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무력과 역량
군주국의 영토를 획득하는 방법에는 타인의 무력을 이용하는 경우와 자신의 무력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으며, 역량(virtu)에 의한 경우와 운명(fortuna)에 의한 경우가 있다. <군주론>1장
인간에 대한 지배권을 가졌거나 가지고 있는 모든 국가(stato)나 통치체(dominio)는 공화국 아니면 군주국이다. 군주론에서는 군주국에 대한 통치체제를 주로 다루고 있다.
<국가의 통치체제>
구분
| 유형 | 특징 | 주권 | 사례 |
공화국 | 민주공화국 | 권력분립, 자유민주주의 | 국민 |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
전제공화국 | 중앙집권적, 절대주의적 세계관 | 단일정당 | 나치스(Nazis)의 독일 및 동유럽의 인민 민주주의 국가 | |
군주국 | 신생군주국 | 새로운 국가 | 군주 | 프란체스코 스포르차가 통치하는 밀라노공국 |
세습군주국 | 통치자가 오랫동안 같은 가문에 의해 세습 | 스페인 왕 페르난도가 통치한 나폴리왕국 | ||
복합군주국 | 종래에 있던 군주국에 수족처럼 병합 | 그리스에 대한 투르크의 통치 |
군주론의 두 가지 키워드, 비르투와 포르투나
개인적 고난과 사회적 비전으로 무장된 오바마는 잘 준비된 상품이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으로 대별되는 미국 발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면 그는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절체절명의 순간이 왔을 때 준비된 사람이었기에 국가의 부름을 받을 수 있었다. 이렇듯 한 사람의 준비는 역사를 바꿀 수 있다. 준비가 비르투(능력)라면, 국가의 부름을 받은 것은 포르투나(행운)이다.
삶은 의지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비르투만 있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비르투가 있어도 포르투나가 받쳐 주지 않으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겨야 한다.
<군주론>의 모델인 체사레 보르자 외에 군주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물은 시라쿠사의 군주 아가토클레스이다. 두 사람 모두 잔혹무비의 폭력을 효과적이고도 경제적으로 사용했지만, 두 사람의 차이는 극과 극이다. 보르자는 그의 행위가 비록 권력추구의 욕망에 의해 추동됐다 하더라도 공익의 증진을 가져온 반면, 아가토클레스는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든 잔인한 폭군에 불과했다. 전자가 비르투를 가진 통치자라면, 후자는 대량학살의 범죄자 이상이 아니다.
<군주론>에서 강조하는 핵심적인 두 단어는 ‘비르투’와 ‘포르투나’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국가를 효율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 둘의 조화를 강조한다. 기업으로 치면 경쟁력에 기업문화와 철학을 더한 인문학적 접근이다.
핵심요소
| 구 분 | 세부내용 |
비르투(Virtu, 능력) | 내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 | 내부적 요소 : 능력, 재능, 도전정신, 열정 |
포르투나(Fortuna, 운) |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 | 외부적 요소 : 외부환경, 상황 |
고스톱을 칠 때, 어떤 패가 들어오는가는 포르투나의 차원이다. 그러나 그 패를 어떻게 적절하게 활용할 것인가는 비르투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불리한 패를 받은 것을 탓하기보다는 그 패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전략을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군주론>에서 말하는 ‘영토’의 개념을 국가가 아닌 기업이나 개인의 범주로 생각해보면, 기업의 경우 시장점유율이나 경쟁력 등이 될 것이고, 개인의 경우 능력이나 리더십이다. 하지만 이제 시장점유율이란 용어의 사용개념이 달라지고 있고 중요성도 떨어지고 있다. 그것은 대량생산체제 하에서는 아주 유용한 개념이었다. 이제는 그에 더해 수익성이나 가치, 문화나 철학이 더 중요하다.
지나친 무력은 운명을 앞당긴다
‘병법의 경전‘으로 불리는 <손자병법>의 가장 큰 가르침은 비겁하게도 가급적 싸우지 마라는 것이다. 전쟁에 관한 전술과 전략을 총망라했지만 오히려 될 수 있으면 전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의 저자 강상구는 손자병법을 ’싸움의 기술이 아니라 싸움을 피하는 비겁의 철학이자 공존의 철학‘이라고 말한다. 피를 흘리지 않고 이기는 승리를 가장 값진 승리라는 것이다. 싸움의 목적은 피를 흘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땅을 빼앗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 역시 가급적 무력 사용을 자제하라고 했다. 하지만 싸움을 시작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끝장을 내라고 한다.
전쟁은 연습이 아니다.
스포츠도 아니다.
패자부활전도 없다.
패하면 끝이다.
따라서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다.
승리가 참이고 패하면 거짓이다.
게다가 손자는 이기는 싸움만 하라고 조언한다. 전쟁의 대부분은 싸우기 전에 결정된다. 따라서 군주는 군대를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성인이 천하를 다스리면 백성이 편안하게 생업에 종사하며 살기 때문에 굳이 무력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이를 일컬어 "나라를 잘 다스리는 군주는 군대를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순왕(舜王)은 형법을 수정하고 고도에게 교도소 책임을 맡겼지만, 백성들이 법을 어기지 않아 형법이 필요 없었다. 이를 두고 `용병술이 뛰어난 군주는 군대를 포진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왕(禑王)이 묘족을 토벌할 때 순은 무용용 창과 방패, 그리고 깃털부채만으로도 묘족을 귀순시켰다. 이를 일컬어 `군대를 포진하는데 뛰어난 군주는 작전을 펼치지 않았다`고 한다. "실패의 교훈을 받아들이는데 뛰어난 군주는 패배해도 멸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전투를 자주하고 승리를 거듭하는 군주는 망할 우려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에 대해 손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전쟁이 거듭되면 백성들의 생활이 피폐해 진다"
잦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듭하면 군주는 교만해 지기 쉽다. 교만한 군주가 생활고에 시달리는 백성을 통치한 것, 이것이 바로 오나라가 멸망한 원인이다. "전쟁에서 다섯 번 승리한 나라는 화를 당하고, 네 번 승리한 나라는 폐해를 겪으며, 세 번 승리한 나라는 패권을 다투고, 두 번 승리한 나라는 왕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으며, 한번 승리한 나라는 제왕의 자리를 차지 할 수 있다. 승리한 횟수가 많아 천하를 얻은 나라는 드물지만, 망한 나라는 부지기수다." 잦은 전투에서 패배를 거듭하면 당연히 국운이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많이 이길수록 오히려 더 위험해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전쟁은 이기는 쪽도 피를 흘리고 막대한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행운(行運)은 비르투와 포르투나의 결합체다
인생사에 과연 행운은 존재할까? 많은 사람들이 행운을 그저 단순한 운(lucky)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노력하지 않았는데 대한 결과물을 총칭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행운(behavior, 行運)은 행동하는 사람에게 온다. 감나무 쳐다보고 입 벌리고 있는 격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유난히 하는 일마다 술술 잘 풀리는 사람들이 있다. 별로 열심히 노력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쉽게 기회를 잡아 매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어떤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일까? 그들이 행운을 창조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행운은 결단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행운은 준비와 행동의 결과물이다. 행운은 그것을 준비하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에게 더 친절하다. 복권에 당첨되길 바란다면 우선 복권부터 사야 하는 것처럼, 행운을 원한다면 지금 당장 행운을 부르는 비밀을 실천하라. 그 비밀은 행동하는 것이다. 당나라 시인이자 사상가였던 한유는 <도를 논함>이란 글에서 ‘천(天)과 인(人)이 교합해야 비로소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한 바 있다. 여기서 ‘천’이란 시대와 환경을 가리키는데 그 의미를 기회로까지 확장해서 생각할 수 있다.
<행운이 항상 따르는 사람들의 7가지 비밀>에서는 행운을 불러오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열심히 일해서 노력에 대한 대가를 얻는 것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언젠가 행운이 자기 앞에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안타깝게도 이 두 가지 방법으로 꿈을 이룰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꿈을 이루는 세 번째 방법이 있다. 행운이 자신을 따르도록 처신하고 행동하는 것, 바로 '행운 습관'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행운 습관'이란 바로 남들이 나를 도와주고 싶게끔 만드는 작은 행동과 습관의 모음을 말한다.”
금세기 최고 경영자 잭 웰치는 제너럴 일렉트릭(GE)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일구어 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의 엄청난 성공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뭔가 대단하고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는 어린 시절, 지독한 말더듬이였으며 친구와 대화도 나눌 수 없을 만큼 자신감이 없는 학생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시절에는 아이스하키 선수 생활을 했는데 시합에서 패배한 뒤 좌절감을 견디지 못해 하키 스틱을 던지고 머리를 부딪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이런 웰치에게 희망을 준 사람은 바로 어머니였다. 그의 어머니는 패배에 따른 절망감을 극복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쳤고 아들이 실패를 극복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의 말이다.
“성공은 미리 설정한, 가치 있는 자신의 목표를 점진적으로 실현하는 과정입니다. 당신이 마음속에 그린 것을 생생하게 상상하고 간절히 바라며 열의를 다해 행동한다면 그것이 무슨 일이든 반드시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행운은 기적도 우연도 아니다. 환경과 기회와 능력이 결합될 때 가능하다.
‘배부른 돼지가 될래,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될래!’
