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디자인하라(2)
세상은 누군가의 꿈으로 이루어진다
예전엔 계산기가 두꺼운 책만 했다. 그 전에는 주판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어렸을 적엔 알이 큰 주판위에 잡동사니들을 싣고 마룻바닥을 밀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주판이 장난감이었다. 세상은 변해 왔고 변하고 있고, 계속 변할 것이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은 모두 사용자 중심으로, 더 효율적으로, 더 새로운 것으로 꾸준히 변해 가고 있다. 여기에는 늘 누군가의 꿈이 함께 하고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한 곳에 안주하는 것을 싫어했다. 학교 다닐 때는 부모님 말씀대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나이 마흔이 될 때까지는 취미생활로 여러 가지를 했다. 그 때문에 못하는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딱히 잘하는 것도 없었다. 어느 수준에 다다르기만 하면 그 취미는 더 이상 나의 관심과 흥미를 끌지 못했었다.
나는 내가 '방랑끼'가 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 한다. 마치 다른 별에서 온 이상한 존재처럼 취급받는 것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금도 '틀에서 벗어나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늘 한 곳에 정착하지 않는 유목민과 같은 떠돌이라고 손가락질을 한다. 하지만 난 이에 굴복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로 인해 늘 유연한 사고를 갖고 있다고 자부한다. 왜 우리는 사각의 다리 네 게 달린 식탁에서만 밥을 먹어야 하는가? 왜 우리는 사각의 텔레비전, 노트북, 전자수첩의 화면만 봐야 하는가?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어릴 때는 그림을 집안 곳곳에 전시해 주고, 상장도 벽에 걸어주고, 방 벽지도 알록달록 미키마우스와 뽀빠이 그림이 그려진 상상의 벽지로 도배해 준다. 아이들은 벽이고 노트고 어디든 그림을 그리고 낙서도 한다. 그래도 혼나지 않는다. 오히려 잘 한다고 칭찬을 듣는다. 아이들의 실수도 흥미롭게 생각한다. 그런 실수들은 순수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소위 사회적 규범이 작동하여 아이들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조금이라도 그 규범을 벗어나면 '튀는 놈'으로 분류된다. 빨리 고치지 않으면 '반항아'로 생활통지표에 문제아로 낙인을 찍는다. 따라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의 꿈을 접고 그 규범에 순종하게 된다.
어렸을 때 난 왼손잡이였다. 단지 왼손으로 밥을 먹는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심하게 꾸중을 듣고 많이 맞기도 했다. '우리 집안에 왼손잡이는 없다.', '왼손잡이는 재수 없다.'와 같은 무서운 말을 들어야 했다. 당시 어린 생각으로는 맞아 죽지 않으려면 오른 손으로 밥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결국 난 오른 손으로 밥을 먹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인 은행에 입사시험 과목 중에 손으로 지폐를 세는 것이 있었다. 난 왼손이 오른손보다 돈을 세는 속도가 훨씬 빨랐고 편했다. 그런데 왼손으로 지폐를 세는 사람은 입사가 안 된다고 했다. 난 일주일 동안 밤낮으로 오른 손으로 돈 세는 법을 배워서야 입사할 수 있었다. 난 또 거기에 순종해야만 했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좀 다르게 생각하고, 좀 다르게 글을 쓰고, 좀 다르게 그림을 그리고, 좀 다르게 노래하고, 좀 다르게 말한다는 이유로 헌법에도 없는 권리를 제한하려 하고 있다. 이로 인해 많은 어린이들의 자연스런 욕구들이 규범이라는 것으로 억제되고 있다. 좀 더 심하면 심지어 정신병원으로 보내지기도 한다. 우리는 대부분 튀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의식을 가지고 성장하기 때문에 진정한 자신의 표현을 두려워 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자신의 꿈을 만들어 보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니 꿈을 이루는 사람이 적을 수밖에. 다양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한 단계 더 발전된 사회로 진입하는데 많은 시간과 돈을 낭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은 우리 인간이 만든 세상이다. 사소한 그 무엇조차도 그 어떤 이의 꿈으로 이루어졌다. 굳이 헨리포드나 에디슨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위대한 많은 것들은 우리가 말하는 '반항아'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학교는 분명 평균적인 사람을 양산해 내는데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꿈디자인>과 <꿈>의 차이는 행동의 차이다. 꿈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계획하고 기획하여 일련의 기준을 도출하여 행동으로 담아내는데 있다. 하지만 <꿈>은 계획하고 기획하여 멋진 프로세스를 만들어 내지만 행동이 뒷받침 되지 않다는 데 있다. 누구든지 꿈은 있다. <꿈>은 우연에 맡길 수 있지만, <꿈디자인>은 우연에 맡길 수가 없다. 또한 <꿈>은 우발적일수도 있다. 하지만 <꿈디자인>은 계획적이고 행동지향적이다. <꿈>은 로또복권처럼 요행이 따를 수도 있지만, <꿈디자인>은 요행이란 있을 수 없다. <꿈>은 자연스러움이지만 <꿈디자인>은 의도적이다. 따라서 자신의 꿈을 기획하고 통제하고 방향을 정하고 행동하는 전권이 자신에게 모두 부여되어 있다.
