려하며 해석의 스펙트럼도 좌에서 우까지 대단히 넓습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이 책은 고전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썩 특별한 고전입니다. 『군주론』과 마키아벨리즘을 사람들은 어떻게 해석했는지, 그 변천의 약사略史를 시대 순으로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악마의 책”으로 낙인찍힌 16세기
1559년 교황 바오로 4세가 반포한 로마 가톨릭 최초의 『금서목록』에서 『군주론』은 금서로 지정되면서 16세기 후반에는 “사악한 마키아벨리”가 쓴 “악마의 서書”로 간주됩니다(예컨대, 1539년 잉글랜드의 한 추기경(Reignald Paul)은 “진정한 신앙심을 모두 말살하고 사회생활을 파괴시키는 내용의 책이며 악마가 자신을 계승할 아들을 가졌다면 그에게 남길 교시는『군주론』의 내용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 이것은 가톨릭 측만이 아니라 프로테스탄트 측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장티에Innocent Gentillet의 『반마키아벨리론』 (1579년): 군주에게 인간이란 이기적이고 믿을 수 없는 존재임을 명심하라고 한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폭군옹호론”이라고 비난하면서, 우정이야말로 인간 생활을 비참한 상태에서 건저내주는 미덕(키케로)이며 군주는 신의를 통해 선정善政을 할 수 있다고 반박함.)
2) 17세기 : 종교전쟁시대를 중심으로 번성한 17세기 국가이성론(국가를 보존하고 그 힘을 증대시키려면 정치가가 반드시 따라야 할 통치원리)의 입장에서, 국가이성을 <“크리스트교적 국가이성”=선하고 진실한 국가이성>과 <“마키아벨리적 국가이성”=사악한 국가이성>으로 양분하려는 시도가 행해짐 - 여기에는 세속 정치의 논리적 근거로 작용하기 시작한 국가이성을 ‘마키아벨리의 부도덕성’으로부터 분리하려는 의도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3) 18세기 계몽시대 : <군주의 지침서>에서 <인민의 교육서>로 위상의 변화
㉠ 스피노자(1670): 『군주론』은 지배욕에 사로잡힌 군주가 어떤 수단을 써서 자신의 영토를 확립-유지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며 “자유 대중들이 스스로의 안녕을 절대적으로 한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얼마나 위험스러운 일인가”를 보여주려는 희망에서 쓰인 책이다. 즉, “폭군과 폭정의 비밀”을 폭로함으로써 고통 받는 인민이 폭군(/폭정)의 정체를 직시할 수 있게 하려는 의도에서 쓴 책이라는 긍정적 평가가 나옵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진정한 독자는 군주가 아니라 인민이다.” ㉡ 디드로(『백과전서』의 ?마키아벨리즘? 항목에서): 그는 실상 메디치가의 전제정치를 증오했으며, 끝내 감옥에 갇혀서도 고문을 용기 있게 견뎌낼 수 있는 인물이므로 결코 혐오스러운 마키아벨리즘과 동일시될 수 없다.☞ 마치 <작품으로서 소설>과 <소설가>를 분리해서 읽듯이, 마키아벨리와 마키아벨리즘의 분리하는 독해법의 출현. ㉢ 루소(『사회계약론』3부 6장에서): “그는 국왕들을 가르치는 척 하면서 실은 국민들에게 커다란 교훈을 주었던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공화주의자의 책이다.”(1782년 추가한 각주에서 이렇게 부연합니다. “마키아벨리는 정직한 사람이라고 선량한 시민이었다. 그러나 메디치가에 봉사했기 때문에 조국의 압제 하에서 자유에 대한 그의 사랑을 숨겨야만 했다. 그가 증오하는 영웅을 선택해서 공격하는 것을 보면, 그의 숨은 의도를 충분히 엿볼 수 있다.”) ☞ 비밀스러운 의도를 거꾸로 드러낸 책 ㉣ 물론, 이 시기에도 부정적 평가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계몽절대군주의 대명사격인 프리드리히 2세Friedrich des Grossen의 평가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그는 “괴물에 대항하여 인간성을 옹호”할 목적으로 1739년에 볼테르에게 글을 써 보냈고, 볼테르는 그것을 수정-편집하여 『반(反)마키아벨리론』 (1740)을 간행합니다. 여기서 프리드리히 2세는 만인이 군주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군주는 결코 자신의 악덕을 숨길 수 없으며, 거짓은 오래 가지 못하는 법이므로 군주의 위장은 무용하다고 주장했습니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실제로 군주로서의 프리드리히 2세의 행동은 자신의 주장과는 정반대였습니다. ☞ 그는 오스트리아 계승전쟁에 개입하여 강압적으로 실레지아를 병합하였으며, 7년 전쟁에서 불시에 삭소니아를 공격하였고, 폴란드의 무력 분할에도 적극 참여하는 자기모순(?)을 저질렀지요.
4) 19세기 국민국가 건설의 시대: “서자庶子에서 적자嫡子로”라는 독일의 역사가 마이네케의 표현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옹호가 시작된 시대입니다. 이것은 나폴레옹 전쟁 이후 민족주의의 물결이 유럽에 밀려들면서, 특히 독일과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마키아벨리를 통일운동의 선구자로서 재조명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기 때문입니다.
㉠ 헤르더: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는 부패한 국가를 개혁하려는 16세기 이탈리아의 군주에게는 불가피했던 일종의 역사적 소산이었다라고 평가함으로써 마키아벨리즘에 관한 역사주의적 해석의 길을 열었습니다. ㉡ 피히테: 신민들의 안위가 전적으로 군주의 손에 달려 있는 시대적 상황에서 군주는 국가의 안녕이라는 “가장 고귀한 윤리적 규범”을 지키기 위해서 개인의 도덕률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공감. ㉢ 헤겔: 마키아벨리 자신은 국가건설의 “고귀한 마음”에서 국가의 통일과 보존이라는 지고(至高)의 목적에 필요한 수단들을 제시하였을 뿐이며, 그의 『군주론』은 16세기 초 전후 이탈리아 정치 상황을 고려할 때 비로소 정당화될 수 있다고 평가합니다. (“이탈리아를 하나의 국가로 고양시키려던 마키아벨리의 목적은, 그의 저서에서 폭군의 옹호나 야욕에 찬 지배자를 위한 좋은 지침 외에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무지 탓에 묻혀 버렸다. … 불에 탄 사지(四肢)를 라벤더 향수로 치료할 수는 없다. 암살과 독살이 일반화된 상태에서 약한 처방은 듣지 않는다. 고사 직전의 생명은 오로지 강력하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재생될 수 있다.”- 헤겔, 『독일 정체』 (주 3)에서 언급한 김경희의 글에서 재인용)) 통일운동이 일어났던 19세기 중반 이탈리아에서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특히 이탈리아의 독립과 통일을 강조하는 내용(사악한 수단만이 아니라 동시에 고귀한 목적도 요구하는 사상)을 부각시키는 마키아벨리즘 해석이 출현합니다. ㉣ 마치니: 『군주론』을 해부학자와 같은 날카로운 분석력과 이탈리아 통일에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일부 긍정하였지만 이탈리아 통일운동을 “경건성의 재생”으로 여기는 자신의 관점에서 『군주론』을 “과학에서 시작해서 절망과 부정으로” 끝난 책이라고 평가. ㉤ 데 상티(카부르 정권 아래서 교육장관 역임한 인물):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의 자유가 쇠퇴하고 있을 때, 메디치 가문을 수단으로 삼아 이탈리아의 독립이라는 과제를 숙고한” 인물이다.
