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경영/필사-김훈 <자전거여행>

9. 가까운 숲이 신성하다(75~92)

김부현(김중순) 2012. 4. 18. 12:00

9. 가까운 숲이 신성하다

안면도(75~92쪽)

 

봄 산의 연두색 바다에서 피어오르는 수목의 비린내는 신생의 복받침으로 인간의 넋을 흔들어 깨운다

 

'숲(나무가 무성하게 들어찬 곳)이라고 모국어로 발음하면 입 안에서 맑고 서늘한 바람이 인다. 자음 'ㅅ'의 날카로움과 'ㅍ'의 서늘함이 목젖의 안쪽을 통과해 나오는 'ㅜ'모음의 깊이와 부딪쳐서 일어나는 마음의 바람이다. 'ㅅ'과 'ㅍ'은 바람의 잠재태이다. 이것이 모음에 실리면 숲 속에서는 바람이 일어나는데, 이때 'ㅅ'의 날카로움은 부드러워지고 'ㅍ'의 서늘함은 'ㅜ'모음 쪽으로 끌리면서 깊은 울림을 울린다.

그래서 '숲'은 늘 맑고 깊다. 숲 속에 이는 바람은 모국어 'ㅜ'모음의 바람이다. 그 바람은 'ㅜ'모음의 울림처럼, 사람 몸과 마음의 깊은 안쪽을 깨우고 또 재운다. '숲'은 글자 모양도 숲처럼 생겨서, 글자만 들여다보아도 숲 속에 온 것 같다. 숲은 산이나 강이나 바다보다도 훨씬 더 사람 쪽으로 가깝다. 숲은 마을의 일부라야 마땅하고, 뒷담 너머가 숲이라야 마땅하다.

서울의 종묘 숲이나 경주의 계림, 반월성의 숲은 신성한 숲이다. 그 숲들은 역사의 정통성과 시원(始原, 사물이나 현상 따위가 비롯되는 처음)의 순결을 옹위하고 있다. 피고 또 지는 왕조들은 썩어서 무너져갔어도, 봄마다 새잎으로 피어나는 그 무너진 왕조들의 숲 속에서 삶은 여전히 경건하고 순결한 것이어서 종묘의 숲과 계림의 숲은 그 숲에 가해진 정치적 치욕에 물들지 않는다. 그 숲은 깊은 산속 무인지경의 숲이 아니라, 사람 사는 동네와 잇닿은 마을의 숲이다. 울창한 숲이 신성한 숲이 아니고, 헐벗은 숲이 남루한 숲이 아니다.

이 세상의 어떠한 숲도 초라하지 않다. 숲은 그 나무 사이사이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낯선 시간들의 순결로 신성하고, 현실을 부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으로 불온(不穩, 통치 계급 또는 기성세력의 입장에서 보아 사상, 태도 등에 맞서고 대립하는 기질)하다. 유림(儒林)의 숲은 불온하고, 유가적 가치와 질서로부터 소외되어 숲으로 모여든 무리로서의 산림(山林)은 더욱 불온하고, 소외된 무장 집단으로서의 녹림(綠林)의 불온은 이미 작동하고 있는 불온이다. 가장 늙은 숲이 가장 새로운 숲이다. 숲의 힘은 오래된 것들을 새롭게 살려내는 것이어서, 숲 속에서 시간은 낡지 않고 시간은 병들지 않는다.

이 새로움이 숲의 평화일 터인데, 숲은 안식과 혁명을 모두 끌어안는 그 고요함으로서 신성하다. 시간을 소생시키는 숲의 새로움은 퇴계와 로빈후드를 동시에 길러내고도 사람 지나간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물리적 자연은 근본적으로 몰가치하다. 물리적 자연이 그 안에 윤리적 가치를 내포한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 그것은 영원한 인과법칙의 적용을 받는 자연과학의 자리일 뿐이다. 이 무정한 자연이 인간을 위로하고 시간을 쇄신시켜주는 것은 삶의 신비다. 사람의 언어가 숲의 작동원리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숲이 사람을 새롭게 해줄 수 있는 까닭은 숲에 가지 않더라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이미 숲이 숨 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안면도는 태안반도의 남쪽으로 길게 뻗은 섬이다. 안면교를 건너서 섬으로 들어온 자전거는 섬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649번 지방도로를 따라서 섬의 남쪽 끝인 고남리 젓개포구로 간다. 

