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즌 브레이크>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 선고를 받은 형을 구하기 위해 건축가인 동생이 일부러 은행강도극을 벌여 감옥에 들어간다.
주인공 마이클 스코필드는 감방에서 탈옥할 생각만하는데 그치지 않고, 매일 조금씩 행동으로 준비하고 또 준비했다.
그렇다.
어디서 벗어나려면 이처럼 무언가를 해야 한다.
단지 생각만 하는 것은 대안이 아니다.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동이 중요하다.
당신은 무엇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가?
"당신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이제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미소 지을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일상이 무미건조하다거나
매사에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면
여기, 온몸으로 고통을 통과한 한 사람을 떠올려 보자.
바로 <죽음의 수용소>에 나오는 주인공 빅터 프랭클이다.
그가 죽은 후 <뉴욕타임즈>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야만적이었던 20세기의 수난을 가장 극힌 상황에서 체험했지만, 20세기 인류에 가장 희망적인 메싲를 던진 사람."으로 빅터 프랭클의 삶의 평했다.
수감번호 119번,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어느 날 유대인이자 정신과 의사였던 빅터 프랭클은 1,500명의 다른 유대인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며칠 밤낮을 달려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새벽녁에 기차가 선 선로옆 팻말을 본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가스실과 화장터, 대학살, 인종 살육장이라 불리는 그곳.
3년 동안 이우슈비츠를 포함해 네 곳의 수용소를 전전긍긍하며 목숨을 이어갔다.
그는 말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고.
빅터 프랭클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무엇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대상이 없는 사람은 없다.
만약 있다면 공동묘지에 잠든 사람들 뿐이다.
벗어나야만 자유를 꿈꿀 수 있고 즐길수 있다.
자유에는 두 가지가 있다.
소망의 자유와 행동의 자유다. 소망의 자유는 꿈을 꾸는 것이고 행동의 자유는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자유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소망의 자유만을 꿈꾸며 산다.
늘 벗어나고 싶다는 소망을 한다.
소망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것은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벗어나고 싶다는 것이 저차원적인 자유라면 행동을 하는 것은 고차원적인 자유다.
따라서 어떤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간절한 그 무언가를 이루려면 고차원적인 자유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한 두번 해보고는 안 되는 일이라고 포기해 버리곤 한다.
바로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학습된 무력감'이다.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
긍정심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셀리그먼은 개를 대상으로 학습된 무기력 이론을 실험했다.
개에게 충격을 피해 도망치는 법을 가르쳤다.
그들은 개가 뛰어 넘을 수 있는 높이의 칸막이로 구분된 상자에 개를 한마리씩 넣었다.
그리고 조명을 어둡게 해서 개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리라는 경고를 준 다음 약한 전기 충격을 연속적으로 주었다.
전기 충격은 개들이 칸막이를 뛰어 넘으면 피할 수 있단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계속 가했다.
이 실험을 하기 하루 전에 셀리그먼의 연구 팀은 개들 중 일부에게 어느 정도 휴식을 주었다.
그 반면 나머지 개들은 끈에 묶여 간헐적으로 가해지는 전기 충격을 겪게 했다.
순진한 개들은 얼마 지나자 충격을 모면하는 방법을 깨닫고 박스에서 충격이 전해지지 않는 부분으로 몸을 옮겼다.
그러나 나머지 개들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처음 전기 충격이 가해졌을 때 그 개들은 이리저리 상자 안을 뛰어다녔지만, 이내 포기하고 그 자리에 엎드려 낑낑댔다.
그러나 충격이 끝났을때도 개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충격이 재개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의 반응을 보였다.
개들은 포기한 듯 싶었다.
"처음에는 다소 몸부림을 쳤으나 몇 초가 지나자 개들은 포기하고 그 충격을 수동적으로 받아 들였다. 이후의 모든 실험에서도 개들은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
이것은 이른바 학습된 무기력 이론을 증명하는 사례다."
사실 '학습된 무력감'이라는 말은 좀 애매한 측면이 있다.
학습된 무력감은 서커스단 코끼리 훈련에도 적용된다.
코끼리를 말뚝에 묶어노으면 처음엔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체득하게 된다. 나중에는 자그마한 가지에 묶어 놓아도 결코 도망치려 하지 않는다.
결국 학습된 무력감이란 '한 번 길들여지거나 어떤 일을 포기하고 나면 실패한 사실 때문에 다시 잘 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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