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2.28(토)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닌 산행
서울도심과 푸른하늘 그리고 살가운 햇살이 모처럼 한데 어우러진 멋진 날이었다. 아침부터 창가로 밀려드는 눈부신 햇살에 떠밀려 눈을 떴다. 7시 30분이었다. 간밤엔 뱀이 나의 온몸을 휘감는 유쾌하지 않은 꿈을 꾸었다. 정신이 맑지는 않았지만 날씨를 보니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여느 아침과 마찬가지로 먼저 블라인드를 걷었다. 창을 통해 먼발치로 보이는 북한산이 비교적 선명하게 들어왔다. 주말이면 늘 그래왔던 것처럼 서둘러 배낭을 챙겼다. 간단하게 삶은 고구마 한 개와 물 한통, 스틱을 챙겨들고 가벼운 복장으로 집을 나섰다. 완연한 봄바람이었다. 밤낮으로 차들이 뒤엉켜 있던 모습에 익숙했었던 터라 차들이 듬성듬성 지나는 도로가 휑하게 느껴졌다.
거리는 한적했지만 지하철은 예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불광역에 내려 오늘은 한적한 다른 길로 산행을 해 보기로 했다. 18번째 찾은 북한산이다. 대부분 혼자였다. 부산에서 온 촌놈이라 서울엔 함께 산행할 친구를 만들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혼자 조용조용 나무와 돌과 하늘과 바람과 대화하며 산행하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았기에 어쩌면 '나 홀로 산행'을 즐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모처럼 화창한 봄기운을 느껴보고 또 아지랑이 피어나는 봄의 자태들을 카메라에 담아 오고 싶어 큰 카메라를 어깨에 맺다.
불광역 반대편 방향 낮은 뒷산으로 오르기로 했다. 이곳 역시 산행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끔씩은 혼자 산행하는 것이 후회스러울 때도 있었다. 산에서 솔로가 된 내가 왠지 정상궤도를 이탈하여 길을 잃은 사람 같은, 그들에게서 떠밀려 이방인 같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하고, 점심을 먹는 모습들을 보면서 너무 부럽기도 했다.
-구기터널 위에서 불광역 도심 전경
하지만 나는 솔로였지만, 솔로가 아니었다. 집을 나설 때는 솔로였지만 산에 발을 디디는 순간 더 이상 솔로가 아니었다. 때론 산악회 틈에서 또 때로는 아주머니들 틈에서, 나이 지긋한 아저씨, 할아버지들 틈에서 자의반 타의반 함께 산행을 하기 때문이다. 아니 함께 걸을 수밖에 없다. 북한산에서 혼자 오롯이 걷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시치미떼고 그들 틈에 끼어 난 많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생방송으로 듣는다. 어제 국회에서 모 여성의원이 폭행당했다는 이야기, 정당이 어떻고, 정치인 누구가 어떻고, 국회가 정신 나갔다는 둥, 대통령이 어떻다는 둥, 경제가 미쳤다는 둥, 미디어법이 어떻다는 둥, MBC 신 모, 박 모 앵커가 어떻다는 둥......
최근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입하나 까딱하지 않고 라이브로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많은 시민들이 찾는 북한산에서 등산객들의 틈바구니에 끼여 산행하노라면 혼자가 되기는 어려웠다. 나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북한산에서 혼자 산행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산행하는 모두를 하나로 아우르는 곳이 바로 북한산이기 때문이다. 세상 돌아가는 일상이 궁금하다면 배낭을 메고 북한산으로 가 볼 일이다.
서울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햇살 좋은 곳에 잠시 쉬기로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산에 오르면 산이 무게를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심심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휴식시간만은 정말 솔로였다. 쉬고 있을 땐 어느 누구 하나 손 길 내미는 이도, 말을 걸어오는 이도 없기 때문이다. 그건 쉬는 사람에 대한 매너 때문이라고, 나에 대한 배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산행하는 사람들의 틈에 엄마 아빠를 따라 나선 아이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아이들은 처음엔 때를 쓰기도 하지만 산에 들어서면 재잘거리며 씩씩하게 잘 걷는다. 나의 두 딸도 산에 가는 것 보다는 컴퓨터와 영화 그리고 꽃보다 남자 드라마에 더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일단 산에 가면 무섭게 잘 올라간다.
인도의 현인 '스와미 사치다난다'의 말이다.
"우리가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는 멋졌다.....
