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사서 책장에 꽂아만 둬도 그 책이 머리에 옮겨간다."
-에코
에코의 명언에 120% 공감하면서 나는 틈나는대로 책을 구입한다.
책을 책장에 꽂아만 둬도 삶이 달라질수 있다는 말이다. 책 내용을 읽고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을 가까이하려는 그 마음을 높이 산 것 같다. 이와 관련하여 볼테르의 말은 명쾌하다. "책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지금까지의 세계가 결국 책으로 지배되어 왔기 때문이다."
항간에 떠도는 책과 관련한 불편한 진실 하나, 이른바 “책은 제목 장사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 책 제목은 사람으로 치면 이름과 같다. 긴 산고 끝에 한 권의 책이 태어나 가장 앞장서서 독자와 만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제목이다. 관 련 통계에 의하면, 현재 우리나라 출판사 수는 3만 개를 넘었고 판매 중인 책은 50만 권에 이른다. 하루에 출간되는 책도 수백 권을 넘는다.
이 정도면 책을 읽는 것보다 고르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제목은 더욱 중요하다.
제목만 보고도 그 책의 내용을 단박에 짐작할 수 있는 책이 가장 좋은 제목이다.그러나 간혹 내용과 제목이 너무 상이한 이른바 '상업성 강한 책'을 만나기도 한다. 나 역시 책 제목만 보고 부푼 기대를 가지고 덜렁 샀다가 실망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사는 모든 책이 나를 위해 충실히 일할 것이라는 발상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책을 고르는 데도 얼마간의 시행착오와 공부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기대를 작게 하는 것도 효과를 높이는 좋은 방법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이다.
나 역시 두 달 전 세 번째 책을 내면서 제목을 정하지 못해 출판사와 함께 몇 달을 고민했던 적이 있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았다. 책 제목을 정하는 것은 사람 이름 짓는 것 못지 않게 힘든 일이다. 따라서 그 어떤 책이든 한 권의 책은 고민과 인내의 결과물이다. 아무튼 하루에 수백권씩 쏟아져 나오는 그 많은 책들을 다 뒤적거려 보고 구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제목으로 책을 고를 수밖에 없는 것이 불가피한 현실이다.
무더위가 기성을 부리던 지난 8월, 더위를 피해 무심코 들렸던 서점에서 “책은 제목 장사다”라는 말을 떠오르게 하는 한 권의 책을 만났다. <삶을 바꾸는 책읽기>, 라디오 PD 정혜윤의 책이었다. 출간된지도 제법 됐고 어느 정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작가였지만 난 이 책으로 처음 만났다. 낙서를 겸해서 두 번 정독했다. 읽을수록 감칠맛나는 책이었다. 앞으로도 곁에 두고 마음이 비뚤어지거나 기분이 꿀꿀할 때 들춰 볼 요량이다. 실은 시간이 없어 제목만 보고 후딱 구입한 책이었는데 “책은 제목장사다”라는 나의 편견을 접게 만든 책이었다.
인공조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자연그대로의 맛이 나는 그런 진솔하고 편안한 책이다. “사람은 한 권의 책이고, 책은 하나의 사람이다.”, “독서의 기술이 곧 삶의 기술이다.” 라고 주장하는 정혜윤의 책을 깊이 들여다본다. 사진은 저자가 2012 경향신문 연중기획 "알파걸, 책으로 세상을 읽다"에서 특강하는 모습이다.
저자는 "독서는 내가 다른 존재로 옮겨 가는 ‘자기계발’을 위한 것일 때, 삶을 바꾸기 위한 것일 때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책 읽는 능력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책이 정말 삶의 위로가 되는지, 읽은 책을 어떻게 오래기억하고, 어떤 책부터 읽으면 좋을지 등 독서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을 바탕으로 그녀만의 독서론, 독서법, 그리고 인생론을 자세하게 들려준다.
책의 뼈대는 흥미롭고 독특하다.
그동안 저자가 책을 통해 받은 질문들을 8가지로 뼈대를 세웠다. 나 역시 주위 사람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고, 때로는 이런 질문을 하기도 한다.
