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경영/멘토-리더십

'안철수 사용설명서'를 다시 써야 할 까닭

김부현(김중순) 2012. 7. 17. 10:57

멘토다.

그것도 정직하고 논리적이며, 소명의식과 공감 능력이 탁월한 멘토다.

그런데 리더는 아니다.

권력의지가 없고, 해법도 아직이다.

남은 반년 안에 리더가 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안철수.

대선을 반년도 채 남겨놓지 않은 지금, 대선 출마 여부를 밝히지 않고도 지지율 투톱을 달리는 유력주자. 하지만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지금껏 제대로 이해된 적이 없다. 언론은 그의 강연에서 정치 참여 여부와 관련된 '한마디'에만 집중했다. '제목이 될 만한 말'만 뽑아내려 한 셈이다. 그 때문에 3월27일 서울대, 4월3일 전남대, 4월4일 경북대, 5월30일 부산대로 이어지는 네 번의 강연 이후에도, 보도를 본 대중이 기억하는 것은 "인물보다 사람을 보고 뽑자" "주어진다면 정치도 감당할 수 있다" 식의 단편적인 정치 관련 언급이 전부다. 하지만 강연록을 보면 안 원장의 정치 관련 언급은 그야말로 사족에 불과하다.

< 시사IN > 과 의미네트워크 분석 전문기업 트리움(TREUM)은 그의 말에서 '제목' 대신 '안철수'를 찾아보기로 했다. 2009년부터 이어진 안 원장의 청춘콘서트 발언록과 지난해 9월 서울시장 출마 검토 당시의 언론 인터뷰를 분석한 자료를 기본으로 해서, 올해 들어 4개 대학에서 진행한 강연록을 분석해 대조해봤다.

 

네 가지가 궁금했다.

첫째, 안철수는 어떤 사람인가.

둘째, 정치인도 아닌 그가 왜 유력 대선주자가 됐나.

셋째, 2012년의 안철수는 청춘콘서트의 안철수와 뭐가 달라졌나.

넷째, 그의 지지자들조차 '안철수 대통령'을 상상할 때면 떠오르는 묘한 불안감은 어디서 오나.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 시사IN > 과 트리움이 사용한 담론 네트워크 분석기법은 발언 내용을 사람이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컴퓨터의 계산에 의존한다. 발언에서 각 키워드가 등장하는 빈도는 물론, 키워드 간의 거리(이를테면 문장에서 각 키워드의 위치)와 키워드의 네트워크를 분석해 '담론 네트워크 지도'를 만든다. 지도에서 같은 색깔의 키워드들은 동의어 덩어리로, 화살표는 논리의 흐름으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다.

 

  

■ 안철수는 누구인가:리더가 아니라 멘토

 

< 그림 1 > 부터 보자. 안 원장의 발언 중 '중요'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어진 담론 네트워크 지도다. 안 원장이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본인의 자의식과 감성을 보여주는 자료다. 지도를 보면, 그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열정'적으로 '고민'하고 '일'한다. '인정' 욕구도 크다. 권력의지와는 다른, 명예욕에 가깝다. 이는 다시 '역사'에 자신을 비춰보는 특유의 태도로 이어진다. 결론은 "현 집권세력(당시 한나라당)의 정치적 확장에 반대한다"라는 유명한 발언으로 귀결된다.

 

 

이 지도를 보면 안 원장에게는 일종의 기독교적인 소명의식이 보인다. 본인의 적극적 욕망보다는 시대와 역사에서 자신의 쓰임새를 받겠다는 태도다. 안 원장은 경북대 강연에서 "사회 발전에 도구로 쓰이겠다. 제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저한테 주어진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전형적인 기독교적 소명의식이다. 자신이 권력의지를 갖고 추구하는 정치적 리더와는 거리가 멀다.

 

< 그림 1 > . 안철수 원장이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기 위해 '열정'적으로 고민하고 일한다.

기독교적 소명의식이 보인다.