보릿고개를 넘나들던 중학교 시절, 국어선생님의 이런 질문은 너무 가혹한 형벌이었다. 배부른 돼지가 되겠다고 목구멍까지 말이 나오다가도 막상 내 차례가 되면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소크라테스하면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것밖에 생각나는 것이 없었던 시절 ‘밥이냐, 정신이냐’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였는지도 모른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는 존재할 수 있지만 밥 굶는 소크라테스는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이 밥을 얻어 육체를 보전하는 것은 삶의 필요조건이고, 밥을 해결한 후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삶의 충분조건이다.”라는 말은 명쾌하다. 대부분 충분조건보다 필요조건이 더 긴박하고 절실하다. 밥 먹는 소크라테스는 정신을 말할 수 있지만 밥 굶는 소크라테스에게는 정신은 존재할 수 없다. 철종 2년에 동학에 입문하여 최제우에 이어 제 2세 교주가 되었던 최시형 선생도 “밥 한 그릇에 세상만사가 다 들어 있다.”고 했다.
사마천의 <화식열전(貨殖列傳)>은 사기열전 69번째 글이다. 춘추전국시대와 한나라 초기 무제때까지의 부자들에 관한 기록이다. 즉 부자가 되기 위한 비법서다. 여기에도 “창고가 차야 예절을 차리고, 먹고 입을 것이 넉넉해야 부끄러움을 안다. 물질이 넉넉해야 예의가 있고, 군자도 부유해야 덕을 행한다.”는 말이 있다.
밥 굶는 병사에게는 아무리 훌륭한 전술도 무용지물이다. 밥 굶는 사람에게 도덕은 허무맹랑한 것이다. 이제 인문학이 주목을 받고 있다. 늦은 감은 있지만 다행이다. 그동안 경제논리에 휩싸여 그 누구도 인문학의 중요성을 함부로 이야기 하지 못했다. 밥이 세상을 좌지우지 하던 산업화 시대에 도덕과 철학, 인문학을 이야기하는 것은 지탄받는 일이었고 '할 일 없는'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받기가 일쑤였다. 세계 제일의 속성산업화를 거치면서 경제가 필요조건이었고 인문은 충분조건이었다.
이제 배가 부르니까 사람을 찾고 정신을 가다듬고 철학을 이야기하고 인문학을 이야기한다. 먹고 살만 하니까 이제 소크라테스도 눈에 들어오고 군주론도 읽는다. 밥을 못 먹는 데는 백약이 무효다. 밥은 밥 그 자체가 아니다. 목숨이자 생명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은 그나마 양반 축에 속한다. 사람을 죽이고 도둑질을 하는 것도 결국 밥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도 “백성들에게 밥을 굶게 하는 군주는 반드시 파멸한다.”고 했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이익이 나지 않는 기업은 망한다. 이익이 나지 않는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천하가 화목한 것은 모두 이익이 찾아오기 때문이고, 천하가 어지러운 것은 이익이 떠나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세습군주국은 신생국가보다 훨씬 더 용이하게 보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세습군주국의 경우에는 선조의 기존 질서를 바꾸지 않으면서 불의의 사태에 적절히 대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습 군주는 어지간히 근면하기만 하면, 어떤 의외의 아주 강력한 세력이 출현하여 그에게서 나라를 빼앗지 않는 한, 그의 통치는 항상 안정될 것이다. <군주론>2장
두꺼운 낯짝과 시커먼 마음, 후흑학의 패러독스
자연계에서 덩치 큰 공룡이 가장 오래 살아남았던 것처럼 현실에서도 덩치 큰 기업들이 오래 살아남을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덩치가 크다는 것은 곧 대차대조표상의 자산이 많다는 의미다. 하지만 용기를 내자. 덩치가 클수록 오래 간다는 기업법칙이 삐걱거리고 있다. 덩치가 클수록 기존의 성공방식을 좀처럼 버리려 하지 않는다. 결국 외부의 변화와 타인의 힘에 의해 망한다. 대차대조표라는 하드웨어적 자산만으로는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되었다.
외형적인 것에 집중했던 기존의 경영패러다임이 이제는 보이지 않는 것이 큰 소리 치는 패러다임으로 급속히 바뀌고 있다. 대차대조표라는 하드웨어에 문화, 제도, 시스템과 같은 소프트웨어가 필요해졌다. 과거에는 대차대조표가 기업생존의 필요조건이었다면 이제 소프트웨어적 자산이 필요조건이 되었다.
아무리 설비와 자산 같은 하드웨어가 많아도 소프트웨어가 부족하다면 영속성을 담보하기 어렵게 되었다. 소프트웨어의 함정은 창업자의 2세, 3세들에게서 자주 나타난다. 창업자가 자산을 물려줄 수는 있지만 정신을 물려줄 수는 없다. 자주 거론되는 기업이 1990대 우리나라 유통산업의 한 획을 그은 유통업계의 기린아 ‘뉴코아’다. 창업주가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켰지만 1인 지배적 경영으로 규모와 기술 습득을 등한시한 채 확장을 계속하다 파산했다. 창업자로부터 대차대조표상의 설비와 자산 같은 외형만 물려받은 2세들은 소프트웨어의 부재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후흑학’(厚黑學)의 창시자 리쭝우(李宗吾)는 “탁상공론적인 도덕적 명분론에 매몰되어 중국이 서구 열강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의 말에 일견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도덕보다 무력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회풍자가였던 리쭝우가 말하는 후흑학의 백미는 결국 인의(仁義)와 정의(正義)를 내세우는 정치인들의 내면을 꿰뚫었다는 데 있다. 겉으로는 선한 척 하지만 통치자 대부분의 이면에는 ‘두꺼운 낯(厚)과 시커먼 마음(黑)’이 자리 잡았기에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한마디로 지고지순하거나 이상적인 목표에만 집착하는 순진무구(純眞無垢) 형으로는 권력을 잡기 어렵다는 것이다. 후흑학은 오늘날의 후안무치(厚顔無恥)란 말과 상통한다. 자신 스스로 잘못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두꺼운 낯과 부끄러워하지 않는 마음으로 끝까지 우겨야 권좌에 오르고 부귀도 얻을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게 리쭝우가 이야기하는 후흑학의 ‘패러독스’다. 후흑학은 결국 <군주론>과 닮았다.
타인이 강력해지도록 도움을 준 자는 자멸을 자초한다. 타인의 세력은 도움을 주는 자의 술책이나 힘을 통해서 커지는데, 이 두 가지는 도움을 받아 강력해진 자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군주론>3장
이탈리아에서 교회와 스페인 왕 페르난도 2세의 강대한 권력의 힘은 프랑스 루이 12세에 의해 초래 되었고, 그들에 의해 이탈리아에서의 프랑스 왕의 힘은 급격히 붕괴되고 말았다. 프랑스 왕은 나폴리왕국을 이탈리아에서 분할함으로써 나라를 잃고 만다. 루이 12세의 몰락은 다음의 다섯 가지 실수 때문이다.
첫째, 약소국가들을 파멸 시킨 것
둘째, 이탈리아에서 이미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알렉산더 6세의 세력을 강화시켜 준 것
셋째, 이탈리아에 강력한 외세 즉 페르난도 2세를 끌어 들인 것
넷째, 본인이 직접 거주하며 통치 하지 않는 것
다섯째, 식민지를 건설하지 않은 것
다른 사람의 성공을 도와주지 마라
오늘날 국제정치학의 시작은 비엔나 회의 때부터다. 국제정치에서의 핵심 개념은 ‘세력 균형을 통한 현상유지’였다. 새로운 강자가 출현할 징조가 보이면 여러 나라들이 힘을 합쳐 강국을 견제하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다른 나라를 강하게 하는데 도움을 준 국가는 결국 자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과거에 비해 외형상으로는 힘의 시대가 아니라고 하지만 여전히 군사력은 경제력과 더불어 21세기에도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라는 오래된 성공방정식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기업 역시 자신의 힘을 키우기 위해 다른 기업들과 공존공생을 도모한다. 바로 전략적 제휴다. 전략적 제휴를 통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는 것이 중요하지만 전략적 제휴 역시 경쟁우위를 확보하여 갑의 위치를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
춘추시대, 양쯔강 하류에 오국과 월국이 맞닿아 있었다.
그들은 원래부터 매우 적대적인 상태인데다가 그들 바로 북쪽에 위치한 초국이 오국이 자신들의 수도를 정복하고 그들을 거의 멸망시킬 뻔한 일들 등 때문에 강국이 자신들의 바로 밑에 있는 것을 꺼려 월국에게 오국을 치라고 사주한 덕분에 그들은 항상 전쟁을 벌였다. 그러던 중, 월왕 구천이 병법의 대가인 손무가 오를 떠나고, 오왕 합려가 주색에 빠진 틈을 이용해 오를 습격할 계획을 세우고, 반격해 온 오왕 합려와 세자를 죽이고 오에 막대한 손실을 입힌 사태가 발발했다.