5)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해석 : 인민과 귀족의 투쟁에서 ‘인민의 편을 택한 군주의 정부’에 대해서 논한 책이다. *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마키아벨리는 “시대의 표현”이다. 마키아벨리는 혼란과 혼동의 상황 속에서 “절대적, 국민적 군주국의 조직을 지향하는 당대의 철학”을 반영하여 “봉건적 무정부 상태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신(新)군주를 염원한 인물이다. *루이 알뛰세르: 『군주론』은 “(데 상티나 그의 견해를 쫓아서 그람시가 그렇게 인지하였듯이) 그 당시에 프랑스와 스페인에 존재했던 민족국가를 절대 군주제의 형태로 이론화하려는 책이 아니라, 내부적인 분열과 침략에 빠져서 통일을 이루지 못한 이탈리아에서 민족국가 건설의 전제조건이라는 정치적 문제를 문제제기한 책이다.”(김경희:297, 문장은 재인용자가 약간 수정함)
☞ 자, 여기까지 보셨습니까? 그럼, 이제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제게 여러분의 느낌을 똑같이 감정이입할 능력은 없지만, 행여 이런 자신감이 생겨나진 않으셨는지요. ‘나는 이제 『군주론』의 해석에 관한 한 어쩌면 루소보다, 헤겔보다 혹은 (옛날 교황님이긴 해도) ’지상의 하나님 말씀의 대리자‘보다도 더 나은 해석을 할 수 있다!’ 뭐, 이거 비슷한 느낌이 들었거나 든다면, 이외수 선생의 표현을 섞어 말하건대, 호모 사피엔스인 우리가 청룡언월도(생각이란 힘)을 몽당연필 깎는 데 너무 소진했거나, 그렇게 하도록 ‘강제’하는 사회는 ‘쫌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나갈 수도 있을 겁니다.
3.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와 『군주론』이란 장르
1)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자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시기에 도시국가인 피렌체의 서기로서 근무했던 인문주의자였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14세기 중엽부터 여러 도시 국가들이 대외 무역과 금융의 활성화에 힘입어 현세적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크리스트교가 출현하기 이전의 고전고대(그리스와 로마)의 학예와 역사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신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었던 시절임에도 ‘자기 조상들이 놀라운 성취와 업적’을 이룩할 수 있었던 비결을 배우겠다는 열의를 갖고서, 각 지역의 군주, 귀족 및 상층 시민들은 고전고대에 대한 연구와 그런 기풍을 ‘재생’할 수 있는 실력을 지닌 예술가와 인문주의자들을 경쟁적으로 ‘스카우트’하거나 후원-육성했습니다. 그 결과 이탈리아 전역에서 르네상스 기운이 확산되면서 고전적 교양이 사회적으로 중요해졌고, 고전에 정통한 인문주의자들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높아지게 되었지요.
인문주의(자)에 대한 우대와 후원의 분위기 속에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스스로를 현세적 가치를 중시하는 세속적 인간임을 자처했습니다. 그들은 부를 경멸하거나 수도승과 같은 명상적 생활을 추구하기보다는, 부의 가치를 인정하고 공적 영역에서의 사회적 활동을 중시했습니다. 특히 공공 활동과 공익에 대한 봉사는 많은 인문주의자들의 공통된 소망이었지요. 인문주의자인 프란체스코 귀이차르디니(1483~1540)는 “피렌체에서는 적어도 한 번쯤 정부 청사에서 일하지 않는다면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인문주의자에게도 명예로운 공직 진출은 탁월함의 징표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특히, 서기(관)직 진출은, 고전에 대한 학식을 갖춘 사람으로서 공직에 참여하는 대표적 방식이자 정치사회적으로 높은 위상을 보장받는 명예로운 일로 간주되었고요. 따라서 당시 인문주의자들에게 명예욕과 강한 공적 참여의식은 둘이 아닌 하나로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2) 르네상스 시기 『군주론』이란 장르
오늘날, ‘군주가 곧 국가’라는 주장이나 ‘군주론’君主論과 같은 장르의 책은 썩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에서 군주는 흔히 국가의 의인화擬人化 혹은 구현체embodiment로 간주되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인문주의자들에게 ‘국가의 화신인 군주’의 지위 유지는, 곧 국가의 존속과 붙어 있는 문제였습니다. 비록 군주 일인이 통치하지만 군주정은 폭군정과는 다른 정체政體로 구별되었고, 당시 군주들은 대개 인문주의자들을 지원하는 후원자였기 때문에, 인문주의자들은 군주에게 조언하고 그의 정부에서 공직을 맡는 것을 명예롭게 생각했습니다. 즉, 인문주의자들에게 군주에 대한 조언은 공적 책무의 이행으로써 시민적 덕성과 교양인의 의무를 실천하는 ‘인간다운’ 행위인 셈이었지요.(☞ 제갈공명의 출사와, 출사 이후 그의 <유비=촉>에 대한 충의도 비슷한 마음의 발로이지 않을까요?) 정치학자인 스키너Q. Skinner에 의하면, 이런 분위기에서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군주를 위한 인문주의자들의 조언서라는 장르가 광범위하게 펴져 있었고, 새로운 인쇄 매체의 등장으로 전례 없이 두터운 독자층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합니다(65). 당시에 ‘군주론’이란 조언서는, 군주만 읽는 책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까지도 독자층으로 삼은 하나의 서술 장르였습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마키아벨리가 다시 벼슬길에 올라 출세하겠다는 욕망에서 『군주론』을 메디치에 헌정했다는 해석은, 가능한 해석이기는 하지만 빈약한 해석입니다. 마키아벨리의 ‘내면세계’에는 정치세계로의 ‘직업적 복귀’라는 하나의 욕망만 있는 건 아닌 듯합니다. 공적 책무의 수행함으로써 자신의 시민적 덕성을 실천하려는 의지와, <군주=국가>에 대한 조언을 통해서 부패와 무질서를 청산하고 안정된 국가를 건설하려는 열망이, 당시의 에토스ethos를 담아서 표현하면, ‘인간으로서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 그의 내면세계를 채우고 있던 ‘풍경들’이었습니다. 실제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의 핵심과제로서 ‘빈번한 국내외 격변으로 불안정하고 절망적인 이탈리아 정치상황’ 의 극복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국가 간의 알력과 투쟁이 일어나는 현실세계에서 군주(=국가)는 자신의 생존과 지위를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조언합니다. 군주의 그런 의무는 마치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전쟁에서 승리해야만 하는 군인의 책무와 마찬가지라면서, 군주의 정치행위는 통상적인 사적 윤리(정직함, 겸손함, 관후함, 경건함)의 차원에서 분리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까지 합니다.
4. 마키아벨리 사상의 질료 - “현실 경험”과 “역사 지식”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현실세계에 대한 경험과 관찰” 그리고 “역사에 대한 지식”을 두 축으로 구축되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완성한 다음 해(1498년)부터 1512년까지, 피렌체에서 내정외교-전쟁과 관련 사안을 담당하는 제2 서기관으로 일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동안, 그는 이탈리아 안팎의 여러 나라와 도시 국가들에 체류하면서 군주들을 직접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은 물론이고, 베네치아의 과두정, 나폴리의 군주정, 그리고 그가 사는 피렌체의 공화정을 두루 경험하고 관찰함으로써 현실세계에 대한 정치적 통찰력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로마에서는 체자르 보르자와 교황을 만나 보기도 했습니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했듯이, “이 세계의 과학적 기초가 상상이나 감정이 아니라 경험과 관찰로 입증되는 ‘현실적인 것’이라면”, 마키아벨리는 제2 서기관 직을 수행하면서 생생한 현실real 정치에 대한 사실적realistic 기초를 쌓은 셈입니다.(앞서 말한 통일국가에 대한 염원도 이런 외교관으로서의 경험에서 기인한 바가 컸지요.)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많은 역사적 사례들을 거론합니다. 그 가운데 특히 고전 고대의 사례들을 논거로 삼아 논지를 펼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르네상스의 특징이 ‘고전고대의 부흥’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지요). 마키아벨리는 기본적으로 역사란 모범적 인물의 행위를 모방할 수 있는 텍스트로서 모방의 대상이며 당대의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용한 ‘(반면/)교사’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실용적이고 교훈적인 역사관의 보유자였습니다. 또한 그는 정치체제polity도 순환의 양상(군주정→폭군정) ? 귀족정(→과두정) ? 민주정(→폭도정)을 띤다는 순환적 역사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역사순환론의 관점을 지닌 마키아벨리로서는 인간의 본성과 사회 변화 양상은 언제 어디서나 동일한 것일 수밖에 없으므로, 그에게 ‘사회 변동’에 대한 관념이 없었다는 추론은 썩 자연스럽습니다.
