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대외적인 환경변화가 없거나 군주가 미움을 받을 때 백성들이 음모를 꾸밀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군주는 백성들로부터 미움과 경멸을 받지 않아야 군주의 지위를 확고히 할 수 있다. 따라서 군주가 음모에 대비할 수 있는 최선의 안전책들 중 하나는 백성들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 것이다. <군주론>19장
군주에게 최고의 자산은 백성들의 호의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중국의 만리장성 총 길이는 무려 6,400km에 이른다. 중국 역대 왕조가 나라를 방위하기 위해 축조했지만 대부분 명나라 말기에 축조되었다.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해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토목공사를 벌여 만리장성을 쌓았지만 그것으로 나라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적은 내부에 있었다. 백성들이 들고 일어났다.
명나라는 강력한 중앙 집권제를 바탕으로 농업생산성을 극대화시켜 나가자 상업과 수공업도 덩달아 급속히 발전했다. 그러나 상업의 발전은 부의 불균등한 분배를 가속화하여 대규모의 토지겸병 현상이 나타났다. 이에 토지를 잃은 농민들은 대부분 유민이 되어 마침내 여러 곳에서 폭동이 일어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명말에 이르러 정치는 더욱 부패하여, 환관 엄숭과 위충현이 계속 권세를 잡아 나라는 더욱 혼란에 빠졌다. 따라서 주원장의 건국 이후 2백여 년이 지나면서 명나라는 안으로는 환관의 횡포와 이에 견디다 못해 도처에서 발생하는 민란, 그리고 밖으로는 왜구와 몽고족의 공격으로 어려운 지경에 빠지게 되었다. 명대 후기로 가면 만주 지방에서 세력을 확대한 청나라가 명나라를 계속 압박해 왔다. 거기다 끊임없는 누르하치의 침략과 임진왜란으로 망했다. 만리장성을 쌓아 외세의 침입을 막는데는 성공했지만 정치부패와 관료들의 착취 등으로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자 봉기한 것이다. 시대는 달라도 백성들의 삶을 돌보지 않는 나라가 망하는 것은 비슷하다. 또한 조선 말기 고종 때 탐관오리들의 학정에 견디다 못한 동학도들이 농민들과 뜻을 합쳐 봉기했던 동학혁명도 마찬가지다.
<군주론>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두 가지가 있다. 당시 이탈리아를 쥐고 흔들었던 귀족과 용병이다. 이탈리아는 귀족들이 백성들의 피를 빨아먹고 못된 짓을 일삼았다. 귀족과 백성은 서로 앙숙이자 원수가 되었다. 당연히 물과 불과 같은 관계였다. 법과 제도는 귀족들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그런 귀족들은 자국군 육성을 반대했다. 자국군을 육성할 경우 자신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눌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외국에서 월급을 주는 군인을 사왔다. 용병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는 단연히 자국군이 나라를 지킨다. 만약 당시 이탈리아처럼 비싼 월급을 주고 외국 군인을 고용하여 나라를 지키게 한다면 지금처럼 국가안보가 유지될 수 있겠는가? 용병제를 도입한 귀족들의 욕심 때문에 결국 이탈리아는 망한 것이다. 백성들은 나라를 위한 충정이 하늘을 찌를듯했지만 귀족들은 용병제를 고집했던 결과다. 귀족과 백성들은 서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말았던 것이다.
<춘추>에 의하면, “법을 어기고 반역을 일으킨 중대 범죄는 늘 존귀한 귀족들에 의해 저질러졌다. 그런데도 법은 언제나 비천한 사람들만 처벌한다. 그래서 백성들은 더욱 절망하고 억울해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10만원을 횡령한 직원은 단칼에 해고시키면서 1억 원을 빼돌린 임원은 회사에 기여한 공로 운운하며 눈감아 준다면 그런 회사가 잘 될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이런 일은 지금도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다.
난세였던 춘추전국시대에 유행했던 “부자의 아들은 사형을 받지 않는다”는 속담은 사라지기는커녕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현대식 언어로 갈무리 되어 회자되고 있다. 돈과 권력은 결코 하나가 아니라 일심동체인 것이다. 공자와 맹자를 비롯한 성인들을 많이 배출한 중국이지만 주나라 때부터 부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법 집행 기준을 다르게 했다. 귀족들은 예禮로 다스리고, 백성들은 형刑으로 다스렸다. 하지만 한비자와 법가는 이런 방식에 반기를 들었고 마키아벨리 역시 당시 귀족과 군대의 눈치만 보고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었던 군주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자세히 보면, 지금 우리나라는 춘추전국시대나 르네상스 시대보다 더 자본의 힘이 강해졌다. 당시에는 ‘귀족과 백성’이라는 신분계층으로 나누었지만 조선시대에는 ‘양반과 상놈’으로 지금은 ‘부자와 빈자’라는 자본계층으로 나누어져 있다. 마키아벨리가 활동했던 당시 이탈리아의 군주들에게 백성들은 허수아비였고 귀족들이 잇속을 챙길 수 있도록 일조를 했다. 우리나라도 갈수록 자본의 힘이 세졌다. 자본은 곧 권력이다. 권력층들은 재벌 자본가들의 눈치를 보기에 바쁘고 그들은 수백억 원의 비리에 연루되어도 마스크 쓰고 휠체어를 탄 채 건강상의 이유로 금방 감옥을 탈출한다. 익숙한 풍경이다. 그래도 늘 ‘법대로‘를 외치는 그들이다.