둘째 왕자 부차는 마지막 오왕이 되어 그날의 치욕을 갚기 위하여 매일 장작더미 위에서 자며 부하들 더러 인사 대신에 구천에게 원수 갚을 것을 각인시키도록 했다. 그렇게 오자서 등의 도움으로 수년간 복수를 다짐하고 부국강병을 이룬 끝에, 오나라는 월군을 몰살시키고 월왕 구천을 생포해 오국으로 압송, 합려의 묘지기 일을 보고 왕후와 함께 삭발시키는 등 치욕을 주고, 월나라를 철저히 파괴하고 돌아갔다.
그 수 년 후, 구천은 오자서가 자신의 복수 의지를 알아채고 자신을 죽이려는 것을 부차의 신임을 얻어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고, 초나라를 경유해 월나라로 돌아가서 복수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후, 구천은 곰의 쓸개를 핥으면서 복수를 다짐하고, 밖으로는 부차에게 경국지색이라고도 불리는 서시를 보내고, 온갖 진귀한 조공품이며 군대를 지원해 주는 등 진실한 신하로 보여서 20년을 기다린 끝에 부차가 제와 초 양강을 굴복시키고 마침 또 다른 중원의 강국 진(晋)을 굴복시키고 천자의 자리에 오르려는 틈을 타 오국을 기습, 라오허 산에서 화공과 수전의 대승으로 오나라를 패배시켰다. 여기서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성어가 탄생했다. 꺼진 불도 다시 보는 혜안이 필요하다.
이를 기업에 적용시켜 보면, 마키아벨리의 기본 생각은 경쟁 기업들에 대해 맞춤식 전략을 수립하여 차별적으로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나보다 약한 경쟁사는 보호하라고 말한다. 동시에 나와 비슷한 경쟁자가 다른 경쟁사를 침범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서로 힘을 합쳐 진입장벽을 높여 새로운 경쟁 기업의 출현을 막기 위한 전략이다. 대부분 강한 기업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약한 기업을 망하게 하는 일반적인 기업경영과는 대비되는 가르침이다. 마키아벨리는 경쟁자 없이 독과점을 형성하고 있는 기업은 승자의 저주에 빠져 공멸한다는 것이다. 조직이나 개인이나 경쟁자 없이는 발전이 없다. 독점의 최대 약점은 유연성이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할 필요가 없다.
1이 99를 조종하는 시대, 빅 브라더스의 등장
어린 시절 우리는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친 만화책과 악당 거인을 물리친 만화영화를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곤 했다. 어린 시절 우리는 거인을 믿지 않았다. 거인은 나쁘고 악당이었지만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하지만 철이 들면서 더 이상 이런 만화책은 현실이 되지 못했고 대리만족도 없어졌다. 현실은 큰 놈이 항상 작은 놈을 이기기 때문이다. 나잇살이 들면서 거인을 믿게 되었다.
조지 오웰의 <1984>에 담긴 살벌한 메시지는 빅 브라더스(big brothers)가 우리를 컨트롤한다는 것이다. 1이 99를 조종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얍삽한 정치인들은 우리에게 큰 정부를 비난함으로써 그들이 우리를 각성시킬 ‘작은 사람을 찾겠다고’ 약속하며 거대한 정유회사에 맞서 싸우도록 도와준다. 대리전쟁인 셈이다. 이제 거인 악당을 물리칠 다윗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골리앗을 이기는 다윗을 응원한다. 골리앗의 명령에 복종하는 대신 맞서는 다윗에 열광한다. 미국 대공황 시절 은행 강도이자 범죄자였던 존 딜링어John Dillinger와 보니와 클라이드Bonnie and Clyde의 스토리를 엮은 책과 영화에 환호한다. 좋은 범법자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들이 박수를 받는 이유는 미국의 경제대공황을 불러온 주범인 은행을 털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와 유사한 뉴스를 접하면서 겉으로는 범죄자를 욕하지만 속으로는 박수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에 캐스팅된 배우에게 우리는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톰 행커스가 역할을 맡은 용감한 경찰관에 맞서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희대의 사기꾼 프랭크 애버네일을 연기한 잘생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응원했던 것이다. 우리는 악당을 응원하고 법을 지키려는 사람을 비난한 것이다.
자신들의 고유한 법에 의해 자유롭게 살아온 국가를 병합했을 경우 그 국가를 다스리는 데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 방법은 그 나라를 파괴하는 것이고, 둘째, 그 나라에 직접 살면서 통치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그들의 고유한 법에 따라 살도록 허용하면서 공물을 바치게 하고 지속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과두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다. <군주론>5장
<자신들의 법에 의해 자유롭게 살아온 국가들의 통치방법>
구분
| 통치방법 | 결과 | 사례 |
1 | 점령한 나라를 완전히 파괴 | 통치성공 | 로마인들이 카푸아, 카르타고, 누만티아를 통치하기 위해 이 나라들을 모두 파괴시킴 |
2 | 그 나라에 직접 거주하면서 통치 | 스파르타인들의 그리스 통치 | |
3 | 과두정부를 수립하여 통치 | 통치실패 | 스파르타인들이 아테네와 테베에 거ㅏ두정부를 수립하여 통치 |
국가는 신의 섭리나 운으로 좌우되지 않는다
마키아벨리는 단순히 힘의 논리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시민의 자유와 합리적인 법에 의한 통치를 강조했다. 공화국, 군주국의 외형적이고 이분법적인 분류가 아니라 확고한 리더십과 힘을 토대로 자유주의와 법치주의가 하나가 되는 통치체제를 더 우위에 두었다.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추상적 가치에 현혹되기보다는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힘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로마와 그리스의 부흥기였던 당시 르네상스 시대를 맞았지만 피렌체와 이탈리아는 분열과 부패로 내전을 거듭하면서 열강의 침입에 시달려 정치는 뒷전이었다. 마키아벨리도 혼란한 정국에서 지금 우리와 같은 고뇌를 한 것이다.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강력한 대통령제를 표방하는 우리나라 역시 정치 구조상 늘 부정부패는 약방의 감초처럼 따라다니고, 소통부재와 갈등으로 분열이 초래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권력집중과 소통은 상호모순이자 이율배반적이다.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면 소통경로가 막히는 것은 당연하다. ‘짐이 곧 국가’인데 굳이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
“국가는 신의 섭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가 자체의 존엄성에 의해 존재한다. 그러므로 국가의 법은 절대적이다. 개인은 국가 내에서만 그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찾을 수 있다. 국가를 떠난 개인이 존재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도덕과 종교 역시 국가의 법과 일치함으로써 그 생명력이 발휘될 수 있다”고 한 단테의 <제정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변화에 가장 뒤떨어진 이탈리아를 구해내는 하나의 방안으로 <군주론>을 집필한 것이다.
단테의 국가관과 달리 마키아벨리는 국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국가는 신의 섭리나 운으로 좌우되지 않는다. 국가 통치는 국민정신과 자연법의 원리에 근거되어야 한다. 군주는 그런 국가를 실현하는 현실적 수단일 뿐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이와 같은 국가 관념을 이해하고, 그 관념에 따라 국가를 이끌어가는 영도자여야 한다.”
국가는 군주와 운명을 같이 한다. 군주는 국민과 운명을 같이 한다. 군주는 냉정하면서 심사숙고해야 하고, 국가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다른 것을 돌아보지 않으며 때로는 국가의 중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적극적으로 강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어설픈 도덕군자보다는 현실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따라서 군주나 리더는 공동체의 번영을 위해 경우에 따라 약간의 거짓말도 필요하다.
미국 시카고대 정치학교수 존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의 <왜 리더는 거짓말을 하는가-지도자의 거짓말에 관한 불편한 진실>을 보면, 국가 간 거짓말과 국민을 위한 거짓말 사례들이 나온다. 저자는 거짓말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윤리적 기준에서의 절대주의적 거짓말과 현실적 기준에서의 공리주의적 거짓말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지도자가 거짓말을 하는 이유를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물론 칸트와 같은 절대주의 윤리 기준으로 보면 “거짓말은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를 지는 데 있어서 가장 중대한 위반”이지만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거짓말은 이해할 수 있는 행동”으로 귀결된다. 그것이 유용한 사회적 목적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도 지도자는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때로는 거짓말이 필요하다고 용인한다. 지금도 외교라는 가면을 쓰고 국가 간에 서로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다른 나라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부딪친 어려움들은 권력을 확고히 하기 위해 새로운 제도와 법률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더욱 커지게 된다. 새로운 질서를 도입하는 것이 정책을 집행하는 것보다 더 어렵고 힘들 뿐만 아니라 관리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군주론>6장
구질서로부터 이익을 누리던 모든 사람들은 개혁자에게 적대적이 되는 반면, 새로운 질서로부터 이익을 누리게 될 사람들은 미온적인 지지자로 남기 때문에 새로운 제도와 법률을 도입하는 것이 어렵다. 이렇게 미온적인 지지만 받는 이유는 잠재적 수혜자들이 인간의 부정적인 속성상 자신들의 눈으로 확실한 결과를 직접 보기 전에는 새로운 제도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들은 혁신자를 공격할 기회만 있으면 언제나 전력을 다하여 공격하는데 반해서, 그 지지자들은 반신반의하며 미온적으로 행동한다. 사보나롤라 신부는 백성들의 믿음이 사라지자 그가 세운 새로운 제도와 질서와 더불어 몰락하고 만다.