 

다음 지도를 봐도 결론은 비슷하다. < 그림 2 > 는 지난해까지 '청춘콘서트의 안철수'를 보여주는 전체 담론 지도다. 사회의 '근본 문제'를 '인식'하고 '사회비판'을 하며, 본인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하지만, 모든 담론의 꼭짓점은 결국 '각오'다. 안 원장 본인이 한국 사회의 핵심 모순으로 파악하는 문제들을 두고, 담론의 결론은 해법 제시가 아니라 본인의 각오 문제로 귀결된다.

담론 지도에서 드러난 안 원장은 리더라기보다는 멘토다. 문제의 해법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 대신, 문제가 무엇인지 밝히고 고통 받는 청중에 공감하는 데 집중한다. 만약 역할이 주어진다면 '각오'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외에 해법은 찾아보기 힘들다.

경북대와 전남대에서 안 원장은 이런 말을 했다. "문제 해결은 공감에서 시작한다. 해결책이 중요한 게 아니라, 뭐가 문제인지 사람들 생각을 모으는 일 자체가 어렵다. 이것만 되면 해법은 나온다. 우리 외환위기 때 금모으기 했잖은가. 외화를 벌어야 한다고 모두가 문제를 인식하니까 해결책은 따라 나온다." 그의 담론지도가 문제 인식과 공감 형성에 극단적으로 기운 이유다.

멘토에게 필수 자질인 정직함도 포착된다. 분석을 총괄한 김도훈 대표는 안 원장을 두고 "이런 사람은 처음 봤다"라고 평했다. "담론 분석을 해보면 교차로 키워드(겉의미)와 깔대기 키워드(속의미)가 순위까지 같게 나온다( < 표1 > ). 이번에도 대학생 상대 강연이어서 겉의미가 높게 나온 '학생' 키워드 하나만 빼면 정확히 같다. 속내를 포장해 말하는 타입이 아니란 얘기다. 이런 사람은 정말 거의 없다."

 

< 그림 2 > . 청춘콘서트에서 보여준 안철수의 담론 지도.

사회의 '근본 문제'를 '인식'하고 '사회 비판'을 하며, 본인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하지만,

모든 담론의 꼭짓점은 결국 '각오'다.

 

안 원장은 경북대에서 본인을 둘러싼 숱한 추측을 두고 "정말로 제 말은 해석이 필요 없다. 있는 그대로 말한 거다. 해석하려다 보니 머리가 복잡해서 스텝이 꼬이는 거다"라고 '억울함'을 토로한 적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저런 '해석'이 그치지 않았다. 그런데 컴퓨터는 이번 분석에서, 안 원장의 저 말이 의외로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로 간주하는 정치권의 관측과 달리, 안 원장이 현재까지도 출마 여부를 '소명'을 기준으로 고민 중일지 모른다는 분석이다. 안 원장은 7월5일 저녁에도 기자들에게 대선 출마 결심이 섰느냐는 질문을 받고 "아니요, 허허"라고만 답했다.

 

■ 대선주자 안철수:문제는 해법이 아니다

 

'소명의식 강한 멘토 안철수'가 어쩌다 '대선주자 안철수'가 됐을까. 김도훈 대표는 안 원장과 다른 대선주자들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문제가 뭔지를 알아내고(A), 이걸 해결할 방법을 제시하는(B) 과정을 생각해보자. 정치권의 대선주자들은 A에서 조금이라도 답이 나왔다 싶으면 곧바로 B로 달린다. 해법의 차이에서 승부가 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안 원장은 A에 훨씬 더 오래 집중한다. '공감'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래서 대중은 다른 주자들보다 안 원장이 자신들의 문제를 훨씬 잘 알고 있다고 느낀다. 해법을 얘기하지 않는데도 그렇다."

