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프랑스의 졸업시험문제는 독특하다고 알려져 있다.
자세히 보면 독특한 것이 아니라 수준이 높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아래는 프랑스 고등학교 졸업시험 문제다.
공자도 맹자도 울고 갈 수준이다.
그런데 대학이 아니라 고등학교 졸업시험 문제라는 걸 한 번 더 강조하고 싶다.
한국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내 머리통을 쥐어짜 봤지만 산업화와 속도에 매몰된 지식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임을 통감했다.
능력부족인 내 탓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교육제도 탓도 조금은 있을 거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처음부터 프랑스는 우리나라와 교육체계나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불가능하다.
-사진 : www.tour-eiffel.fr
하지만 우리나라가 세계기능올림픽 대회에서 금메달을 휩쓸지만 노벨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가져본다.
그럼 이처럼 중요한 인문학에 대한 공부를 왜 안 하는 걸까?
지혜가 아닌 지식을 추구하는 탓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두 가지인 것 같다.
첫째,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 유수의 대학에서조차 인문학관련 학과가 통폐합 되거나 폐지되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모두 돈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미래에 닥쳐올 심각성을 알면서도 교육종사자들 대부분 함구하고 있다.
둘째, 결과가 금방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인문고전을 몇 권 읽는다고 해서 겉으로는 금방 표가 나지 않기 때문에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필요없다고 단정해 버린다. 고전을 몇 권 읽는다고 갑자기 공자가 되고 니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 1만 시간의 법칙'이 가장 유효하게 작동되는 곳이 고전읽기다. 반면 영어 단어는 외우면 금방 표가 난다. 그래서 학생들 역시 십중팔구는 고전을 읽기보다 영어단어를 외우고 있다.
세계에서 영어단어를 가장 많이 알고 있으면서도 대화를 가장 못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의 영어교육시스템이라고 한다. 항간에는 우리나라 영어교육을 빗대어 '영어를 못하게 가르친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들이 떠돈다. 영어를 오래할수록, 단어를 많이 알수록 더 말을 못한다는 것이다. 영어학원이 아닌 고전학원, 인문학학원이 많아지는 순간이 우리가 선진국에 진입하는 시점이다. 선진국이 되고나서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책을 읽어서 선진국이 된 것이다.
프랑스 고등학교 졸업 시험 문제
1장 인간(Human)
Q1-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Q2-꿈은 필요한가?
Q3-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을까?
Q4-지금의 나는 내 과거의 총합인가?
Q5-관용의 정신에도 비관용이 내포되어 있는가?
Q6-사랑이 의무일 수 있는가?
Q7-행복은 단지 한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인가?
Q8-타인을 존경한다는 것은 일체의 열정을 배제한다는 것을 뜻하는가?
Q9-죽음은 인간에게서 일체의 존재 의미를 박탈해 가는가?
Q10-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나?
Q11-행복은 인간에게 도달 불가능한 것인가?
2장 인문학(Humanities)
Q1-우리가 하고 있는 말에는 우리 자신이 의식하고있는 것만이 담기는가?
Q2-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Q3-철학자는 과학자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Q4-역사가는 객관적일 수 있는가?
Q5-역사학자가 기억력만 의존해도 좋은가?
Q6-역사는 인간에게 오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에 의해 오는 것인가?
Q7-감각을 믿을 수 있는가?
Q8-재화만이 교환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Q9-인문학은 인간을 예견 가능한 존재로 파악하는가?
Q10-인류가 한 가지 언어만을 말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3장 예술(Arts)
Q1-예술 작품은 반드시 아름다운가?
Q2-예술없이 아름다움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가?
Q3-예술 작품의 복재는 그 작품에 해를 끼치는 일인가?
Q4-예술 작품은 모두 인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가?
Q5-예술이 인간과 현실과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4장 과학(Sciences)
Q1-생물학적 지식은 일체의 유기체를 기계로만 여기기를 요구하는가?
Q2-우리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Q3-계산, 그것은 사유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Q4-무의식에 대한 과학은 가능한가?