하나 같이 대통령 친인척 비리와 측근비리가 난무하고, 고귀공직자들의 국회인사청문회를 보면 위장전입은 애교수준이고 투기와 탈세 등 불법과 탈법 행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작금의 상황을 보면, 도덕논리로 살아온 사람일수록 천대받고 법을 잘 지킨 사람일수록 가난하게 산다. 마키아벨리에게 묻는다면 “부자들는 법을 어기거나 도덕을 내팽겨 쳤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 할 것 같다. 또박또박 월급 받아서 그 많은 부를 축적했다고 믿는 국민들은 거의 없다. 그러니 어찌 500년 전 딴 나라에서 씌어진 잔인한 놈으로만 마키아벨리를 이해하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중국의 한비자나 서양의 군주론은 원래 군주, 즉 왕 한 사람을 위한 책이었다. 그러나 이런 고전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읽고 또 재해석하고 공부하고 실천하는 명품 고전이다. 얼마 전 <시크릿>이라는 책이 우리나라 출판계를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개인적으로 군주론이나 한비자는 시크릿보다 훨씬 더 큰 반향을 불러올 수 있는 고전이다. 왕이나 군주가 읽는 책을 이제는 아무나 읽을 수 있고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글을 접할 수 있는 사람은 양반층이나 가능한 일이었다. 단언컨대 지금 우리나라 정치인이나 자본가, 그리고 경영자나 리더들은 모두 이런 고전들을 탐독한 사람들일 것이다. 군주를 위한 책이라고 해서 군주가 되어야 읽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을 읽어야 군주가 되고 왕이 되고 경영자가 되고 부자가 될 수 있다. 마키아벨리즘으로 대별되는 군주론이 여전히 빛을 발하는 것은 ‘진실의 힘’ 때문이다. 군주론은 특권층을 위한 책이 아니다. 21세기는 여성시대다. 특히 여성들에게 필독을 권한다. 여성시대를 꿈꾼다면 여성들 역시 오래된 틀을 깨트려야 한다. 허구한 날 유명 연예인 잡지책이나 뒤적이고 TV 앞에서 막장 드라마에 울고 웃는 여성으로 있는 한 여성시대는 그대의 몫이 아니다. 이제는 패션, 잡지, 드라마, 연예인 관련 가십거리 뉴스에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권력, 돈, 리더, 경제와 같은 뉴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자본주의다. 자본주의는 자본이 말을 하는 시대다. 자본이 곧 권력인 시대다. 돈 없으면 살기 힘든 세상이다. 여성시대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여성 스스로 경제적 독립을 이룬다는 뜻이다. 성공, 부, 권력은 모두 경제적 독립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여자대학교 강의에서, 만나는 직장 여성들에게 <군주론>에 대해 질문을 해봤다. 군주론을 읽어 봤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에 관해서. 객관적인 통계를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대부분 군주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권력’이라고 답했다. 여대생이든, 직장여성이든, 가정주부이든 하나같이 같은 단어를 떠올렸다. 그리고는 권력이라는 단어는 싫다고 했다. 그냥, 무조건 싫다고 했다. 하긴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는 대부분 남성들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고정관념을 바꾸어야 한다. 마키아벨리 시절로 비유하자면, 제18대 대한민국 군주는 최초로 여성이다. 여성 군주의 탄생은 단순히 박근혜 대통령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 전체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크다. 조선시대로 치자면 여성 왕이 된 것이다. 신라시대 선덕여왕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물론 조선시대에도 일부 여성 왕이 있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세자의 나이가 어려 왕이 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위임받은 일을 처리하는 데 불과한 형식적인 왕에 불과했다.
우리나라의 많은 여성들과는 달리 박근혜 대통령에게 ‘권력’이라는 단어는 좋은 의미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명석한 두뇌들이 대통령 밑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려고 갖은 애교를 부리고 있다. 애교는 여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제 남자들에게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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