책의 뼈다귀-8가지 질문's CONTENTS
질문 1 : 먹고살기도 바쁜데 언제 책을 읽나요? 자율성의 시간, 기쁨에 몰두하는 시간
질문 2 : 책 읽는 능력이 없는데 어떡하나요? 문자보다 삶을 바라보는 능력
질문 3 : 삶이 불안한데도 책을 읽어야 하나요? 운명보다 거대한 선택의 힘
질문 4 : 책이 정말 위로가 될까요? 슬픔을 표현하는 자기만의 형식
질문 5 : 책이 쓸모가 있나요? 자기 계발의 진정한 의미
질문 6 : 책의 진짜 쓸모는 뭐죠? 공통성의 경험, 능력자 되기, 앎의 시작
질문 7 : 읽은 책을 오래 기억하는 법이 있나요? 잘 잊어버리기, 손으로 기억하기, 몸으로 기록하기
질문 8 : 어떤 책부터 읽으면 좋을까요? 우리를 계속 꿈꾸게 하는 리스트
나는 지금껏 책이란 무릇 전문가의 지식이자 교양의 언어이며, 책 읽기는 평범한 삶과 단절된 위대한 정신으로의 입문이라고 배워 왔다.
그러나 정혜윤의 책 읽기는 책과 삶의 분리를 문제 삼는다.
그녀는 거리에서 만난 ‘무지한 스승’들의 놀라운 영혼을 고전의 오랜 지혜들과 연결시킨다.
그녀는 묻는다. “삶으로 돌아가지 않는 독서, 삶을 바꾸지 않는 독서가 무슨 의미가 있죠?”
그녀는 속삭인다. “잠시 책을 덮고 눈앞의 세계를 바라보세요. 책을 꼭 붙잡고 삶의 안쪽으로 한 발 내디디세요.”
그녀의 순진한 질문과 부드러운 속삭임이 오늘 내게 가장 도발적이고 진실한 책 읽기에의 권유로 다가온다.
- 심보선(시인)의 추천사
지독한 독서가로 이름을 떨치는 저자가 그동안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며 느꼈던 모든 것을 담아낸 책이다. 저자는 그동안 읽어 온 수많은 책을 통해, 삶의 현장에서 인터뷰를 하며 만난 ‘거리의 스승들’을 통해 질문에 답하며, 그녀만의 독서론, 독서법, 그리고 인생론을 펼친다. 늘 연재를 통해 먼저 독자를 만나고 후에 책으로 묶어 내는 방식이 익숙했던 저자가 처음으로 연재 없이 책을 출간하여 독자들에게 처음 공개되는 글이기도 하다.(출판사 제공)
독서의 기술이 곧 삶의 기술
누구에게나 삶을 바꿔 보고 싶은 열망이 있다.
그리고 누구나 그만큼 현재 삶에서 불안을 느끼고, 어딘가 의지하고 싶어 하며, 도움을 받고 싶어 한다. 저자는 앞서 말한, 책에 대한 여덟 가지 질문이 단순히 ‘독서의 기술’에 한정된 것이 아니며, 그 자체가 ‘삶의 기술’에 대한 질문이라고 말한다.
가령 가장 흔하게 던지는 “먹고살기도 바쁜데 언제 책을 읽나요?”라는 질문은, 우리가 단지 생존하고, 연명하기 위해서만 한정된 하루의 시간을 보내지 않고 그 일부를 나에게 의미 있는 시간으로 보내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정혜윤은 이에 대해 ‘자율성의 시간’이라는 개념을 ‘나를 키우는 시간’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답한다. 우리가 하루 중 일부를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의지와 욕망으로 기쁨에 몰두하여 보내면, ‘그 시간이 아무리 짧더라도’ 내 영혼을 조금씩 성장시키고, 결국 삶의 나머지 시간까지 다른 의미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간의 양’이 아니라, 우리가 시간에 부여하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말 같지만, 정혜윤은 이 차이가 물리적 시간을 어떻게 지배하는지를, 스탕달의 『적과 흑』, 베른하르트의 「야우레크」 등의 책과 실제로 인터뷰를 한 농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감동적으로 풀어 놓는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질문 하나하나에 답하며 ‘삶을 바꾸는 독서의 기술’, 곧 ‘창조적 삶의 기술’을 말한다.
