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있는 산행기/남부지역

스토리가 있는 산행기-신불산 억새

김부현(김중순) 2012. 10. 28. 23:30

 

-간월재 휴게소, 간월재 억새평원

 

-산행일정 : 배내골 사슴목장입구 주차장~임도~간월재~억새평원~간월산 전망대~원점회귀

-거리 : 11km

-소요시간 : 4시간

 

 

억새군락지의 원조, 울산 간월재에 다녀왔다. 표시 부분을 따라 걸었다.

걷기 좋은 임도다. 거리는 왕복 11km이지만 힘든 구간은 없다. 산책하듯 걸을 수 있는 고즈넉하고 편안한 길이다.

부산사상에서 출발하여 대동IC~서울산IC에서 내려 언양~석남사~배내고개까지는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배내고개에서 약간 눈을 크게 떠야 한다. 배내고개에서 많은 산객들이 영남알프스의 대표적인 억새 평원인 간월산이나 신불산으로 산행기점을 잡는다.

하지만 표시 구간을 걷기 위해서는 배내고개에서 약1km정도 배내골방향으로 더 내려가야 한다. 고개에서 급경사가 시작될 무렵 좌측으로 조그만 주차장이 있고 산불감시초소가 보인다. 차량을 통제하는 곳이다. 주차장에서 출발한다.

 

 

더 자세하게 입체적으로 표시된 지도이다.

완만한 오르막 임도다.

 

 

임도는 평평하고 편안한 길이다. 남녀노소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쉬엄쉬엄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오래전에는 간월재까지 차량이 다녔다. 그 때 두 번 다녀온 기억이 난다.

그러나 지금은 차량 출입은 안된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사람들, 처음 만난 이들이다.

간월재에서 야영을 하고 일출 사진을 찍고 간다는 출사자들이다.

 

 

출발지에서 뒤돌아본 풍경이다.

한바탕 비가 지나가자 가을은 저만큼 깊어졌고 하늘은 청명했다.

기상대에 따르면, 어제는 부산에 무려 79년 만에 10월 하루 강수량이 최고였단다.

130mm.....

가을을 무색하게 한 비였다.

조용히 내린 것이 아니라 요란하게 내렸다.

그 탓에 높은 하늘만큼이나 바람은 세차게 불었다.

 

 

 

 

 

모퉁이를 돌자 멀리 영남알프스의 한 자락인 표충사 뒤의 재약산과 천황산이 손에 잡힌다.

그 유명한 억새군락지인 사자평이다. 사자평은 과거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있는 학교가 있었던 곳이다. 고사리분교다. 지금도 그 학교터의 흔적은 남아 있다. 사자평 하늘엔 손오공이 구름놀이를 하고 있다.

 

 

모퉁이들은 시루떡처럼 겹겹이 포개지면서 시야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능선의 북쪽 사면은 무지개빛 원색 단풍들이 억새들과 합장을 하고 있다. 배내골에서 간월산으로 향하는 봉우리다.

걸어온 임도의 흔적이 산허리를 따라 길게 이어져 있다. 그러나 산에 난 임도는 걷는 이들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지 않는다. 길은 산허리의 가장 완만한 부분들을 골라 고불꼬불 굽이친다. 임도는 길고도 질겼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알 길이 없다.

비가 내린만큼 하늘은 맑았고 햇살은 깔끔했지만 바람살은 찼다.

 

 

 

한 번의 떠남은 한 번의 인생이다.

배낭을 맸다 돌아온 뒤에는 또 다른 삶 하나를 살아본 느낌이다. 산을 하나 오르고 난 뒤에는 새로운 인생을 경험한 느낌이다. 배낭을 메고 내딛는 발걸음이 늘어갈수록 더 중후한 삶을 만들어 준다. 길에서 산에서 들에서 만난 바람과 나무와 풀들에게 꿋꿋함과 진실됨을 배운다.

여러 모퉁이를 굽이 돌았다.

저 모퉁이를 돌면 간월재 억새평원이다.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기까지는 귀찮고 어렵다.

하지만 대문을 나서는 순간이 곧 절반의 성공이다. 빼곡히 짜여진 일정표에 열심히 살고 있다는 위안을 받았다. 그러니 헐렁한 일정표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빡빡한 스케줄은 지금 어디를 무엇을 향해 있는지. 바쁜 것이 능사가 아니라 왜 바쁜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방향성이다.

하루도 한 달도 나아가 인생도 방향성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방향성에 매몰되면 현재의 위치 판단이 어렵다. 항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나 목적지가 아니라 현재의 위치판단이다. 현재의 위치를 알아야 방향성도 목적지도 알 수 있다.

