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경영/인문학

'전문가'라는 달콤한 함정-파리뒷다리전문가

김부현(김중순) 2011. 12. 8. 17:18

'전문가'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여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데요.

우연한 기회에 한 권의 책을 보다가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을 왔다 갔다 하는 그런 사계절 기분을 한꺼번에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좀 심각했지만 뒤이어 웃음이 나왔습니다.

심각해진 이유는 글의 내용이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이었고 웃음이 나왔던 건 비유가 적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우리는 미래에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라는 책입니다.

제목 자체로도 위축되기 십상입니다.

이 책은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모여서 앞으로의 학문과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한 좀 난해한(?) 내용입니다. 즉 미래는 한 전공이 아닌 융합과 통합의 분야가 필요함을 강조하는 내용이지요.

근데 그 중에서 스스로를 이름도 생소한 일명 '지식생태학자'로 부르는 유영만 한양대 교수가 쓴 '파리학과를 전공한 학사, 석사, 박사, 교수의 차이점'을 설명한 글을 일부 각색하여 소개해 봅니다. 천천히 읽다보면 아마 제가 그랬던 것처럼 심각해졌다가 웃음이 나오고 그럴 것입니다.

 

 

I'm a 파리. 프랑스 수도 No. 

-출처 : <네이버 지식사전>

 

 

파리학과에 입학한 새내기는 ‘파리학 개론’부터 배우기 시작해서 ‘파리 앞다리론’, ‘파리 뒷다리론’, ‘파리 몸통론’ 등 '파리학 각론'을 배웁니다. 그리고 졸업하기 전에 파리를 분해·조립해보고 파리가 있는 현장에 가서 인턴십 등 실습을 한 다음 파리학사 자격증 취득하고 졸업을 합니다. 파리학과를 졸업하면 “이젠 파리에 대해 전부 알 것 같다”고 서슴없이 이야기하지요.

 

 

하지만 파리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한 파리학사는 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하기 위해 파리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합니다. 파리 석사는 파리 전체를 연구하면 졸업이 불가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파리의 특정 부위, 즉 ‘파리 뒷다리’를 전공합니다.

파리 뒷다리를 전공하는 대학원생은 파리 뒷다리를 몸통에서 분리, 실험실에서 2년간 연구한 다음 「파리 뒷다리 관절상태가 파리 움직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파리 석사학위를 받습니다.

“이제 무엇을 모르는지를 알 것 같다”고 깨달으면 주어지는 학위가 바로 파리 석사학위입니다. 석사의 '석'자를 돌'석石'자라는 말도 있습니다. 석사학위를 받아도 자기 전공 외에는 아는 바가 없어 붙여졌나 봅니다.

 

 

그러므로 파리 뒷다리 전공자에게 절대 파리 앞다리에 대해 물어봐선 안 됩니다. 파리 뒷다리 전공자는 파리 앞다리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는 ‘전문적으로 문외한인 사람’ 또는 ‘그것 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정의됩니다. 파리 뒷다리를 전공한 석사의 더욱 심각한 문제는 파리 뒷다리를 파리 몸통에서 떼어내서 독립적으로 연구한다는 점입니다. 파리 뒷다리는 파리 몸통에 붙어 있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부분의 이해는 전체와의 관련성에 대한 이해가 동반될 때 의미가 있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그리고 파리 석사는 파리에 관한 보다 세분화된 전공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파리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합니다. 파리학과 박사과정생은 파리 뒷다리를 통째로 전공해서는 절대로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없는 현실 역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파리 뒷다리 중 '파리발톱’을 전공합니다.

박사 학위 논문을 쓰기 전에 ‘전국 추계 파리 발톱 학술대회’에 나가 그 동안 연구한 「파리 뒷다리 발톱성분이 파리 발톱 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라는 부논문을 발표합니다. 보통 부논문을 발표하거나 관련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해야 박사학위 논문을 쓸 자격을 부여합니다.

하지만 학술대회 참가자들끼리도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전공 영역별로 사용하는 전문용어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전공자끼리도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이 박사과정생은 부논문을 발전시켜 「1년생 파리 뒷다리 발톱의 성장패턴이 파리 먹이 취득 방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파리 박사학위는 ‘나만 모르는 줄 알았더니 남들도 다 모르는구나’ 라는 깨달음이 오면 주어지는 학위입니다.

 

 

나아가 파리학과 교수는 더 세분화된 전공을 선택해야 교수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수가 전공하는 파리 부위는 ‘파리 뒷다리 발톱에 낀 때’입니다. 파리 뒷다리 발톱에 낀 때를 전공하는 교수들도 까만 때를 전공하는 교수, 누런 때를 전공하는 교수 등 발톱에 낀 때의 색깔별로 학파가 다릅니다.

 

 

'파리'에서 '파리 뒷다리'를 거쳐 '파리 뒷다리 발톱'을 찍고 '파리 뒷다리 발톱에 낀 때'를 그치는 과정에서 정작 파리는 사라져버립니다. 개론과 각론을 거쳐 세부적으로 특정 한 부분만을 공부하기 때문에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정작 파리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이상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이 사례는 가상의 스토리입니다.

또한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웃고 넘길 수 없는 가볍지 않은 무거운 이야기입니다.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입니다.

학문 간의 벽이 지나치게 높아져 ‘전문 바보’를 양성해 내는 학문간의 단절을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저 역시 경영학을 전공하고 '기업문화' 관련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지만 석사과정은 학부 때보다 훨씬 세분화되어 전체적인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학사 때 배운 개론이나 각론을 통달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배울수록 세분화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세분화 그 자체가 너무 전체와 독립되어 연구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는 않은것 같습니다.

따라서 인접 학파나 학문과의 융합 내지는 상호이해가 필요해 보입니다. 소나무에 달린 솔방울 한 개를 공부하고 소나무를 이야기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겠지요. 1000만 관객 돌파라는 영화 한편을 보고 영화를 이야기 해서는 곤란합니다. 베스트셀러 책 한 권 읽고 독서를 이야기해서는 곤란합니다. 선 머슴이 사람 잡습니다. 따라서 소나무의 솔방울을 연구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솔잎과 소나무에 대해서도 함께 연구하고 더 나아가 밤나무와 대나무까지 아우를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것이 비단 파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데 그 심각성이 있습니다.

부동산, 금융,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귀담아 들어야 할 이야기입니다.

조직에서 소위 '전문가'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가방끈이 긴 사람일수록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반성하고 대안을 모색하려는 진지함이 필요합니다.

전문가는 과거의 지식을 바탕으로 합니다. 과거의 전문가가 미래의 전문가일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전문가는 '그것 밖에 모르는 문외한이다'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면 과거의 전문성을 버려야 합니다.

버려야 새로 채울 수 있으니까요.

당신은 전문가입니까?

당신은 어떤 분야의 전문가입니까?

전문가는 되는 것도 어렵지만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전문가(專門家) 여러분, 초심으로 돌아갑시다.

그렇지 않으면 전무가(專無家)가 되기 십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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