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있는 산행기/중부지역

한강에 들다

김부현(김중순) 2009. 3. 1. 19:53

 

달이 바뀌어 3월이다. 오늘은 90회를 맞는 3.1절이다. 어제보다 더 소담스런 햇살이었다. 봄이 더 빠르게 오고 있는 느낌이다. 휴일의 게으름을 마음껏 즐기다 점심 무렵 집을 나섰다. 오늘은 좀 더 가까이서 한강의 속살을 보고 싶었다. 강으로 향하는 길에 지나가는 '가로수길'은 정말 한산했다. 봄 햇살은 와 있는 듯한데 강바람은 아직 겨울 그림자를 옅게 드리우고 있었다. 강위에 노니는 청둥오리가 먼저 봄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잠원지구 리버씨티 레스토랑 전경

 

세상사는 울렁거림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강을 찾는다.

강물에는 어떤 마음들이 떠오르고 어떤 마음들이 가라앉아 있는 것일까.

강물은 바쁘게 서두르지 않아도 자신의 역할을 다 해낸다.

강은 강이다.

강 그대로의 완전한 강이다.

하지만 나는 나 그대로의 나가 아닌 것 같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아닌 것 같다.

나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살아가는 동안 온전한 내가 될 수 없었다.

 

 -동호대교 밑에서,

 

한남대교를 지나 동호대교, 성수대교를 거쳐 잠실까지 강을 따라 걷기로 했다. 바람은 불었지만 강물은 잔잔했다. 어릴 때 즐겨했던 수제비뜨기 놀이를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봄바람과 겨울바람이 교차하고 있었다. 저 다리만 지나면 지난 삶을 되돌릴 수 있을까. 저 다리만 지나면 지난 삶을 잊을 수 있을까. 강가엔 추운 겨울을 견뎌낸 작은 나뭇가지들이 봄이 온다는 희망을 간직한 채 봄 채비를 하고 있었다. 붙잡을 수 없는 건 시간만이 아닌 것 같다. 저 물길, 들길, 마음의 길 모두 제 갈 길이 정해져 있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찾는 강, 하지만 기억하기 싫은 것들만 찾아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바람결에 흔들리는 억새를 보며 행복했던 추억들을 애써 떠올려 본다. 나도 한때는 억수로 행복한 놈이었다고...

 

알맞게 부는 바람과 적당히 흐르는 저 강물이 나의 서글픈 추억들을 모두 담아낼 수 있을까. 추억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는 없을 것이다. 시도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도 없을 것이다. 또한 떠나기에 너무 늦은 나이도 없을 것이다. 왜 생의 늘그막에서야 버려야 할 것과 기억해야 할 것을 아는 것일까. 버리지 못하고 비우지 못하는 이 나약함은, 지나치게 사소한 것에 대한 집착 때문일 것이다.

 

 

성수대교를 지나자 3.1절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동호회 선수들이 삼삼오오 달려오고 있었다. 남녀노소 없이 많은 이들이 나를 스쳐갔다. 저들은 왜 달리는 것일까. 잠실에서 하프마라톤을 끝낸 한 할아버지에게 물어 보았다. "그냥 좋아서 달린다"고 하셨다. 그럴 것이다. 좋아서, 즐거워서 하는 일에 거창한 이유가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냥 산을 오르고 그냥 걷는다. 그것이 즐겁고 좋기 때문이다.

 

즐거움 이상의 어떤 목적을 가지는 순간 그것은 의무감으로 바뀌게 된다.

의무감을 갖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의식한다는 말이다.

 

돌아보면 언제나 대책은 후회 뒤에서 따라 왔던 것 같다.

그것은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마음의 문을 다 열어두고 눈부신 햇살을 마음껏 들이고 싶다.

 

 

"깊은 밤 고요히 흐르는

 강물 같아라

 밤의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아

 하늘의 모든 별을 제 물결에 담고

 구름이 하늘을 가리면

 구름 또한 물 같고 강 같아

 흔쾌히 그들을 비추리

 깊고 깊은 침묵 속에서"

-마누엘 반데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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