-안면도 백사장 해수욕장 전경  

 

안면교를 넘어서면 창기리, 정당리, 승언리, 중장리 마을의 산과 들에 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소나무 숲을 만나면 자전거는 포장도로를 버리고 숲길로 들어선다. 안면도의 소나무 숲은 마을의 숲이다. 대문 밖이 숲이고, 밭이 끝나는 곳이 숲이고, 울타리 너머가 숲이다. 숲의 신성은 멀고 우뚝한 것이 아니라 가깝고 친밀해서 사람의 숨결을 따라 몸속으로 스미는 것임을 안면도 소나무숲 속에서는 알겠다. 안면도 소나무숲 속에서는 50년에서 90년 된, 혈통 좋은 소나무들이 우뚝우뚝하고 듬성듬성하게 들어서 있다.

추사(秋史)는 <세한도歲寒圖> 발문에서 "겨울이 깊어진 후에야 소나무, 잣나무의 우뚝함을 안다"(세한연후歲寒然後 지송백지후조야知松柏之後凋也)는 공자의 말을 인용했지만, 이것은 사실 소나무에게 좀 심한 말인 듯싶다.

-사진 : 추사 김정희가 유배지에서 그린 세한도. <매경DB>, 2011.06.11.

 

그 말은 소나무의 우뚝함에 바쳐진 말이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의 내면의 가파름에 바쳐진 말처럼 들린다. 그래서 <세한도> 속의 나무는 소나무도 잣나무도 아니고,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의 마음의 나무일뿐이다. 그 나무는 가파른 이념의 힘으로 이 세계와의 불화를 뚫고 솟아오르는 정신의 나무다. 그 나무는 우뚝한 높이만큼 불우하다.

봄의 안면도에서는 겨울을 다 지난 후에도 소나무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다. 곧고, 높고, 힘센 나무들이 자존(自尊)의 거리를 정확히 유지하면서 숲을 이루어, 나무들의 개별성은 숲의 전체성 속에 파묻히지 않는다. 안면도의 소나무들은 붉고 곧은 기둥을 높이 올려가다가 맨 꼭대기에서만 가지가 퍼지고 잎이 돋는다. 아무데서나 가지를 뻗어 늘어뜨리지 않는다.

그 소나무들은 음풍농월의 충동과는 거리가 멀다. 소나무들은 경건하고도 단정하다. 안면도의 소나무들은 밑둥의 껍질은 검고 두껍지만, 사람의 키를 넘는 높이부터는 껍질이 얇아져서 종이 한 장을 바른 정도이고, 거기서부터 나무의 붉은색이 드러난다. 이 붉은색은 빛을 내뿜는 색이 아니라 빛을 나무의 안쪽으로 끌어들여 숨기려는 붉은색이다. 그래서 안면도 소나무숲 속에서는 앞을 바라보면 붉은 숲이고, 위를 쳐다보면 푸른 숲이다.

봄의 소나무 숲은 다른 활엽수림의 신록처럼 화사하지도 않고, 들떠 있지도 않다. 봄의 소나무 숲은 겨울을 견뎌낸 그 완강한 푸르름으로 진중하고도 깊게 푸르다. 안면도의 소나무들에게는 안면송(安眠松)이라는 고유명사가 있다.

이 소나무들은 <세한도> 속의 소나무처럼 이념화한 불우의 그림자가 없고, 경주 남산 선덕여왕릉 주변의 구불구불한 소나무들처럼 의고풍(擬古風)의 비극성이 없고, 산전수전의 귀기가 없다. 너무 꼭대기에 퍼진 잎들을 멀리서 보면 가지를 떠나서 날아갈 듯한 구름 조각으로 떠 있다. 안면도의 소나무들은 과도한 풍류와 과도한 표정을 안으로 다스려가면서, 높고 곧고 푸르다.

