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경영/꿈과 비전

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

김부현(김중순) 2009. 12. 21. 21:37

그간 우리에게 가장 큰 피해를 끼친 말은 바로 '지금껏 항상 그렇게 살아왔어'라는 말이다.

-그레이스 호퍼

 

나른한 오후, 손님도 없는 한산한 커피숍 안에서 한 남자가 조용히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무료한 생활에 지친 그 남자는 바로 커피숍의 주인이다. 텔레비전을 통해 책을 소개해 주는 프로그램을 보던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나도 글을 써보면 어떨까?"

그는 바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가 바로 우리나라 20~30대가 가장 훌륭한 소설로 뽑은 <상실의 시대>를 쓴 무라카미 하루키다. 반면 하루하루의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단지 빵을 사기 위해 글을 쓴 사람은 세익스피어다. 우리는 대부분 어떤 분야에서 자신의 꿈을 이룬 사람들을 보면서, '분명 저 사람은 나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을 거야.'라고 생각한다. 물론 좋아해서 그 일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일이라도 혹시 남다른 재능을 보여줄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정말 인생은 아무도 모르는 거다.

 

일기를 쓰거나 메모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은 자발적이기보다는 타의적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메모하는 습관이 성공의 밑거름이 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메모를 통해 지난 시간들을 반성하고 분석하여 새로운 변화를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메모를 하면 어느 시점에서든 삶을 중간점검을 해 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우리는 자동차 정비나 건강검진은 정기적으로 받는다. 하지만 삶에 대한 중간점검은 얼마나 자주 하는지 묻고 싶다. 이를 통해 지난 시간들을 정리해볼 수 있고, 미래의 삶에 대한 방향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몇 해 전, 우연히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도 책을 써보자'라는 단순함에서 글을 끼적이기 시작했다. 당시 모두들 "모르면 용감해진다"는 말로 나의 기를 죽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해낼 수 없을 것이라는 그들의 기죽이기 전략 덕분에 난 더 큰 용기와 도전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꿈을 디자인하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이솝우화에 보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이야기'가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가진 남자가 있었다. 그 거위는 한 달에 한 개씩 황금알을 낳았다. 황금알 덕분에 부자가 됐지만 욕심이 생긴 남자는 거위의 배를 가르면 더 많은 황금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거위의 배를 갈랐다. 거위의 뱃속은 보통의 거위와 똑같은 내장밖에 없었다. 남자는 더는 황금알을 얻을 수 없었다. 바로 거위가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나 역시 너무 단기적인 결과물에 집착한 나머지 처음에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설령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잃었다고 해서 주저앉을 필요는 없다. 이것을 계기로 오히려 '마음 내려놓기'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바쁘게 하는 것만이 빨리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류시화 시인이 직접 체험한 인도여행기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희한한 사람들과 동물들을 가득 태운 버스가 코딱지만한 마을에 도착했다. 멈춰 선 버스는 도무지 떠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검문을 받는 것도 아니고, 차가 고장 난 것도 아닌데 한 시간이 넘도록 그냥 서 있다. 그 틈바구니에 우리나라 남자 한 명이 타고 있었다. 그는 찌는 날씨에 버스에 갇혀 인내심을 잃고 화가 나서 큰 소리로 물었다.

"버스가 한 시간이 넘도록 서 있는데 당신들은 바보처럼 기다리기만 할 겁니까? 이유가 뭔지 알아봐야죠."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대답했다.

"운전사가 없으니까요."

화를 낸 사람도 그것쯤은 알고 있었기에 더욱 따져 물었다.

"그렇다면 운전사가 어디로 갔는지 밝혀내야 할 게 아닙니까? 갑자기 배탈이 나서 쓰러졌는지, 아니면 옛날 동창이라도 만난 겁니까?"

그때 그의 화를 더욱 돋우는 대답이 버스 앞쪽에서 흘러 나왔다.

"맞아요. 운전사가 친구를 만났어요. 둘이서 저쪽 찻집으로 갔어요."

물론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인도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에 승객들을 가둬놓고 친구와 회포를 풀 수 있는 나라. 더욱 놀라운 사실은 아무런 불평 없이 '노 프라블럼'하면서 무한정 기다리는 사람들의 태도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지만 우리의 상식으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문화적 충격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옳고 그들이 틀렸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빙산의 일각이지만 이런 것이 바로 마음 내려놓기가 아닐까. 가난 속에서도 그들만이 누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는 앞만 보고 달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음 내려놓기는 욕심을 버릴 때 가능하다. 정말 희한하게도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한 번 빠져들면 좀처럼 헤어 나오기가 어렵다. 하지만 무조건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하느님이 지네를 만들 때 깜박 잊고 다리를 만들지 않았다. 대신 지네는 뱀처럼 빠르게 어디든 기어오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네는 산양이나 사슴 등 네 발 달린 동물들이 자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뛰어가는 것을 보고 몹시 기분이 상했다. 질투심 강한 지네는 "흥! 다리가 많으니까 당연히 더 바를 수밖에."라고 말했다. 그래서 지네는 하느님에게 "하느님! 저는 다른 동물보다 더 많은 다리를 갖고 싶습니다."라고 기도했다. 하느님은 지네의 소원을 들어 주기로 했다.

 

하느님은 지네 앞에 여러 종류의 다리를 늘어 놓으며 원하는 것을 고르라고 말했다. 지네는 생각할 것도 없이 잡히는 대로 다리를 집어 자기 몸에 붙이기 시작했다. 머리에서 꼬리까지 다리를 붙이고 더 이상 붙일 곳이 없자 그때서야 아쉬운 듯 손을 멈추었다. 지네는 온통 다리로 뒤덮힌 자신의 몸을 보고 매우 만족스러웠다. "이제 나는 화살처럼 빠르게 날아갈 수 있을 거야."

그러나 막 뛰어가려는 순간 지네는 수많은 자기 발을 어떻게 조절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수십, 수백 개의 다리들이 서로 부딪치며 제각기 따로 움직였다. 지네는 온 정신을 집중해야 비로소 수많은 다리들이 서로 뒤엉키지 않고 똑바로 걸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지네는 예전보다 더 느리게 걸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