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의 한 고층아파트 '하이라이즈', 이 아파트는 아파트 안에서 수영, 운동은 물론 쇼핑도 가능하도록 설계된 아파트다. 한 마디로 모든 게 가능한 하이라이즈인데 한 사회의 축소판이다. 층별로 계층화 되어 있어 하나의 계급 사회형 아파트임을 그대로 보여준다. <설국열차>에서 승객들은 뒷칸에서 앞칸으로 가기 위해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를 벌이지만, <하이라이즈>에서는 아래층에서 윗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살벌한 투쟁을 한다.
2016년 개봉했던 하이라이즈에는 사회의 각 계급을 대표하는 계층들이 함께 살고 있다. 먼저 고층에 사는 상류층, 지도자를 대표하는 인물은 로열이다. 하이라이즈를 건축한 건축가이기도 하다. 40층에 사는 로열은 아파트 전체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계획하고 통제한다. 그리고 상층부 사람들은 하층부 사람들의 삶을 통제한다. 이는 법을 제정하는 사법부와 이 법에 따라 사람들을 통제하는 행정부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한다.
다음은 중간층인 25층에 사는 닥터 랭이다. 임상병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로 사회에서 꽤나 인정받는 삶을 살아왔지만 40층짜리 하이라이즈의 25층 새로 이사온 사회의 중간 계층에 속하는 중산층을 대별하는 인물이다. 하이라이즈 상층부에 거주하는 상류층에 비해 중간층에 살고 있는 중산층의 대표격인 닥터 랭은 그나마 살만하다.
하지만 하층부는 완전히 딴 세상이다. 툭하면 하수구가 넘쳐 흐르고 쓰레기는 고층에서 저층으로 보내는 방식으로 처리되는데 상층부에서 큰 쓰레기를 버리면 하층부에서 막히고 처리 역시 하층부에서 해야만 했다. 이런 점에서 하층부는 서민들의 모습을 대별해 주고 있다. 심지어 상류층 파트가 열리는 날에는 어김없이 전기가 부족해서 하류층에서는 정전이 되었다.
그러나 영화는 상층부에 살던 하층부에 살던 기본적으로 죽음 앞에서는 공평하다는 인간 본성을 보여준다.
극한의 상황에서는 상하층부의 구별이 모호해진다는 것이다.
한 아파트로 작은 사회의 모습을 통째로 보여주는 하이라이즈는 우리나라 아파트에도 점점 고착화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유독 아파트 선호도가 높은 지금의 우리나라 아파트 모습과 영화 속 하이라이즈는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아파트가 계급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너는 아이파크에 살고 나는 래미안에 사는 나라, 우리나라 부동산의 계급구조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들이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신통치는 않다. 먼저 <부동산 계급사회>의 저자인 손낙구다. 그는 부동산 6계급론을 주장했다.
● 손낙구의 부동산 6계급론
구분 |
계급 |
특징 |
분포(%) |
집이 있다 |
1 |
집값 7억5천만 원 초과 |
2 |
2 |
집값 7억5천만 원 이하 |
54 |
|
3 |
집은 있지만 전세살이 |
4 |
|
집이 없다 |
4 |
전세보증금 5천만 원 이상 |
6 |
5 |
전세보증금 5천만 원 미만 |
30 |
|
6 |
지하, 옥탑방 등에 거주 |
4 |
저자는 부동산 6계급을 분류하면서 먼저 집이 있는지, 없는지와 극빈층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이를 위한 전제로 다음 세가지를 제시했다.
1. 땅 위에 살고 있나요?
2. 본인이나 가족 소유의 집에 살고 있나요?
3. 지금 사는 집 외에도 본인 소유의 집이 더 있나요?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하면 6계급의 최상위인 1계급에 속한다. 세 가지 중 1과 2만 충족하면 2계급에 속하고, 3계급은 1을 충족하고 현재 본인 집은 있지만 전세를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4계급은 땅 위에 살고 있으면서 현재 본인 소유의 집은 없고 전세보증금 5천만 원 이상인 사람들이 해당되고, 4계급 중 전세보증금 5천만 원 미만인 사람은 5계급에 속한다.마지막 6계급은 땅 위가 아닌 지하, 반지하, 옥탑방 등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1계급에 해당하는 계층은 7%였고 2계급은 49%로 가장 많은 분포를 보였다. 3계급은 3%, 4계급은 6% 그리고 30%가 5계급에 속했다. 6계급은 4%였다.
