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경쟁력은 단순히 외형적인 경제지표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시스템이나 의식수준 등이 더 중요한 평가척도가 될지 모른다.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신 성장을 이룬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 결과로 우리는 지금 먹는 것으로만 치자면 불과 몇 십년 만에 지옥에서 천당으로 와 있는 셈이다.
하지만 경제성장 만큼 사회시스템들이 따라가지 못하는데 따른 심각한 후유증을 동시에 앓고 있다. 우리는 이제 먹고 사는 것으로 우리를 평가하고 또 평가받을 수는 없다. 의식수준이나 제도 등이 경제성장과 함께 조화를 이루어나갈 때 국가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회적 문제 중 가장 시급하게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 바로 비리를 없애는 것이다. 우리는 공익을 위해 내부의 비리를 고발한 사람들을 일컬어 '공익제보자'라고 부른다.
줄기세포 논문 조작이나 비자금 폭로 등 우리 사회에 큰 파장과 변화를 몰고 온 역사적인 사건들은 대부분 한 사람의 용기 있는 목소리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을 앞에서는 세상을 바꾼 시대의 양심으로 칭찬하면서도, 뒤에서는 조직에 대한 배신자로 낙인을 찍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12월 9일은 UN이 정한 '세계 反(반)부패의 날'이다. 때를 맞춰 MBC TV(2009.12.8)에서는 <PD수첩>을 통해 우리 사회를 바꾸어 가고 있는 내부 고발자들의 삶을 돌아보았다. 온갖 소송과 따돌림으로 이어진 그들의 삶은 한 마디로 참담했다.
국제투명성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09년 '부패인식지수(CPI)'는 오만, 부에노스아이레스와 같은 세계 39위. UN반부패협약의 가입국이자 올해 무역규모 세계 10위권 진입을 눈앞에 둔 이른바 경제선진국으로서는 너무나 부끄러운 기록이다. 공익제보자를 위한 법의 정비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공익제보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다. ‘내셔널 휘슬블로어 센터’의 대표 마이클 콘은 내부고발을 수용함에 있어 동서양이 문화적 차이를 보인다고 말한다. 그러한 차이는 네덜란드의 경영학자인 트롬페나즈의 ‘딜레마 실험’을 통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실험을 위해 다음과 같은 가정을 세웠다.
절친한 친구와 단둘이 한밤중에 차를 몰고 가다 운전을 하던 친구가 교통사고를 내 길가던 행인을 치어 죽게 한다. 목격자는 아무도 없다. 오직 두 사람의 자백에만 의지해야 할 상황이다. 이럴 경우 사실대로 진술할 것인지, 아니면 친구를 위해 진술할 것인지를 물었다. 즉 개인의 의리와 공익이 대치되었을 경우 공익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실험에서 우리나라가 최하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는 공익보다는 개인의 의리와 관계를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안전한 공범이나, 영원한 의리는 없다.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라는 실험 연구 결과를 보자. 상황은 다음과 같다.
두 명의 사건 용의자가 체포되었다. 물론 절대 자백하지 않기로 굳게 약속한 A와 B, 두 범죄자는 각기 다른 방에서 심문을 받게 된다. 이들의 범죄에 대해 검사는 심증만 있지 물증은 없는 상태다. 오로지 범죄자의 자백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둘을 다른 방에 두고 검사가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다. "만약 둘 다 자백하지 않고 묵비권을 행사한다면 증거가 없으므로 1년형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어느 한 명만 자백하면 자백한 자는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반면, 자백하지 않은 자는 10년형을 받게 된다. 그런데 두 사람이 모두 자백하게 되는 경우는 각기 5년형을 받는다."
범죄자 입장에서 보면, 두 사람 모두 묵비권을 행사하게 되면 1년형으로 가장 유리한 선택이다. 그러나 만약 나는 자백하지 않는데 상대편이 자백한다고 하면, 나는 10년형을 받게 된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 결국 검사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서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각기 다른 방에 있는 범죄자들한테서 자백을 얻어낼 수 있다. 곧 비밀을 굳게 맹세하고 같이 범죄를 저질렀지만, 결국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비밀을 털어 놓고 만다는 사실이다. 실험은 게임이론의 유명한 사례로, 2명이 참가하는 비제로섬게임의 일종이다. 이 사례는 협력을 통해 서로 이익이 되는 상황이 아닌, 더욱 불리한 상황을 선택하는 문제가 발생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조직에서 어느 정도의 비밀을 공유하는 것은 조직구성원들의 결속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작용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직 내에서 부정이 행해지고, 또 그것이 빈번할 때는 모든 구성원들이 그것을 끝까지 따르고 비밀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내부비리를 제보한 사람은 조직과 사회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조직에서는 그를 '배신자'라고 낙인을 찍는다.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조직의 투명성을 확보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갈수록 경쟁력은 약화될 것이고 결국에는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의리가 조직 전체를 망가지게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비리를 고발한다는 것은 단순히 용기를 넘어 인생의 전부를 걸어야 하는 모험이자 도박인지도 모른다. 더 이상 비리고발을 한 사람의 용기에만 의지해서는 곤란하다. 용기란 결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용기에 앞서 두려움이 오는 건 당연하다. 진정한 용기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말하고 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용기는 하루아침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삶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과 정직을 실천하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선물이다. 몇 해 전 영등포역에서 철로에 떨어진 아이를 구하고 그만 달려오는 기관차에 부딪혀 왼쪽 발목을 잘라내고 의족을 한 철도원 김행균씨, 2001년 일본에서 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이수현씨,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이들이 있어 우리 사회는 희망이 있고 한 단계 더 발전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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