안면도에서는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고 달려도 이처럼 잘생긴 소나무 숲이다. 안면도를 떠날 때 비가 내려, 젖은 숲은 젖은 향기를 뿜어냈다. 숲의 신성은 마을 가까이에 있고,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 오대산의 전나무 숲과 가리왕산의 단풍나무숲과 점봉산의 자작나무숲 들도 일제히 깨어나고 있을 것이다.

 

중국서 흘러온 한 알의 씨앗

 

안면도에는 소나무숲만 있는 것이 아니다. 승언리 방포 해수욕장으로 내려가는 길가에는 모감주나무 숲도 있다. 모감주나무는 백일홍 고목처럼 신기(神氣)가 어린 듯 구불구불 뻗어나가고, 밑둥과 줄기는 발가벗은 듯이 매끄럽게 윤이 난다. 이 희귀한 나무는 천연기념물 대접을 받고 있다. 절에서는 이 나무를 귀하게 여겨서 그 열매로 염주를 만든다. 모감주나무는 원래 중국 산둥반도에서만 자라는 나무다. 그 씨앗 하나가 바닷물에 실려 안면도 바닷가로 흘러와 이 숲을 이루게 된 것으로 식물학자들은 보고 있다. 산둥반도의 모감주나무는 곧게 자라는데, 안면도 해안가의 모감주나무는 구불구불하게 퍼진다. 키도 2미터 정도를 넘지 않는다. 안면도 모감주나무의 이 같은 생태는 해풍에 견디기 위한 변이일 것으로 학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씨앗 한 개의 해안 표착(漂着)은 무서운 인연이다. 그 인연은 종교적인 느낌을 준다.

신라 진흥왕 20년(서기 569년)에 인도를 떠난 배 한 척이 인연 있는 땅을 찾아서 수많은 나라의 해안을 표류하다가 신라의 울주 앞바다에 표착했다. 이 배에는 불탑과 불상을 세울 만한 금은보화가 가득 실려 있었다. 이 인연이 황룡사 장육존상이며 동축사(東竺寺)이다(<삼국유사>). 바닷물에 떠돌던 씨앗 한 개가 인연 있는 안면도 해안에서 거대한 숲을 이루었다. 그 씨앗은 서기 569년에 울주 앞바다로 밀려온 인도의 배를 생각나게 한다. <종의 기원>에 따르면 철새의 발바닥에 붙은 씨앗 한 개가 대륙을 건너가 새로운 숲을 이루기도 한다. 안면도 모감주나무숲은 지금 새의 붉은 혀와 같은 새싹을 내밀고 있다. 씨앗 한 개 속의 숲은 머지않아 푸른 잎으로 덮여서 어둡고 서늘할 것이다.

 

숲의 표정

 