이처럼 현실세계에 대한 자신의 체험을 통해 얻은 정치적 통찰력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군주론』은 형이상학적이 아니라 경험적이며, 구체적인 역사적 사례들의 예시를 통해서 논지가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에서 귀납추론에 의지하고 있는 책입니다. 실제로 『군주론』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보편적, 일반적 원리에서 출발해서 구체적 상황으로 내려가는 논설dissertation의 형식이 아니라 피렌체(더 넓혀도 이탈리아)라는 특정한 정치 상황에 대한 논평Review의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지요.
이런 점에서 마키아벨리는 정치를 체계적으로, 다시 말하면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경지까지는 나가진 못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즉, 어떤 명확한 인간심리에 기초하여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먼저 설명한 후에, 그에 상응하는 정부 형태가 어떤 것인지를 순차적(/인과적)으로 논의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한 마키아벨리에게는 역사(적 사례)를, ‘지식의 보고, 교훈의 산실’로 활용했지만 사료 자체에 대한 비판적 의식은 없었습니다. 그는 역사에 대한 내재적 사료 비판은 행하지 않고 그것을 부동不動의 확정된 사실로 받아들여서 활용할 뿐입니다. 역사적 사례들에서, 인간의 본성은 어디서나 같다는 생각의 근거를 마련하기는 했지만, 아직은 그런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체계적-이론적 분석을 시도하지는 못했다는 말이지요. (☞ 인간 본성에 대한 체계적 분석과 통찰에 기초하여 정치 세계를 논한 근대인 가운데 맨 앞에 선 사람은 홉스입니다.) 요컨대, 마키아벨리는 로크처럼 인간은 날 때부터 평등하다거나 아담 스미스처럼 인간은 우선적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한다는 식의 일반적 설명을 안출하지 않고, 역사적 사례에 기초해서 인간의 악(惡)을 이론상의 가설로, 일종의 공리로 취했습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여 ‘까칠하게’ 평가하자면, 마키아벨리를 ‘최초의 근대적 정치이론가political scientist’라고 평하기에는 다소 미흡한 감이 있습니다. 꼼꼼히 따지자면, 그의 정치 이해는 확실히 비중세적이지만 여러모로 전前근대적입니다. (이런 평가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당장 머리에 떠오는 것들로 주권개념의 부재(不在), 사회개혁이나 부의 불평등에 대한 무관심, 진보에 대한 믿음의 결여(≒순환론적인 역사관) 등을 나열할 수 있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결론이 의문스럽고 피상적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섣부른 일이 됩니다.(기실, 위의 지적 자체가 여러분의 분석적 이해를 돕기 위해 ‘치사하게’ 현재적 관점에서 ‘사체해부’하듯이 제기한 것이기도 합니다.^^) 마키아벨리는 오랜 실무 경험과 역사적 사례를 적절히 활용하여 에세이를 썼고, 비록 엄밀한 검증은 하지 않았지만 구체적이고 생생한 사례들을 예시하여 자신의 논지를 설득력 있게 제시했습니다. ☞어떤 형태의 글이든(연애편지 포함) 글을 써 본 사람이라면, 남이 납득할 수 있게 글을 쓰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충분히 납득하실 수 있을 겁니다.^^
5.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 - 『군주론』을 중심으로
1) 『군주론』의 핵심 화제와 관심 대상
『군주론』의 핵심 화제는 군주의 권력 획득과 행사입니다. 마키아벨리가 정치에서의 소위 ‘통치행위’(권력)에 주목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행위’와 ‘정치라는 영역’을 도덕적 고려나 종교적 가치에서 분리해서 다루었다는 점에서 ‘근대적’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즉, 그의 사상의 근대성은 일차적으로 그가 종교로부터 정치를 해방시킨 ‘정치의 독립군’이라는 점에서 기인합니다. 비유컨대, 르네상스 화가들이 육체의 누드nude를 사실적으로 그렸듯이, 마키아벨리는 세속적 리얼리즘으로 정치의 나체화를 그렸습니다. 세속적 현실주의의 관점에서, 기독교적 도덕률과는 무관한, 독립된 영역으로서의 정치를 조명했다는 점에서 그는 근대 정치사상의 효시라는 평가를 받을 만합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무엇에 대해 쓰겠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즉 그는 자신이 서술 대상으로 삼고 있는 정체polity의 범위를 확실하게 한정限定하고 논의를 전개합니다. 모든 주권은 군주제 아니면 공화제라고 말한 후, 『군주론』에서는 공화제를 제외하고 군주제만을 다루겠다고 언명합니다. 그리고 군주제 중에서도 다시 범위를 좁혀서 세습제나 혼합 군주제를 제외하고 새로운 군주제에 대해서만 논하겠다고 언명합니다. 이런 점에서, 『군주론』의 집중적인 관심대상은 신생 군주국이며 신생 군주가 그 나라의 토대를 굳건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간혹 타인의 힘(용병이나 외국)과 행운에 의해 권력을 획득하는 군주도 있지만(☞그는 메디치가의 집권배경을 염두에 두고, 전문가의 조력이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경우는 외국 군대와 행운을 통해서 권력을 얻을 때라고 ‘영악하게’ 말하기도 합니다), 자기 자신의 군대와 비르투(Virtu)에 의거해서 국가 권력을 획득한 이들이야말로 국가를 반석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가장 존경할만한 군주라는 자신의 견해도 분명히 밝힙니다. ☞ 이와 같이 서술대상을 한정함으로써 마키아벨리는, ‘특정 시대와 공간’에서 생겨난 문제만을 집중적으로 다르겠다고 선언한 셈입니다. 즉, <나,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이 막 집필되던 16세기 초반’이라는 특정 시대의, ‘피렌체’라는 특정 지역의, ‘신생 군주정’이라는 특정 정치체제에 적합한, 유용하고 실용적인 조언을 하겠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런 마키아벨리 자신이 이미 언명한 바 있는, 시대와 공간의 구속성(=맥락)을 간과-무시하면, 시대착오적 비판 혹은 과도한 일반화의 오류에 봉착하기 십상입니다.
