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경영/꿈과 비전

꿈이란 보고 듣고 경험하는 데서 싹튼다

김부현(김중순) 2009. 12. 8. 13:58

"두려움이 문을 두드리기에 나가보니 막상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미국 격언

 

나를 기쁘게 하는 단어들이 있다.

바로 꿈, 설렘, 여행, 또는 추억과 같은 말들이다.

나를 더욱 가슴 설레게 하는 네 글자는 바로 일.상.탈.출.이다.

이들을 좋아하는 통에 가끔씩은 '현실도피니 역마살이니' 하는 말을 듣는다. 이 말을 들을 때는 좀 억울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나는 이런 나를 사랑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고 일주일간 열병에 빠졌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는 그 책의 전반부는 그리스에서, 중반부는 시칠리아에서 그리고 후반부는 로마를 여행하면서 썼다고 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일본이 참가하는 '2009 서울 국제도서전'을 앞두고 싸이월드 20~30대 이용자 22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52%가 '상실의 시대'를 가장 좋아하는 일본 소설로 꼽았다고 한다.

 

아무튼 소위 비행기를 타고 물 건너 갈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 주중에도 두 세 차례 가까운 서울 근교 산이나 동네 길을 걷는 편이다. 그 중 자주 가는 곳이 남산이다. 국립극장에서 출발하여 서울교통연구원까지 약 3.5킬로미터에 이르는 북측 순환로는 걷기로는 서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아름답고 고즈넉한 길이다. 또한 시각장애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안전한 산책로이기도 하다. 정말 걷기에 불편한 것들은 하나도 없다.

 

자동차는 물론이고 자전거도 없고 강아지도 없다. 있다면 두 발로 걷는 워커(walker)들 뿐이다. 따라서 남녀노소, 시각장애인 등 걷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인 산책로다. 산책로라기보다는 사색의 길이자 명상의 길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때로는 고요한 숲길을 때로는 치열한 도심을 교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남산은 (병원)이다. 지친 몸과 마음을 치료해 주는...

 

이쯤되면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이름 모를 곳에서 한 달쯤 몸과 마음이 가는대로 풀어헤쳐 보는 것...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꿈꾸는 로망이 아닐까? 나에게 여행은 여행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어딜 가서 사진을 몇 장 찍어 추억으로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상을 곧추세우고 다시 한 번 '해보자'라는 다짐과 나 자신을 다시 한 번 뒤흔들 수 있는 계기만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늘 마음은 왼쪽으로 가라고 하는데 몸은 오른쪽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해보고 싶은 일들을 가슴에 품은 채 죽는 것만큼 억울한 일이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쉽게 날지 못한다.

 

시도 때도 없이 배낭을 메는 나에게 친구들은 한편으로는 부러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는지 '정신 차려라'고 말을 한다. 그들은 내가 여유가 있고 돈이 많아서 그러는 줄 알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다만 그들과 나는 가치의 우선순위가 다를 뿐이다. 그들은 돈을 모아 차를 사고 아파트 평수를 늘리지만 나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오히려 그들이 더 부럽다. 떠남은 떠나기 전에는 설레임을 가져다주고, 떠난 동안에는 즐거움을, 돌아온 후에는 추억이라는 선물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배낭을 메고 나선다. 신이 내게 주신 달란트는 역마살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말이다.

 

금이 간 항아리가 있었다.

주인은 금이 간 주제에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항아리를 구박하기 시작했다. 물을 길어 와도 절반을 길바닥에 흘려버리는 항아리 따위는 쓸모없다며 그 항아리를 내다버렸다. 금이 갔으니 자신의 인생은 이제 끝났다는 생각에 항아리는 마냥 울었다. 그때 동네 아이들이 버려진 항아리를 가지고 강에서 물을 길어다 물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물이 많이 샜지만 아이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항아리는 자신을 아껴주는 아이들이 고마웠다.

어느 날 옛 주인이 새 항아리를 들고 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예전에 그토록 자신을 예뻐해 주던 주인이었지만 야속한 마음에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때 새 항아리가 "금이 간 주제에 지도 항아리라고"라고 비웃으며 금이 간 항아리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자신이 정말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에 항아리는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도망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꽃들이 항아리에게 말했다.

