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경영/헐렁한 군주론

인문학큐레이터의 <헐렁한 군주론>-황희 정승은 청렴성과는 거리가 먼 탐관오리였다

김부현(김중순) 2013. 2. 9. 00:31

군주가 측근의 충성심을 알아볼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있다. 만약 측근이 군주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면, 그는 결코 충성스러운 측근이 될 수 없으므로 그러한 자를 절대로 신뢰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측근이 생활고에 시달려 국정을 정상적으로 돌볼 수 없는 상황이 되도록 방치하는 군주라면 충성심 있는 측근을 두기는 어렵다. <군주론>22장

 

'Give & Take'는 마키아벨리식 리더십의 표상이다

 

이 구절을 우리나라 정치 현실로 옮겨와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어떤 장관이 대통령이나 국민들보다 자기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일한다면, 그는 결코 신뢰할 수 있는 장관이 아니므로 국민들은 그를 결코 믿지 않는다. 국가를 위해 일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이 아닌 군주와 국민들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결코 잔인하거나 비열한 사람이 아니다. 그의 ‘Give & Take' 는 오늘날 리더십의 전형이 되었다. 그의 리더십은 간명하다. “기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권위주의적 리더십, 안정적인 상황에서는 민주적 리더십이 더 낫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군주는 아첨꾼을 어떻게 가려낼 수 있는가.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헌정사에서 보듯이 스스로가 아첨꾼이면서도 권력자 주변에 있는 측근과 아첨꾼을 어떻게 얻고, 가려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조언하고 있다.“만약 측근이 군주의 일보다 자신의 일에 마음을 더 쓰고 그의 모든 행동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의도된 것이라는 점이 밝혀지면, 그는 결코 좋은 충신이 될 수 없고, 당신은 결코 그를 신뢰해서는 안 된다.”오늘날에도 권력자를 등에 업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부정을 저지르는 측근들이 얼마나 많은가. 게다가 아첨꾼은 또 얼마나 많은가. “군주가 아첨꾼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은 진실을 듣더라도 당신이 결코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라고 한다. 참으로 어려운 말이다. 자신을 비난할 때라도 성내지 않고 들을 수 있어야만 아첨꾼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 이렇게 비난을 허용하면 군주의 권위가 훼손될 수 있으므로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여서 진실을 말하는 것도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고 조언한다.“사려 깊은 사람들을 선임하되, 그것도 군주가 요구할 때만 조언하는 것을 허용해야지 아무 때나 허용해서는 안 된다. 군주는 항상 조언을 들어야 하지만 남이 원할 때가 아니라 자신이 원할 때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사의 기본은 공평이 아니라 공정과 차별이다. 기회는 공평하게 주지만 결과는 차별하는 것이 공정한 인사의 출발점이다.

 

청백리 황희 정승은 청렴성과는 거리가 먼 탐관오리였다

 

일반인 차림으로 황희 정승의 집을 방문한 세종대왕이 그의 청빈한 삶에 감탄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조선의 정승이 집에서 멍석을 깔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밥상에 누런 보리밥과 된장에 고추밖에 없어서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는 일화는 익히 알려진 바다.

청백리이자 24년 동안 고위 공직을 수행하여 조선시대 최장수 재상이었던 황희는 그 중 19년을 영의정으로 봉직했다. 그런데 민간에 전해지는 이야기 말고, 공식 기록에 나타나는 황희의 모습은 정반대다. 이렇게 지저분한 사람이 어떻게 청백리의 대명사로 불렸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세종실록世宗實錄>을 보면 황희 정승의 비리가 여러 차례 나온다. 역적으로 죽임을 당한 박포의 아내와 통정을 했으며, 주는 뇌물은 사양 않고 받았다. 실록에 뇌물을 받았다고 거론된 것만 10여 차례나 되니 남들 모르게 받은 것까지 합치면 실로 엄청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위가 살인을 저지른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대사헌인 맹사성에게 부탁하여 무마시키기도 하였다고 하니 이 정도면 고위공직자로서 해도 너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많은 비리에도 불구하고 당대는 물론 후대 사람들도 황희 정승은 칭송받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다. 정치를 잘했기 때문이다. 세종이 그를 귀양도 보내고 유배도 시키면서 틈날 때마다 그를 다시 불러 올렸던 데에는 황희만이 가지고 있던 탁월한 식견이 필요해서였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위치에서 황희는 사람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용인술이 탁월한 재상이었다. 세종이 성군이 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2인자였다. 태종 역시 일찍이 황희의 가치를 알고 있었던 터라 , “황희만한 인물이 없다”며 세종에게 황희를 중히 쓸 것을 당부할 정도였다.

