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舊 강촌역사(江村驛舍, 2012.03.10. 촬영)
촐삭대는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하늘은 깔끔했고 바람은 헐렁했다.
오늘도 겨울과 봄의 자리싸움이 치열하다.
강원도엔 눈이 내리고 남녘들엔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아침 저녁으로 영하로 내려갔다 해가나면 영상으로 오른다.
영하와 영상 두 쌍둥이들의 자리다툼 또한 앙증맞다.
철새들이 지구의 자기장을 통해 갈 길을 찾아가듯 내가 어디에 처해 있는가를 알아야 목적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목적지를 알고 있는 사람 그 얼마나 될까?
과거와 미래의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은 오늘이다.
지도와 나침반은 길을 찾을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인생에도 지도와 나침반이 필요하다고 스콧 팩이라는 사람이 말했다.
인생지도는 삶에 대한 열정과 방향성을 나타내는 이정표이기 때문이다.
현실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삶의 지형을 짚어 나가는 지도와 같다.
이 지도가 진실 되고 정확한 것이면 우리가 있는 곳을 정확히 알 수 있으며
어떤 곳을 가기로 결정했을 때 그곳에 도착할 수 있는 길을 알 수 있다.
지도가 거짓되고 부정확하다면 우리는 길을 잃을 것이다.
우리가 현실을 평가하고 인식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우리의 지도는 더욱 더 정확해진다.
지도가 정확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그것을 수정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지도를 고치기보다는 새로운 현실을 없애려 한다.
지도없는 삶에 일침을 가하기 위해 오늘도 짐을 쌌다.
바나나 두 개, 계란과 사과 한 개씩, 생수 한 통, 메모지와 검정 볼펜 한 자루 그리고 책 한 권에 카메라...
휴대품 목록이다.
등산화를 동여맸다.
깃털처럼 가벼운 배낭을 매는 것은 오랜만이다.
춘천행 전철을 탈 요량으로 상봉역에 도착했다.
상봉역의 역사적 위용은 대단하다.
1996년 10월 지하철 7호선 상봉역이 개통되었고, 2010년 12월 21일 중앙선과 경춘선 상봉역이 개통되어 환승역이 되었다.
마음병을 고치기 위해 강원도로 가려는 이들이 오갈 뿐만 아니라 주변 역들의 어른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의 목적지는 386의 세대의 낭만과 추억 일번지, '강촌역 추억찾기'다.
얼마전 경춘선 전철 안에서 단체객들이 바닥에 둘러앉아 술판을 벌였다는 기사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아무일 없었다는 듯 전철은 달린다.
시간은 단축되었지만 차창 밖 풍경을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 인간은 모든 것을 '빠르고 편하게'라는 어슬픈 논리를 앞세운다. 빠르고 편한만큼 마음은 병들고 추억은 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 있으면 -가 있는 법이다. 자연은 평등하고 공평하고 차별을 두지 않는다. 차별이 존재하는 곳은 인간사다.
가쁜 숨을 몰아치며 빠르게 빠르게 1시간 5분을 달려 기차는 깊은 산속 어느 역에 승객들을 토해내고 자취를 감추었다. 강촌역(Gangchon Station)이다. 경춘선 복선화 작업으로 2010년 개통한 신 강촌역사(江村驛舍)다. 휑하다. 또 다른 추억을 쌓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강촌역사앞 이정표.
강촌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좌 아니면 우다. 마치 정치 이데올로기처럼. 좌와 우를 다 가볼 작정이다. 다음 달의 총선 역시 이 두가지 이데올로기가 판세를 가늠할 것 같은 불길함이 엄습한다. 역사를 봐도 이념논쟁은 19세기의 유물이다. 박물관에나 가 있어야할 이념이 아직 우리나라를 정조준하고 있다. 시간이 약이겠지. 시간이...
북한강변의 강촌역은 강원도 춘천시에 있는 경춘선의 철도역이다.
2010년 12월 21일에 수도권 전철 경춘선이 개통되면서 역의 위치가 강촌리에서 방곡리로 이전되었으나, 역명은 그대로 강촌역으로 쓰고 있다. 토요일이라 제법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추억을 찾아 나선 사람들, 배낭을 맨 산꾼들 그리고 청춘 데이트족들이 대부분이었다.
