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2.17(화) 한강의 꿈, 대한민국의 희망!
입추를 지나고 내일이면 겨울눈이 비로 바뀌면서, 얼었던 땅이 녹고 봄비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우수'이다. 어제와 오늘, 기온은 낮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햇살이 칼칼했다. 추위 덕분(?)인지 오래도록 도심을 맴돌던 안개는 모두 사라졌다. 서울 시민들의 온갖 마음들이 머물고 햇살이 쉬어간 자리, 그 곳이 바로 한.강.이다. 추위에 몸을 잔뜩 움츠린 강물은 변함없이 한 자락 한 자락 긴 이야기를 내게 전해 준다. 추운 가슴이 붉어진다. 이 추위가 지나면 아지랑이 소리와 함께 강물 위에도 봄 햇살이 가득 내려앉을 것이다. 조금 전 강변에서 만났던 노인은 사람이 그리웠던 마음을 애써 감춘다.
그의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날은 언제였을까?
갑자기 엊그제 텔레비전을 통해 을지로 지하도에서 생활하는 노숙자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났다. 치열한 삶과 엄청난 추위와 마주하면서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들을 보며 눈물이 핑 돌았다. 현실의 조그마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이리 저리 헤매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들의 삶에 비하면 나의 삶은 따뜻한 봄날이다. 누군가는 "치열하지 않으면 젊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오늘 하루 치열하게 살았는가?"
그들도 빈곤과 인생의 숱한 굴곡을 수없이 갈아엎으며 숨 쉬어 온 지난날들이 그리울 것이다. "나도 한 때는 종업원을 여러 명 거느린 사장이었다"는 한 노숙자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 역시 한 때는 찬란했던 봄이 있었을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내가 이렇게까지 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말도 했다. 그럴 것이다. 어느 누군들 그러한 삶을 원했을까?
사회라는 틀에서 흐르는 강물처럼 떠밀려 떠밀려 그곳까지 이르렀을 것이다. 처음엔 어쩌다 저런 지경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도 가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전적으로 그들 탓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가, 우리가, 사회가 그들을 찬바람 부는 절벽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그들을 모르는 채, 못 본 척 눈감고 외면하며 살아온 내 자신을 반성해 본다.
그들의 입을 통해 주저리 주저리 나오는 말을 모으면 여러 권의 책이 필요할 정도로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하지만 깜깜한 지하도, 그 어둠속에서도 그들은 아직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내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꿈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밥은 내 돈으로 사 먹겠다"는 꿈, 어떻게 보면 소박한 꿈일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쉽게 말하곤 한다. 그들은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결코 자신의 현실을 비관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는 데 우리들보다 더 큰 희망을 가져볼 수 있다. 한 노숙인은 "하루 18시간, 새벽 5시부터 밤늦게까지 산더미같은 두 리어카 분량의 폐지를 고물상에 갖다주면 18,000원을 받는다고 했다. 그래서 폐지줍는 일을 포기했다고 했다. 이것은 노동이 아니라 거의 노예수준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준다.
누가 그들을 그렇게까지 내몰았는가? 분명 그들의 탓도 있겠지만, 어쩌면 경쟁과 속도전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 우리 모두의 책임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우리는 꿈과 희망만은 잃어서는 안 된다. 우선 나부터 미래를, 희망을, 꿈을 이야기하는데 인색하지 말아야겠다. 어느 누구도 나의 꿈을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반드시 위대한 것만이 꿈은 아닐 것이다. 반드시 위대한 것만이 성공은 아닐 것이다.
강변의 세찬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전거를 즐기는 자전거족들이 쌩쌩 지나쳐 갔다. 한낮의 치열했던 강변도심은 어느새 어둠과 함께 차분함을 되찾고 있었다. 편의점에 들러 한강이 잘 보이는 전망 좋은 창가에 앉았다. 진하지 않은 커피 한 잔을 시켰다. 갑자기 휑한 생각이 든다. 때로는 단순한 가치에 마음을 열어보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하는....심드렁한 생각이 들었다.
모난 돌이 충돌과 세월을 통해 조약돌이 되듯 우리의 삶 역시 꿈과 열정을 통해 그렇게 둥글어지는 모양이다. 거추장스러운 것일랑 모두 벗어버리고 간편한 맨 마음으로 한강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지혜로울까? 세파에 휩쓸리지 않고 꺾이지 않고 먼 길을 가려면, 가벼운 몸으로 나서야 한다. 강은 나에게 이것을 가르쳐 준다. 햇살이 외출한 짙은 어둠속을 평화로운 고요만이 흘러간다. 느리게 흘러도 수만리 떨어진 바다에 닿는다. 한강은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바다와 섞이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고 편의점을 나왔다. 좀전과는 차원이 다른 강한 바람이 한강을 휩쓸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물위의 레스토랑, 'River City'의 불빛들도 함께 떨리고 있었다. 어둠이 개이고 햇살이 찾아들면 그때서야 바람은 멈추려나. 나는 바람을 피해 황급히 사라졌다. 정겨운 나의 아지터로....
한강은 나에게 '욕심을 버릴수록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고, 침묵할수록 더 깊은 외침을 들을 수 있다'고 말한다. 나의 모난 삶을 보듬어주고 서러운 이들의 처량한 노래 소리까지도 오롯이 안아주는 곳, 그 곳이 한강이다. 소설가 조정래의 <한강>은 고통과 희망이라는 우리 민족의 삶을 그대로 전해 준다. 또한 4.19부터 광주민주화운동까지의 세월 속에 담긴 민족의 비극과 한을 다룬 소설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와 우리가 살아왔던 그대로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 또한 한강이기도 하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통곡의 세월을 지나온 한강이지만 언제나 넉넉하기만 하다. 한강은 우리에게 말한다.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루라'고... '어려울수록 꿈과 희망만은 잃지 말라'고...
강바람을 뒤로 하고 신사동 가로수 길에 접어들었다. 바람이 한층 차분해졌다. 유럽식 레스토랑은 추위에도 불구하고 많은 젊은이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그들의 옷매무새를 보니 덩달아 추위가 느껴졌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지나가는 분위기 있는 카페 'Bloom and Goute(블룸 앤 구떼)'가 눈에 들어온다. '꽃과 케이크' 라는 말처럼 아름다운 카페다. 안을 보니 어두운 조명 아래서 젊은이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오는 것처럼 활기차 보였다.
어둡고 캄캄한 지하도에서 추위와 투쟁하면서 하루하루 삶을 이어가는 노숙자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온다. 부디, 끝까지 희망과 꿈만은 잃지 않았으면 하고 기도해 본다. 우리나라 경제도 어렵다. 어렵다고 한탄만 한다고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말 이럴때 일수록 모두가 합심해서 반만년 우리 역사의 저력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세계에 증명해 보여야 할 때다. 대한민국이 곧 희망이다.
"절망의 끝에는 희망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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