정치를 하는 사람에게 너무 청렴성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것은 '정치에서 도덕을 분리해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의 주장과 같은 사상이다. 제18대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취임을 한 달여 앞두고 고위공직자들을 임명하여 국회 인사청문회에 임하고 있는데 일부는 지나친 청렴성 검증으로 낙마하고 있다. 청렴성과 능력을 모두 갖추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런 인재를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황희 정승의 사례에서 보듯 청렴성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능력이다.

중국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다.

춘추전국 시절 자사가 위왕에게 구변을 추천하면서 “구변은 500대의 전차부대를 통솔할 재주를 가졌으니 그를 등용하면 천하를 얻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위왕은 “나 역시 그가 장군감인 걸 알고 있소, 그러나 그가 과거 지방관으로 있을 때 한 집에 달걀 2개씩을 착복한 일이 있으니 그를 쓸 수 없소”라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자사는 “현명한 군주가 사람을 쓰는 것과 뛰어난 목수가 목재를 사용하는 것은 같습니다. 훌륭한 목수는 아름드리나무에 몇 자 썩은 부분이 있다고 그 나무를 버리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인재를 등용하는 데 작은 허물에 너무 집착하지 마라는 조언이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이치(李治)는 당(唐)의 제3대 황제이자 여황제 무측천(武则天)의 남편이다. 아버지 태종이 그에게 하사한 <제범帝範>에 이런 부분이 나온다.

“현명한 군주가 사람을 쓰는 것은 뛰어난 목수가 목재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 곧은 목재는 수레의 끌채로 쓰고 굽은 목재는 바퀴로 쓰며, 긴 목재는 기둥으로 쓰고 짧은 목재는 가장자리에 사용하니, 곡직과 장단을 불문하고 모두 쓰임새가 있다. 현명한 군주가 사람을 쓰는 것도 이와 같다. 지혜가 뛰어난 사람은 그 지모(智謀)를 활용하고 겁이 많은 자는 그 신중함을 활용하라. 이처럼 모든 사람이 가진 장점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뛰어난 목수 손에는 버려지는 목재가 없고, 현명한 제왕의 손에는 기용되지 못하는 인재가 없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일부 리더는 인재를 고를 때 종종 외양을 보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훌륭한 인재는 결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자의 실수다.

중국 명나라의 군사(참모), 정치가, 시인인 유기[劉基]의 <욱리자郁離子>에 다음과 같은 고사가 나온다. 조趙나라의 어떤 사람이 집 안에 들끓는 쥐를 없애기 중산국中山國에 가서고양이를 한 마리 사 가지고 돌아왔다. 얼마 가지 않아 조나라 사람 집의 쥐는 모두 사라졌다. 그런데 고양이가 집 안의 닭을 잡아먹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자 조나라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왜 이 고양이를 내쫓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아버지가 대답했다.

“몰라도 단단히 모르는구나. 우리 집의 골칫거리는 쥐지 닭이 아니란다. 쥐가 집 안의 양식을 축내고 옷을 갉아 놓으며 담장에 구멍을 둟고 가구와 그릇들을 망가뜨렸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껏 배고픔과 추위에 떨었는데, 어떻게 쥐를 없애지 않겠느냐? 닭이 없으면 닭고기를 먹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고양이를 내쫓았다가 쥐들이 다시 끊으면 그때는 어쩌겠느냐?”

이 이야기의 요점은 어떤 일이든 좋은 부분이 있으면 문제점도 존재하기 마련이니 무엇이 중요한지를 잘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양이가 쥐를 잡은 것이 닭을 잡아먹은 것보다 훨씬 유익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조나라 사람의 고양이와 같은 사람을 자주 만난다. 다른 사람의 단점과 문제점에만 집착하면 조직의 화합은 물론 개개인들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