"항아리야, 넌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야. 여기 피어 있는 꽃들을 보렴. 이 꽃과 풀들은 다 네가 흘리고 간 물을 먹고 자란 거란다. 네가 없었다면 우리는 죽었을 거야. 정말 고마워."

항아리는 놀라 뒤를 돌아봤다. 놀랍게도 허허벌판이었던 길가에 색색의 꽃들이 가득 피어 있었다.

 

능력이 조금 부족하다고, 학벌이 조금 딸린다고, 알콜 중독자라고, 어떤 일에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거나 또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다. 누구든 자신의 역할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비가 IMF이후 처음 감소했다는 뉴스가 요란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은 나라는 유태인과 우리나라이다. 미국 명문대에 다니는 학생들의 부모 중 어머니가 다른 직업 없이 오직 자녀 교육에 매달리는 것도 유태인과 우리나라이다. 2009.12.6. KBS1TV <KBS 스페셜>은 ‘세계탐구기획-유태인’을 방송했다. 연출을 맡은 프로듀서는 "올해 3월부터 촬영을 시작했고, 기획 단계까지 포함하면 약 1년간 준비한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유태인은 미국 인구의 2%에 불과하지만 하버드대 재학생은 30%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계는 3.4%에 불과하다. 또한 지금까지 유태인의 노벨상 수상자는 아인슈타인을 선두로 하여 무려 176명이라고 한다. 1300백만 명에 불과한 유태인 인구를 감안하면 이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100배 이상 높은 비율이라고 한다. 그 원동력은 바로 그들만의 교육시스템이다. 유태인의 교육을 대표하는 곳이 있다. 바로 그들의 전통 도서관인 '예시바'이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조용히 홀로 공부하기보다는 맞은편에 있는 학우와 열띤 토론을 벌이며 쌍방향 학습을 한다. 원래 이 예시바는 탈무드를 공부하던 곳에서 유래한 공간이다. 분위기를 보면 모든 학생들이 두세 명씩 모여 앉아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엄숙, 조용히'라는 우리나라 도서관 입구의 글귀와는 대조를 이룬다.

 

세계 인구의 0.2% 밖에 안 되는 이들이 세계 억만장자의 30%, 노벨상 수상자의 20%, 미국 아이비리그 학생의 25%를 차지하며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혼자보다는 두 사람이 함께 공부하는 것이, 둘 보다는 셋이 공부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토론과 대화의 교육시스템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아이들은 하루 8시간 정도는 꼭 자게 한다고. 그 이유는 밤샘을 하면 다음날 뇌의 활성화가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혼자 머리 싸매고 밤샘하며 벼락치기 공부에 익숙한 우리와 대비된다.

 

이제 우리나라의 높은 교육열을 더 생산적인 방향으로 재정립해야 할 시점이다. 높은 교육열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 맞는 인재가 배출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화와 토론을 통한 협동이 아닌 상대를 무너뜨려야 하는 치열한 경쟁만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쟁을 부르는 교육시스템 하에서 배웠던 나를 포함한 우리 어른들의 사고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사회구성원 전체가 내가 배운 방식을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가하려고 하는 한 노벨상은 남의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가장 훌륭한 교육이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게 해주고 그것을 향해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18세기와 19세기 영국의 귀족들은 자녀를 가르칠 때 교육의 마지막 단계로 '그랜드 투어' 이른바 '유럽대륙 순회 여행'을 보냈다고 한다. 가정교사와 함께 1~2년간 외국을 여행하면서 외국어도 배우고 다른 나라의 문화를 접하게 하여 성숙한 사회인으로 키우기 위해서였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실시하고 있는 수학여행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그랜드 투어는 우리의 수학여행처럼 편안하게 차를 타고 사진 찍고 스치듯 지나는 그런 여행이 아니었다. 곳곳에서 진흙탕을 만나고 파리 떼와 싸워야 했으며 입맛에 맞지 않더라도 현지 음식을 먹어야 했다. 여행의 백미는 험준한 알프스 산맥을 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용기와 다양한 경험을 쌓아 집으로 돌아온다.

 

직접 경험하는 것만큼 좋은 교육은 없다.

직접 보는 것만큼 효율적인 교육은 없다.

직접 경험하고 본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학교와 학원 그리고 집만을 오가는 아이들에게 큰 꿈을 가져라고 하고 글로벌 인재가 되라고 하지는 않는지.

보지 못한 것을 상상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꿈이란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에서부터 싹트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