2) 인간을 보는 시각
마키아벨리의 인간 이해는, 다른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고유한 능력과 의지를 강조한다는 특징을 보입니다(르네상스 인간관의 도드라진 특징은 “인간은 동물도, 신도 아니라는 점에서 고유한 존재이며, 불멸의 영혼의 소지자여서가 아니라 자유의지의 소유자이기에 명예롭고 존엄해 질 수 있다”고 보는 거지요).인간을 신의 섭리를 실현하는 데 쓰이는 도구로 보는 중세의 신학적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에게 속한 자유의지와 영광을 빼앗아 갈 만큼 신이 모든 것을 주관할 수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당시에 유행했던 ‘운명’도 숙명과는 다른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운명의 여신’은 인간의 삶을 절반쯤 좌우할 뿐이며 인간이 운명의 여신과 맞서지 못한 때에만, 운명 자신의 힘을 드러낸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인간의 삶은 삼장법사의 손바닥 위의 손오공과 같은 처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의지적 노력 여하에 따라 위대하고 명예롭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인간의 위대함을 단지 행운이나 운명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의 덕성Virtu 과 결부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앞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그의 관심의 무게 추는 인간의 보편적이고 자연적인 본성을 탐구하는 쪽이 아니라 세속적 본성을 탐구하는 쪽에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하긴, ‘지상에서 가장 훌륭한 인간, 가장 고귀한 인간’도 사생아를 낳고, 그를 ‘훌륭한 조카’라고 거리낌 없이 말하는 현실에서 인간의 세속적 욕구를 누가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마키아벨리는 인간은 부와 영광이라는 세속적 이해를 쫓기 때문에 본래 무절제하며 법의 규율이 없이는 정의롭거나 정직할 수 없다고 보았던 거지요.
이처럼 마키아벨리는 자연인으로서의 인간 본성이 아니라 시민, 병사, 군주, 공직자와 같은 사회적 인간의 품성과 행동양식에 관심을 집중했습니다. 종교에 대한 그의 반교권주의적 태도도 이런 견지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종교 자체로서의 가치보다는 정치적, 사회적 행위에 대한 영향력의 측면에서 종교를 바라보았고, 교황의 교권주의에 대한 반대에서조차도 교황의 종교적 관점이 아니라 교황이 정치적 진공상태를 만들어냄으로써 이탈리아를 정치적으로 황폐하게 만들었다는 차원에서 비판합니다. 요컨대, 마키아벨리의 관심은 ‘경건한 인간’보다는 ‘강건한 시민’을 만드는 조건에 더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군주론』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인간의 덕성도, 대체로 강력한 정치공동체를 만드는 데 필요하고 기여할 수 있는 자질과 품성이란 특징을 띠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인간의 사회적-정치적 측면에 주목했다고 해서, 어떤 분명한 사회 계급적 기준(이해관계)에서 사람을 구분했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에게 귀족보다는 인민에 의지할 것을 권고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마키아벨리를 인민의 편에 선 민주주의자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것은 일단 인민과 귀족에 대한 그의 평가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귀족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이유는, 귀족이 부유하거나 다른 계급보다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인민보다 더 쉽게 국가를 약화시킨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즉, 귀족이 국가 내의 특권을 누리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국가에 대항하는 특권계급으로서 국가(=군주)의 이익을 찬탈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기 때문에 귀족을 비난한 것입니다. 인민과 관련해서도, 마키아벨리가 군주에게 인민들의 환심을 사서 시민적 군주정을 세우라는 권고한 것은, 인민들이 유덕하다는 신념이나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원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인민이 귀족에 비해서 통치하기 쉽고, 국가 건설에 더 적합한 ‘질료’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 즉 ‘인민의’, ‘인민을 위한’이 아니라 ‘인민에 대한’ 정치행위에 주목한 것이지요.)
3) 군주의 존재 이유와 행동 윤리
마키아벨리가 인간을, 구원을 바라는 경건하고 정직하고 겸손한 존재가 아니라 세속적 업적을 중시하면서 냉정하고 계산적으로 행동하는 이해-타산적 존재로 보았다는 사실에서 군주에 대한 그의 관점이 어떠한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에 대해서도 그(군주)가 속해있는 세속적 세계에서의 사회적 품성과 행위라는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마키아벨리는 ‘시민적 성실과 헌신’이라는 덕이 이미 상실된 이탈리아와 같은 부패하고 분열된 상황에서 군주가 정치를 수행하려면, 그런 상황에 ‘걸맞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무엇보다도 강력한 정치 공동체를 만드는 데 필요하고 기여할 수 있는 자질과 품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훌륭한 통치자라면 “천상의 보상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세속적인 영광과 부와, 그것의 유혹”을 떨쳐내야 한다는 토마스 아퀴나스(『군주의 통치 The Government of Prince』)의 조언에 대해서, 군주가 사적 개인이라면 능히 귀담아들어야 할 소리이지만 정치적-공적 개인으로서 군주가 국가건설의 핵심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타당치 않은 이야기로 치부합니다.
『군주론?은 제목 때문에 마치 한 개인으로서의 군주를 다루고 있는 듯 생각하기 쉽지만, 마키아벨리는 군주를 사적 개인이 아니라 공적 인격체로 바라봅니다. 이것은 마키아벨리즘의 이해에 중요합니다. 『군주론』이 마치 ‘어떻게 독재를 할 것이며 그런 폭군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가’에 관한 지침서인양 착각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착각은 아무리 공을 들여도 결코 사실의 탑이 될 수 없죠.) 앞서 잠시 언급하였듯이, 마키아벨리는 군주에게 조언하는 것이 곧 국가에 조언하고 봉사하는 공적 책무를 다하는 것이라는 당시 인문주의자들의 일반적 가정을 주어진 공리로 수용하였기 때문에, <군주>와 <공동체로서 국가>의 이익 일치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 물론, 우리는 이런 가정을 그대로 수용하기 어렵습니다. 『군주론』이 출간된 이후로 거의 500년 가까이 된 역사 자체가 ‘인격체로서의 군주’와 ‘국민국가’가 별개라는 것을 보여주었고, 정치라는 것의 실상은 <개인 대 정부의 이해관계의 긴장/갈등>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를 국가의 화신化身으로 보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그런 시대를 살았습니다.