그림을 그릴 경우에도 자신의 강점과 현재의 상황 등을 고려하여 먼저 스케치하고 지우고, 방향을 잡고 지웠다 그렸다를 반복하여 그림이 완성된다. 당신의 꿈을 디자인 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기업의 경우를 보자. 기업에는 '사풍'이라는 것과 '기업문화'라는 것이 있다. 사풍이란 그 기업에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들의 총체를 말한다. 이에 반해 기업문화는 단기간에 의식적으로 어떤 목적을 위해 인위적인 것을 가미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꿈>은 사풍에 가깝고, <꿈디자인>은 기업문화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당신의 장단점, 특기, 강약점, 재능, 가치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꿈>을 계획하여 의식적인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꿈디자인>이다. 우리 인간은 머리는 명석하지만 그에 걸 맞는 실천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 역시 극복할 수 없는 난공불락은 아니다. 꿈이 있다면...
Dream design is for you!
나는 64년 초가을, 하늘로 용이 승천하는 어마어마한 어머니의 태몽으로 합천 해인사 인근 첩첩산골에서 태어난 물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물건이 만들어졌을 땐 우량품이었지만 얼마지 않아 흠집이 있는 불량품으로 전락했다. 태어난 지 몇 년 후 의사들이 '만성기관지확장증'이라고 낙인을 찍은 바람에 졸지에 만성지병을 앓게 된 셈이었다. 감기를 제때 치료하지 못해서 생겼고, 호흡이 조금 가빠진다는 것이 내가 아는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초우량품으로 거듭 태어났다. 꾸준한 걷기와 등산으로 관리하고 노력한 결과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앞뒤좌우의 높은 산과 집앞의 들판을 뛰어다녔다. 때로는 소 풀을 뜯기면서, 또 때로는 지게에 나무를 지고 다녔다. 당시 주위 산이며 들판은 나의 놀이터였다. 지금 보면 첩첩산중 답답한 산골마을이지만 당시에는 드넓은 곳이었다. 그 덕분(?)에 난 소위 유목민과 방랑자의 끼를 가졌던 것 같다. 걷기와 등산이 처음에는 싫었지만 틈나는데로 산과 들을 누볐다. 싫었던 그것이 어느 순간 좋아졌고 취미기 되었다. 이젠 취미 차원을 넘어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 놈의 방랑끼 덕분에 지금도 여행하기를 좋아한다. 나에게서 여행이란 주어진 일상에서 떠난다는 것을 말한다. 꼭 경치 좋은 관광지나 유적지를 가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다. 집 뒷산을 오르는 것도, 사무실 앞 한강을 산책하는 것도 나에게는 전부 여행이다. 여행만큼 마음을 넓게 해 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학교수업을 빼먹게 하고는 이곳 저곳 데리고 다닌다. 무엇이든 보여주고 싶어서다. 두 딸의 학교 담임선생님으로부터도 나는 현재 '이상한 아버지', '특별한 아버지'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낙인 찍혀 있다.
우리들 역시 어렸을 땐 호기심도 컸고 상상력도 풍부했다. 어렸을 땐 아는 것은 별로 없었지만 모든 것이 신기했고 배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철이 들면서부터 점점 고집이 세지고, 마음은 편협해진다. 행동반경은 줄어들고 호기심은 사라져 가고, 꿈은 점점 작아지고, 주변을 살펴볼 여유로운 마음마저 없어진다.
어느 조사에 의하면, 초등학교 1학년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과학자'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1년이 지나 2학년이 되었을 때 다시 꿈이 뭐냐고 물었더니 '대통령'이, 그리고 또 1년이 지나 3학년이 되었을 때는 '소방관'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비슷했다고 한다. 다시말해 대부분의 아이들이 꿈이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꿈은 분명 패션처럼 유행은 아닐텐데 왜 남들과 다른 꿈을 가지지 못하는 것일까?
왜 남들과 꿈이 같은 것일까?
우리는 혹시 남의 발자취만을 보고 남이 만들어 놓은 꿈의 결과만을 보고 자신의 꿈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요즘의 교육을 보면 지식습득에 초점을 둔 나머지 개성을 말살하려고 작정을 한 것 같다.
