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만경강에서
옥구 염전에서 심포리까지(57~66쪽)
밀물의 서해는 우주의 관능으로 가득하다
달이 하루에 두 번씩 물을 끌어당겨서 바다를 부풀게 하는 자연 현상과 달이 한 달에 한 번씩 여자의 목숨을 빨아 당겨서 부풀게 하는 생명 현상이 다 조(潮)이다. 밀물의 서해는 우주의 관능으로 가득 찬다.
내 조국의 서해는 어떠한 바다인가. 서해는 조국의 여성성이다. 달에 이끌리는 서해는 발해만 깊숙이까지 가득 차올라 산둥 반도와 랴오둥 반도를 적시고, 한반도 서쪽 연안에 넘친다. 그때, 연안은 부풀어 오르고 서해에 닿는 모든 강들의 숨결은 낮아져서 강은 바다를 내륙 깊숙이 받는다. 달이 바다를 국토의 안쪽으로 밀어올리고, 새떼들이 앉을 곳을 찾아 갯벌 쪽으로 날아올 때 밀물의 끝자락에 실리는 낡은 어선 몇 척 포구로 돌아온다.
위는 중국 대륙으로 막히고 아래는 동중국 쪽으로 열린 이 오목한 내해(內海)에서 달은 물을 북쪽으로 끌어당겨서, 대륙의 연안을 압박하고도 갈 곳 없어 넘쳐나는 서해는 모든 강들의 하구로 파고들고 반도의 해안에 포개진다. 그래서 서해의 관능은 반도의 남쪽 끝, 영산강 하구에서는 잔물결로 주름지면서 섬세하고 부드럽지만,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그 숨소리가 커져서 한강 하구에 이르면 해일처럼 힘차고 숨막힌다.
대동강은 어떤가. 가보지 못해서 알 수 없지만, 서해의 힘은 더욱 크게 하구로 파고들고 연안으로 안겨올 것이 틀림없다. 서해와 달의 당기고 끌리는 모습이 저러하므로 조국의 서쪽 강들은 서해에 닿는 하구에서 저마다의 사랑과 저마다의 소멸의 표정을 따로따로 갖는다.
동해로 흘러드는 강들은 날카롭게도 명징하고 눈부시다. 동쪽의 강들에는 산의 격절감이 녹아서 흐른다. 가파르고 빠른 강들이 일출을 향해 나아간다. 서해에 닿는 강은 들을 흐른다. 그래서 서쪽의 강들은 유장하고도 아득하다. 크고 흐린 강들이 해 지는 곳을 향해 느리게 나아간다. 서해는 그 많은 강들을 받아내고 또 거슬러 오른다. 서해는 연안의 수많은 작은 포구를 먹이는 거대한 어머니 포구와도 같다.
만경강은 아직도 파행(跛行)하는 자유의 강이다. 큰 댐이 없고, 하구언이 없고, 시멘트 제방이 없고, 강변도로가 없고, 수중보가 없고, 강가에 갈비 먹는 집이 없어서, 비틀거리면서 굽이치는 유역은 언제나 넓게 젖어 있다. 바다가 수평선 너머로 물러간 저녁 무렵의 하구에서, 강의 크나큰 자유는 아득한 갯벌 위에서 헐겁고 쓸쓸했다.
전북 군산시 옥구 염전에서 출발하는 자전거는 만경강 하구를 따라 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만경대교를 건너고 만경평야를 건너고 다시 만경강 하구를 따라 내려와서 전북 김제시 심포리 갯가로 간다. 심포리 바닷가에서 만경강은 동진강과 만나 바다와 합쳐지는데, 달이 물을 깊이 빨아들이는 사리간조의 만경강 하구에서 바다는 물의 바다가 아니라 갯벌의 바다였다. 갯벌의 지평선 너머에서 바다는 풍문처럼 반짝이면서 밤의 내습을 예비하고 있었고, 강의 대안 쪽에서 산맥은 기세를 낮게 죽여가며 노을 속으로 잠겨갔다. 간조와 만조 사이의 젖은 갯벌 위에서 저녁의 빛들은 비늘로 퍼덕거렸다.
군산에서 김제를 거쳐 부안에 이르는 만경강, 동진강 하구언저리는 100킬로미터에 달하는 해안선 전체가 갯벌이다. 폭 20킬로미터가 넘는 갯벌도 있다. 김제시 심포항에서 썰물 때 갯벌을 가로질러서 끝까지 걸어가면 밀물에 휩쓸려서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 조개를 잡는 갯가 어민들은 갯고랑을 따라 배를 타고 드나든다. 해양지질학자들은 서해의 현재 해안선이 8천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서해는 젊은 바다이다. 이처럼 짧은 기간에 그토록 넓은 갯벌을 일구어 낸 것은 내륙 깊숙이 달려드는 이 젊은 바다의 힘이다.
서해는 깊이 밀고 멀리 당긴다. 갯벌은 육지와 바다의 완충이며 진행형의 대지다. 갯벌은 오목하고 부드럽다. 육지 쪽은 뻘이고 바다 쪽은 모래이다. 뻘은 물의 힘이 약한 내륙 쪽에 가라앉고 모래는 물의 힘이 센 먼 바다 쪽에 가라앉는다. 모래가 뻘보다 무겁기 때문이다. 굵은 입자일수록 멀리 가서 가라앉아, 사람과 가까운 쪽이 가장 부드럽다.
그래서 그 넓은 갯벌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가지런한 퇴적물의 스펙트럼을 이룬다. 갯지렁이와 게는 뻘에서 살고 조개는 모래에서 산다. 게는 뻘을 먹고 살고 조개는 물을 먹고 산다. 뻘과 물속에도 일용할 양식은 있다. 물고기들은 게를 잡아먹고 새들은 조개를 잡아먹는다. 그래서 게와 조개들은 뻘 속에 구멍을 파고 살거나 바위에 착 달라붙어서 산다.