이에 저자는 계급별 부동산 대책을 달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계급에 대해서는 임대소득세와 보유세를 강화해야 하고 2계급 해당자는 주택유지 보호와 주거상향 지원 대상이라고 했다. 내 집 입주 지원 정책 대상자로 3계급을 꼽았고, 4계급은 내 집 마련 정책 지원 대상이다. 셋방 탈출 지원 정책이 필요한 5계급, 마지막 6계급은 지하방을 탈출할 수 있는 사다리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12년 전에 출간된 책이었지만 금액만 다소 차이가 날 뿐 그 분포도나 상황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그리고 한 네티즌이 올린 '2019 부동산 계급표'는 그저 웃고 넘기기에는 가슴 찌르는 핵심이 있어 보인다.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던 부동산 계급은 kb부동산 시세와 평당가격을 기준으로 황족으로 시작하여 가축, 재활용으로 나누었다. 맨 위의 황족은 평당가격이 5,000만 원을 넘는 강남구, 다음은 4,000만 원인 서초구와 여의도가 왕족에 올랐다. 마지막 재활용은 평당가격이 1,000만 원 미만인 지역 전체가 포함된다. 따라서 이제 누구를 만나더라도 “어디 사세요?”, “어느 아파트에 사세요?”라고 묻는 것은 실례가 되는 시대다. 그것은 곧 당신은 황족이냐, 평민이냐고 대놓고 묻는 게 되기 때문이다.
● 네티즌의 부동산 계급표
계급 |
평당가격(만원, kb시세 기준) |
지역 |
황족 |
5,000 |
강남구 |
왕족 |
4,000 |
서초구, 이촌1동, 여의도 |
중앙귀족 |
2,800 |
송파구, 잠실, 목동, 용산 등 |
지방호족 |
2,400 |
동작구, 강동구, 판교, 중구 등 |
중인 |
1,800 |
분당, 위례, 동안구청, 광명 등 |
평민 |
1,300 |
강북, 수지, 구리, 성남 |
노비 |
1,150 |
대구 수성구, 부산 수영구, 군포, 청라 등 |
가축 |
1,050 |
부천, 용인, 수원, 고양, 일산 등 |
재활용 |
1,000 이하 |
기타 시군구 |
그리고 배종찬 교수가 유튜브 "배종찬 교수의 맛있는 부동산 이야기"에서 주장한 아파트 6계급론이다. 손낙구의 부동산 6계급론을 현실에 맞게 수정을 가한 정도로 보여진다.
● 배종찬 교수의 아파트 6계급론
계급 |
지역 |
1 |
서울 4구 소유자, 다주택자 |
2 |
서울, 수도권 핵심지역 소유자 |
3 |
서울 전세, 5대 광역시 핵심 소유자 |
4 |
수도권 전세, 5대 광역시 소유자 |
5 |
5대 광역시 전세 |
6 |
기타 소형평수 월세납부 거주자 |
아무튼 어떤 방법으로 분류하던 우리나라의 아파트 계급사회는 점점 고착화되고 있다. 얼마 전, 서울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는 분양동과 임대동의 출입구를 다르게 해서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해당 단지는 실제로 1.5미터 높이의 철조망을 설치하여 출입구를 서로 다르게 했다.
부동산 계급사회는 비단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겪는 현상이다. 관련 자료를 보고 어떤 이는 헬조선이라고 비토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한 계급씩 올라가려는 도전을 택할 것이다. 자본주의는 도덕이 아닌 돈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이다. 선택은 자유다.
아파트만 계급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자동차도 계급이 있고 땅도 마찬가지다. 강남 땅을 팔면 부산 전체를 산다. 한 자료(2012년 기준)에 의하면, 강남 3구의 공시지가 총액은 365조 원 정도였다. 땅값만 보면 서울시와 경기도 다음이다. 2001년 기준으로 3.5배 증가한 수치다. 전국 257개 전체 자치단체별 공시지가 합계를 보면, 서울시가 113조 원으로 가장 높았고, 뒤이어 1,033조 원인 경기도가, 인천 215조 원, 충남 162조 원, 그리고 강남이 152조 원이었고 151조 원인 부산이 그 뒤를 이었다. 강남 땅을 팔면 부산 전체를 살 수 있다는 말이다. 강남과 서울 수도권 그리고 지방 땅값은 양극화를 넘어 삼극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고층, 고급아파트에 살고 부자가 되면 특히 좋은 점이 많다. 인문학이 부재하여 저층 사람들을 대놓고 무시하고 멸시해도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사회적 가치관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보다 부자인 사람들이 자신을 멸시하고 무시하면 저항하고 바꾸려 하기 보다는 자신보다 못사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가시키는 편을 택한다.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의 불공정을 보고 공정을 요구하기보다는 자신보다 계급이 낮은 사람에게 똑같은 불공정을 행사하는 편을 택한다. 그게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본성이다. 소설가 김훈은 "인간은 기본적으로 입과 항문이다"라고 일갈했고, 니체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은 필요에 따라 신과 동물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어정쩡한 존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니까 신이 아닌 땅위에 발을 딛고 살고 있는 것 아닐까?
'부동산을 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 토지거래허가구역, 2024년 총선 때 해제될 듯 (0) | 2023.03.22 |
---|---|
재건축대장 분양가, 서울 은마 vs 부산 남천삼익비치 (0) | 2023.02.16 |
규제지역 주택 구입시 무조건 자금출처 증빙자료 제출(2020년 10월 27일) (0) | 2020.10.21 |
2020년 7월부터 규제지역에서 대출받아 집 사면 6개월내 입주해야 한다 (0) | 2020.06.29 |
남편은 집주인, 아내는 세입자…부동산판 또다른 '부부의 세계' (0) | 2020.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