“책 읽는 능력이 없는데 어떡하나요?”, “삶이 불안한데도 책을 읽어야 하나요?” 등의 질문들도 모두 마찬가지다. 모두 삶의 문제로 바꿀 수 있다. 이 질문들에는 “사는 능력이 없는데 어떡하나요?”, “불안한데도 계속 살아가야 하나요?” 등의 질문이 숨어 있다. 책 읽기에 대한 이 모든 질문은 결국 지금과 다른 삶에 대한 열망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이 모든 질문의 답이 우리 삶에 있다고. 책을 잘(풍요롭게) 읽는 사람이 삶도 잘(풍요롭게) 살 수 있다고.
책에서 삶을 읽고, 삶에서 이야기를 읽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꼽는 독서법 중 하나는 책에서 문자보다 삶을 먼저 읽는 것이다.
혹자는 (대개 성공을 위한, 또는 리더가 되기 위한) 책 읽기에서 독해력이나 어휘력을 더 중요시하고, 그것을 훈련하거나 공부하기를 요구하지만, 정혜윤의 ‘삶을 바꾸는 책 읽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독서 능력은 공감하고, 타인을 돌아보고, 세상과 자신을 볼 줄 아는 능력이다.
저자는 또한 책에서 삶을 읽어 내는 것만큼 삶에서 이야기를 읽어 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혜윤은 오랫동안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며 처음엔 책에서 삶을 발견하고 감탄했지만, 후에는 오히려 삶의 현장에서 (책에서 봤거나 책보다 놀라운) 이야기를 발견하고 놀라곤 했다고 고백한다. 독서의 기술이 삶의 기술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삶의 기술이 독서의 기술이 되는 순간을 목격한 것이다.
이 책에는 정혜윤이 말하는 ‘거리의 스승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농부 할머니이고, 가사 도우미 아줌마이며, 아흔 살이 넘은 택시 기사 할아버지이다. 일흔이 넘어 시 쓰는 수업을 듣는 농부 할머니는 쓸모가 아닌 즐거움을 위해 밤잠을 쫓아가며 시를 읽는 시간을 보내고, 여러 풍파를 겪은 가사 도우미 아줌마는 자신이 느끼지만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을 책에서 문자로 발견하며 위로를 받는다. 아흔 살이 넘은 택시 기사 할아버지는 아직도 잊지 못하는 첫사랑 때문에 우수에 젖곤 하는데, 그의 모습은 갈레아노의 『시간의 목소리』라는 책에 나오는 인물과 놀랍도록 닮았다. 정혜윤은 농부 할머니에게서 시간을 쓰는 법을 배우고 그것을 그대로 독서법에 적용하며, 가사 도우미 아줌마가 책에서 어떻게 위로를 받는지를 배우고 그녀의 위로법이 우리 삶에서도 필요함을 깨닫는다. 택시 기사 할아버지를 보며 자신이 읽은 책보다 삶이 더 강렬한 모습을 띠는 것에 놀라기도 한다.
책과 삶은 닮아 있고, 책에서만 삶을 읽는 것은 일방향의 독서밖에 되지 못한다.
우리 삶을 돌아봐야만 우리는 우리가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를 잊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더 잘 살기 위해 책을 읽고, 우리가 사는 모습은 또 책이 된다. 우리가 읽는 책은 나의 삶이고, 타인의 삶이다. 이들 삶을 돌아보지 않을 때 우리 삶은 정체될 수밖에 없다. 책 읽기가 삶을 바꿀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다시 읽고 깊이 읽기-<삶을 바꾸는 책읽기>
“제가 삶에 답이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문제보다 해답이 훨씬 더 창조적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무겁지만 해답은 그 무게를 줄여 줄 수 있습니다. 문제는 뻔해도 해답은 풍요롭습니다. 이런 질문들은 정말 소중합니다. “내 삶에는 아무런 변화도 필요치 않아. 난 너무 만족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습니다. 아마 책을 읽지 않아도 될 겁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가슴속에 한마디를 담고 있습니다. “도와줘!” 우린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자기 자신을 위한 단 한 권의 책을 찾으리란 희망으로 책장을 들춥니다. 그러므로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면 대답을 찾는 과정에서 반드시 삶의 변화를 위한 실마리를 찾아내야만 하는 겁니다.“(8)
그러나 손에 쥐는 책마다 나에게 희망을 주고 삶의 지혜가 되지는 않는다. 책을 읽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 책을 고르는 일이 되버린 세상이다. 책을 고르는 데도 어느 정도의 준비와 노력이 필요한데 우리는 이것을 무시한다. 그러다보니 서점에 가면 베스트셀러 코너만 기웃거리게 된다. 베스트셀러는 스테디셀러는 아니다. 짧은 시간에 많이 팔리는 것이 베스트셀러다. 개인적으로 결론부터 말하면 베스트셀러라고 모두 좋은 책은 아니다. 베스트셀러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한 대기업 CEO가 책을 출간했다. 17개 계열사에 책 구매를 강요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 책은 8주 동안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다. 모든 베스트셀러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베스트셀러를 맹신해서는 곤란하다. 이런 말도 있다. “모든 베스트셀러가 모두에게 베스트셀러는 아니다.”