1984년 11월 26일 최신형 무궁화호 기차 운행을 시작했던 강촌역은 2010년 12월 21일 약 28년여를 오갔던 그 달리기를 멈췄다. 28년간 차곡차곡 쌓아왔던 우리들의 추억과 낭만은 일순간 사라졌다. 하지만 역은 그대로였다. 변한 건 철길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빛 바랜 사진 한 장이 추억을 되돌려준다.
15분여를 걸어 도착한 곳은 추억의 때와 낭만의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구 강촌역사다.
강촌역사는 추억의 때를 잔뜩 뒤집어 쓴 채 깊이 잠들어 있었다.
역 앞을 흐르는 북한강은 그대로였다. 강물은 부딪히고 흩어지면서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강을 건너면 작은 마을이 있고, 고개를 넘으면 또 박사 마을이 있고, 산자락을 돌아나가면 또 다른 마을이 있다.
산과 강, 마을의 연속이다. 산세가 다르고 이름도 달라 저마다의 독특함을 지니고 있지만 자연 앞에서는 평등하다. 신 강촌역사는 강이 없는 산속에 있다.
강촌역으로 부르기보다는 산촌역이라 불러야 할 것 같다.
강촌역엔 강촌이 없다.
강촌과 북한강을 보려면 구 강촌역사로 가야 한다.
참 쉬웠다. 낭만과 추억 1번지 춘천 강촌역 가는 길이.
참 어려웠다. 편리함에 물들어 낭만과 추억을 쌓는다는 것이.
기차가 멈춘 강촌역사 앞 철길을 걷고 싶었다.
늘 한 방향에서만 보았던 그림을 반대쪽에서 보고 싶었다.
산판일을 하는 사람들은 큰 나무를 베어낸 그루터기에 올라서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라고 들었다. 잘린 부분에서 올라오는 나무의 노기가 사람을 해치기 때문이다. 철길을 보수하는 사람들은 레일 위를 걷지 않는 법이다.
레일을 피해 기차가 멈춘 반대쪽 철길 위에서 구 강촌역사의 모습을 담아봤다. 고즈넉하다는 말은 이럴 때 써먹으라고 있는 것일게다. 해발 485m의 강선봉이라는 거대한 바위산 아래 자리잡은 강촌역은 빛바랜 시간을 박제화한 듯 불편한 모습으로 추억을 갈망하고 있었다. 졸지에 버림받은 그 절규의 외침이 강물에 흘러간다.
새로운 추억과 청춘의 낭만이 그만큼 자리잡기까지는 또 얼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등산화 끈에 바람을 빼고 다시 발길을 돌린다.
구곡폭포를 거쳐 문배마을로 가련다. 강촌 시내를 지나 다시 신 역사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시내를 지나다 이색적인 간판을 발견했다. 발견이 아니라 그냥 있는 것이라고 해야 맞겠다. 늘 그자리에 그렇게 있었지만 이제 그것이 내 눈에 들어 온 것 뿐이다.
<여자를 쫓는 남자>라는 민박집 간판이다. 멋지다. 웃음이 났다.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저런 멋진 생각을 해낸 주인장을 만나보고 싶다.
부자되세요!
두 번째 눈에 들어온 것은 내 맘대로 이름 붙여본 <하늘자전거>다.
지상에서 3미터 높이에 매달려 있는 하늘자전거다.
이런 상상을 하는 사장님도 한 번 만나보고 싶다. 광고용이 아니라 배려용인 것 같아 기뻤다.
같은 일을 해도 아주 즐겁고 열정적으로 일을 하실 것 같다.
감사합니다. 더 큰 내일이 되길 기도합니다.
여느때처럼 폭포로 가는 길은 차도와 달리 별도로 마련된 도보 길을 이용했다.
길은 차분했고 나무들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위에서 햇살은 활짝 웃고 있었다.
머리에 내리쬐는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천천히 걸었다. 옆으로 자전거가 열지어 달린다.
자전거를 보면, 김훈의 책 <자전거여행>에 나오는 글이 생각난다.
헛움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아무튼 언감생심, 이런 멋진 여행기를 써보고 싶다는 바램으로 오래전 베껴썼던 프롤로그의 일부를 옮겨본다.