따라서 그가 보기에, 군주의 궁극 목적은 국가의 존립이었습니다. 사적 개인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비도덕적 행위가 군주에게는 허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 이면에는, 군주가 자기 자신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권력자가 아니라 국가의 건설과 존립을 추구하는 정치적 행위자일 경우라는 전제(단서조항)가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공적 목적을 수행하는 장場인 정치라는 영역에서는 ‘윤리적 선’이 자동적으로 ‘공적인 덕’으로 전환되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사적으로 비윤리적 행위라도 공적인 영역에서는 덕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 것입니니다. (저는 이런 그의 주장도 썩 흥미롭습니다.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 국가 최고 지도자가 되어도 왜 좋은 정치가 이루어지지 않는가?”라는 의문과 관련하여 중요한 시사점을 주기 때문입니다. 정책 의도가 좋으면 결과도 좋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있지만, 기대처럼 그대로 되진 않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역사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선한 의도로 시작한 일이, 의외의 결과를(심지어, 악한 결과를) 낳는 경우는 적지 않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동기의 선함이 결과의 선함을 자동적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마키아벨리의 인식은 여러 생각거리를 제공해 줍니다. )
마키아벨리는, 국가와 등치될 수 있는 군주에게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올바르지 못한 행동윤리도 올바를 수 있다는 주장에서 ‘한 발 더 나가서’, 군주가 정치영역에서는 도덕적 행위가 늘 유용하거나 합리적인 수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선善하지 않은 사람들이 대다수인 그 세계에서, 단지 선하기만을 고집한다면, 위대한 업적을 달성하기는커녕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고 경고까지 합니다. 유능한 군주가 되려면, 사악한 행동이든 덕 있는 행동이든 상관없이, 무엇보다도 필요necessity의 지침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군주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현실적 문제는, 악한 행동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악행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수단을 사용하되 악하게 보이는 것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가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무릇 군주란, 악한 수단을 썼다는 죄책감이나 선하게 행동하지 못했다는 도덕적 죄의식으로 고뇌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사악하다는 평판을 듣지 않을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고민의 해결책으로 그는 놀랍게도, 악하게 보이지 않도록 위장할 것을 조언합니다. 군주는 어떻게든 경멸과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위선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마키아벨리는 왜 이렇게 사악해 보이는 조언까지도 서슴지 않는 것일까요? 그의 본의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미덕과 악덕의 역설>을 이해해야 합니다. 겉으로는 악덕-인색-잔인함으로 보이는 행위일지라도 실제로 그것이 진정한 미덕-관후함-자비가 될 수도 있다는 <외양과 실재>의 관계를 짚어보아야 합니다. 그는 이렇게 반문反問합니다. 선한 행위로 간주된다고 하더라도(≒선한 품성을 지닌 군주의 행위라도) 그것이 군주를 파멸로 이끄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과연 그 행위가 칭송을 받아 마땅한 행위겠는가? 그렇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인색함이나 잔인함은 무엇보다도 결과에 의해 평가되고 용서받아 마땅하다고 역설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달성하려는 궁극 목적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관대함/인색함(사치/검소함), 잔인함/자비와 같은 품성의 의미와 결과는 썩 달라진다고 보았습니다. (예컨대, 자녀의 느슨한 생활에 대한 부모님의 엄격한 태도와 관대한 태도의 경우를 생각해 보시면 그의 주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좀 더 과감하게 일반화하면, 군주란 모름지기 ‘외부의 평판이나 비난에 일희일비 하지 말고, 내실 있게 실용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 어둠의 밀어처럼 보이는 기표와는 달리, 그의 핵심 전언의 기의는 바로 이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무장한’ 예언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자국을 지킬 힘이 없는 이상주의자(그의 표현으로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나, 지킬 힘은 있으나 이상을 상실한 군주(“무장은 했으나 예언자가 아닌 자”)는 군주의 역할을 다할 수 없다고 평가합니다. 마키아벨리는 앞에서 설명한 덕성(Virtu) 갖추기와 실제적인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군대의 보유를 국가의 건설-유지의 두 축으로 삼았습니다.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가 성공한 사례가 없기 때문에, 군주는 자신의 군대와 법률을 보유한 무장한 예언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당시 이탈리아의 상황과 관련지어 훌륭한 군대의 보유를 국가 건설의 핵심으로 강조합니다.(법은 국가를 건설한 후에야 긴요하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마키아벨리 당대에는 용병이나 외국의 원군에 의지하여 전쟁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지만, 마키아벨리는 용병은 변덕스럽고 충성스럽지 않기 때문에 용병에 의존할 생각을 버리고 (체사레 보르자가 그랬듯이) 자신의 군대를 양성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자국의 시민으로 구성된 군대(시민 민병대)는 무적의 군대는 아닐지라도 다른 어떤 유형의 군대보다 우수하고 강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6. 마키아벨리즘을 어떻게 볼 것인가 - 평가와 정리
㉠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개인적 성품이 아니라 그의 통치능력의 결과를 가지고 영광/비참을 평가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여기에서도 마키아벨리가 능력을 통해서 성공한 사람을 칭송하는 르네상스 시대 조류에 발을 담그고 있었음을 알 수 있지요.) 그에게 군주란 “국가라는 예술품을 만드는 예술가”와 같았습니다. 창작품의 가치는 예술가의 도덕적 의도가 아니라 (예술적 성과를 만들어내는) 실제적인 능력에 달린 것과 마찬가지로, 군주에게 중요한 것은 그의 선의善意가 아니라 국가를 건설하고 완성할 수 있는 실질적인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귀족이나 인민은, 국가라는 모자이크 예술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모자이크 조각일 뿐이라고 보았습니다. ☞ 이런 그의 견해에는, 국가가 (천명이나 섭리에 의해서) 저절로 생겨난 자연적인 기제가 아니라, “신생 군주국의 출현”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군주(인간)가 운명의 여신의 변덕을 이겨내고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창조물創造物이라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상이 담겨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정치활동을 수동적 처신Doing에서 적극적 행위Making라는 범주로 옮았다고 할 수 있지요.
㉡ 마키아벨리즘 개념규정의 전제: 마르크스주의Marxism가 마르크스의 정치사상을 뜻하듯이, 마키아벨리즘이란 일차적으로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현대 정치사에서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딱지가 무자비한 폭력혁명을 선동하는 “빨갱이”라는 불온한 뉘앙스를 품고 있듯이, 마키아벨리스트라는 기표는 정치적 야욕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파렴치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위험인물이라는 기의를 달고 통용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노년에 자신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고 선언했듯이 마키아벨리가 살아 있다면 그도 자신은 마키아벨리스트가 아니라고 말할 정도로, 이런 기표-기의의 짝짓기는 너무 자의적입니다. 마키아벨리즘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흔히 알려진 견해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우선, 그런 주장은 ‘마키아벨리즘=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이라는 기본적인 정의와도 어긋납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국가를 건설- 유지하려는 목적 하에서, (수단의 도덕적 선악에는 구애받지 말고) 효율성과 유용성만을 고려하여 정치행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므로 국가의 공익이 아니라 군주의 사익과 같이 개인이나 당파의 이익을 목적으로 삼고 나쁜 수단을 사용하는 경우는 마키아벨리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권력자가 자신의 사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김욱 선생의 표현을 빌자면 오히려 “사이비 마키아벨리즘”입니다. 또한, 정치라는 범주를 벗어나 일상적인 사회적 삶에서 자기 이익을 위해 가차 없이 사악한 방법이나 수단을 사용하는 경우도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마키아벨리는 현실에 실재하는 사적 개인을 대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말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목표를 위해 정치 행위를 해야 하는 군주에게 필요한 정치적 덕목에 대해 언술했습니다. 요컨대, 마키아벨리즘이라는 규정은, <공공의 이익을 추구할 목적으로>와 <정치라는 영역 내>라는 마키아벨리가 설정한 경계 내에서 이루어져야 마땅합니다.
성공(+)
실패(-)
마키아벨리즘
나쁜 수단으로
좋은 결과를 낳은 경우
나쁜 수단이 과도해
나쁜 결과로 전화된 경우
반(反)마키아벨리즘
좋은 수단으로
좋은 결과를 낳은 경우
좋은 수단만 고집하다
나쁜 결과에 이른 경우
㉢ 반反마키아벨리즘과의 대비를 통해 본 마키아벨리즘: 그렇다면 마키아벨리즘이란 과연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정치 영역 내에서 이루어지는 인간 행위라는 점을 전제로 마키아벨리즘을 정의하면, 그것은 나쁜 수단으로 좋은 목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즉, 마키아벨리즘은 나쁜 수단을 정당화하는 좋은 목적(정당성)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정치사상입니다. 물론 좋은 목적을 좋은 수단으로 이룰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간파했듯이, 정치적 공간은 어쩔 수 없이 나쁜 수단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나쁜 수단을 탓하기보다는 그런 수단을 통해서라도 좋은 목적을 이루었느냐를 따지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겁니다. 마키아벨리즘을 보다 선명하게 이해하는데, 김욱 교수가 제시한 반反마키아벨리즘(말 그대로 마키아벨리즘을 거부하는 것, 즉 아무리 좋은 목적이라도 나쁜 수단을 써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의 이분법적 대비를 통한 정리는 매우 유용합니다.
