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문화 전성시대] B급 전성 시대
스스로를 B급이라 부르는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초대박을 쳤다. 뮤직비디오는 유튜브에서 5000만건 가까이 조회됐고 우스꽝스러운 그의 말춤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중이다. B급 문화의 확산은 이뿐 아니다. 정통음악이라 부르기 힘든 이른바 개가수(개그맨+가수)들 노래가 음원차트 상위권을 장악했다. 맥락 없이 전개되는 가벼운 웹툰은 수천만 회 이상 젊은이 눈을 사로잡는다. B급 소재를 다룬 영화 '도둑들'은 1000만 관객을 끌어모았고, 기업들도 B급 스타일의 광고와 마케팅에서 기회를 찾는다. B급 기자를 자처한 매경이코노미 취재진이 B급 전성시대를 맞은 대한민국의 속살을 들여다본다.
B급, 사회 곳곳을 파고들다
엉성한 개가수(개그맨+가수)·맥락 없는 웹툰에 열광
"어제 무도 봤어? 간만에 봤는데, 역시 병맛지존이야." "오늘은 개콘 봐야지. 요즘 개가수가 대세야. 잠깐만 나 버카충 좀 하고." 이 대화를 듣고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면 TV나 인터넷을 즐기지 않거나 주변에 10대, 20대 청소년이 없는 경우다. 무도(무한도전)와 개콘(개그콘서트)은 요즘 잘나가는 TV 프로그램 이름이고 병맛과 개가수(개그맨+가수), 버카충(버스카드 충전)은 최근 B급 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유행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계기로 음지에 머물렀던 B급 문화는 더 파격적이고 과감하게 양지로 드러났다.
내용 형편없어도 재밌으면 그만
온라인에선 병맛만화(황당하고 어이없지만 풍자와 조롱의 내용을 담은 만화)가 인기다. 병맛은 '병신 같은 맛'의 줄임말로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서 생겨난 단어다. 어떤 대상이 '맥락 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을 뜻하는 인터넷 신조어다. 이 용어는 원래 비주류, 저급 문화 콘텐츠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무언가가 수준 이하일 때 '병맛 같은 정치인' '이런 병맛 같은 드라마'라고 표현한다. 주부들이 욕을 하면서 막장 드라마를 보듯, 병맛이라고 지적하면서 즐기는 식이다. 처음엔 상대방을 조롱하거나 비꼴 때 쓰였지만 요즘엔 거꾸로 기발하고 창의적인 행동이나 표현을 두고도 '병맛 같다'고 칭찬한다.
맥락도 뜻도 없지만 재밌으면 그만이다. 잘 만들어진 완벽함보다 무언가 조악하고 결핍된 어설픈 그림과 영상이 소위 '찌질이'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기 때문이다. MBC '무한도전'은 평균 이하의 남자들이 벌이는 무모한 도전이라는 포맷으로 PD와 출연진 모두 B급 정서를 전면에 내세워 성공한 장수 프로그램이다.
얼핏 욕처럼 들리는 개가수는 개그맨과 가수의 합성어로 가수같이 노래하는 개그맨을 뜻한다. 개그맨 유세윤과 뮤지가 결성한 UV, KBS '개그콘서트'의 신보라·박성광·정태호로 구성된 용감한 녀석들, MBC '무한도전'의 유재석과 이적이 결성했던 처진 달팽이, 정형돈과 래퍼 데프콘이 만든 형돈이와 대준이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사실 노래하는 개그맨 가수들은 예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요새 개가수들은 단순히 인지도에만 의존하지 않고 기존 노래 가사가 가진 통속성이나 상투성을 뒤집으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 B급은 A급에 비해 질이 확연히 떨어졌다. 하지만 요즘 대중문화는 겉만 B급 감성이지 콘텐츠 자체는 A급"이라 말했다. 이어 그는 "미디어와 기술이 발달하면서 과거 전문가들이 독점했던 음악, 사진, 작가 등 전문가 영역이 자꾸 줄어들고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생각만 있으면 악보를 못 보는 아마추어도 프로 뺨치는 음악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파격적인 성애(性愛)를 담은 소설이 작품성과 B급 포르노의 경계를 넘나든다. 국내에서 노년 남자의 욕망을 그린 '은교'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동안, 미국과 유럽에서는 '엄마들을 위한 포르노'라 불리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Fifty Shades of Grey)'가 3000만부 이상 판매되며 출판가를 휩쓸었다. 이 소설에는 채찍, 쇠사슬, 수갑 등을 사용한 SM(사디즘+마조히즘) 성관계가 노골적으로 등장한다. 이 같은 로맨틱 포르노는 과거부터 음지에서 조용히 생산, 소비돼온 하위 문학 장르였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요즘 일반인들은 대중문화를 일방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만들면서 거꾸로 대중문화에 영향을 준다. 전문가의 벽을 부수고 있는 과도기 상황이다 보니 B급 문화라는 기존의 개념을 가져와 표현하는 것일 뿐, 앞으로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다른 신조어가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매경이코노미>, 2012.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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