걷다보면 종종 생각지도 못했는데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나기도 하고 마음병을 주고 받았던 사람들도 떠오른다. 정상에 깃발을 꽂기 위해 소소한 일상을 포기한 것이 결코 성공은 아닐게다.
"성공이란 그 시대의 정점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아픔에 얼마만큼 다가서고 있는가 하는 것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기억난다.
아등바등 정상을 위해 우리는 추억과 사랑과 살가움과 햇살을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다. 성공은 누군가와의 경쟁이 아니라 나 자신의 삶에 대한 충실도로 측정되어야 한다. 성공이란 다른 사람보다 앞서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나보다 나아지는 과정을 말한다.
'과거'를 배우기보다는 '과거에서' 배워야 하며, '성공'을 배우기보다는 '성공에서' 배워야 한다. '자연'을 배우기보다는 '자연에서' 배워야 한다.
폭포로 가는 마을에서 본 비닐하우스 속의 그림이다. 오이잎이 말라버린 것 같다.
수확을 한 것인지 수확을 포기한 것인지 알 순 없지만 왠지 불완전한 모습이 무슨 사연이 있을 것만 같다. 들판을 지나고 시골길을 걷다보면 철마다 수확을 포기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양파수확을 포기하고, 배추를 갈아엎고, 심지어 소를 굶겨죽여야 하는 이 엄청난 농촌의 현실은 참담하다. 농업은 인간사로 치면 인문학이나 다름없다. 인문학은 인간을 연구하는 기초학문이다. 농업을 외면한 나라가 선진국이 된 사례는 없다. 농업은 국민의 생존을 담당하는 기초다.
농촌이 붕괴되고 중소기업이 자빠지고 실업률과 물가가 하늘을 치솟는 지금, 견디는 데는 한계가 있다. 못사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팍팍해지고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신윤복 교수님은 <나무야 나무야>에서,
'없이 사는 사람들의 부정은 흔히 그 외형이 파렴치하고 거칠게 마련이지만 그것은 마치 맨손으로 일하는 사람의 손마디가 거친 까닭과 같은 이치다. 그에게는 '합법적인 불법'을 저지를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
땅이 부풀어 오르는 기운을 느끼며 쉬엄쉬엄 당도한 곳, 구곡폭포관광지다.
"2012 임진년 , 부자되세요!"라는 붓글씨 현수막이 눈에 띈다. 고맙다. 작년보다 많이 오른 1,600원을 무슨 세금 내듯 납부하고서야 입장할 수 있었다.
시작부터 쭉쭉빵빵한 S라인 나무들이 나를 제압한다.
나무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하는 가교역할을 하는 것 같다. 신의 뜻을 인간사에 내려 보내고 인간사를 신에게 전하는 그런 중간자적 역할 말이다. 만약 인간이 저지르는 잘못을 곧이곧대로 신에게 보고했더라면 인간사가 지금처럼 온전했을까. 이렇게 우리가 무사한 걸 보면 나무는 걸러서 신에게 보고를 했을 것이다.
나무야 고맙다.
혼자 걷기엔 참 아까운 길, 둘일 때 진정한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혼자일때 자신에게 더 진실할 수 있다는 큰 스님의 가르침으로 위안을 삼는다.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길, 둘이지만 둘이 아닌... 그런 길이다.
왜 그럴까?
산에오면 바다가 보고 싶고 바다에 가면 강이 보고 싶고, 강에 가면 산이 그리운 것은...
가진 것에 대한 만족보다 못 가진 것에 대한 애착 때문일게다.
그래도 깊은 구곡길을 걸으니 바다와 강이 보고 싶다.
그는 바다보다는 강을 더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강물은 지향하는 목표가 있는 반면 바다는 지향점을 잃은 물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오늘 북한강 강마을 강촌에서 당신이 말한 강물을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강물은 바다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물입니다.
심산유곡 구곡폭포를 지나 들판에 이르고 마침내 바다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숱한 변곡점을 쌓아가는 살아있는 물입니다.
절벽을 만나면 폭포가 되어 흘러내리고 저수지에 갖히면 뒷물이 밀어내기를 기다려
다시 쏟아져내리는 치열한 물입니다.