변화를 원하는 건 기저귀가 축축한 아기뿐이다
나는 등산을 좋아한다. 한 달에 세 번 정도는 산을 찾는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이런 저런 상념을 정리해 볼 수 있어서 좋다. 거기다 건강도 챙길 수 있으니 그야말로 도랑치고 가재 잡는 격이다. 원래 산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몇 년 전 큰 수술을 받은 후 산을 찾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횟수가 잦아진 것은 당시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의 권유 때문이다. 지켜야 할 다른 생활수칙도 있지만 유독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등산할 것을 강조하셨다. 산행이 끝나면 블로그에 사진과 함께 글을 올린다.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주위 사람들은 사진만 보고 “세월 좋~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사는구나.”라며 핀잔 섞인 한 마디씩을 던진다.
아무튼 등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날씨다. 일기예보만 믿고 쉬기로 했는데 햇볕이 쨍쨍 나기라도 하면 방구들에 처박혀 하늘을 원망하곤 한다.
“그냥 갈 걸...”
일의 시작이 그러하듯 변화의 출발점 역시 'Just try it(그냥 하라)‘이다. 우리는 대부분 변화를 싫어한다. 왜? 불편하니까. 기존 질서 속에서 안정된 자리에 물든 사람들은 개혁자에게 적대적이다. 반면 새로운 질서로부터 안정된 자리를 차지할 사람들은 미온적인 지지자 수준으로 남아 있다. 따라서 변화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개혁자를 기회가 되면 목숨 걸고 공격하지만, 변화를 갈망하는 지지자들은 반신반의하며 미적지근한 태도를 취한다.
<한비자>에 “선유자익 선기자추(善遊者溺, 善騎者墜)“라는 말이 있다. “수영 잘하는 사람이 물에 빠지고, 말을 잘 타는 사람이 말에서 떨어진다.”
익숙할수록 자만해지기 쉽다. 앞선 ‘작은 성공’이 오히려 더 큰 실패를 가져온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시대와 상황이 바뀌면 그에 맞는 전략을 수립하라는 의미다. 한비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시(時)’ 즉 타이밍이다. 초보운전자는 사고를 잘 내지 않지만 숙련된 운전자일수록 사고율이 높다. 익숙하면 타성에 젖기 때문이다.
어쩌면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는 것이 인간의 습성인지도 모른다. 웬만해선 스스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 하지 않는다. 전에 해 본 적이 없는 일이라면 더더욱 시작하려 하지 않는다. 설령 전에 해봤다면 안 되는 일이라고 미리 포기하고 다시 시도하려 하지 않는다. 두려움 때문이다. 그리고는 도전하지 않을 이유와 핑계를 계속 만들어 낸다.
<유엔미래포럼>의 제롬 글렌 회장은 몇 년 전 한국 학생들을 위한 강연에서 “한국 학생들은 미래에 대한 생각이나 비전 없이 공부만 하는 것 같다. 그들은 앞으로 그들 세대에 가서 없어지게 될 직업이나 직종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고, 미래 사회의 변화에 대해 알지 못하는 듯하다.” 라고 일침을 가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이 세상에는 인터넷이 없었고 휴대전화, 복제양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 지구촌은 인터넷으로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고, 마우스 클릭만으로 볼펜부터 자동차까지 구입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세계 변화의 흐름을 미리 파악해야만 다가올 미래를 좀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미래공부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성공의 가장 큰 적은 성공이다
변화에 대처하지 않고 현재에 머물러 있으면 어떤 상태로 전락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우화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의 내용은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사람들은 ‘변화’가 일어났을 때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새 치즈를 찾아 나서야 하는데도 누가 내 치즈를 옮겼는지 화만 버럭 내며 변화의 기회를 무시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두 생쥐와 꼬마인간은 새 치즈를 찾아 나서며 변화에 현명하게 대처한다. 아직 새 치즈를 찾진 못했지만 그들은 어딘가에 있을 치즈를 확신하며 기꺼이 길을 나선다. 변화에 대한 저항은 변화로 인해 현재 누리고 있는 이익에 어떤 위협이나 불이익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하여 타성에 빠지거나 변화를 거부하는 개인에 의해 생길 수도 있고, 자원의 한정이나 그 체제를 유지해 온 기득권자들로부터의 저항 등으로 인해 생길 수도 있다.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직이 경직되어 관련 정책에 대한 변화를 허용하지 않는 경우에서 야기될 수도 있다.
1985년 잘 나가던 인텔의 창업자 앤디 글로브 회장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값싼 제품을 앞세워 메모리 시장에 뛰어든 일본 기업들의 거센 도전에 매출이 뚝 떨어지고 있었다. 글로브 회장은 곧바로 메모리 반도체 라인을 뜯어내고 대신 프로세서 라인을 깔았다. 지금 인텔은 세계 최대 프로세서 반도체 메이커가 됐다. 이에 비해 제록스 경영진은 복사기 사업이 채산성이 떨어지는데도 현실을 직시(낡은 사업 모델)하지 못하고 환율불안과 남미시장 문제 등을 내세우며 변화에 주저했다. 결국 제록스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뭉그적대다 파산했다.
경영난에 허덕이던 코닥이 세계 최초로 개발했던 디지털 카메라 사업을 정리하기로 하면서 시장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패한 기업 사례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 1881년 설립된 코닥은 1960~1970년대 미국에서 지금의 구글, 애플과 같은 가장 선망 받는 기업이었지만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디지털 카메라 시장을 가장 먼저 선점하고도 필름 산업에 집착한 것이 패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 130년의 역사동안 휴대용 카메라를 개발하고 달에서 촬영한 첫 사진을 전 세계에 전달하는 등 큰 족적을 남겼지만 결국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성공의 가장 큰 적은 성공이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들은 대부분 속편을 만든다. 하지만 속편의 경우 십중팔구 혹평을 받는다. 성공한 순간이 가장 위험하고 성공한 그 방식이 가장 위험할 수 있다.
개혁자들이 자신의 능력으로 행동하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즉 개혁을 성공하기 위해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아니면 능히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지를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따라서 타인에게 의존하는 개혁은 성공할 수 없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추진하는 개혁은 성공한다. <군주론>6장
유능한 개혁자들은 많은 시련을 겪는다. 모든 위험들은 그들이 자신들의 계획을 시작한 후에 닥치며, 그 위험들은 자신의 역량에 의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 히에론 왕은 일개 시민에서 시라쿠사의 군주가 되었다. 캄파니아 용병부대가 시라쿠사를 공격했을 때, 시라쿠사인들은 히에론을 장군으로 뽑았다. 그는 장군이 되자마자 가장 먼저 용병위주로 구성되어 있는 군대를 해체하고 주요 인물들을 참살했다. 또한 옛 동맹들을 폐기하고 새로운 동맹을 체결했다. 이를 토대로 자국군을 육성하여 그가 원하던 국가를 세울 수 있었다.
타인의 힘에 의존한 개혁은 모래성이다
정치적으로 중국의 전국시대 개혁의 중심 원리는 ‘무기와 권력’이었다. 마키아벨리 시대는 ‘칼과 권력’이었고,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사회의 중심 원리는 ‘돈과 권력’이었다. 정권을 잡은 군주는 국가기관을 사유화하여 반대자들을 감시하고 탄압하는 데 남용하기도 했다. 기업은 정부로부터 산업화에 기여한 공로로 온갖 특혜를 받으며 초법적 지위를 누리기도 했다. 그렇게 성장한 대기업들은 모두 자신이 잘 나서, 자신의 힘으로 성장했다고 주장한다. 소가 웃을 일이다. 산업화의 현장에서 몸과 마음을 바쳐 일한 사람들에겐 그 대가로 ‘산업화의 열매’를 조금씩 나눠줬다.
중국 고대의 7가지 병서인 무경칠서(武經七書)중 하나인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에 "옛날의 전투는 조금이라도 군사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전혀 군사를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을 이긴 뿐이고, 조금이라도 나은 게 있는 사람이 나은 점이 단 한 가지도 없는 사람을 이긴 것뿐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과거의 승리는 지금보다는 쉬운 편이었으므로, 과거의 성공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거나 자만하지 말라는 의미다. 내가 잘나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못나서 성공했다는 의미다.
춘추전국시대나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도덕논리가 생각만큼 잘 작동하지 않는 ‘야만의 사회’라는 것은 비슷하다. 권력과 칼의 시대라는 말이다. 지금은 칼이 돈으로 바뀌었을 뿐 사회시스템이 달라진 건 없다. 돈은 곧 밥이다. 밥이 곧 힘이다. 정신보다는 목구멍이 더 강력한 동기를 유발시킨다. 마키아벨리즘을 부도덕하다며 치부할 것이 아니다.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간명하다. 선보다 악, 자비보다 악덕, 이상보다 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따져보면 우리도 지금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입으로는 도덕을 논하지만 속으로는 더 큰 도덕을 위한 부도덕을 꿈꾼다.
아무리 이상적인 비전도 밥의 논리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정의가 결여된 힘이 오래가지 못하듯이, 힘없는 정의 역시 변명일 뿐이다. 군주시대의 힘은 무력이었지만 오늘날의 힘은 개개인의 능력이다. 능력이 있어야 개혁도 하고 리더 노릇을 할 수 있다. 도덕군자는 윤리로 말하지만 CEO는 결과로 말한다. 계량화된 데이터를 제공하지 못하면 정당한 평가를 받기 어렵다.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은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포에니 전쟁에서 패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지만, 로마를 쓰러뜨리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알렉산더와 피로스에 이어 역사상 최고의 3대 명장으로 자신을 꼽았다.