얼마 후 우리는 타락했다.....
이제 우리는 순화되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태어날 때는 천사였지만 사회라는 틀에서 모두 타락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 그 타락에서 벗어나야 함을 의미하는 말이다. 무조건 공감할 수는 없겠지만 정신이 약해져가는 우리에게 일침을 가하는 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가 말하는 '우리'의 의미는 태어난 지구가 될 수도 있고, 산이 될 수도 있고 바다가 될 수도 있고, 우리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는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도네시아에 유명한 휴양관광지인 발리 섬이 있다. 한 때는 우리나라 선남선녀들의 신혼여행지로 각광받았던 곳이기도 했다. 발리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처음 5개월이 될 때까지는 아기의 발을 땅에 디디지 못하게 한다. 아기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고 여기기 때문에, 되도록 거친 땅과 접하는 데서 오는 충격을 받지 않게 하려고 조심하는 것이다. 아기는 150일 동안 계속 들려 있다가 발을 땅에 디딜 때는 기도와 축복 속에서 화려한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하지만 산업화 시대에 '경제'라는 화두로 인해 물질문명이 빛을 발하는 시대에 태어난 우리는 대부분 천사처럼 태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산부인과 분만실의 화려한 조명과 매케한 약품 냄새를 맡으면서 얼떨떨하게 태어난다. 태어나자마자 잘 못한 것도 없는데 간호사로부터 엉덩이를 철썩 맞는다. 그리곤 그에 대한 답례로 큰 소리로 운다. 울지 않으면 계속 맞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하는 이유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제일 먼저 듣게 되는 말이 "아들입니다." 아니면 "딸입니다."이다. 하나의 인격체로서 보다는 성으로서 구분되어 진다는 말이다. 이런 말보다는 "이 아이는 세상의 빛입니다" 혹은 "이 아이는 세상의 천사입니다"와 같은 말은 어떨까?
우리들 중 혹시 "이 아이는 세상의 빛입니다"라는 말을 들으며 태어난 사람이 있는가?
간식을 먹고는 낙엽위에 벌러덩 누웠다. 파란 하늘이었다. 당연한 것인데도 새삼스러웠다. 누워서 보는 하늘과 서서 보는 하늘은 분명 다르게 느껴졌다. 서서 보는 하늘은 눈으로 보는 하늘이고, 누워서 보는 하늘은 마음으로 보는 하늘 같은 느낌이었다. 하늘 속으로 나 자신이 온전히 빨려 들어가 하나가 되는 그런 느낌 말이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하늘빛 그대로였다. 마치 천사가 사는 천국 같았다. 해맑은 아이의 눈망울처럼 그런 또랑또랑한 하늘이었다. 잠시나마 일상의 어줍쟎음들이 사라졌다.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나를 위로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고마운 일이다. 모두 나 만큼은 힘들겠지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하지만.....
결국 싸움의 상대는 바로 나 자신일 것이다. 상대를 외부의 탓이나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한 그 전투는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일에만 집중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미리부터 다가올 일을 예단하여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 깊은 나락으로 빠지지 말아야 하는데.... '어려운 상황이 닥칠수록 당신의 꿈을 기억하라'는 말이 생각난다. 또 '좌절감이나 두려움이 밀려들 때는 왜 그것을 하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떠올려라'는 말도 기억난다.
<모비 딕>의 저자 허먼 멜빌은 "다른 사람을 능숙하게 흉내내느니 차라리 너 자신이 되는 것에 실패하는 것이 낫다"고 충고했다. 좌절감이나 실패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하는 양념이라고 했다. 두려움이나 걱정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보다는 자신만의 그것을 위해 그 어떤 시도를 하는 게 낫다는 말이다. 나 뿐 아니라 우리 모두, 남이 아닌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지나치게 의식한다.