㉣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달성하려는 목적의 정당성이 수단의 비윤리성보다 상위에 놓인다고 보았기 때문에 군주란 초超도덕적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분명 마키아벨리의 이런 주장에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논리가 내포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논리를 마키아벨리즘이라고 부른다면, 마키아벨리는 그런 명명命名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조건을 첨가하여 ‘허許’했을 것이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첫째, 무엇보다도 목적이 정당해야 합니다(그렇다면, 수단은 자연히 부차적인 게 됩니다). 둘째, 옳은 수단을 쓸 수 있는 상황이라면(마키아벨리 투로 말하면, 공적인 윤리와 사적인 윤리를 일치시킬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 갖춰져 있다면) 당연히 그런 방식으로 목적을 달성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악한evil 수단과 보다 덜 악한less evil' 수단 사이의 선택만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비록 그게 궁극적인 선이 아니라고 비난을 받을지언정, 마땅히 후자를 선택-사용해야 합니다. 저는 이게 바로 마키아벨리의 핵심 전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덜 악한 수단을 써야할 경우조차도 거의 언제나 유보조건을 달아서 말했습니다. 그는 군주가 갖추어야 할 자질과 해야 할 행동이 어떠해야 하는지 정치영역에서의 처신에 대해 조언할 때조차도 그렇게 주장합니다. 보시라! “군주는 상황의 필요에 따라서 선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을 배워야(106); 단지 잔인함이 아니라 “현명한 잔인함”이 진정한 자비이다(112); 인간이 선하다면 온당하지 못할 조언(123); 안토니우스 카라칼라는 잔인하고 야만적이기만 해서는 군주로서 통치할 수 없다는 사례를 보여준다(134).”
㉤ 마키아벨리즘 다시 보기 - 여전히 문제는 목적이다? 무엇보다도 목적이 정당해야 한다.
그런데, 마키아벨리즘을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주장”이라고 과도하게 일반화해서 정의하더라도, 그리고 설령 마키아벨리가 이런 일반화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견해는 정말로 ‘나쁜’ 생각이고 ‘사악한’ 주장일까요? 목적은 정말로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는 것일까요? 정말 목적이 좋아도 나쁜 수단을 쓰면 안 된다고 우리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정말로 부도덕한 사람일까요? 이런 문제들을 생각해 보는 것도 재밌습니다. 공리주의는 어떤 행위가 최대 다수의 행복을 증진시킨다면 그 행위는 옳다고 봅니다. 물론, 이런 주장이 늘 옳은 것으로 간주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옳지 않다고 해서, ‘부도덕한’ 생각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지는 않습니다. 정작 비난은,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제시한 목적이 ‘궁극 목적ultimate purpose으로서 적절하지 않거나 정당하지 않기 때문에’ 생겨나는 게 아닐까요! 예를 들어, 우리는“행복을 증진시키는 어떤 일이라도 하라”는 벤담의 제언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 말에 충격을 받지는 않습니다. 왼쪽 뺨을 맞으면, 오른 쪽 뺨을 내 놓으라는 성경 이야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국가 권력을 확고히 할 수 있는 어떤 일이라도 하라”는 주장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나아가 사악한 주장이라고 비판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국가 권력’이라는 목적은, 그것을 쟁취-유지하려는 나쁜 수단들을 정당화할 만한 궁극목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 비판이지요. 문제는, 여전히 목적의 정당성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의 의견에 동의하든 않든 간에, 판단에 앞서 이런 문제를 겹 대어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총기 살인을 저지른 흉악한 살인마인가, 국제정세에 둔감한 몽상적인 테러니스트인가, 아니면 독립 운동가인가? 물론, 답은 분명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안중근’을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인 ‘독립운동’로 일반화하면 어떤가요? 목적을 바로 세우는 게 우선인가요, 아니면 올바른 수단을 사용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 이런 경우는 한국사의 특수한 한 시기의 문제로 모든 경우에 일반화할 수 없다고요? 좋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마키아벨리의 주장도 16세기 초의 이탈리아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여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본다면 『군주론?은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한 도시국가의 지식인의 애국심 혹은 민족주의적(≠민주주의적) 열정의 산물로 볼 수 있습니다(왜냐하면 당시엔 정치권력=국가이니까요!). 그리고 그런 역사성을 ‘생략’하고 그의 생각을 통시대적으로, 초영역적으로 (통상적인 사적 윤리의 영역까지를 포함해서) 차용-해석-실천하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왜냐하면 지금은 정치의 영역에서조차 정권≠국가이니까요!) 따라서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이 그 시대의 역사적 산물이라면, 그런 시대적 구속성을 염두에 두고 해석하고 평가해야 마땅합니다.
☞ 전체적으로 마키아벨리가 내세운 주장은 ‘부도덕’하다기보다는 ‘비도덕’적입니다. 마키아벨리나 그의 정치사상을 뻔뻔하다고 비난하는 것은 핵심을 잘못 짚은 것입니다. “뻔뻔한 잔인함은 군주의 지위를 가져다 줄 수는 있겠지만 영광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라는 그의 주장에는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뻔뻔함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가톨릭교회에서 시성식을 거행할 때에는, 일부러 그 성자의 잘못을 끄집어내서 시비를 걸게 하는 사람을 내세운다고 합니다. 어쩌면 마키아벨리도 정치영역에서 그런 “악마의 대변자 Devil's Advocate” 역할을 한 사람이 아니었을까요? 악마의 대변자는 악마를 가장한 사람이지 사람의 탈을 쓴 진짜 악마는 아니지요. 특히나 더 주목할 점은 그가, 군주는 윤리적인 규범에 얽매이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욕망이나 정념에도 사로잡히지 말고 냉정하고 계산적으로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격정에서 비롯되는 폭력마저도 결과를 감안하여 필요한 만큼 적절한 양만을 계산-합리적으로 사용하라고 조언합니다. 이 지점이야말로 그의 눈에 포착된 피렌체의 정치현상에서, 근대 사회 일반의 세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결론을 대신하여 <심화>로 가서 그걸 살펴보겠습니다.
7. 심화 - 마키아벨리가 본 ‘세계’ : 순치된 적대관계의 세계
1)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직업은 전쟁”이라고 말했지만, 무력이라는 물리적 힘만 갖고서는 권력을 획득하거나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는 이성의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 권력의 획득과 유지에는 이성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점을, 마키아벨리는 “사자의 힘과 여우의 꾀”라는 잘 알려진 표현을 통해서 드러내고 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음모를 꾸미고 남을 속이는 능력도 군주의 비르투(Virtu)로 파악합니다. 그는 『군주론』 도처에서, 군주는 진짜로 관대하거나 정직하기보다는 정직한 척하고 관대한 척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배반, 음모, 배신과 같은 적대세력을 제거하는 데 필요한 권모술수를 군주가 갖추어야 할 비르투로 파악했다는 점에 주목해서, 승계호 선생은 그것을, 베버가 말한 수단합리성의 개념을 차용해서 “마키아벨리 식의 합리성”이라고 표현합니다.
2)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가 제시한 덕목이 지닌 본질을 파악하려면, 인간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승계호 선생은 <사회적 상호작용>의 상황을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우호관계>라고 부를 수 있는 상호 관심과 신뢰의 상황이고, 다른 하나는 <적대관계>로서 상호 불신과 공포의 상황입니다. 우호관계는 부모, 자녀, 가까운 친척과 이웃들의 상호관계로서 “자기 자신이 확장된 사람들”을 친구라고 여깁니다. 친구는 내면적인 친소관계를 맺지만 낯선 이방인(異邦人)이나 적(敵)들과 그러지 않는다는 점에서 친구와 이방인(/적)은 대조적이죠. 친구와의 우호관계에서는 덕과 의무 개념이 도덕률의 기초가 되고, 일반적인 윤리적 덕목은 친구와 친지들 사이에서, 즉 우호관계에서 가장 잘 실천됩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우호관계가 아니라 적대관계를 전제로 삼고 군주의 덕목을 논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눈을 부릅뜰” 대목은 적대관계도 2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는 적대성이 겉으로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공개적 적대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적대성이 은폐되어 숨겨진 암묵적 적대관계입니다. (공개적 적대관계를 전제하고 덕목을 논한 대표적인 인물은 호메로스입니다. 그에 의해서 두 무장집단 사이에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덕목(용기, 솔선수범)은 이미 논의가 되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도 이방인/뜨내기 또는 적을 상대하는 데 필요한 유일한 덕목은 용기뿐이라고 말했지요.) 그런데, 마키아벨리가 본 세계는 공개적인 적대관계만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군주론』의 세계는 친구와 적이 명쾌하게 구별되지 않는 세계입니다. 오히려 “친구와 적이 한 도시에 함께 일해 가면서 사는 세계”입니다. 따라서 마키아벨리가 염두에 둔 것은, 친구와 적의 구별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은 암묵적 적대관계의 세계에 필요한 덕목입니다.