여름의 숲은 어둑신하고 서늘하다. 숲 속에서, 빛은 사람을 찌를 듯이 달려들지 않는다. 나뭇잎 사이로 걸러지는 빛은 세상을 온통 드러내는 폭로의 힘을 버리고 유순하게도 대기 속으로 스민다. 숲 속에서, 빛은 밝음과 어둠의 구획을 쓰다듬어서 녹여버린다. 그래서 숲 속의 키 큰 나무들은 그림자도 없이 우뚝우뚝 홀로 서 있다. 스며서 쓰다듬는 빛이 나무와 나무 사이에 가득 내려쌓여 숲은 서늘한 음영에 잠긴다.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숲의 빛은 물러설 듯이 멀어지고, 멀어지면서 또 깊어져서 사람들은 더 먼 빛 속으로 자꾸만 빨려 들어간다. 나무와 나무 사이의 거리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다. 키 큰 나무들은 알맞은 거리로 뚝뚝 떨어져서 서 있다. 식물사회학 책을 보니까, 나무들도 살기 다툼의 결과로써 개체간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쓰여 있는데, 키 큰 나무들 사이의 거리는 오히려 다툼이 아니라 평화의 모습으로 서늘하다. 키 큰 나무들은 저마다 개별적 존재의 존엄으로 우뚝하고 듬성듬성하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날, 숲의 온갖 나무들은 함께 젖고 함께 흔들지만, 비가 멎고 바람이 잠든 아침에 숲을 찾으면 젖은 나무들은 저마다 비린 향기를 품어내고, 잎 사이로 흔들리는 아침 햇살 속에서 나무들은 다들 혼자서 높다. 나무들은 뚝뚝 떨어져서 자리 잡고, 그렇게 떨어진 자리에서 높아지는데, 이 존엄하고 싱그러운 개별성을 다 합쳐가면서 숲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숲을 문화의 테두리 안에서 해석하려는 말들이 점차 활기를 띠고 있다. 책도 여럿 나왔고 숲이 좋아서 숲으로 가는 사람들의 모임도 생겼다. 숲을 문화적으로 해석하는 사유는 결국 숲과 인간과의 관계를 성찰하는 일이 될 터인데, '숲의 문화론'은 숲이 문화가 아니라 자연이라는 전제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숲은 가까워야 한다. 숲은 가까운 숲을 으뜸으로 친다. 노르웨이의 숲이나 로키 산맥의 숲보다도 사람들의 마을 한복판에 들어선 정발산(경기도 고양시 일산동)의 숲이 더 값지다. 숲은 가깝고 만만하지만, 숲이 사람을 위로할 수 있게 되는 까닭은 그곳이 여전히 문화의 영역이 아니라 자연이기 때문이다.

숲의 시간은 헐겁고 느슨하다. 숲의 시간은 퇴적의 앙금을 남기지 않는다. 숲의 시간은 흐르고 쌓여서 역사를 이루지 않는다. 숲의 시간은 흘러가고 또 흘러오는 소멸과 신생의 순환으로서 새롭고 싱싱하다. 숲의 시간은 언제나 갓 태어난 풋것의 시간이다.

사진작가 강운구가 새로 펴낸 책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는 오래되어서 새로운 숲의 빛을 보여준다. 일연(一然, 1206~1289)의 옛 글에 강운구의 요즘 사진을 합친 책이다. 지나간 역사의 무덤 위에, 지금 살아 있는 숲의 빛이 내리쬐고 있다. 계림의 숲과 포석정의 숲이 다르지 않고 반월성의 숲과 남산의 숲이 다르지 않다. 그리고 김춘추 무덤가의 숲과 계백 무덤가의 숲이 다르지 않다. 옛 무덤들은 오늘의 빛으로 푸르게 빛난다.

7세기 통일전쟁의 살육 들판은 백 년이 넘도록 피에 젖어 있어서, 김부식(金副軾, 1075~1152)의 기록에 따르면, 피가 강을 이루어 방패들이 피에 떠내려갔다. 이 살육의 산하에 뼈를 갈면서, 김춘추와 계백은 그들의 승패와 관련 없이 얼마나 상처받고 고단한 사내들이었으랴. 이 피에 젖은 사내들의 삶은 역사를 이루었고, 그들 무덤가의 숲은 역사를 이루지 않았지만, 지금 저 남쪽의 숲 속에서는 역사가 아닌 것이 역사인 것을 위로하고 있다. 무덤들은 성긴 숲 속에 안겨서 다만 숲의 일부로 귀순하고 있고, 숲은 무덤들의 정치적 갈등을 이미 다 사면해주었다. 사람이 숲을 사람 쪽으로 끌어당기려 할 때 숲은 사람을 숲 쪽으로 끌어당기는 것인데, 이 밀고 당기기 속에 위안은 있다.