전쟁에 패해 귀국한 한니발을 앞에 두고, 카르타고의 집권자들은 다시 로마에 적대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당시 카르타고는 로마의 감시를 받는 반쯤 속국이나 다름없었는데, 한니발은 은밀히 병력을 모으며 로마와의 재대결을 착실히 준비했다. 이 와중에 로마의 수송선이 카르타고 인들에게 약탈되는 사건이 벌어지자, 로마 원로원은 스키피오에게 카르타고를 쓸어버리라고 명령했다.
기원전 202년, 북아프리카의 자마에서 45세의 한니발과 33세의 스키피오는 세기의 결전을 벌였다. 한니발은 약 5만의 병력을 동원하여 수적으로는 스키피오에게 다소 앞섰다. 그러나 한니발의 전술에 필수 요소였던 누미디아 기병대가 이번에는 로마군 편에 섰다. 한니발은 코끼리 부대가 그 공백을 메워 주기를 기대했으나, 로마군의 화살과 투창 세례에 놀란 코끼리는 뒤로 돌아서 오히려 카르타고 군을 짓밟았다. 전투는 로마의 승리로 돌아갔고, 카르타고의 희망도 꺼졌다.
한니발은 다시 한 번 자신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정치인들을 피해 망명했다. 그리하여 티레, 시리아, 비티니아 등을 떠돌며 로마에 복수할 방법을 모색했으나 헛수고였다. 기원전 183년, 비티니아 왕이 로마군에게 그를 넘겨주기로 결정했음을 듣고, “아, 카르타고여! 나를 용서해 다오!” 이렇게 외치며 반지 속의 독약을 마셨다.
그러나 오히려 용서를 빌어야 할 쪽은 조국 카르타고였다. 그가 죽고 37년 뒤, 로마는 몰락할 대로 몰락한 카르타고에게 최후의 싸움을 건다. 그리고 기원전 146년, 카르타고는 결국 멸망했다. 로마군은 도성 안의 모든 남자를 학살하고, 모든 여자와 아이를 노예로 잡아갔다. 심지어 나무와 풀까지 불사르고는 소금을 대량으로 뿌려, 다시는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할 죽음의 땅으로 만들었다.
세계사에 가장 오래 장수를 누렸던 1000년 로마 제국, 400년 당 제국도 결국은 망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나라의 흥망순환론을 주장했다. “사물은 번성하면 쇠퇴하기 마련이다.”, “천하의 통일이 오래되면 분열되고, 분열이 오래되면 다시 통합된다. 흥망성쇠는 반복된다.” 흥망순환론은 결국 자연의 법칙으로 귀결된다. 역사는 가끔 예외를 만든다. 예외는 하늘의 뜻이다.
군주는 전쟁과 관련된 전략 수립 및 군사훈련 외에는 그 어떤 일이든 목표로 삼거나 관심을 가져서도 안 되며 또 연구해서도 안 된다. 군주가 군대와 관련된 일보다 개인적으로 사치스러운 일에 더 몰두하게 되면 그 지위를 잃게 된다. <군주론>14장
군주가 군무보다 안락한 삶에 더 몰두하면 권력을 잃게 된다. 군주가 권력을 잃게 되는 주된 이유는 군무를 게을리 한 탓이며, 권력을 얻게 되는 이유는 군무에 능통한 덕분이다. 프란체스코 스포르차는 무력을 가졌기 때문에 일개 시민에서 밀라노의 군주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아들 마시밀리아노는 1512년 밀라노 공작이 되었지만 군무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3년 만에 권력을 잃고 만다. 군대를 갖추지 못한 군주는 결국 권력 유지에 실패한다.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나 그것을 이루는 것은 하늘이다
프로이센의 군사이론가였던 클라우제비츠Clausewitz는 <전쟁론> 제1권에서 ‘운과 우연’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설파했다. 제갈공명도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나 그것을 이루는 것은 하늘이다.”라고 했다.
“전쟁은 그것의 객관적인 본질로 말미암아 일종의 확률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알 수 있다. 단 하나의 요소만 더 있으면 그것이 확률 게임이 아닌 진짜 게임이 되는데, 전쟁에는 그러한 요소가 늘 있다. 그것의 이름은 다름 아닌 바로 ‘우연’이다. 인간의 활동 가운데 전쟁만큼 우발적 사건과 끊임없이 그리고 광범위하게 부딪치는 것은 없다. 그러나 바로 이 우연이라는 요인 때문에 전쟁에서는 ‘운수’와 ‘요행’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제 “아침형 인간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 점차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 무슨 일이든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아날로그식 성공교과서’는 유통기한이 지났다. 하지만 이 교과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고, 성공의 바이블로 자리하고 있다. 남들 잘 때 안자고 남들 먹을 때 안 먹고 열심히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것은 산업화의 논리다. 물론 성실과 근면은 여전히 유효한 성공방식이지만 이제 과거만큼의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환경 변화가 미미한 안정된 사회에서는 효과적인 성공법칙이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빠르고 다양하게 변하는 세상에서 그저 열심히 하면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 단순한 논리다. 부지런히 일을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삶의 방향성을 정하는 혜안이 필요하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성공하는 시스템이라면 새벽어둠을 뚫고 남산약수터에 모이는 사람들은 성공의 깃발을 꽂았을까?
부지런한 사람이 성공하는 시스템이라면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청과시장에서 수레를 끄는 사람들은 모두 성공했을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다면 이른 아침 눈을 부비며 만원 전철에 몸을 맡긴 채 출근하는 샐러리맨들은 모두 별을 달았을까?
일찍 일어나, 열심히, 부지런히 하되 왜 하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거기에 얼마간의 운이 곁들여져야 한다. 운이 없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다. 운의 종류는 여러 가지다. 부자인 부모를 만나는 것도, 돈 많은 투자자를 만나는 것도, 줄을 잘 타는 것도, 하늘이 도와주는 것도, 실력에 의한 것, 모두 운의 범주에 들어간다. 실력이 있어도 운과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미국의 석유 왕‘으로 불리며 세계 최대의 부자반열에 올랐던 존 록펠러도 성공의 비결을 “첫째도 운, 둘째도 운, 셋째도 운”이라고 했다. 열심히 해서 될 일이 있고 하늘이 도와주어야 할 일이 있다.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겨야 한다.
우리는 ‘운’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운을 연구하는 학자도 있다. 영국의 행운심리학자 리처드 와이즈먼Richard Wiseman 교수다. 그는 약 10년 전 1,000명을 대상으로 운에 대해 심층연구한 뒤 “운 좋은 사람은 예기치 않은 기회를 활용해 행운을 만들어낸다. 낙관적이고 정력적이며 개방적이다. 운 나쁜 사람은 반대다.”라고 주장했다. 나이가 들수록 노력보다 운이 더 크게 보이는 경우가 잦아진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운도 내가 만드는 것이다. 인내와 노력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운도 따라온다. 따라서 운을 100%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키아벨리의 지적처럼 운의 반 이상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다. 운을 가장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방법은 자신의 일에 열과 성을 다한 후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다. 그런 성공이라야 행복한 성공이다. 칸트는 행복의 세 가지 원칙으로 “어떤 일을 할 것, 어떤 사람을 사랑할 것, 어떤 일에 희망을 가질 것”으로 제시했다.
성공의 기회는 평등하지 않다. 우리 사회가 생각만큼 진일보가 느린 이유는 성공을 하고 나면 성공하기까지의 치열한 과정은 잊어버리고, 기존 성공자들의 대열에 합류해 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저 사다리만 오르면, 더 많은 사다리를 내려 보내 주겠다던 호언장담도, 막상 사다리를 오르고 나면 사다리를 내려 보내 주기는커녕 있던 사다리마저 걷어차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역사를 보면 대개 사회가 썩었을 때 종교가 더 번창하듯 모두가 도덕군자라면 굳이 종교가 필요 없다. 성공은 시험을 쳐서 점수를 받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기회라면 그것이 오히려 불공평하다. 성공과 평등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다.
‘재미’를 추구하는 문화심리학자, 여러 가지 문제연구소장, 전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였던 그는, 어느 날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다가 “이 책이 던지는 ‘자유’라는 조르바식 질문에 견디다 못해”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자유를 선언했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의 저자 김정운이다. 그는 ‘성공은 우연이다’라고 강조한다.
“모든 사람들을 ‘성공중독’으로 몰아간다.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목표를 향해 달려가면 모두 성공할 것 같은 환상을 준다(....) 우연히, 아주 우연히 성공한 사람들도 모두 정형화된 모범답안을 흉내 낼 뿐이다.”
마리 레네루도 성공은 우연이라고 거들고 있다.
“성공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저 우연이다. 그러나 자신에 대해 확신을 갖는 것은 확실히 다른 것이다. 그것이 바로 기개이다.”