가끔 나도 그랬다. 아니 누구나 그럴 때가 있을 것이다. 위치와 방향성과 목적지가 분명치 않아 삶이 두려워지는 순간들이....

그런 두려움들을 해방시키고 해결책을 제시래 주는 것이 길떠남이리라. 얻기 위해서 버려야 하고 머무르기 위해서 떠나야 한다. 떠남을 길을 통해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에게 길은 학교였고 여행은 족집게 과외였다.

산은 학교였고 인생 공부였다.

퇴계 이황 선생도 “산에 드는 것은 책을 읽는 것과 같다”고 했다. 아무리 물을 줘도 변함없던 콩나물이 어느 날 쑥쑥 자라는 것처럼 배낭을 멘 횟수가 쌓여갈수록 마음도 쑥쑥 자라고 있었다. 바람에 춤추는 억새들이 요런스럽다. 

 

 

산에도 바다가 있다. 산에도 계절이 있다.

가을이 턱밑까지 차오르자 간월재 억새평원에 은빛 물결이 춤을 추고 있었다. 바람이 물결을 일으키고 물결은 이내 다시 넘어져 바람을 맞는다. 은빛으로 일렁이는 억새밭은 산을 바다로 만든다.

부산에서 차로 1시간 가량을 달리고, 1시간 50분을 걸어 도착한 곳, 간월재 억새평원이다.

보이는 봉우리가 간월산이다. 봉우리 아래 8부 능선 바위에 간월산 전망대가 있다. 물밀듯이 오가는 사람들이 질서정연하다.

 

 

제일 먼저 마주친 간월재 대피소다.

몇 번 다녀간 간월재는 많이 바뀌어 있었다. 억새는 그대로인데 여러가지 구조물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편리함은 간월재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었다. 걸어서 한 두시간이면 왔다갈 수 있는 곳에 대피소가 있다는 사실...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다.

간월재는 설악산도 아니고 히말라야도 아니다.

자연 그대로 두자. 제발.....

 

 

영남알프스 바람도 쉬어가는 간월재(해발 900m)---

 

간월재는 신불산(1,159m)과 간월산(1,068m)의 능선이 내려와 만난 자리다. 흔히 '재'라고 하면 '고개'를 말한다. 그런데 간월재는 솟아오른 고개가 아니라 두 산 봉우리 사이의 '골짜기'같다. 두 산을 연결하는 이음새 역할을 하는 곳이자 쉼터다. '간월재'보다는 '간월골'이 더 어울릴 경우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누가뭐래도 간월재는 어엿한 고개다.

남북으로 선을 그어보면 신불산과 간월산 사이의 골짜기이지만, 동서로 선을 그으면 등억온천과 신불산자연휴양림을 연결하는 고개가 된다. 산 봉우리에서 보면 아래로 움푹 패였지만, 아래에선 두 산 사이를 넘는 가장 빠른 고갯길인 셈이다.

 

 

노랫말처럼 "아!~~ 옛날이여..."라는 말이 나온다.

예전에는 이런 목책로도 휴게소도 나무데크도 그리고 목책계단도 없었다. 경계도 없었다. 자연 그대로였다. 자연이 곧 나였고 내가 곧 자연이었다.

2012년 간월재는 자연과 인간이 철저하게 경계되어 있었다.

인간의 때로 가득했다.

휴게소 주변에는 컵라면과 사과껍질과 과자부스러기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밧줄을 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계단을 만드는 것만이 자연보호가 아니다. 밧줄을 치는 경계는 가장 하위 수준이다.

선을 그어 출입을 통제하기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그 단절의 경계를 만드는 것이 옳다.

 

 

 

간월재의 상징물, 돌탑이다.

 

 

 

 

휴게소에서 본 작천정 등억온천지구다.

 

 

 억새밭 사이로 조성된 나무데크를 따라 걸으며 온몸으로 억새 물결을 헤친다.

바람이 들린다.

억새가 부른다.

억새가 노래한다.

피부에 바람이 닿기도 전에 이미 억새에 부딪쳐 부서지는 바람이 살갑고 차다.

가을 바람이었다.

억새밭은 그렇게 부산스럽게 수선을 떨고 있었다.

하긴 작은 바람에도 강남스타일에 맞춰 춤을 추는데 머릿결을 출렁이는 이런 바람은 갈대에겐 생과 사를 넘나드는 바람일게다.

억새평원에선 누구나 모델이 되고 시인이 된다.

 

 

 

억새는 늦가을과 초겨울의 풀이다.

