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를 잡으려면 산 밖으로 끌어내라
최고의 병법서 <손자병법> 모공편謀攻篇에서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최고로 친다. “적국을 온전히 보존하면서 이기는 것을 으뜸으로 치고 적국을 쳐부수는 건 그 다음이다. 적군을 온전히 보존하면서 이기는 것을 으뜸으로 치고, 적군을 전멸시키는 걸 최고라 하지 않는다.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것을 최고라 한다.” 싸움의 목적은 승리다.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이기는 싸움이야말로 최상수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라”는 속담이 있다. 무모한 짓이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착한 생각이다. 적의 힘이 강한 곳에서 싸우는 것은 효과적인 전술이 아니다. 호랑이를 손쉽게 잡는 방법은 호랑이굴로 들어가기보다는 호랑이를 산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호랑이가 맹수인 것은 산속에 있기 때문이다. 산 밖으로 나온 호랑이는 더 이상 맹수가 아니다. 상대의 강점에 맞서 싸우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무모한 짓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평소에도 전쟁터의 지형지물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전술을 개발하는 것이 최고의 덕목이다”라고 했다. 이순신 장군의 강점은 해상 전투였다. 특히 남해안의 지형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항명으로 갖은 고초를 겪은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로 돌아와 다시 항명을 저지른다. 불과 12척의 전선만 남은 수군을 폐지하고 육군에 합류하라는 선조의 지시에 “지금 신에게는 전선 12척이 있습니다. 비록 전선은 적지만 제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한 적은 감히 우리를 깔보지 못할 것입니다.”라는 답신을 선조에게 보내고 왕의 명령을 거역한 것이다.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전쟁에서 승리한 장수와 왕의 명령에 따라 싸우다 전투에서 패한 장수 중 목이 달아나야 할 사람은, 왕의 명을 거역한 장수다. 이순신이 그랬다. 그는 왕의 명령보다 전시 상황을 더 잘 아는 본인의 전략적 판단으로 전쟁에서 이겼다. 그러나 결국 갑옷을 벗어던진 채 배의 선단에 서서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한다.
나라를 위해 용기 있게 싸워 이겼지만 기다리는 건 왕의 명을 거역한 반역죄뿐이었다. 그 이후 장수들은 전시의 판단이 아니라 ‘알아서 기는 아부적 전략’을 선택하게 되었다. 싸움 잘 하는 군인보다 아부 잘 하는 군인들이 더 출세한다는 것을 400년 전 이순신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국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최고 권력자를 위한 아첨이 난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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