Q5-오류는 진리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Q6-이론의 가치는 실제적 효용가치에 따라 가늠되는가?
Q7-과학의 용도는 어디에 있는가?
Q8-현실이 수학적 법칙에 따른다고 할 수 있는가?
Q9-기술이 인간조건을 바꿀 수 있는가?
Q10-지식은 종교적인 것이든 비종교적인 것이든 일체의 믿음을 배제하는가?
Q11-자연을 모델로 삼는 것이 어느 분야에서 가장 적합한가?
5장 정치와 권리(Politics&Rights)
Q1-권리를 수호한다는 것과 이익을 옹호한다는 것은 같은 뜻인가?
Q2-자유는 주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싸워서 획득해야 하는 것인가?
Q3-법에 복종하지 않는 행동도 이성적인 행동일 수 있을까?
Q4-여론이 정권을 이끌 수 있는가?
Q5-의무를 다하지 않고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가?
Q6-노동은 욕구 충족의 수단에 불구한가?
Q7-정의의 요구와 자유의 요구는 구별될 수 있는가?
Q8-노동은 도덕적 가치를 지니는가?
Q9-자유를 두려워해야 하나?
Q10-유토피아는 한낱 꿈일 뿐인가?
Q11-국가는 개인의 적인가?
Q12-어디에서 정신의 자유를 알아차릴 수 있나?
Q13-권력 남용은 불가피한 것인가?
Q14-다름은 곧 불평등을 의미하는 것인가?
Q15-노동은 종속적일 따름인가?
Q16-평화와 불의가 함께 갈 수 있나?
6장 윤리(Ethics)
Q1-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반드시 자신의 욕망과 싸운다는 것을 뜻하는가?
Q2-우리는 좋다고 하는 것만을 바라는가?
Q3-의무를 다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Q4-무엇을 비인간적인 행위라고 하는가?
Q5-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것에도 가치가 존재하는가?
Q6-무엇이 내 안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 지를 말해 주는가?
Q7-우리는 정념을 찬양할 수 있는가?
Q8-종교적 믿음을 가지는 것은 이성을 포기한다는 것을 뜻하는가?
Q9-정열은 우리의 의무 이행을 방해하는가?
Q10-진실에 저항할 수 있는가?
Q11-진리가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할 때 진리 대신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환상을 좇아도 좋은가?
프랑스는 매년 연례행사처럼 졸업시험에 어떤 문제가 출제될지 전 국민이 관심을 갖고 기다릴 정도다.
문제출제 의도가 대학에 진학하느냐, 못 하느냐를 결정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문제들을 풀어보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적어도 자의식을 가지라는 의미라고 한다.
시험 당일 문제가 출제되면, 프랑스 사람들은 저마다 신문을 사들고 커피숍이나 독서실에 모여 자신의 생각을 나누기도 한다.
상상만 해도 부럽다. 사찰이나 교문앞에서 찹쌀떡을 붙이고 기도하는 우리네 모습과는 다르다.
개인적으로 특히 '정치와 권력', '윤리' 분야가 예사롭지 않다.
문제 자체를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다.
사법고시 못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식의 문제를 출제할 수도 없고, 채점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데 불행이 있다. 나아가 채점을 할 만한 교사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기술과 단편적 암기에 익숙한 시스템으로서는 이런 시험문제는 출제도 채점도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설령 출제를 해서 학생들이 시험을 쳤다고 해도 채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보는 사람에 따라 채점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우리나라 국민정서상 채점 결과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끊임없이 테클을 걸고 이의를 제기하면서 사회혼란만 가중될 것이 불보듯 뻔하다.
그래서 사지선다형 내지는 단답식형 지식 수준에서 그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국민소득 2만불과 5만불의 차이가 결정된다.
국민소득 5만불, 즉 선진국은 기술력과 경제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소위 '돈 안된다고 내팽개친 인문학'이 우리에게 던지는 경고이자 가르침이다.
'다빈치경영 > 창의력-상상력' 카테고리의 다른 글
B급 문화 전성시대 (0) | 2012.09.03 |
---|---|
관점을 바꾸면 기적이 시작된다 (0) | 2012.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