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파트 역사 27

27. 우리나라 아파트 가격의 변천사, 2025년 제8차 폭등 올까?

1851년 에서 “누가 고래에서 철학을 찾았을 것이며, 고래 기름에서 시를 찾았겠는가?” 라는 찬사를 받은 19세기 최고의 미국 소설이자 인류 역사상 최고의 소설 중 하나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허먼 멜빌의 , 정치학의 고전이자 근대 정치학의 선구자인 마키아벨리가 역사상의 여러 군주 및 군주국을 분석해 군주의 자리에는 어떻게 오르며, 군주가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현실적으로 논한 명저인 , 당대 최고의 고전들이 그러하듯 출간 당시에는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다. 2001년, 우리나라의 아파트 가격의 변천사를 담은 최명철의 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출간 당시에는 업계의 주목을 그다지 끌지 못했다. 사실 부동산 관련 책이나 자료는 시기가 중요하다. 과거의 책이나 통계는 이미 철지..

26. 한국 최초로 <택지개발촉진법>을 적용한 아파트, 개포주공아파트(1981년)

전두환 정권이 처음 도입했던 의 첫 사례인 개포주공아파트는 1981년 현대건설에서 지은 아파트다. 1980년대 당시 강남개발로 인해 사람들이 몰리자 정부는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하여 주공아파트를 여러 곳에 짓기로 했다. 대표적인 곳이 개포주공아파트와 개포시영아파트이다. 개포주공아파트는 1단지에서 4단지까지 지어졌으며, 현재 재건축을 기다리고 있다. 이전부터 재건축계획은 있었으나 여러 문제로 인해 계속 미루어지다 최근 들어 조합이 설립되는 등 사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의 용적률 축소로 인한 층수 제한에 많은 논란이 일면서 갈등은 있었으나 현재는 용적률 300%로 동의가 된 상태로 이제 최종허가만 받으면 된다. 서울시는 역사성을 감안하여 개포주공아파트 1개 동을 보존하기로 하였으나 조합원들로부터 ..

25. 한국 최초의 특혜분양사건, 압구정 현대아파트(1976년)

1976년 현대건설에서 지은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강남개발의 신호탄이었다. 현대건설은 1975년 공유수면매립공사에 대한 대가 형식으로 땅을 불하받아 압구정 부지에 중대형 6,000여 세대의 아파트촌을 조성했는데 바로 압구정 현대아파트다. 현대아파트는 중ㆍ상류층의 아파트단지로 명성을 떨쳤고,‘강남 아파트’가 욕망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일조했다. 강남개발이 진행되면서 강남으로 인구가 집중되면서 도시가 극도로 팽창하자 주거시설이 부족했다. 지금은 ‘강남’이라고 불리는 영동지구를 중심으로 도시의 성장과 변화의 물결이 한강 변을 따라 퍼져 나갔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우리나라 산업화의 상징이자 고도 경제성장과 공간 팽창을 널리 알리는 표상이었다. 엘리베이터와 수세식 화장실을 갖춘 고층아파트는 우리나라 고도성장의..

24. 한국 최초의 대단지 아파트, 반포주공아파트(1973년)

1971년 들어 허허벌판 황무지 섬, 여의도를 개발하여 10층이 넘는 시범아파트를 건설한 경험을 살려 1972년부터 중산층들을 위한 주공아파트가 반포동, 삼성동 등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아파트 개발 붐이 불기 시작했다. 반포주공아파트는 1973년 대한주택공사가 건설한 우리나라 최초의 대단지 주공아파트였다. 22평~42평형대 3,786가구의 대단지로서 주공아파트가 강남과 더불어 우리나라를 "아파트 공화국"으로 만드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시발점이 되었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로 복층 설계를 도입하여 6층이나 1,3,5층에만 현관을 설치하였고, 나머지 2,4,6층은 실내에 설치한 계단을 통하여 올라갈 수 있도록 설계했다. 게다가 지역난방시설까지 겸비한 그야말로 최신형 아파트였다. 이후 반포주공아파트는 1단지..

