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경영/변화-혁신

27년 감옥에서의 희망(넬슨 만델라)

김부현(김중순) 2010. 2. 18. 09:04

넬슨 만델라는 D급 죄수였다. 최악의 정치범으로 분류된 그에게 면회는 6개월에 한번만 허용됐고 편지를 주고 받는 것도 극도로 통제되었다. 철저히 외부와 단절된 생활 속에서 지독한 고독과의 싸움이 길게 느껴졌다.

그가 독방에 갇힌 지 4년째 되던 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듬해 큰아들마저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장례식에도 참석할 수 없었던 만델라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가족 역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내와 딸들은 영문도 모른 채 흑인 거주 지역으로 끌려갔고 둘째 딸은 우울증에 시달렸다. 이 끔찍한 무력감 앞에서 그는 얼마나 더 견뎌야 하는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중 몇 년 동안이나 못 보았던 맏딸이 찾아왔다.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힘들었지만 그는 유난히 딸이 그리웠다. 면회실에서 만난 딸의 품에는 갓난아이가 안겨 있었다. 당시에는 할아버지가 손자의 이름을 지어주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것을 위해서 만델라를 찾아온 것이다.

"아버지, 제 딸을 위한 이름을 생각하셨나요? 지난번에 편지로 말씀드렸잖아요."

만델라는 눈물을 흘리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주머니 속에서 꼬깃꼬깃한 종이를 꺼냈다. 그 안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아즈위(Azwie : 희망)"

 

넬슨 만델라는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다 1990년 2월 마침내 27년의 수감생활을 끝내고 자유를 얻었다. 출감하는 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나이 일흔하나에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것 같다. 감옥에서 보낸 1만일이 이제 끝났다." 일흔을 훨씬 넘긴 만델라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46년간 아파르트헤이트로 인해 초토화된 나라에 다인종을 위한 미래를 건설해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꿈은 나이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일흔이 넘은 나이 절체절명의 절망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았던 그의 용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금 힘들다는 이유로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세상에 지름길은 없다.

고통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지금 비록 조금 힘들지만 미래를 이야기하고 꿈과 희망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