안 원장도 이런 차이를 인식하는 것 같다. 서울대 강연에서 그는 "청춘콘서트의 핵심은 이해·동정이 아니라 같이 아파하는 것, 그러니까 공감인데, 정당 같은 데서 따라하는 걸 보면 이해·동정에서 그친다. 그러니까 한두 번 하다가 그만두게 된다"라고 말했다. 안 원장은 자신의 공감 능력이 청춘콘서트를 거치면서 각성했다고 자평한다. "청춘콘서트 초기에는 더 많이 배운 어른의 입장에서 가르쳐준다는 걸로 접근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면 교감이 안 되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고민을 듣기 시작했다. 한 단계 한 단계, 점점 눈높이가 같아지더라. 특히 지방대나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처음엔 머리로 이해하다가 어느 순간 아픔이 전달이 되더라. 같이 아프다. 정말로 아프다."(서울대)

 

 

 

이런 안 원장의 말에서는 '문제의식의 깊이'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부산대 강연에서 안 원장은 "여야 모두가 미래 이야기로 경쟁해야 하는데 과거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굉장히 민망하게 한쪽에서는 10년째 어떤 분의 딸이라고 공격하고, 또 한쪽에서는 싸잡아서 좌파세력이라고 공격하고… 구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안 원장이 파악한 '미래 이야기'는 뭘까. < 그림 3 > 을 보자. 2012년 4개 대학 강연 내용을 분석한 '안철수 담론지도 2012년판'이다. 모든 담론의 출발점은 '공감'이다. 그래야만 '사람'과 '사회'를 둘러싼 '문제'를 제대로 공유할 수 있고, 그로부터 해법도 나온다.

그런 과정을 거쳐 찾아낸, 안 원장이 강조하는 한국 사회의 문제는 이렇다. 지금까지 추격자 전략으로 성장해온 한국 사회는 성공이 검증된 모델을 수입해 적용해온 사회다. 이런 사회는 실패를 죄악시하는 문화가 있다. 하지만 이제 한국은 선도자 전략을 써야 하는 위치인데, 이는 수많은 실패 속에서 소수의 성공을 건져내는 사회다. 따라서 "실패를 용인하고 '두 번째 기회'를 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복지가 정말로 필수다. 복지는 나눠주는 게 아니라 '실패를 장려'하는 안전망이다." 여기서 핵심은 '실패'를 보듬어 안는 것인데, 이야말로 안철수식 공감 전략이 위력을 발휘하기에 최적인 주제다.

 

 

이렇게 2012년의 안철수 담론은 좀 더 구체화됐다. 청춘콘서트 시기까지 대기업의 불공정 관행에 대항하는 의미가 좀 더 강했던 '기회' 키워드는, 이제 사회 차원에서 '실패'를 용인하는 '두 번째 기회'로 진화했다. 구체적 방법론으로 '복지'도 처음으로 담론 지도에 등장했다. 청춘콘서트 시기까지는 부각되지 않았던 키워드다.

 

< 그림 3 > . 올해 4개 대학 강연 내용을 분석한 안철수 담론 지도.

'공감'으로부터 출발해야만 '사람'과 '사회'를 둘러싼 '문제'를 제대로 공유할 수 있고,

그로부터 해법도 나온다.

 

 

복지를 시혜가 아닌 성장동력으로 파악하는 이런 해법이 새롭지는 않다. 최근에는 장하준 교수의 베스트셀러에서도 보아온 논리다. 하지만 이런 '익숙한 해법'이 안철수식 '새로운 공감정치'와 만날 때의 시너지는 현재까지는 안 원장만이 가진 비교우위다.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은 별개로 치더라도, 야권의 어떤 후보도 '안철수 모델'에 근접하는 폭발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 왜 불안한가:리더가 아닌 멘토의 한계

 

안 원장의 소명의식에 기반한 멘토 정체성은 대중과의 공감에 큰 위력을 발휘하지만, 동시에 그의 최대 약점이기도 하다. 권력의지와 해법을 보여주는 리더의 모습이 아니어서다.

안 원장은 정치 참여와 대선 출마의 문제를 '주어지는' 문제로 파악해왔다. 가장 적극적으로 정치 참여 의지를 피력했다는 "긍정적 도구로만 쓰일 수 있다면 정치라도 감당할 수 있다"라는 발언(서울대)조차도 바탕은 권력의지가 아니라 소명의식이다.