또 우리 자신을 지나치게 과소평가 한다. 능력이나 잠재력이 애초부터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것을 끄집어 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 마음을 모으기만 하면 누릴 수 있는 더 큰 세상이 분명 기다리고 있다. 금붕어를 작은 어항에 꺼내어 더 넓은 곳에서 헤엄치게 하면 더 크게 자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가 인정하는 만큼의 크기로 자란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자신을 가볍게 해야 한다. 날으는 새에게 돌멩이를 매달면 얼마 날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몸에 다른 사람의 돌멩이를 매달지 말아야 한다. 남을 배려해야겠지만 지나치게 의식하지는 말아야 한다. 우선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라. 자신에게 중요한 일을 먼저 하라. 가장 먼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중요한 것을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족두리봉
쉬고 있는 동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꼬리를 물고 산을 오르고 있었다. 배낭을 들쳐메고 대충 눈치주지 않을 것 같은 나이 지긋한 아저씨 앞에 자리를 잡고 산행을 이어갔다. 아마 어떤 단체에서 함께 산행하는 것 같았다. 앞서가는 젊은이의 배낭에 '엄홍길 휴먼재단'이라고 꼬리표를 달고 있었다. 산악인 엄홍길, 그는 2000년도에 아시아 최초, 세계 8번째 희말라야 8,000미터급 14좌를 완등하고, 다시 2004년에는 얄룽캉 8,505미터, 2007년 로체샤르 8,400미터 완등으로 인류 최초 히말라야 16좌 등반에 성공한 산악인이다. 엄홍길씨는 14좌 완등 후 펴낸 그의 저서 <8000미터의 희망과 고독>에서 "신들의 거처 히말라야에 들어설 때마다 나는 이승과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부르르 몸서리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 청춘의 알 수 없는 힘들은 나를 히말라야의 정상으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2008년 첫 산문집 <꿈을 향해 거침없이 도전하라>에서는 "서른 여덟 번 히말라야를 오르면서 겪었던 수많은 위험과 고비를 생각하면 사실 나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난 히말라야를 오르고 또 올랐다. 나의 눈물이, 나의 열정이 나의 도전이 히말라야와 하나가 될 수만 있다면 난 멈추지 않고 전진을 외쳤다. 영영 걷지 못한다 해도, 돌아오지 않는 영원한 산사람으로 그곳에 묻힌다 해도 난 산에서 등을 돌릴 수 없었다. 그리고 결국 난 꿈을 이루고야 말았다"고 술회했다.
비봉과 사모바위를 지나 처음으로 삼천탐방지원센타로 일단 하산해 보기로 했다. 내려가는 계곡 곳곳엔 얼음이 가는 겨울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른 등산로보다는 인적이 드물었다. 따라서 봄이 오는 길목에서도 낙엽 밟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산이 끝날 무렵에 삼각산(북한산의 옛 이름) 삼천사가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문화재청 홈페이지 자료를 보면, 삼각산(三角山)은 북한산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산봉으로서 백운대(白雲臺,836.5m), 인수봉(人壽峰,810.5m), 만경대(萬鏡臺,787.0m)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쥐라기 말의 대보화강암(흑운모 화강암 또는 화강섬록암)으로 되어 있으며, 형상을 달리한 화강암 돔(granite dome)으로 되어 있어 수려한 자연경관을 보여준다. 돔을 형성하는 산 사면의 경사는 대체로 70°이상에 달하고 있다. 백운대의 정상에는 약 500㎡의 평탄한 곳이 있어 많은 등반객 또는 관광객들이 모여들기도 한다. 만경대의 옛 이름은 국망봉이라 호칭되었으며, 정상부의 산세는 불규칙하다. 삼각산은 산세가 수려하여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고구려 동명왕의 왕자인 온조와 비류가 남쪽으로 내려와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가서 살 만한 곳을 정하였다는 전설이 있으니, 바로 이 삼각산을 말한다. 그리고 무학대사가 조선의 수도 후보지를 찾으러 순례할 때 백운대로부터 맥을 밟아 만경대에 이르러 서남 방향으로 가 비봉에 이르니 한 석비가 있었는데 거기에 "무학이 길을 잘못 들어 여기에 이른다"는 비석이 있어서 길을 다시 바꾸어 내려가 궁성터(오늘의 경복궁)를 정하였던 곳이 바로 이 삼각산이다.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 중국으로 끌려가면서 남긴 김상헌의 싯귀에 있듯이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라는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삼각산은 인수, 백운, 만경의 세 봉우리가 지니는 신비로운 자태와 영산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삼국시대부터 우리의 선조들이 찾아 제사를 지내고 도를 닦고 성을 쌓으며 각축을 벌였던 민족사와 문화의 상징적 가치가 크다.
오늘은 2월의 마지막 날이다.
안팎으로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쌓여 있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어려움을 만든 장본인인 우리들이다.
우리가 만든 어려움,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다.
소롱소롱한 햇살을 맞으며 구파발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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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봄이 오는 북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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