1996년 봄의 고성 산불은 무서웠다. 산꼭대기에서 발화한 불은 산맥을 넘어가는 바람을 올라타고 바다 쪽으로 내려갔다. 그때 불에 타서 죽어버린 숲은 이제 겨우겨우, 그러나 기어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사람들이 나무를 옮겨 심지 않은 산비탈이나 고지에도땅속에 숨어서 죽지 않은 움이 솟아오르고, 바람이나 새똥에 실려 온 풀씨들이 뿌리를 박고 싹을 틔웠다. 풀뿌리들이 자리를 잡자 빗물에 씻기는 모래가 덜 흘러내리게 되었고, 머지않아 키 큰 나무들이 저절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죽었던 숲은 자신을 치유하는 재활의 힘으로 새로운 살림을 예비하기 시작했다. 불에 타죽은 나무들은 바람 부는 방향으로 모조리 쓰러져 시커멓게 썩어가고 있다. 개미떼만 들끓는 이 과거의 숲 속에서도 미래의 키 큰 나무들은 듬성듬성하고 우뚝할 것이다. 숲은 의사도 없이 저절로 굴러가는 재활병원이고, 사람들은 이 병원의 영원한 환자인 셈이다.

여름휴가의 풍경은 피난 행렬과도 같다. 남부여대해서 어린아이 손을 잡고 접병 물병 얼음통을 챙겨서 가고 또 간다. 생활을 밀쳐내기란 이처럼 어렵다. 지금 오대산의 전나무 숲이나 치악산의 소나무 숲, 담양의 대나무 숲은 얼마나 깊고 푸르고 그윽할 것인가. 너무 멀고 도 길이 막히니 갈 수 없기가 십상이다. 산다는 일의 상처는 개별성의 훼손에서 온다. 삶은 인간을 완벽하게도 장악해서 여백을 허용치 않는다. 멀고 깊은 숲에 갈 수 없다면, 우리 마을 정발산 숲 속으로 가자. 숲은 마을 숲이 가장 아름답다. 거기서 삶과 인간들을 멀리 밀쳐내고 키 큰 나무처럼 듬성듬성 우뚝 우뚝 서서 숨을 좀 쉬어보자. 정발산에는 키 큰 나무가 많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

 

지금, 5월의 산들은 새로운 시간의 관능으로 빛난다. 봄 산의 연두색 바다에서 피어오르는 수목의 비린내는 신생의 복받침으로 인간의 넋을 흔들어 깨운다. 봄의 산은 새롭고 또 날마다 더욱 새로워져, 지나간 시간의 산이 아니다. 봄날, 모든 산은 사람들이 처음 보는 산이고 경험되지 않은 산이다. 그리고 이 말은 수사가 아니라 과학이다.

휴일의 서울 북한산이나 관악산은 사람의 산이고 사람의 골짜기다. 봉우리고 능선이고 계곡이고 간에 산 전체가 출근길의 만원 지하철 안과 같다. 평일 아침저녁으로 땅 밑 열차 속에서 비벼지던 몸이 휴일이면 산에서 비벼진다. 휴일의 북한산에서는 사람이 없는 코스를 으뜸으로 치고, 점심 먹을 자리를 찾을 때도 사람 없는 곳을 명당으로 여긴다. 사람들이 다들 저도 사람이면서 한사코 사람 없는 자리를 다투다가, 사람 없다는 코스로 너도나도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니 가엾은 일이다. 이래저래 비벼지기 마련이다.

산은 적막하지 않으면 산이 아니다. 산의 아름다움은 오직 적막을 바탕으로 해서만 말하여질 수 있다. 서울의 산은 적막하지 않다. 서울의 산은 도심과 가깝고, 일상과 잇닿아 있다. 노적봉이나 만경봉 꼭대기에는 어린이들도 올라와서 논다. 휴일의 산이 군중으로 뒤덮이는 인산(人山)이라 하더라도 산에는 여전히 적막과 일탈의 유혹이 있다. 삶이 고단하고 세상이 더럽고 마음속에서 먼지가 날릴수록 산의 유혹은 더욱 절박하다. 그 유혹은 흔히 하산 길에 깨어져버리는 몽환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삶에 대한 유혹이 없다면 누가 비지땀을 흘리며 만원 지하철 속 같은 인산을 오르겠는가. 똑같은 등산화와 등산모 차림의 군중 틈에 끼여 앉아 마른 김밥을 씹으면서도 우리는 저 빛나는 백운대, 만경봉, 인수봉, 노적봉, 원효봉, 의상봉 들과 독대(獨對)할 수 있다.