성공은 ‘운칠우삼’(운이 7할, 우연이 3할)이다. 그러니 죽기 살기로 모든 것을 희생해서 성공하지 마라. 그런 성공은 본인도 가족들도 모두 힘들게 할 뿐이다. 그건 일시적 성공이지 진정한 성공은 아니다. 그것은 성공이 아니라 ‘성공인 것처럼 보이는’ 허상에 불과하다. 김정운 교수의 말처럼 앞으로는 많이 놀수록 성공한다. 노는 만큼 창의력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단순히 몸의 움직임만으로 근면성을 논할 수 없다.
156년간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받았지만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미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성공자들을 배출하고 있는 나라다. 하지만 1960년 이후 미국은 이혼율 2배, 청소년 자살률은 3배 늘었다. 폭력 범죄는 4배 증가했고 감옥에 간 사람은 5배 늘었다. 게다가 우울증 환자는 10배로 늘어났다. 나라 전체가 ‘성공중독’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더 심각하다. 이혼율은 앞에서 1등이고, 출산율은 뒤에서 1등이다. 게다가 OECD 국가 중 청소년 범죄와 자살률 역시 9년 동안 부동의 1위다. 올림픽과 월드컵 한 번 하고 나더니 눈에 보이는 게 없다. 우리의 방식이 세계 최고라고 주장하며 좀처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나라를 지탱해왔던 단일민족이라는 떼잡이 근성이 곳곳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데도 기존의 성공방식을 바꾸려하지 않는다.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지 못하는 국가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산업화적 근면성이 죽어야 창의성이 살아난다
박근혜정부의 핵심키워드는 ‘창조경제’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 비서관들에게 9시에 출근하라고 지시했다. 물론 대통령도 9시에 집무실로 들어서겠다고 했다. 그동안 청와대는 6시에 업무가 시작되었고, 우리나라 전체가 ‘얼리 버드(early bird)’였다. “창조경제는 상상력과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라는 대통령의 지적처럼, 이제 국가의 일하는 시스템도 ‘노멀 버드(normal bird)’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얼리 버드’를 ‘산업화적 근면성’이라고 이야기한다.
지금은 몸을 기계처럼 움직여 열심히 일하는 ‘산업화적 근면성’이 아니라, 마음과 머리를 움직여 놀면서 일하는 ‘창의적 근면성’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를 움직이고 있는 리더들은 대부분 산업화 시대의 주역들이다. 배고픈 나라를 배부른 나라로 만든 주역들이다. 그러다보니 사회 전체가 여전히 수십 년 전에나 통했던 ‘산업화적 근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처럼 산업화적 근면성이 사라져야 대한민국이 산다. 우리나라는 IMF만 졸업한 것이 아니라 산업화적 근면성도 졸업했다. 예전에 이명박 대통령이 모 기자에게 “내가 세계 정상 중 제일 열심히 한다. 제일 열심히 일하는 대통령에게 무능·무책임을 붙이면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나라의 국민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열심히’라는 단어는 요즘 그다지 각광받지 못한다. 특히 군주나 리더는 열심히 한다는 사실만으로 면피가 되는 것이 아니다. 잘 해야 한다. 과정보다는 결과로 평가 받아야 한다.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서라도 결과를 내야 하는 것이 군주요, 리더요, CEO이다. 과정상의 반칙은 결과가 좋으면 덮어진다는 것이 국가를 통치하는 불문율이다.
직원이나 팀원인 경우,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이 있고 기업을 영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리더라면 과정보다는 결과로 말해야 한다. 도덕교과서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지만 사회교과서는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한다.
얼마 전 기획재정부가 <OECD 회원국들과 한국의 고용지표를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기준 한국인들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44.6시간으로 34개 회원국 가운데 터키에 이은 두 번째로 많았다. 이어 멕시코, 그리스, 체코 순이었다. 일하는 시간으로는 OECD 국가 중 두 번째지만 생산성은 23위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야기하는 ‘산업화적 근면성’ 때문이다. 근면성실의 기준을 결과보다는 과정으로 평가하려 하기 때문이다. 일하는 시간으로 인사고과를 하는 관습이 여전하다. 일하는 시간이 적거나 어쩌다 지각이라도 할라치면 무능한 직원으로 낙인을 찍어버린다. 물론 조립 공정이나 일부 제조업에서는 근면·성실이 아직도 유효한 수단으로 작용하는 것도 현실이다. 아무튼 조직의 리더가 단순히 일하는 시간으로 구성원들을 평가해서는 곤란하다. 이제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와 더불어 국가는 국민들에게 쉬면서 일하라고 해야 한다. 쉼을 통해 나올 수 있는 창의력에 집중해야 한다.
주변 열강들의 틈바구니에 속에서 그동안 우리나라를 이끌었던 산업화적 근면성이 한계에 부딪히자 경제 여기저기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겉은 멀쩡한데 속은 곪아가고 있다. 속성산업화의 부작용이 한꺼번에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부동산거품을 통한 장기침체 사이클은 스페인과 일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데도 경제 관료들은 우리의 경제기반은 그들과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지 못한 나라는 망했다.
2013년 새해 벽두, KBS <시사기획 창>은 '쿠오바디스Quo Vadis 한국경제'라는 제목으로 올해 우리나라가 맞이할 경제 위기를 진단했다. 한국·스페인·일본 3국의 경제를 부동산·부채·인구구조라는 키워드를 통해 들여다봤다. 또 앞서 부동산 가격 폭락으로 경제가 수렁에 빠진 일본과 스페인의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가 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고령화·부동산 버블·저성장’ 이 세 가지는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경제학자가 아니라도 알 수 있다. 일본과 스페인의 15~64세 생산가능 인구의 정점은 각각 1990년, 2005년이었다. 한국은 2012년이다.
부동산버블을 보면, 일본은 1991년, 스페인은 2007년, 한국은....? 일본과 스페인을 보면 생산가능인구가 정점에 달하고 1~2년 내 곧바로 부동산버블로 이어져 장기침체를 맞았다. 이 주기가 맞다면 한국은 2013~2014년에 같은 경로를 겪게 된다.
많은 경제지표들이 위험 징후를 경고하는데도 정부의 대책은 미온적이다. 하긴 무대책이 대책인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 모두가 1:29:300이라는 ‘하인리히 법칙’을 되새겨 봐야 한다. 하나의 대형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그와 관련한 작은 사건은 29건이 발생하고, 그 작은 사건 이 일어나기 전에는 같은 원인에서 비롯된 300가지 이상의 이상 징후들이 나타난다는 미국 여행보험회사의 허버트 하인리히가 발견한 법칙이다. 사회 곳곳에서 어두운 징후들이 나타나는데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산업화를 이루어냈다는 말로 모두 덮어버린다.
질서가 잡힌 국가와 현명한 군주는 귀족들이 분노하지 않도록 또 백성들이 만족하도록 항상 세심하게 관리해왔다. 이것이야말로 군주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관심사 중의 하나이다. 프랑스가 가장 질서가 잡히고 통치가 잘 되는 왕국들 중 하나였다. 프랑스에는 왕의 자유 및 안전의 기초가 되는 수많은 좋은 제도가 있었다. 그중 으뜸가는 제도가 엄청난 권위를 누리고 있는 고등법원이었다. 그 무렵 프랑스에서는 귀족들이 백성들에게 횡포를 부리는 일이 만연했다. 이 때문에 백성들이 피해를 입자 군주는 귀족들을 통제하고 귀족의 횡포를 견제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중립적인 고등법원이었다. 이를 통해 군주는 귀족에게 미움을 사지 않고도 귀족들의 횡포를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 따라서 현명한 군주는 미움 받는 역할은 타인에게 맡기고, 은혜를 베풀 때는 자신을 내세워야 한다. <군주론>19장 강127권156
상은 직접 주고 벌은 대리인에게 시켜라
마키아벨리가 ‘좋은 일은 직접 하고 나쁜 일은 대리인을 통하라’는 말은 언뜻 들으면 아주 이기적인 행동처럼 보인다. 그러나 당시 정황을 보면 아주 획기적인 조치였다. 조국 이탈리아를 위기에 빠트린 주범은 바로 귀족과 군대였다. 군주들은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귀족과 군대는 군주들에게는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지만 마땅한 대응책이 없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고등법원parlamento이었다. 이를 통해 귀족들의 야심과 거만함을 통제하기 위해 귀족들의 입에 재갈을 물릴 수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귀족들을 두려워하는 백성을 보호할 수 있었다.
이것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일반 조직의 리더들도 오래 전부터 활용하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조직의 기본 뼈대는 대부분 군대 조직에서 왔고 조직의 경영전략은 전쟁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고등법원의 역할을 하는 것이 오늘날 기업의 인사위원회다. 이는 포상은 물론 직원의 해고, 정직, 감봉 등과 같은 처벌을 주목적으로 한다. 요즘도 표창, 호봉 승급, 급여 인상, 특별상여금과 같은 상을 내리는 것은 경영자가 직접 하지만 벌은 인사위원회라는 대리 기구를 통하는 게 통상적이다. 마키아벨리의 주장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NHK에서 방영되어 일본 전역에 협상 공부 열풍을 불러왔던 화제의 책 <악녀의 협상법>에 ‘좋은 경찰관·나쁜 경찰관 전술Good guy, bad guy'이라는 것이 있다. 상사와 부하가 함께 협상에 참여할 때, 부하 직원에게 악역을 맡기고, 상사는 선한 역을 맡는 것을 말한다. 이 때 악역은 상대가 제시하는 안을 가차 없이 비판하거나 무자비하게 가격을 내리라고 요구하는 반면, 선한 역을 맡은 상사는 상대를 배려하고 악역을 구슬려 타협점을 찾는다.