사실, 마키아벨리는 적대관계의 두 유형을 모두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가 폭력과 잔인성을 정당한 전술로 내세울 때는 공개적 적대관계를 전제로 말하는 것이고, 속임수나 술수를 내세울 때에는 암묵적 적대관계를 겨냥한 것이지요. 여기서 공개적 적대관계에서 통용될 덕목의 제시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호메로스,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등이 이미 말했지요). 그리고 공개적 적대관계에서는 우리 마을로부터 적들을 쫓아내면 됩니다. 적들을 물리칠 수 있을 때만 그들과 싸우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암묵적 적대관계 상황에서는 마을 성벽 안에서 적들과 삶의 공간을 함께 나누어야합니다. 공포와 불신 속에서 그들과 함께(‘따로 분리’되어서가 아니라) 일상 업무를 처리해야 합니다. 승계호 선생은, 마키아벨리의 인식의 새로움을, 암묵적 적대관계를 인간행위 영역에서 가장 널리 퍼져 있는 것으로 보았다는 점에 있다고 평합니다. 그리고 마키아벨리가 본 이런 세계를 “순치된 적대세계”로 표현합니다.
3) 순치된 적대세계에서는, 다시 말해서 암묵적 적대관계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근본적으로 도덕모호성으로 부르는 현상이 지배적입니다. 공개적 적대세계에서는 친구와 적을 명백히 가를 수 있지만, 순치된 적대세계에서는 그럴 수 없습니다. 그 세계는, 우군과 적군을 뚜렷이 알 수 없는 짙은 안개 속에서 싸우는 세계입니다. 심지어 동일한 사람이, 때에 따라 친구가 되거나 원수가 되기도 하는 세계입니다. 따라서 순치된 적대관계는 우호관계로부터 뚜렷이 금을 그어 갈라낼 수 없습니다. 마키아벨리 식의 개인은 적대관계와 우호관계가 필연적으로 혼재된 상황에서 행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적군을 죽이거나 속이는 일은 사악한 행동이거나 도덕적으로 모호한 행동이 아닙니다. 폭력과 잔인성은 전쟁덕목의 특질입니다. 그러나 공격대상이 아군인지 적군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남을 죽이거나 속이는 일을 쉽게 도덕적으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도덕적 평가가 모호해집니다. 승계호 선생은 바로 이점에 주목하여, 마키아벨리의 빛나는 업적은 순치된 적대세계를 정치담론의 기본 틀로 인식한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마키아벨리의 해결책을 수용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정치담론의 기본전제로 순치된 적대관계를 묵살하기란 어렵습니다. 저는 바로 이런 관계가, 저마다 주권 개인인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의 토대라고 생각합니다.
4) 이런 세계가 출현하는 데 한몫을 맡은 또 다른 세속차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와 자유시장의 대두입니다. 마키아벨리 시대의 이탈리아를 보십시오. “시장은 점차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다. 상품양은 증대되었고, 금은이 쏟아져 들어왔으며, 농노들은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 농촌을 떠났고, 공장단지는 점차 확대되고 있었다.”(승계호 p.278에서 재인용) 다들 아시다시피, 시장관계는 봉건제의 ‘안티테제’로 나타났습니다. 중세 봉건사회의 주군과 봉신, 주인과 농노라는 친분 관계(the personal relations)와는 대조적으로, 시장관계의 출현으로 가시화된 주권 개인들의 세계는 냉정한 이해관계(the interest relations)에 의해 좌우되는 사회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낯선 타자이자 이방인일 뿐인 비(非)친분관계(the impersonal relations)에 놓여 있는 사회입니다. 이런 주권 개인들의 세계에서 인간 사이에 자연적 유대란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장사회 capitalistic market society를 떠올려 보시길-자본주의적 시장은 친분에 의해 좌우되는 관계에 있지 않습니다. 친분 관계가 고려된다고 해도 그것은 대체로 ‘이해(계산, 타산)관계’에 종속되어 있지요). 시장은 <구매자>와 <판매자>라는 비(非)친분관계를, 주권 개인들의 세계의 지배적 관계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전통사회에서 이방인은 적대감이나 적개심의 표적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들은 위험과 해악의 원천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장체제에서는 낯선 사람들이 해악의 원천이 될 수도 있지만 또한 이익의 원천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시장은 이방인을 새롭게 보도록 만듭니다. 그들을 적일 수도, 구매자(판매자)로서 상호 이익의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시장은 낯선 사람과 모호하고 복잡한 관계를 맺게 합니다. 간단히 친분관계로만, 또는 적대 관계나 우호관계로만 설명할 수 없는 모호성과 복잡성 속에서 관계를 맺게 합니다. 마키아벨리가 본 세계란 바로 이런 모호성과 복잡성이 중층적 구조로 이루어진 세속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이런 점에서 『군주론』의 세계에는, 마키아벨리가 자기 시대의 세계상에서 선구적으로 간파한 근대세계의 관계망이 담겨 있습니다.
☞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진정한 신(神)의 나라는 상호 신뢰와 사랑의 우호적인 관계가 가득한 세계일 것입니다. 반면에 동물의 세계는 상호 불신과 공포의 적대관계가 지배적인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세계는 어떨까요? 아마도 불신과 공포가 순치되었으나 여전히 타자에게 전폭적인 사랑과 신뢰를 보내기는 걱정과 불안에 떨지 않을 수 없는 세계일 것입니다. 마키아벨리가 간파했던 이 순치된 적대관계의 인간 세계는, 한 마디로 (진정한!) 신의 세계보다는 못하지만 동물의 세계보다는 나은 세계입니다. 마키아벨리의 문제의식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이후의 유럽 지성들은, 인간 사회가 최소한 동물의 세계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과 방법은 무엇인지, 또한 가능한 한 신국(神國)으로 진입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조건과 방법은 무엇인지를 한결 선명하게 궁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키아벨리 자신이 『군주론』 (강정인, 김경희 옮김, 까치출판사의 제3판 개역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며.......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바를 행하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하는 바를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보다는 잃기가 십상입니다.” p. 106 (강조는 인용자)
이 단락에서의 인용은 고명섭, ?마키아벨리즘과 마키아벨리스트 사이에서?, 『지식의 발견』 (그린비) pp. 280~281.
이 부분은 곽차섭의「마키아벨리즘」,『서양의 지적 운동』(pp.220~242)과 김경희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다시읽기-알뛰세의 독해를 중심으로?, 『진보평론』 (25호, 2005년 봄호, pp.293~310)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요약한 내용의 가치와 의의는 고스란히 두 분의 것이고, 요약 상의 착오나 실수는 요약자의 몫이다.
이광주,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교양계층의 탄생?, 『교양의 탄생』 (한길사) p. 253.
앞의 책, p. 256. 이 문단의 마지막 문장에 해당되는 밑줄 친 부분의 내용 역시 『교양의 탄생』에서 추려낸 것임.