이처럼 열정적인 강물과는 달리 바다는 더 이상 어디로 나아가지 않는 물입니다.
바다에 이른 물은 물이 가고자 하는 종점입니다.
갑자기 휴대폰 벨이 울렸다.
그는 연극의 주인공역을 도맡아 한다. 소위 잘나간다.
그런 그도 연극이 끝난 후 분장실에서 자주 통곡한다.
박수와 환호와 갈채가 그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연극의 주인공에게 바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극 속의 철수는 있지만 인간 철수는 없었던 것이다.
모든 것은 시간의 힘으로 밀려가고 쓸려간다.
'이 또한 지나가리다'라는 말로 위로를 전한다.
혼자 떠난 나를 원망하며... 다음엔 꼭 같이 가자는 그 흔만 말로 전화를 매조지했다.
'다음'이라는 말... 참 싫다. '다음'은 시작도 끝도 없는 어리버리한 말이니까.
구곡길은 길 그 자체로 하나의 마음길이었다.
겨울과 봄의 경계를 넘나드는 풍경과 겨울 찬바람과 살랑거리는 봄바람을 교대로 맞으며 햇살을 밟고 도랑을 건넜다. 지난 겨울 미처 버리지 못한 채 싸들고 다녔던 난제들이 흩어지고 사라지고 가벼워지고 잊혀져 갔다.
그래서 여행은 삶의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준다.
오른발과 왼발을 부지런히 저어 폭포에 이르렀다.
먼 발치에서 본 구곡폭포는 말없이 햇살을 내리쬐고 있었다. 겨우내 언 몸을 햇살에 말리는 듯한 모습으로 그렇게 오가는 이들을 맞았다. 의외로 방랑자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모두들 마음을, 몸을, 관계를 돌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지난 겨울 폭포빙벽을 오르다 낙하하여 목숨을 잃은 사람의 소식을 뉴스를 통해 들었다. 한낮 기온이 영상을 오르자 빙벽을 타는 사람은 없었지만 여전히 하얀 얼음을 뒤집어 쓴 채 물을 토해내고 있었다. 폭포입구에 있는 <봄내길 2코스 물깨말구구리길>이라는 안내판이다. 강촌은 '물깨말'로 불렸던 곳이며, 구구리마을은 '골이 깊고 아홉구비를 돌아드는 마을'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폭포입구에서 작은 뫼를 넘으면 문배마을이다.
마을로 가는 길은 4개월간의 공사가 끝났다. 말끔하게 새단장을 했다. 가파르지만 아주 편안한 흙길이다. 가끔씩 문배마을을 찾을 때마다 나같은 뭇사람들도 혼자 도량을 닦아봤으면...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인도인들이 말하는 임서기와 같은 것 말이다. 임서기란 인도에서 말하는 인생 4단계론 중에서 50세에서 약 75세까지 '숲 속에서 혼자 사는 시기'를 말한다.
문배마을까지는 정말 아름다운 소나무길이다. 지그재그로 오르는 재미가 특별하다. 보조 목책도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안전하게 걸을 수 있다.
숲에 들면 처음엔 숨이 막힌다.
너무 칼칼한 산소가 갑자기 들어가면 오염됐던 폐가 감짝 놀란다.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혼자라야 바둑판처럼 삶을 복기하는 것이 가능하다. 처음부터 자신도 없었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원숭이처럼 흉내내면서 마음을 다하지 않은채 대충 시간을 때웠던 것은 아니었는지. 후회하기도 하고 시작이라는 다짐도 한다.
이런 경우를 두고 '도로아미타불'이라는 말이 생겼을것이다. 아무리 봐도 멋진 솔숲길이다.
며칠만 비질을 안해도 방에 먼지가 쌓이는데 돌보지 않은 마음은 말할 필요가 있을까.
저가 화장품을 사재기 한다는 9시 뉴스가 요란스럽다. 본래 저가인데에다 30% 추가 할인행사를 하는 통에 일부 화장품은 'sold out'이라고 한다. 보이는 것에 대한 집착 정도를 반증하는 것이다.