“분노하지 말고 실리를 추구하라”는 것은 고대 중국의 일곱 가지 병법서인 <무경칠서武經七書>의 공통적인 지혜다. 동시에 무경칠서는 ‘백성의 생사와 국가의 존망’을 동일시했다는 점에서 찬사를 받는다.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보다 귀한 것은 없다. 전쟁은 천시와 지리, 인화 등 세 조건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으면 비록 승리를 거둘지라도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 부득이한 경우에 한해 전쟁이라는 최후의 수단에 기대야 한다.”는 것이 중국 전국시대의 제나라 장수 손빈이 저술한 <손빈병법孫臏兵法>의 충고다.
<무경칠서>는 “장수가 용병을 잘못해 전쟁에서 패하면 나라의 존망이 갈릴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전쟁을 피하는 게 상책이지만 전쟁을 할 수밖에 없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겨야 한다. 이를 현대에 대입하면 하나의 기업이 경영을 실패해 퇴출당하면 해당 기업은 물론 수많은 관련 업체 종사자가 일거에 거지가 되거나 거리로 내몰려 나라가 휘청하게 된다. 이처럼 리더는 항상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한비자>에 “하군(下君)은 진기능(盡己能)하고, 중군(中君)은 진인력(盡人力)하며, 상군(上君)은 진인능(盡人能)한다.”는 말이 있다.
즉 “삼류 리더는 자기의 능력을 사용하고, 이류 리더는 남의 힘을 사용하고, 일류 리더는 남의 지혜를 사용한다.”는 의미다. 리더는 자신이 직접 몸을 움직여 하기보다는 부하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토록 지원해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리더라는 말이다. 이미 한비는 그 시대에 조직 운영의 기술을 완벽하게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보존은 획득보다 쉽고 방어는 공격보다 쉽다
흔히들 요즘 기업 환경을 정글에 비유한다. 정글에서 통용되는 법칙은 단 한 가지다. 약육강식이다. 니체의 우화에서 보듯이 양들은 착하지만 맹금의 밥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힘센 맹금에게 먹히지 않으려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사회라는 정글은 권력이라는 게임이 지배하고 있다. 이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먼저 게임의 룰을 알아야 한다. <권력의 법칙>은 이 권력 게임의 법칙을 설명하고 권력을 이해, 획득, 유지, 행사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정글에서 살아남고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힘을 기르는 데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
권력은 근본적으로 도덕과 일치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권력을 얻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술 가운데 하나는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보는 능력이다. 권력은 게임인 동시에 전쟁이다. 그리고 그 게임에서 당신은 의도가 아니라 행동의 결과로 상대를 판단해야 한다. 당신이 보고 느끼는 것들을 가지고 상대의 전략과 힘을 측정해야 한다. 여기서 상황을 보는 능력은 곧 타이밍을 말한다. 아무리 좋은 전략도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시(時, timing)를 가장 중시한 한비는 ‘시철학자’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모든 것은 그때의 상황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한비자>에 “천하지물 막불유리(天下之物 莫不有理), 논세지사 인위지비(論世之事 因爲之備)”라는 글이 있다. “천하의 사물 중에는 이치가 없는 것이 없다. 어떤 일을 하든 간에 현재의 상황을 고려하여 시의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세난편(說難篇)에 나오는 미자하(彌子瑕)라는 인물이 있다.
미자하는 춘추전국시대 위(衛)나라 임금의 총애를 받았던 요즘말로 꽃미남이었다. 그런데 이 미자하가 어느 날 어머니가 병이 났다는 전갈을 받자마자 허락도 없이 감히 임금의 수레를 타고 고향으로 갔다. 당시 법률은 허락 없이 임금의 수레를 타면 월형(刖刑, 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에 처하게 되어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왕은 오히려 미자하가 "월형을 마다않을 정도로 효심이 깊다."며 칭찬했다고 합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또 한 번은 왕과 함께 과수원을 거닐던 미자하가 탐스러운 복숭아를 따 한 입 베어 먹다 맛있다며 그 복숭아를 왕에게 바쳤다.
이에 왕은 "맛있는 복숭아를 제가 먹지 않고 나에게 줬다."며 미자하의 충성심을 칭찬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미자하도 늙어 꽃미남의 자태를 잃게 되었고, 왕의 총애도 그로부터 멀어져 갔다. 그렇게 왕의 관심권에서 멀어진 후 미자하가 벌을 받을 일이 생기자 왕은 옛일을 떠올리면서 "저 놈은 옛날에 허락도 없이 내 수레를 몰래 훔쳐 탔고, 자기가 먹다 남은 복숭아를 나에게 먹였다."고 지난 일들까지 들추어내어 가중 처벌하여 중형에 처했다.
이 사례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미자하의 행위는 처음이나 나중이나 변한 것이 없었지만, 같은 행위로 처음에는 충심과 효심으로 칭찬 받았던 일이 나중에는 위법과 불경의 죄가 된다는 것이다. 왜일까? 그것은 군주가 같은 상황인데도 미자하에 대한 애(愛)와 증(憎)의 마음을 완전히 반전시켰기 때문이다. ‘첫 인상 밑천은 10년은 간다’는 말이 있지만 인간의 애증은 이처럼 변덕스럽다. 미자하를 통해 변덕스럽고 얄팍한 인간의 감정을 보여주는 ‘먹다 남은 복숭아’라는 뜻의 ‘식여도(食餘桃)’란 고사가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결국 상황은 같지만 한비자가 강조하는 타이밍이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도 상황이 바뀌고 시대가 바뀌면 기존 전략을 바꾸거나 새로운 전략을 마련함이 타당한데도 기존 성공에 안주하는 경향이 많다.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지키는 것보다는 빼앗는 것이 좋다. 손자병법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승리가 최고의 승리라고 했지만, 싸워서 이길 수 없다면 차선으로 방어를 튼튼히 하는 것이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 제6권에서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방어’에 대한 중요성을 설파했다. 자원이 비등할 경우에는 공격보다 방어가 유리하다. “방어의 목적은 무엇인가? 보존하는 것이다. 보존은 획득보다 쉽다. 따라서 양쪽이 보유하고 있는 자원이 같거나 비슷하면, 방어는 공격보다 쉽다. 방어는 본질적으로 공격보다 강하다.”
방어를 하는 데는 상대와 비슷하면 되지만, 공격을 하는 데는 상대보다 앞서야 한다. 그래서 방어는 공격보다 단순한 전술이다. 내 힘이 부족할 때는 무리한 전진보다 방어가 효율적이다.
위기 때보다 위기가 끝났을 때 망하는 기업이 더 많다
<맥킨지Mckinsey>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위기 때 망하는 기업보다 경제위기가 끝났을 때 망하는 기업이 더 많다고 한다. 위기 때는 무리한 확장보다는 방어를 통한 생존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권토중래捲土重來’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흙먼지는 말아 일으키며 다시 쳐들어온다는 뜻이다. 즉, 한 번 실패한 사람이 세력을 회복해서 다시 공격해 온다는 의미다.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의 시 ‘제오강정(題烏江亭)’은 항우를 읊은 시로 유명한데 여기서 고사성어가 유래했다.
勝敗兵家事不期(승패병가사불기)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지상사라 예측하기 어렵나니
包羞忍恥是男兒(포수인치시남아) 수치를 참고 견디는 것이 진정한 사내대장부라
江東子弟多才俊(강동자제다재준) 강동의 자제들 중에는 뛰어난 인물들이 많으니
捲土重來未可知(권토중래미가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왔다면 결과는 알 수 없었으리
한나라 유방과 최후의 전쟁을 벌였던 초나라 항우가 한나라의 한신과 마지막 전투에서 크게 패하고 후퇴하여 오강(烏江)에 도착했다. 오강을 지키고 있던 정장亭長이 항우에게 ‘권토중래’ 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항우는 "8년 전 강동의 8,000 자제와 함께 떠난 내가 무슨 면목으로 지금 혼자 강을 건너 돌아가 부형을 대할 것인가!"라고 대답하고는 분함을 참지 못하고 오강에서 스스로 목을 베어 자살하고 말았다. 항우가 죽은 지 천년이 지나 당나라의 시인 두목이 오강을 지나며 항우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 이 시를 지었다.