라인홀트 매스너는 유럽 알피니즘의 거장이다. 그는 히말라야에 몸을 갈아서 없는 길을 헤치고 나갔다. 그는 늘 혼자서 갔다. 낭가파르바트의 8,000미터 연봉들을 그는 대원 없이 혼자서 넘어왔다. 홀로 떠나기 전날 밤, 그는 호텔방에서 장비를 점검하면서 울었다. 그는 무서워서 울었다. 그의 두려움은 추락이나 실종에 대한 두려움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짊어져야 하는 외로움이었다. 그 외로움에 슬픔이 섞여 있는 한 그는 산속 어디에선가 죽을 것이었다. 길은 어디에도 없다. 앞쪽으로는 진로가 없고 뒤쪽으로는 퇴로가 없다. 길은 다만 밀고 나가는 그 순간에만 있을 뿐이다. 그는 산으로 가는 단독자의 내면을 완성한다. 그는 외로움에서 슬픔을 제거한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외로움의 크고 어두운 산맥을 키워나가는 힘으로 히말라야를 혼자서 넘어가고 낭가파르바트 북벽의 일몰을 혼자서 바라본다. 그는 자신과 싸워서 이겨낸 만큼만 나아갈 수 있었고, 이길 수 없을 때는 울면서 철수했다.

퇴계는 평생을 산이 가까운 고향 마을에서 살았다. 산 가까이 살기 위하여 그는 무려 40여 차례나 임금에게 사직서를 보냈다. 퇴계는 안동의 청량산을 즐겨 찾았고 멀리 갈 때는 풍기의 소백산까지 다녔다.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며 산수의 의미를 가르쳤는데 한 번 산행에 며칠씩 걸렸다. 퇴계는 도피와 일탈로서의 산행을 나무랐다. 산속에서 '청학동'을 묻는 자들의 몽환을 퇴계는 꾸짖었다. 산에 가서 '안개와 노을을 마시고 햇빛을 먹으려는 자들'을 퇴계는 가까이하지 않았다. 산에 속아넘어가서 결국 자신을 속이게 되는 인간들을 퇴계는 가엾게 여겼다. '스스로를 속이지 않겠다'는 것이 산에 처하는 퇴계의 마음이다. 산이 인간의 마음을 정화시키고 그 정화된 마음으로 다시 현실을 정화시킬 수 있을 때 산은 아름답다. 산에 관한 퇴계의 글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퇴계의 산은 이 세상의 한복판에서 구현되어야 할 조화의 산이다.

우리는 메스너의 길을 따라서 산에 오를 수도 없고 한산자나 도가의 길을 따라서 산에 오를 수도 없다. 메스너를 따라가자니 외로움과 싸울 일이 두렵고, 한산자를 따라가자니 몽환의 열정이 모자라기도 하고, 우선 생활이 발목을 잡는다. 아마도 우리는 퇴계의 멀고 먼 뒤를 따라서 겨우 산에 오를 수 있을 터이다.

퇴계의 산행은, 돌아서서 산과 함께, 산을 데리고 마을로 내려오기 위한 산행이고 인간의 마을을 새롭게 하기 위한 산행이다. 마음속으로 산을 품고 내려오려 해도 산은 좀처럼 따라오지 않는다. 휴일의 날이 저물고 사람들 틈에 섞여 산을 내려올 때, 성인은 벌써 산을 다 내려가서 마을에 계신다. 천하에 무릉도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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