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성지 봉하마을, 그 곳엔 지금...
너무 늦었다.
좀 더 일찍 다녀왔어야 했는데 서울에 와 생활하다보니 오늘에야 봉하마을에 다녀왔다.
특히 방학을 맞은 두 딸의 성화에 못 이겨 뙤약볕을 친구삼아 바보 노무현의 민주주의를 찾아 나섰다.
봉하마을은 행정구역상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마을을 일컫는다.
<봉하마을 앞 들판의 모습>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봉화산 봉수대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봉하마을'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인근 주민들도 잘 모르던 조용했던 봉하마을이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바로 대한민국의 전 대통령, 고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 귀향하여 거주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주요 작물로는 진영단감과 벼농사를 주로 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봉하마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그를 만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은 탓에 주변의 자연습지 하천인 화포천과 굴포천, 봉화산 등도 덩달아 새로운 관광지로 변모해 가고 있는 마을이다.
<봉하마을 앞 생태공원>
봉하마을 가는 길은 남해고속도로 진영 IC를 나와 진영방면으로 우회전하면 '노무현대통령생가'라는 이정표가 곳곳에서 길을 안내하고 있어 초행길이라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일요일 한낮의 진영 들판은 여느 시골처럼 푸른 벼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고, 길섶으로 간간히 들어오는 호박넝쿨과 오이밭, 고추밭을 지나자 봉화산 자락의 봉하마을이 나타났다.
진영 IC에서 봉하마을까지는 약 9km쯤 되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다.
하지만 봉하마을이 가까워질수록 차들은 서행을 하기 시작했고, 길가에는 인파들로 넘쳐났다.
봉하마을 약 1km전부터 길가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을 보면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봉하마을을 찾고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마을 앞에서는 경찰관들이 연신 호루라기를 불며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고, 사저 앞 도로가에는 노사모 회원들과 방문객들이 길가의 잡초들을 뽑는 등 주변 환경을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한낮의 뙤약볕 아래서 갑자기 자원봉사에 나선 사람들,
호미질을 한 번도 해 본적이 없어 보이는 중년 여성,
예고 없이 자원봉사에 나선 배낭을 멘 젊은 대학생,
햇볕에 웃통을 벗고 즉석 자원봉사에 나선 초등학생,
이들은 모두 급조된 자원봉사자들로 하나 같이 풀을 뽑고, 잡초를 제거하는 등 주면 환경정리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었다.
이쯤되고 보니 '이제 우리 국민들의 뇌리에서 봉하마을이 사라진 것은 아닐까' 하는 나의 좁은 생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마을을 한참 지나서야 겨우 주차를 하고 다시 마을입구로 돌아왔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가장 궁금하기도 했던, 여당 모 의원께서 아방궁이라고 불렀던 바보대통령의 '사저'였다.
<부엉이바위에서 내려다본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
사저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어 최대한 가까이서 겉만 훑어보긴 했지만, 어느 정도가 아방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상식으로는 절대 아방궁 수준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대통령까지 하신 분께서 뭐 하러 이 시골에까지 내려오셔서 힘든 길을 자처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을 뿐이었다.
행여 아직도 아방궁이라고 믿고 있거나 생각하는 국민들이 있다면 꼭 봉하마을에 가볼 것을 권하고 싶다.
직접 보고 말해도 늦지 않다.
사저를 본 다음, 사저에서 15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조그마한 비석 하나'를 보기 위해 사람들로 둘러 쌓여 있는 묘역으로 향했다.
조그마한 비석 하나가 세워진 49재도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났다.
휑한 들판,
모래바닥에 놓여 있는 조그마한 돌비석에는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여섯 글자만이 새겨져 있었고, 비석 앞에는 바보대통령의 생전의 뜻이 담긴 한 문장........................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바보들의 우상!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
다른 대통령의 묘소를 TV를 통해서만 봤지만, 바보대통령의 묘역은 겉으로 보기에는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 의미는 크게 다가왔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얼마전인 8월 5일 고 노무현 전대통령의 유해가 안장된 묘역과 그 주변을 국가보존 묘지로 지정한 바 있다.