23. 한국 최초로 모델하우스를 선보인 아파트, 한강맨션(1971년)

1960년대 후반부터 동부 이촌동에 백사장 등을 매립하여 외국인아파트와 공무원아파트, 지금도 남아있는 한강맨션 등이 지어지면서 우리나라에 비로소 현대적 의미의 아파트 단지들이 완성되기 시작했다. 특히 1971년 660세대 규모로 대한주택공사에서 지은 한강맨션은 그동안 날림공사로 문제가 많았던 시민아파트의 싸구려 이미지를 벗으려고 ‘아파트’ 대신 ‘맨션’이라는 명칭을 붙였는데 이것이 주효했다. 계약 1호는 27평형을 구입한 탤런트 강부자였다고 한다. 뒤이어 고은아, 문정숙, 패티 김 등 연예인들이 줄지어 입주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분양이 대박 나자 아파트 건설에 미온적이었던 현대건설 정주영 사장이 장동운 대한주택공사 총재에게 “아파트 사업 그거 돈이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현대, 삼호..

22. 한국 최초의 복도식 주상복합아파트, 성요셉아파트(1971년)

‘성요셉’글자 자체로도 종교성과 상상력을 자극한다. 카톨릭 성자의 이름이다. 서울 중구 중림동 149번지, 서소문역사공원으로 가는 길목에 나지막히 자리한 성요셉 아파트, 1971년 6월에 약현성당이 지은 1개 동 67세대이다. 약초가 많아 약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약현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성당인데, 명동 성당보다도 6년 앞선 1892년에 세워졌다. 사적252호로 지정되어 있는 약현성당은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지은 것이 특이하다. 드라마 의 구담성당이 바로 약현성당이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할 정도다. 건물은 휘어진 길을 따라 비스듬하게 휘어져 있으며 경사진 언덕에 위치해서인지 건물마다 입구가 있는 층이 다르다. 한 개 동으로 구성된 아파트지만 전..

21. 한국 최초로 하천 위에 지은 선형식아파트, 서소문아파트(1971년)

1971년 완공되어 1972년에 입주한 서소문아파트는 서대문구 미근동에 위치한 선형식 아파트다. 그 후 오래된 아파트의 재건축 바람이 불었지만 도심 한복판에서 50년이 다 되어 가는 서소문아파트는 아예 재건축 시도조차 없었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아무리 막강한 권력도 십 년을 못 간다), 한 번 흥한 것은 반드시 쇠퇴하기 마련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사진 : blog.naver.com/hyuni675/120197064132 서소문아파트도 한때 고급 주상복합아파트로 이름을 날렸지만 지금은 심각한 수준으로 낡았지만 재건축·재개발 기대감은 ‘제로’다. 하천을 덮은 후 하천을 따라 115m 길이로 지어진 서소문아파트는 시대가 바뀌면서 하천부지 위에는 ..

20. 한국 최초의 고층아파트, 여의도 시범아파트(1971년)

와우아파트 붕괴로 아파트는 위험하다는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더 높고 더 쾌적한 중산층을 위한 시범아파트가 등장하게 된다. 1971년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지어진 시범아파트는 우리나라 최초의 대단지 고층 아파트이자 여의도에 지어진 최초의 아파트였다. 삼부토건, 현대, 부국, 대림, 한국건업, 건설산업, 모양건설 등 여러 건설회사가 시공을 맡았다. 물론 이전에도 시범아파트라는 명칭을 가진 아파트는 존재했으나 대부분 시민아파트의 개량형인 것에 반해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최초의 단지형 고층아파트로 지어졌다. 당시 시범아파트를 지은 배경은 토목공사를 마치고 여의도 땅을 분양하였으나 여의도에 건물을 짓겠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로 인해 여의도가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서울시가 시범적으로 고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