앞의 쥐가 뛰면 이유도 모른 채 전부 따라 뛰다가 결국 모두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 영화 '레밍(lemming:나그네쥐)처럼 너도 나도 대학에 보내고 싶어 한다. 다양성이 부족하다. 우리에게 다양성은 곧 반항아를 의미한다. 온통 획일화의 천국이다. 획일화가 될수록 개성은 없어진다. 개인은 없고 집단만 있다.
왠지 똑같은 것은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모두 각기 다른 자신의 역할이 있을텐데 그 역할이 서로 중복된다면 이보다 더 큰 낭비가 있을까? 우리는 공장에서 장난감 나오듯이 똑같이 찍혀 나오는 물건은 아닌데 말이다.
Sameness is a waste.
패션을 보라. 패션업계는 당신의 마음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감을 예리하게 파고 든다. 그들은 말한다. "이 옷을 사지 않으면 유행에 뒤떨어진다."고. 순진한 우리들은 이들의 말을 믿고 옷을 구입해서 입은 결과 너도나도 똑같아졌다. 다들 나름 신경을 쓰지만 거의 비슷한 모습들이다. 그 비슷한 모습에서 탈피하는 순간 또 '덜떨어진 사람'으로 분류된다.
이것이 싫어 우리는 그 무리에 동참한다. 개성은 머리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남들과 다른 옷을 입어보고 남들과 다른 행동을 해 보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모드니즘의 틀 속에 너무 오래 갇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부터 그 틀을 벗어나기가 어렵다고 단정을 한 탓에 그 어떤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고 한다.
때로 꿈은 상당히 비논리적이다. 한 걸음 물러나 찬찬히 재점검 해보라. 오늘 당신이 누구와 함께 했고, 무슨 일을 했고, 왜 그 일을 하는지를 생각해 보라. 우리가 생각하는 논리적이라는 말은 틀 안에서의 생각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당신의 장점과 강점에 집중하라. 분명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나치게 단점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고 그 단점을 보완하는데 불필요하게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잘 알려진 리브스의 <동물학교 이야기>를 보자.
어느 날, 동물들이 모여 학교를 세웠다. 그들은 '수영', '달리기', '오르기', '날기'의 교과 과정을 만들었다. 학생들은 모든 과정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만 했다.
먼저 오리는 '수영'을 잘했다.
그러나 나무오르기에는 겨우 통과 점수만 얻었고, 달리기 성적은 낙제였다. 그는 너무 느렸고 그래서 방과 후에 과외를 해야만 했다. 오리는 달리기 과외를 너무 하다 보니 물갈퀴가 다 닳았다. 그렇기 때문에 능숙한 수영 솜씨마저도 겨우 평균 점수만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전체 평균 성적은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오리 외에는 아무도 그것에 대해 염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토끼는 반에서 '달리기'를 가장 잘했다.
그러나 수영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물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에 얼마 후에는 다리에 신경통이 생겼다.
다람쥐는 '나무오르기'에는 가장 뛰어난 솜씨를 발휘하였지만 날기 수업에서는 항상 좌절했다. 그의 몸은 날기 과목에서 부족했던 착륙 연습을 하느라 지쳤기 때문에 달리기에서도 매우 낮은 성적을 얻게 되었다.
독수리는 문제아였다. '날기' 외에는 어떤 것도 하려 들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만 하기를 원했다. 독수리도 날기 이외에는 제대로 교육 과정을 이수하지 못했다. 모두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는데 노력한 결과 잘했던 것들까지 평균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당신의 단점을 보완하면 평균밖에 할 수가 없다.
따라서 단점보다는 장점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더 이상 당신의 꿈에 덕지덕지 화장을 하지 마라. 당신의 꿈은 당신 것이다. 화장 뒤의 가면을 벗고 꿈을 자신있게 생얼로 드러내 보라.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 보이는데 너무 힘쓰지는 말자.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 정말 즐겁고 재밌는 일을 찾아보라. 일이 아닌 놀이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라. 물론 지금 하는 일을 재미있게 하는 방법도 좋다.
work(일)과 play(놀이)는 철자가 하나도 맞는 것이 없다. 이는 일과 놀이는 반대라는 의미다. 일을 놀이처럼 할 수 있다면...
일을 놀이처럼 하려면 반드시 최고여야 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나 마음이 끌리는대로 해보라. 단지 성공, 돈 ,명예와 같은 동기에 휘둘리지 마라. 이보다는 창조, 성취, 만족 같은 내적 충실을 따르라.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일을 규정하지 말고 일 자체의 매력과 마음에 집중하라.
외적 경쟁보다는 내적 경쟁에 집중해 보라. 그러면 열정이 생길 것이다.
열정은 당신의 꿈을 향한 강력한 에너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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