권력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정치혐오 경향이 짙은 대중에게 장점으로 보일 때도 있지만, 이는 정치인으로서는 분명한 약점이다. 일상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뒷감당을 해야 할 대통령으로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유력한 증거가 된다.

 

권력의지가 없어 보이는 안 원장은 '정당이라는 파트너와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라는 의심도 받는다. 한국 사회의 복잡성이 무소속 대통령이 홀로 통치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믿는 유권자는 드물다. 하지만 안 원장은 정당의 문법하에서 직업 정치인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그의 담론구조에서는 정당정치에 대한 인식이 희박한 편이다. 전남대 강연에서 그는 "총선에서 정당보다는 개인을 보고 뽑는 게 좋겠다"라고 말했다.

"공감만 만들어내면 해법은 따라온다"라는 특유의 멘토식 해법이 어디까지 먹힐지도 미지수다. 분명한 국가 비전과 정책 대안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대선이 가까워올수록 커진다. 가장 최근인 부산대 강연에서 안 원장이 '복지' 키워드를 새롭게 강조한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다. 하지만 안 원장의 한 핵심 측근은 "부산대 강의는 워낙 지켜보는 눈도 많고 국가비전에 대한 요구도 많아서 그쪽으로 신경을 좀 썼다. 그래도 안 원장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그 이전 강의들이다"라고 말했다. 여전히 무게중심은 해법보다는 문제 인식과 공감에 가 있다는 얘기다.

 

"내가 자격이 있는지, 사회적 책무가 내게 주어질지는 사람들이 판단할 몫이지 나 스스로는 할 수 없다"(서울대)는 특유의 소명의식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는다. 안 원장의 고민이 길어지면서 "너무 재는 것 아니냐"라는 여론도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이미 출마를 결심해놓고 유리한 타이밍을 찾으려고만 한다는 비판인데, 정치공학으로 보면 근거가 없지 않다. 안 원장이 정치공학적 고려 없이 자신의 소명에 따라 고민이 길어지고 있다고 믿는다 해도,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여론도 지쳐간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 '안철수 사용설명서'를 다시 써라

 

트리움 김도훈 대표는 잠재적 파트너인 야권이 안철수 원장을 오해하고 있다고 본다. "야권은 안 원장을 자신들과 같은 정치인으로 간주하는 듯하다. 공동정부 제안이라든지, 경선 참여 최후통첩이라든지 하는 야권의 접근법을 보면 그렇다. 하지만 안 원장의 본질은 정치인이라기보다는 멘토다. 안철수가 내놓는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현실정치 세력인 자신들이 제대로 해결해내겠다는 '역할분담'의 의지를 보여주면, 의외의 돌파구가 열릴 수 있다."

 

 

노무현·정몽준 식 단일화 게임의 파트너로 취급하는 대신, 멘토 대접을 제대로 해주라는 얘기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멘토'와 '집행자'의 자리가 나뉘어 단일화 문제가 쉽게 풀릴 수 있다는 예측도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자신의 문제의식을 대신 집행해줄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한다면, 그때는 안 원장도 '각오'하고 '감당'할 것이다. 안 원장의 고민이 길어지는 이유는 이렇게 읽는 것이 옳다." 김 대표의 결론이다.

 

 

묘하게도, 안 원장의 강연록 중에도 비슷한 발언이 있다. 서울대 강연에서 안 원장은 이런 말을 했다. "예를 들어 제가 정치를 안 하겠다는 선언을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동안 긴장했던 정치 하시는 분들이 긴장 풀고 옛날로 돌아갈 거잖아요. 하겠다고 하면, 사방에서 공격의 대상이 되니까 긍정적 역할이 안 돼요. 그러니 우리 사회를 위한 가장 큰 역할은 이 자리에 있으면서 양쪽을 끊임없이 자극해서 쇄신의 노력을 다하게 만들자, 그거죠." 이 발언의 진위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말과 본심이 다를 가능성도 물론 있다. 하지만 어쨌든 안 원장이 자신의 역할을 상상할 때에 '리더'보다는 '멘토'를 먼저 떠올리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단지 상대가 대학생이냐 정치세력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글,사진 <시사IN>, 2012.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