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있는 산행기/중부지역

청계산, 황톳길 산림욕장 방문기

김부현(김중순) 2009. 6. 22. 15:59

2009.6.21. 비 그친 일요일,

몸도 마음도 마음껏 풀어헤칠 수 있는 날이다.

꿈과 잠의 접경쯤에서 만나는 나른한 아침.

깊이를 알 수 없는 몽환적인 혼미로움이, 잠시 쉬고 있는 나의 '방랑끼'에게 미끼를 던진다.

금새 또 떠날 채비를 한다.

 

채비를 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 없다. 늘 떠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배낭매고 나서기만 하면 된다.

'청계산 산림욕장'으로 향했다.

비 그친 후의 햇살이라 더욱 반가웠다.

걸으며 일광욕을 즐기며, 일상의 우중충한 때를 벗어내기로 했다.

오늘은 1년 중 낮이 가장 길다는 24절기의 하나인 '하지'다.

 

도시에서 살짝만 비켜나도 금새 푸르름과 맑은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왔다.

양재역에서 옛골행 버스를 타고 산림욕장 입구 정류소 일명 개나리골에서 내렸다.

산림욕장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호박밭이다. 호박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나고 있다.

숲을 들어서자마자 숲향기가 진하게 코를 자극했다.

산림욕이란 일반적으로 숲이나 삼림 속에서 맑은 공기를 호흡하고 적당히 운동하면서 심신의 휴식을 꾀하는 것을 말한다.

몸의 때를 씻어내는 것이 목욕이라면, 마음의 때를 씻어 내는 것이 삼림욕이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숲속의 수목은 상쾌한 향기를 내는데 이는 '테르펜류'라는 탄화수소 화합물에 의한 것으로,

인간의 정신, 특히 자율신경에 작용하여 정신의 안정과 자기최면에 걸리기 쉽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테르펜류 이외에도 여러 가지 물질이 삼림에서 방출되고 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이미 그 구조가 밝혀져 있다.

노송나무에서 히노키올, 히노키온, 히노키산, 히노키티올, 히노키틴, 히노키닌, 그리고 히노키유가 추출되는 것이 그 한 예이다.

히노키올은 1936년 일본의 화학자인 노조에 데쓰오가 타이완의 노송나무에서 추출한 것으로, 그는 히노키올의 구조식을 결정했으며 살균작용이 있다는 것도 증명했다.

20여분을 오르면 화물터미널, 개나리골에서 옥녀봉을 오르는 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난다. 

삼거리에 있는 소나무 숲이다. 산림욕 하기에 좋은 곳이다. 

소나무 즐기는 어제 내린 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젖어있다. 

산림욕장 소나무 숲길이다. 멋지다. 

산림욕하면 으레히 우리는 '피톤치드'라는 것과 관련지운다.

'피톤치드(phytoncid)'는 나무에서 방산되어 주위의 미생물 따위를 죽이는 작용을 하는 물질을 말하는 데, 이것이 산림욕 효능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용어는 1943년 러시아 태생의 미국 세균학자 왁스먼이 처음으로 발표한 말인데, 식물이 병원균·해충·곰팡이에 저항하려고 내뿜거나 분비하는 물질로, 산림욕을 통해 사람이 피톤치드를 마시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장과 심폐기능이 강화되며 살균작용도 이루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여러 분야에서 피톤치드의 효능을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옥녀봉으로 오르는 길목에 서 있는 피톤치드의의 정의와 효용에 관한 한글과 영문을 혼용한 안내판이다. 

피톤치드에 대해 설명을 잘 해 주고 있다. 

조금 더 오르다 보면 만나는 숲속 제1쉼터에 있는 '산림욕과 피톤치드' 안내판이다. 

산림욕 하는 요령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고 있다.

 

얼마전  2009.6.11(목) KBS 1TV '생로병사의 비밀'에서는 <천혜의 보약, 숲에 관한 첨단보고서>를 통해 숲이 가진 놀라운 치유력에 대해 방송한 바 있다.

방송에서는 피톤치드를 '숲 속의 천연살균제'라고 극찬했으며, 숲은 현대판 '우울증이나 스트레스의 치료실'이라고 했다.

실제로 현대의학이 포기한 많은 사람들이 숲을 통해 건강을 회복했다는 사례도 방송되었다.

피톤치드(phytoncide)는 1943년 러시아 태생의 미국 세균학자 왁스먼이 처음으로 발표했다. 러시아어로 '식물의'라는 뜻의 'phyton'과 '죽이다'라는 뜻의 'cide'가 합해서 생긴 말이다.

왁스먼은 스트렙토마이신의 발견으로 결핵 퇴치에 공헌해서 1952년에 노벨의학상을 받은 사람이다.  

 

산림욕장을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황톳길을에서 만나게 되는 발맛사지안내판이다. 

역시 영어로도 설명이 되어 있다. 이곳은 도심과 가까워  제법 많은 외국인들이 찾는 곳이기 에 그들에 대한 작은 배려인 듯 싶다. 

