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는 재개발지구를 굽이굽이 돌아 올라갔다. 진주가 나오겠다고 했던 중간 지점의 정류장에 다행히도 그녀는 아직 나와 있지 않았다. 버스는 종점까지 갔다. 그곳에서 내린 것은 나 한 사람뿐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낯설고 기이한 세상이 그래서 더더욱 믿기지 않았다. 집들이 모조리 부서져 있었다. 지붕이 주저앉고 벽이 무너지고 창문이 깨져, 사방에서 시멘트 먼지가 전쟁터의 포연처럼 피어올랐다. 뼈만 남은 짐승의 사체마냥 철골만 남은 가옥도 눈에 띄었다. 그 안의 누추한 살림살이들이 고스란히 비에 젖고 있었다. 살풍경한 배경과 어울리지 않게 샛노란 철모를 쓴 사내들이 쇠망치를 든 채 골목을 휘젓고 다녔다. 길바닥에 나앉은 주민 몇이 통곡을 하가 말고 철모들에게 욕을 버부었다. 다른 몇은 넋이 나간 듯 허공을 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