뻘에는 수억만 개의 구멍이 있다. 갯지렁이는 구멍 위로 머리를 내놓고 산다. 이 구멍들이 뻘에 공기를 불어넣어 갯벌은 숨 쉰다. 그것들이 살아가는 꼴에는 이 세상 먹이사슬 맨 밑바닥의 비애와 평화가 있다. 그리고 구태여 고달픈 진화의 대열에 끼어들지 않은 시원(始原)의 순결이 있다.
공깃돌만한 콩털개와 바늘 끝만한 작은 새우들도 가슴에 갑옷을 입고 있다. 그 애처로운 갑옷은 아무런 적의나 방어 의지도 없이, 다만 본능의 머나먼 흔적처럼 보인다. 그래서 바다의 새들이 부리로 갯벌을 쑤셔서 게와 조개를 잡아먹을 때, 그것들의 최후는 죽음이 아니라 보시이다.
갯지렁이의 구멍은 밀물에 쉽게 쓸려버려서 갯지렁이는 끊임없이 흙을 뱉어내며 새 집을 지어야 한다. 갯지렁이의 이 기구한 무주택의 운명이 갯벌에 지속적으로 산소를 불어넣어, 갯벌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터전이 된다. 갯지렁이는 온몸의 마디를 뻘밭에 밀면서 기어간다. 갯지렁이는 죽음을 통과하듯이 온몸을 뒤틀면서 뻘 속을 헤치고 나간다. 갯지렁이가 기어간 뻘 위의 자국은 난해한 문자와도 같고, 고통스런 글쓰기의 흔적과도 같다.
동죽조개는 껍데기에 나이테를 갖는다. 나무의 나이테와 같다. 성긴 테는 조개의 여름이고 촘촘한 테는 조개의 겨울이다. 모든 조개들이 그 껍데기에 삶의 고달픔과 기쁨들을 기록한다. 해양생물학자들은 조개껍질들을 들여다보고 조개의 연륜뿐 아니라 조개의 일륜(日輪)까지도 읽어 낸다. 조개의 하루가 그 껍데기 위에 기록되고, 밀물이 들어오고 썰물이 나갈 때 조개의 생명의 안쪽에서 이루어지는 성장의 흔들림이 조개껍질 위에 미세한 음파처럼 퍼져나간다. 밀물 때 그 음파의 폭은 넓고, 썰물 때는 좁다. 내륙 깊숙이 달려드는 힘센 서해는 연안의 모든 조개껍질 위에 그 파도의 무늬를 새겨 넣는다. 만경강 하구에서, 조국의 서해는 그렇게 부풀어 올라서 가득 찼고, 그렇게 멀어져갔다.
바다의 짠맛과 햇볕의 향기로 소금은 탄생한다
옥구염전(별첨 1 참조)은 올해의 첫 번 째 소금을 거두기 시작했다. 갯고랑에서 끌어올린 바닷물이 6단계의 저수장을 거치면서 증발하고 마지막 결장지에서 소금을 이룬다. 염전 사람들은 소금이 결장지 바닥에 엉기는 사태를 '소금이 온다'고 말한다. 소금은 멀리서 오는 소식처럼 조용히 결장지 바닥에 나타난다. 옥구 염전은 유하식(流下式) 염전이다. 제1저수장의 유ㅣ치가 가장 높고, 바래어지는 바닷물은 비스듬한 경사를 따라서 아래로 내려가면서 마지막 결장지에 당도한다.
소금은 맛의 근원이다. 소금은 단지 짠맛일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맛을 맛으로 살아나게 한다. 재래식 천일염에서는 쓴 소금을 가장 나쁘게 알고, 짠 소금이 그 다음, 짜고 또 향기로운 맛이 소금을 최상품으로 친다. 소금의 속성은 고요해야 한다. 짜고 향기로운 맛이 소금의 핵심부에 고요히 안정되어 있어야 하고, 어떠한 잡것도 거기에 섞여서는 안 된다. 짠맛은 바다의 것이고, 향기는 햇볕의 것이다.
햇볕과 바다의 정수가 소금 알 속에서 고요해야 한다. 대체로 알이 굵은 소금이 고요한 소금이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염전의 물이 흔들리는 날에는 좋은 소금을 거둘 수가 없다. 소금의 안정이 흔들려서 소금 알이 잘아지고 쓴맛이 완전히 빠져나가지 않는다. 흐린 날 거두는 소금도 좋은 소금이 아니다. 이런 소금들은 알이 잘고 결장지 바닥에 끈끈하게 달라붙는다. 좋은 소금은 바닥에 달라붙지 않고, 모래처럼 서걱거린다. 염전 사람들은 날이 흐리고 비가 올 조짐이 보이면 결장지의 물을 땅 밑의 저장고 속으로 감춘다.
바람 한 점 없는 여름날, 뜨거운 폭양 아래서 짜고 향기롭고 굵은 소금은 익는다. 이런 소금의 삼투력은 깊고 그윽하다. 이런 소금이 젓갈을 삭히고 재료들의 향기를 드러나게 한다. 바람 부는 날의 들뜬 소금은 쓰다. 가장 고통스런 날에 가장 열롱한 결정체들이 염전 바닥에 깔린다. 옥구 염전에서 '소금이 온다'는 말은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염전 사람들한테 이런 것들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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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첨>
1. 옥구염전
-사진 : 폐허가 된 옥구염전,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youngrb&logNo=130098965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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