옥녀봉에 조금 못미쳐 만나게 되는 청계산에 관한 안내판이다.

이처럼 청계산에는 곳곳에 많은 산행 정보를 설명해 놓은 안내판들이 있다.

그간 40여회 이상을 오른 산이었지만, 허겁지겁 오르내린 탓에 눈에 많이 띄지가 않았었다.

뭐 그리 바빴을까?

나도, 그도, 우리 모두는 산에 들어서기만 하면 경쟁하듯 무조건 정상으로, 제일 높은 곳으로 향한다.

하지만 오늘은 촉새같은 마음을 붙들어메고 천천히 숲을 살피며 걸어볼 예정이다.

   

아무튼 아플 때 약국으로, 병원으로 달려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평소에 자주 숲으로 가 볼 일이다.

산에 입원하자. 그리고 숲에게 치료받자.

산이, 숲이 최고의 병원이요, 최고의 의사가 아닐까? 

옥녀봉에서 본 과천경마장과 관악산의 모습이다. 

옥녀봉에서 진달래능선으로 향하는 길목이다. 

진달래능선길에서 만난 '서울시 지정 우수조망대'다.

구.스타타워와 타워팰리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하늘도 푸르름을 더해간다. 

비 온뒤의 하늘은 더 푸르다. 비 온 뒤의 숲은 더 푸르다. 비 온 뒤의 땅은 더 단단해진다.

진달래능선길을 지나 원터골에 다다를 무렵, 만나게 되는 소나무 숲이다.

땀도 말리고, 메말랐던 마음도 휴식을 주기 위해 제대로 쉬기로 하고 앉았다.

걸을 땐 바람 한 점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래도 숲엔 바람이 인다. 가는 바람이 말이다.

걸을 땐 느낄 수 없었던 간지러운 바람이...

 

쉬기만 하면 잡생각이 났다.

그래서 난 사실 산에서도 오래 쉬지는 않는편이다.

빨리 걷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자주 쉬지도 않는다.

종종 잡생각을 정리하려 간 산에서, 오히려  잡생각을 키워서 오는 우를 범하곤 한 탓에... 

 

늘 멋진 말주변과 해박한 지식, 그리고 차림새에 유난히 신경 썼던 시간들...

있는 그대로의 나대신, 늘 다른 사람에게 비치는 내 모습에 신경 썼던 시간들...

마음은 가라고하고 몸은 오라고하는 이중적 태도에 길들여진 시간들...

그냥 물어본다.

진심을 다해 자신을 대하고 있느냐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보다는 나 자신과 먼저 소통해야 한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는 순간부터 우리는 전쟁을 위한 진군나팔을 불어야 했다.

싫었지만 그 땐 운명이라 생각하고 그 일을 받아 들였다.

실패와 성공이 공존하는 곳, 동화 같고 전쟁 같은 그 곳에서 나는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로 살아야 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나에게 말을 걸 수 있도록 새로운 귀와 눈을 마련해 두어야 했다.

나라는 존재감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말이다. 

마흔을 훌쩍 넘긴 지금,

갈수록 잡생각이 많아진다.

허황된 가면을 벗어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그래고 나름은 이제 그 가면은 벗었다고 생각한다.

그 가면을 벋는데는 강산이 한 번 바뀔 만큼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은 대부분의 경우 불행과 함께 찾아오는 것 같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는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말면서도, 막상 불행이 찾아오면 그 불행을 다른 사람들의 탓으로 돌린다.

지난 시간들,

대학을 선택하고 학과를 정하고, 직업을 정할 때, 결혼 할 때, 이직할 때...

그 중요한 생의 순간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는 않았던가?

타인을 의식한다는 것은 자신이 스스로 책임을 지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물론 스스로 책임진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고단하고 외롭고 처절한 일이다.

누구에게나 지난 시간은 아쉬움과 후회가 있기 마련이다. 

지금부터라도 책임을 다하고 상처를 딛고 눈물을 닦고 다시 일어나 걷자.

꿈을 현실과 연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과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의 접점을 찾는 것이다.

큰 나무의 그늘 밑에 있으니 금새 시원해졌다.

우리의 삶도 큰 그늘 밑에 있으면 시원하긴 하겠지만, 그렇게 해서는 스스로 큰 그늘을 만들기는 어렵다.

다수의 무리에, 누군가의 통제범위 안에 있으면 안전할지는 모르지만 자신만의 그늘을 만들기는 어렵다.

숲을 자세히 보면 큰 나무 아래에서는 어떠한 나무도 잘 자라지 못한다.

혹시 우리도 지금 다른 사람의 그늘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큰 그늘 밑에 앉아 자신이 만든 그늘인 마냥 시원함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햇빛과 구름과 하늘 그리고 숲과 나와 바람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하루였다.

자연을 가슴에 가득 안고 돌아온 터라 다가오는 한 주는 뾰족하지 않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풀섶에 맺힌 이슬 방울 하나에도 감동받은 오늘이다. 

........... 좀 더 자주 산으로 목욕가야겠다.

 

<신록의 유월, 청계산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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