퀸틴 스키너, 신형승 옮김 『마키아벨리』 (시공사)의 2장을 참고. 본문의 괄호 속 숫자는 이 책의 쪽수를 말함.
수사적 표현이 가미되어 있기는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당대 이탈리아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이탈리아인들은 이스라엘인들보다 더 예속되어 있고, 페르시아사람들보다 더 억압받고 있으며, 아테네인들보다 더 지리멸렬해 있는데다가 인정받는 지도자도 없고, 질서나 안정도 없으며, 짓밟히고, 약탈당하고, 갈기갈기 찢기고, 유린당한, 한 마디로 완전히 황폐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군주론』 p. 169.
다소 앞질러 말하는 것이지만, 이런 상황은 마키아벨리의 시대에서부터 오늘날까지도 모든 국제간의 행위를 규정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힘의 정치, 권력 정치가 상존하는 국제 세계에서 그는 국가의 생존과 유지를 최고의 목적(=국가이성)으로 상정하고, 이런 목적의 정당성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의 비윤리성을 용인한다고 보았다
“군주는 지적인 훈련으로 역사서를 읽어야 하며, 특히 위인들의 행적을 조명하기 위해서 읽어야 한다.”『군주론』p. 103
이런 마키아벨리의 역사관은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의 일반적인 역사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스키너에 의하면(pp. 130~133),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의 역사편찬과 서술은 다음과 같은 4가지 원칙을 토대로 이루어졌다. ? 유용하고 실용적인(useful and serviceable) 방식으로 과거를 숙고하되, 도덕적인 교훈을 줄 수 있어야 한다. ? 사건의 완전한 연대기가 아니라 기록할 가치가 있는 구체적인 사료(valuable cases)를 취사선택한다. ? 수사학적 문체를 구사해야 한다. ? 선조의 위대한 업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사회가 아니라 국가를 문제로 삼고 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국가의 문제가 해결되면 사회의 문제도 저절로 해결되는 게 아님을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이를테면 독립국가의 달성 자체가 자동적으로 민주적인 평등 사회의 건설인 것은 아니다. 물론, 사회문제Social Problem은 19세기에 가서야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냈으니 마키아벨리로서는 독립된 국가의 건설이 사회 분열의 치유보다 시습한 과제일 수밖에 없었다.
퀸틴 스키너, 『마키아벨리』 p. 55에서 재인용.
마키아벨리에서 ‘Virtu’(덕성)이란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만, 단순화의 위험을 감안하고 말하자면 <군주로 하여금 행운의 여신과 손을 맞잡게 하고, 영광과 명예를 획득하고 국가를 보위할 수 있도록 하는 자질들의 집합>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듯합니다. “진정한 비르투를 지닌 군주의 특징은 최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가 지시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기꺼이 행하는 데 있다.”
인간관을 엿볼 수 있는 구절들 -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자인데다 기만에 능하며 이득에 눈이 먼(114) ; 인간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자보다 사랑을 받는 자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덜 주저한다(114) ; 인간은 어버이의 죽음은 쉽게 잊어도 재산의 상실은 좀처럼 잊지 못하기 때문에(115) ; 인간이란 사악하고 당신과 맺은 약속을 지키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119) ; 인간은 목전의 필요에 따라 쉽게 움직이기 때문에(120) ; 재산과 명예를 빼앗기지 않으면 만족해서(123). (숫자)= 『군주론』의 쪽수.
브로노프스키 & 매즐리슈, 차하순 역 『서양의 지적 전통』 (홍성사) p. 63.
마키아벨리가 귀족이 아니라 인민(군중)을 권력의 가장 믿을 만한 기초를 상정한 이유는 1) 대중의 요구가 지배자의 권력을 위태롭게 하지 않으면서도 충족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고, 2) 그들은 유산자로서 공포와 불안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조작하기 쉽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개인윤리/국가윤리의 차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지요. 이를테면, <생사에 관한 필요불가결한 행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와 같은 문제에 직면해서 개인이 ‘굶주린 아이들이 있어 당신의 식량이 필요하다, 그러니 당신은 죽어줘야겠다.’라고 말하는 경우와 국가가 ‘헛도는 공장들이 있어 당신의 석유가 필요하다, 그러니 당신 나라는 없어져야겠다.’라고 하는 경우에 둘 다 혹은 어느 한쪽만 옳은지, 그른지의 문제를 <동기와 결과>의 관계와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서양의 지적 전통』 p. 69. 이 대목과 관련하여 앞서도 말한 마키아벨리를 현대적 의미의 민주주의자나 민중주의자라고 볼 수 있는가, 라는 문제를 정리하자면, 그는 국가 내의 모든 성인이 아니라 (수공업자, 소상인이 대상인과 귀족으로 이루어진) 시민의 정부가 아니라 시민에 대해 책임지는 정부를 구상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에게는 (군주정, 공화정 등의) 정치체제의 우월성 여부보다는 정치책임의 본질과 수행의 규명을 좀 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였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고명섭, ?마키아벨리즘과 마키아벨리스트 사이에서?, 『지식의 발견』 p. 282.
『군주론』에서 소위 ‘마키아벨리즘’의 환기시키는 대표적인 문구들 : (군주는) 능숙한 기만자이며 위장자가 되어야 합니다. p. 120 ; 군주는 자신이 좋다고 생각되는 방법으로 처신할 수 없다. 그는 종종 신의 없이, 무자비하게, 비인도적으로 행동하고 종교의 계율을 무시하도록 강요당하기 때문이다. … 가급적이면 올바른 행동으로부터 벗어나지 말아야겠지만 필요하다면 악행도 저지를 수 있어야 한다. p. 121 ; 군주가 전쟁에서 이기고 국가를 보존하면, 그 수단은 모든 사람에 의해서 항상 명예롭고 찬양받을 만한 것으로 판단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은 외양과 결과에 감명을 받기 때문입니다. p. 122. (밑줄은 인용자) 한편, <마키아벨리즘=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은 곽차섭, ?마키아벨리즘?, 『서양의 지적 운동?을 참고하시라.
즉, 사이비마키아벨리즘이란 사익만을 극대화하며 사익의 극대화를 마키아벨리즘으로 포장하는 것을 말한다. 즉 좋은 목적은 없는 나쁜 수단일 뿐이다. 이에 관해서는 김욱, 『마키아벨리즘으로 읽는 한국헌정사』 (인물과 사상)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니 참고.
좋은 동기-나쁜 결과의 문제를, “세계관에 대한 리얼리즘 소설의 승리”라는 표현으로 압축되는, 발자크의 소설에 대한 루카치의 평가와 관련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나쁜 세계관의 소설가도 좋은 소설작품을 쓸 수 있다. 그렇다면, 좋은 세계관을 지닌 작가도 나쁜 작품을 쓸 수 있다는 명제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마키아벨리즘을 과도하게 일반화하거나 단순화해서 비난하기보다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담긴 전언을 생산적으로 재해석하는 방법의 일례(一例)로써, 저는 <심화>라는 이름으로 승계호 선생의 해석을, 여러분에게 제 결론 대신에 소개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여기에 서술된 견해의 독창성은 승계호의 『직관과 구성』(나남)에 있지 저에게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심화>를 더 ‘심화’하고 싶은 분들은 승계호, 『직관과 구성』 (나남)을, 특히 pp.269~296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참고로 승계호 선생의 책은, 『정의론』으로 유명한 존 롤스가 자기가 책을 쓰기 전에 승계호 선생을 알았더라면, 많은 부분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꽤 유명하고 썩 좋은 책입니다.
-<군주론> 강의 원고 펌, 강사 오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