뒤이어 대학 인문학 관련 학과가 통합되거나 폐지 된다는 뉴스는 또 무엇인가? 교과부에서 대학 지원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이 취업률인데 대학입장에선 취업이 안되는 학과를 통폐합한다는 이야기다. 그 대상이 인문학이란다. 마음 공부를 등한시하겠다는 말이다.
인문학이 없는 대학은 대학이 아니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두 뉴스가 극한 대비를 보여준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우리의 대응방식을....
왜 좋은 일은 금새 잊어버리고 나쁜 일은 오래 기억하는 것일까.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었다는 말 참 무성의하다. 그냥 내 멋대로, 내 맘대로, 내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다고 하면 될 걸 뭐 그 따위로 빙빙 돌린다냐. 헷갈리게.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다는 건 철든 사람의 표현이다. 내 멋대로 내 맘대로 살고 싶다는 건 철들지 않은 사람들의 언어다. 착한 단어다.
폭포입구에서 20여분을 오르면 문배마을 입구 쉼터에 당도한다.
이른바 문배마을 삼거리다. 구곡폭포, 문배마을 그리고 봉화산과 검봉산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사람이니까 조금의 일탈은 분명 더 큰 성장을 위한 자양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은 어른 아니 할 것 없이 너무 직선적이다.
특히 애들은 아이 같지가 않다. 애 어른이다. 초등 중고교 대학까지 결석 한 번 안하고 조퇴 한 번 안하고 지각한 번 안하는 아이들... 좀 무섭다. 너무 철저해서, 너무 빈틈없어 보여서,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것 같아서...말이다.
하루쯤 그냥 학교가기 싫다고 떼쓰고, 공부하기 싫다고 게기고, 오락하고 싶어서 농땡이 칠 수도 있는데 너무 철저하게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잘해서 오히려 걱정이다.
토익책도 중요하지만 셜록홈즈 탐정소설에 미쳐 밤을 꼴딱 새고 코피가 터지는 그런 진득한, 찔긴 놈들이 좀 있어야 하는데 모두 일렬종대, 차렷자세다.
곡선은 없고 직선 뿐이다. 찻 길도 성공도....문배마을이다..... 마을 앞 생태 연못도 새단장을 했다.
생태연못 중앙부에서 갈라지는 이정표를 향해 내려간다.
구곡폭포 상층부 근처로 하산한다.
경고문구가 곳곳에서 길을 가로막는다. 하산길 역시 같지만 다른 풍경을 제공한다.
내내 뒷모습만 보며 발을 움직였다.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이야기를 하며 걷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별다른 대화는 없었다.
그렇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나이 말고 사람이 철이 얼마나 들었는지를 측정해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참 좋겠다.
철드는 정도가 1에서 10까지라면 난 5정도의 철듦이 좋겠다.
철이 안든 것도 아니고 철이 든것도 아닌 어정쩡하지만 양쪽을 오가는 양다리가 가능하니까.
청춘과 노인, 그러면 두 인생을 사는 거니까.
걷기 끝무렵에 만난 빨간 지붕을 이고 있는 시골집이 정겹다.
산과 나무와 들 속에 파묻힌 그림속의 집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집이었지만 추억은 가득했다.
"죽은 듯 살지 말고 죽을 듯 살아라."
어느 성인의 말을 되내이며 강촌역, 구곡폭포, 문배마을 여행을 접는다.
단 몇시간의 발 여행이었지만 오늘 이 시간 이 자리로 이끈 모든 이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순간 순간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도, 떠나간 사람도, 속을 썩힌 사람들 모두가 합작하여 나를 이리로 이끈 것일테니까.
난 여행이라는 긍정에너지가 절망이라는 회의주의를 일으켜 세운다고 믿는다.
예전엔 이틀에 한 번 꼴로 궁금했는데 같은 일을 한 10년 하다보면 한 달에 한 번도 궁금하지 않다.
그래서 습관이란 무서운것 같다.
습관의 적이 '습관적'이라는데....
습관의 반대는 뭘까.
변화겠지.
힘들게 바꿔 습관이 되면 바꿔야 하고...
습관의 익숙함과 변화의 불편함
두 단어의 딜레마가 곧 삶인거다.
결국 인생이란 그런거다.
지하철 자리잡기다.
내릴 때 되면 빈 자리가 나고, 빈 자리가 나면 내릴 때가 되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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