지정하는 것에만 그칠것이 아니라 좀 더 잘 관리되고 보존될 수 있는 노력들이 필요해 보였다.
얼마 전 폭우 때는 묘소 앞까지 물이 넘쳐 많은 사람들이 긴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 모래들판 위, 내리 쬐는 태양과 무더위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묘역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 뿐이었다.
그래도 묘역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둘러서 있었고, 지금도 참배는 진행중이었다.
밀짚모자를 눌러 쓴 명계남씨가 직접 자세하게 묘역에 대해 설명을 해 주고 있었다.
묘역를 지나 마지막으로 봉화산 자락에 있는 그 바위, 가슴 아픈 그 곳, 바로 '부엉이바위'로 향했다.
<봉화산 산행 안내도, 현위치 오른쪽에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묘소에서 약 10분여를 오르자 부엉이바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부엉이바위를 오르는 길가엔 바보대통령의 상징인 노란색 추모리본이 끝없이 나부끼고 있었다.
부엉이 바위에 오르자 바위 정상은 평평한 곳에 이름 모를 묘 하나가 있었고, 바위에서 내려다 본 아래쪽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아보였다.
..........
..........
<부엉이바위를 오르는 길가의 노란 추모리본>
<부엉이바위 정상, 통제를 위해 하얀 끈으로 된 울타리는 이미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 아이스크림을 파는 상인의 모습>
바위에는 '남녀노소, 나이불문'의 많은 사람들이 바보 대통령의 숨결을 느껴보려고 오가고 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바위 위에 있다 보니 아주 위험해 보였다.
또 다른 사고의 우려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흰 끈으로 된 울타리가 설치되어 있긴 했지만 찢어져 제 구실을 못하는 상태였다.
물론 그 울타리를 뚫고 바위로 접근하는 것도 좋지 않은 일이지만 방문객들은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보고 싶은 순수한 마음뿐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울타리를 넘어 바위에 오르는 사람들을 탓하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하루 빨리 부엉이 바위 위에 추락방지용 안전펜스 같은 것이 설치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방문객들도 안전하게 현장에 접근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정말 지금 상태로 부엉이 바위에 접근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부엉이 바위에서는 사저와 묘소 그리고 마을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이 곳에서 그 날, 그 이른 새벽....
바보는 많은 고뇌와 번민 그리고 회환을 곱씹었을 것이다.
얼마나 원망했을까?
얼마나 자책했을까?
얼마나 망설였을까?
얼마나 아팠을까?..........를 상상해보며, 마음의 울렁거림을 뒤로하고 부엉이 바위에서 내려왔다.
국화꽃을 든 어린 소녀....
노란색 셔츠를 입은 가족들...
노란 리본을 든 할머니...
노간지 패션인 밀짚모자를 쓴 단체관광객들....
담배를 든 할아버지....
잠시나마 그들 속에 나의 두 딸과 나도 함께 있었다...............
<부엉이바위에서 내려다 본 사저와 묘역, 주차공간이 부족해 들판을 가로지른 농로길에도 차들이 들어서 있다>
<부엉이바위 아래 투신장소>
땀 흘리며 교통정리를 하고 있는 경찰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휴가철이 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봉하마을을 찾아온다"는....
휴가철을 맞아 모두들 산으로 계곡으로 피서를 가는데, 32도를 웃도는 한낮의 무더위도 봉하마을을 찾는 사람들에겐 장애물이 될 수 없었다.
2009.5.23일 이전의 모습으로 멈춰서 있는 듯한 봉하마을....
그늘도 계곡도 없는 봉하마을...
그 곳엔 지금, 무더위를 즐기려는 이상한 피서객들과 민주주의를 즐기려는 바보들의 행진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