"강동으로 돌아가 재기하라"는 오강 정장의 권유를 따르지 않고 항우가 자결을 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그의 성장과정에서 형성된 "엘리트의식"으로부터 기인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초나라 명문 호족 출신인 항우는 어릴 때부터 큰 시련이나 실패를 겪지 않고 승승장구하며 순탄대로를 걸어 왔기 때문에 한 번의 큰 실패에 대한 수치심을 참지 못해 결국 자결로 31세의 생을 마감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택하거나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실력이 있으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
우리는 왜 김연아 선수에 열광하는가? 한 마디로 실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모든 것을 이루어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운동선수들과는 달리 여전히 지나칠 정도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마도 그 단초는 운동선수로서 그녀의 뛰어난 경기력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일단 올림픽에서 우승하게 되면 한순간에 스타의 반열에 올라서게 되는 대한민국에서 그녀의 밴쿠버동계올림픽 우승이 그러한 성공의 시발점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피겨스케이팅이라는 불모지에서 두각을 보인 그녀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김연아 선수가 등장하기 전까지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종목은 우리나라 스포츠계에서 거의 관심조차 받지 못했다. 심지어 국민 대부분이 그런 운동 종목이 있는지 조차도 모르고 있었을 정도였다. 게다가 피겨스케이팅은 서구적인 체형을 가진 해외의 선수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종목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활약은 더욱 뜻 깊은 것이었다. 이렇듯 무관심과 성공하기에 힘든 상황에서 이루어낸 것이었기에 그녀의 밴쿠버동계올림픽 우승은 더욱 의미 있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었고, 언론의 관심을 한몫에 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탈리아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인재들은 많은데 지도자들은 이러한 역량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결투나 백병전에서 보여주는 이탈리아 국민들의 힘과 기술 그리고 섬세함은 대단하다. 그러나 군대라는 집단 형태가 되면 모래알이 되고 만다. 이 모든 것은 지도자들의 나약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불가피하게 수행하는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이며, 무력에 호소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을 때에는 무력 또한 신성한 것이다. <군주론>26장
군주론의 마지막 26장은 야만족 지배로부터 이탈리아의 해방을 위한 마키아벨리의 호소가 담겨 있다. 프란체스코 스포르차와 체사레 보르자는 모두 이탈리아를 구하는 데 실패했다. 따라서 로렌초 데 메디치 가문에게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다. 그는 메디치에게 구세주의 역할을 해 달라고 요청한다.
“전하께서 이 요청을 수락한다면 이방인들의 소굴에서 고난을 겪고 있는 이탈리아 방방곡곡에서 백성들이 흠모의 정으로, 얼마나 많은 복수의 열정을 가지고, 얼마나 강건한 믿음을 갖고, 그리고 얼마나 많은 충성심과 눈물을 가지고 구세주를 맞이하겠습니까? 어떤 백성이 전하에게 복종하기를 거부하겠습니까? 야만족의 폭정의 피비린내가 코를 찌릅니다. 전하의 깃발 아래 조국은 숭고해질 것이고, 전하의 지도 아래 페트라르카의 시구가 현실이 될 것입니다.”
“용맹은 광포한 공격에 대항하여 무기를 들 것이다.
전투는 짧을 것이니,
이탈리아인의 가슴에 조상들의 용맹이 아직 살아 있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가장 많이 죽는 계급은 소위다
전쟁터에서 가장 많이 죽는 계급이 갓 임관한 신참 소위라고 한다. 사관학교에서 배운 교과서대로 뛰어다니다가 쉽게 총에 맞아 죽는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는 교실에서 배운 교과서가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다. 직장에서 가장 우왕좌왕하는 직급은 당연히 학교를 갓 졸업한 새내기 신입사원이다. 물론 업무 미숙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실리와 이익으로 점철되는 사회에서 학교에서 배운 도덕교과서대로 곧이곧대로 하려 하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는 학교교과서가 잘 통하지 않는다. 특히 전쟁터는 교과서가 잘 통하지 않는다. 원칙도 규칙도 없고 반칙과 기만술도 용인되는 무법천지이기 때문이다. 학교교과서를 빨리 덮지 않을수록 사회생활을 통해 상처를 많이 받게 된다. 바람직한 것과 효율적인 것은 다르다. 사회는 바른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것을 원한다.
“중국 춘추시대, 노(魯)나라에 미생(尾生)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는 사나이였다. 어느 날 미생은 애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는 정시에 약속 장소에 나갔으나 웬일인지 애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미생이 계속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져 개울물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생은 약속 장소를 떠나지 않고 기다리다가 결국 교각을 끌어안은 채 익사하고 말았다.”
<한비자>에 나오는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는 고사성어의 유래이다. 이것은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다는 뜻으로도 쓰이지만 때로는 신의가 깊다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지나치게 교과서에 의존한 경직된 전술은 전쟁터에서는 무용지물이다. 한 번 써먹은 전술을 폐기하는 것이 전략 수립의 시작이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마키아벨리의 말이 가장 절실한 곳이 전쟁터다. 따라서 군주론은 리더나 정치인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해관계나 목적 달성이 필요한 조직이나 개인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특히 사회생활을 앞둔 새내기들에게 직장생활의 처세법을 제시해 주는 책이다. 전쟁터에서 가장 좋은 전술은 지금까지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전술이다. 상황에 맞는 임기응변이 교과서와 원칙보다 더 중요한 곳이 전쟁터다. 직장도 전쟁터와 다를 바 없다. 차이점이 있다면 총과 칼 대신 경제성과 효율성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것뿐이다. 이익과 효율은 상호불가분의 관계다. 이익 없는 효율성은 존재할 수 없고 효율성 낮은 이익도 무의미하다.
한비자도 “인간은 이익을 찾아 움직이는 동물이다.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동기는 사랑도, 배려도, 의리도, 인정도 아니다. 오로지 이익뿐이다.”라고 했다. 의리도 인정도 결국은 이익이 밑바탕이 되어 있을 때 가능하다. 잠만 쿨쿨 자는 당나귀도 제 먹을 콩 실으러 가자고 하면 따라 나선다.
기업에서 사람을 움직이는 핵심은 결국 당근과 채찍이다. 마키아벨리는 지나친 당근책으로 기업이 망하기보다는 적절하게 채찍을 가해 회사를 발전시키는 경영자가 진정한 리더라고 했다. 당근과 채찍은 회사가 먼저냐, 직원이 먼저냐 하는 설익은 논쟁거리가 아니다. 양자 모두 중요하다. 회사가 망하면 개인도 존재할 수 없다. 회사의 목적은 번영이다. 환경에 적응하여 번영하는 기업이 승자다. 비록 과정이 일부 비민주적이고 비도덕적이라 하더라도 살아남는 것이 현명하다. 강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자라는 케케묵은 경구를 들추지 않더라도 결국 살아남는 자가 승자다.
마키아벨리도 군주론 전반에 걸쳐 적자생존의 법칙을 강조한다. 밥을 위해서는 고지식하게 도덕이나 원칙에 매몰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그것을 탈피하는 것이 필요하다. 뜬구름 잡는 허황된 도덕논리보다는 현실적인 목구멍 논리를 고려하라는 것이다. 밥은 도덕보다 강하다. 밥은 현실이고 도덕은 이상이다. 밥 위에 도덕이 존재하지 도덕 위에 밥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 현실 위에 이상이 존재한다. 경영자는 한 달만 직원 월급을 제 날짜에 주지 못해도 노동청에 불려가고 악덕기업인, 무능한 경영자로 낙인찍힌다.
대학 동창인 K는 몇 해 전, 신설 민간담배회사의 CEO로 재임한 적이 있었다. 미국 발 금융위기로 독일에 주문한 기계 값이 급격한 환율변동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기계구입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자금은 묶이고 급여 지급이 미루어지자 직원들은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강구하기보다는 오직 밥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회사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던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180도 태도가 돌변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 회사는 문을 닫았고 직원들은 떼를 지어 노동청에 대표이사를 고발했다. 회사자산을 처분하여 직원들은 밀린 급여는 물론 퇴직금까지 받았지만, 대표였던 K는 여러 차례 노동청에 불려가 조사를 받던 중 결국 재판에 회부되어 벌금형을 처분 받고 사건은 종결되었다. 매출이 인격이고 돈이 실력이다. 이익이 안 나는 조직은 존재할 수 없다. 두 달만 제때 월급이 지급되지 않으면 미련 없이 짐을 싼다. 이익이 나지 않는 회사에 기업철학이니 기업문화니, 핵심가치가 어쩌구 미래비전이 저쩌구 해 봐야 뜬구름 잡는 소리일 뿐이다. 배고픈 직원은 존재할 수 있지만, 밥 굶는 직원은 존재할 수 없다. 제때 급여를 지급하지 못한 회사 책임이 크지만, 그렇다고 어려움에 처한 회사를 나 몰라라 하며 뒷짐만 지고 밥만 내놓으라고 닥달하는 직원들도 바람직한 자세는 아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곳곳에서 경영자들은 평상시 직원들의 충성 맹세를 믿지 말라고 했다.
임진왜란 당시 한 포르투갈 신부의 전언에 의하면, 조선군은 고구려처럼 청야전술로 일본군을 괴롭혀 속된 말로 씨를 말렸다고 한다. “조선인들은 산성으로 피신하면서 갖고 갈 수 있는 것은 모두 갖고 갔고, 심지어 추수하지 않은 들판의 곡식까지 깡그리 먹지 못하게 망쳐 놨다. 밤에 물을 길으러 가보면 못물에 시체가 떠 있다.” 식량을 없앤 것은 물론이고 물도 마시지 못하게 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군은 급한 마당에 물에 시체가 떠있든 말든, 썩었던 말든 일단 물이라면 목구멍으로 넘겼다. 마침내 조선군에 투항하는 일본군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가장 큰 이유는 밥이었다. 아무리 군기로 무장된 군인이라 해도 밥을 못 먹는 데는 버틸 재간이 없다. 밥 앞에서는 국가도 애국심도 없다. 밥은 이처럼 무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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