두 계절에 아스라히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늦가을에 하얀 바다를 이루다 초겨울이 되면 장렬히 풍화한다. 꽃씨를 뿌리고 후일을 도모한다.

내일을 예비하기 위해 아픔을 선택하는 것이다. 물 한방울 없는 팍팍한 땅에서 질긴 생명을 이어가다 초겨울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억새의 운명은 무겁고 엄중하다. 척박함에 지칠만도 하지만 이듬해에도 어김없이 습기가 빠진 메마른 땅에 다시 태어난다.

 

 

 

가을을 타는 이름 모를 한 남자는 억새를 이렇게 노래했다.

수백, 수천, 수만 물비늘 떼 또다시 몰려온다.

바람 따라 은빛 물결 출렁인다.

솜 같은 꽃이 바람에 흩날리고

햇빛을 받아 황홀한 은빛으로 반짝인다.

억새는 그렇게 가을 바람을 안고

가을 하늘을 빙빙 돈다.

보드라운 햇살 받아 사르르 사르르 웃음꽃 터뜨리고

휘영청 달빛 아래 사그락사그락 숨죽여 흐느낀다.

 

 

 

 

 

 

 

억새들의 천국, 우리나라 억새 일번지 영남알프스...

영남알프스는 밀양, 청도, 울산의 3개 시도에 모여 있는 해발 1천m 이상인 가지산, 운문산, 재약산, 신불산, 취서산, 고헌산, 간월산의 7개 산군(山群)이 유럽 알프스의 풍광과 버금간다는 뜻에서 영남알프스라 한다. 영남알프스는 풍광도 수려하지만 억새로 대표되기도 한다.

영남알프스 산군인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광활한 능선으로 펼쳐지는 억새밭의 장관은 다른 산에서 찾아보기 힘든 경관이다.

 

 

 

 

 

 

 

 

영남알프스 신불산에서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4km,

1시간 거리의 수백만평의 신불평원은 국내 억새평원중 가장 볼 만한 억새평원이다. 키가 작아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은 보기 어렵지만 억새사이의 잡풀이 거의 없는 억새평원이 마음을 시원하게 만든다.

멀리서 보면 마치 잔디밭 같다.

 

 

바야흐로 숲은 울긋불긋 불타들어 가는데 숲이 사라진 영남알프스 산허리엔 흰꽃 세상이 펼쳐져 있다.

눈이 시리다는 표현에 이럴 때 써 먹어라고 있는거다. 이른 아침 짙은 안개 헤치고 무던히 걸어 도착한 고개, 머리를 내민 한낮의 햇살 한줄기가 그만 사각거리는 억새 줄기에 대롱대롱 걸린다.

나무구조물을 걷어내면 더 멋진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통제의 반대는 자유다.

통제와 자유는 한뼘 차이다.

통제는 가장 쉬운 인간관리법이다.

이건 군대서 필요한 수단이다.

인간사엔 자유가 최고의 선이자 가치다.

 

 

 

 

 

 

 

 

 

뭇사람들의 침범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 켜는 억새꽃,

햇살에 살랑 바람에 서걱....

억새는 혼자 서 있기 힘겨워 어깨와 어깨를 부비며 군집을 이루어 바람과 친구가 된다. 억새는 군집을 이루지만 바람과 정면으로 맞서지 않는다. 바람의 방향에 몸을 맡겨 하나가 된다.

 

 

 

국립공원이 안전을 이유로 산을 파고 부수어 계단을 만들고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통에 우리나라의 고산들은 야성을 잃었다.

원시의 맛을 잃었다.

지금도 국립공원 곳곳에는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고 난리다. 이해하기 어렵다.

간월재에도 곳곳에 땅을 파고 나무데크를 설치했다. 산은 산다워야 하고 인간은 인간다워야 한다. 산이 속세와 소통하면 할수록 산 본래의 야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야성을 잃어가는 간월재 억새풀들의 투혼이 눈물겹다.

간월산 전망대에서 본 억새평원이다.

멋지다고 감탄만 할 일은 아닌듯, 어찌보면 돼지우리 같다. 서로를 못믿는 데서 이런 비극은 시작된다. 군대식 자연보호의 전형이다.

 

 

 

 

 

 

 

 

얼마 전 울산시는 2017년까지 거액을 들여 영남알프스의 억새군락지(283만㎡)를 전국 최대 규모로 새롭게 복원한다고 난리다.

억새가 훼손됐다는 것이 사업추진 논리다.

자연보호는 손을 대지 않고 그냥 두는 것이다.

이런 식의 자연보호는 또 다른 자연훼손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