"저는 그 가게 주인을 본 뒤로 자율성의 시간을 ‘나를 키우는 시간’이라고 바꿔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우린 내 자아의 장인이 되어 보는 겁니다. 우린 장인이란 말을 노동에 관해서만 쓰고 있지만 이번엔 장인이란 말을 자기 자신의 영혼에 써 보는 겁니다. 오래되어 부서진, 쓸모없게 된 라디오를 연구하듯 자기 자신을 연구해 보는 겁니다. 영혼에도 납땜질을 해 보는 겁니다. 자기 자신에게서 더 나은 소리가 나오도록 자신이 이미 알던 것들, 익숙한 것들을 이리저리 재배치해 보는 겁니다. (중략) 우리도 어린아이를 기르듯, 한 그루 나무를 가꾸듯 물도 주고 거름도 주면서 자신을 키워 보는 겁니다. 우리에겐 이렇게 ‘나를 키우는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언제부턴가 삶 전체가 원하지 않는 시간들, 아무 재미도 없는 무의미하고 무료하고 피로한 시간들, 비극이자 코미디인 시간들로 채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삶은 내가 원한 삶이었다고 말하기가 점점 힘들어집니다."(35~36)
"우리에겐 의지가 필요합니다.
의지가 어떻게 생기는가 깊이 성찰했던 사람 중 하나인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빌자면 의지는 명령 때문이 아니라 영혼의 무게, 즉 사랑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도 영혼의 무게로 치자면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영혼을 단단한 핵처럼 품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하나 고유한 행성이 되고 또 그만한 무게와 자신만의 중력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맘껏 세상에 흩뿌려 보지 못한 사랑의 무게, 열정의 무게가 있습니다. 우리는 의지 때문에 편안함을 잃게 될 수도 있고, 단잠을 자지 못할 수도 있고, 수입이 줄어들 수도, 쓸쓸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뭔가에 사로잡힌 사람은, 그리고 그것을 수단으로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확실히 현실을, 그리고 시간 자체를 다른 방식으로 경험합니다."(44)
"바로 내가 그것을 원해서 했어."라는 말이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에겐 복종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니체는 복종하는 자는 결코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해야만 했다."라는 말 아래 외부의 명령에 따라서만 행동하면 우리는 많은 것을 잃게 됩니다. 시키는 대로 하다 보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신에게 무슨 능력이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아예 잊어버리고 살게 되기도 합니다. 그건 자긍심을 갖고 한 인간으로 사는 것, 한 인간으로 기쁘게 사는 것과 가장 멀어지는 길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살다 보면 자신이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는 기회조차 없어져 버립니다."(51-52)
"책을 읽는 능력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는 데 꼭 필요한 능력들이 있긴 합니다.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 능력, 자신을 채웠던 반복과 습관의 타율성을 비우고 새로운 리듬과 질서를 받아들이는 능력 같은 겁니다. 독해력이 있어야 한 해에 100권의 책을 읽을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들을 하곤 하는데 저는 그 생각에 대체로 부정적입니다. 많은 책을 읽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같은 책을 몇 번 되풀이해서 보거나 곱씹어 보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일정 정도 규칙적으로 책 읽는 시간을 갖는 것이 몇 권을 읽느냐보다 더 중요합니다. 진정한 독해력이란 문자를 정확히 읽어 내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을 읽건 거기에서 삶을 바라보는 능력입니다."(57~58)
"어떤 분야에 정말 능력이 있는 사람이 제일 먼저 알게 되는 것은 자신에게 뭐가 부족한가 하는 점입니다.
넘쳐 나는 재능 때문에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기 때문에 계속합니다. 들라크루아라는 화가는 천재적인 인간을 만드는 것은 새로운 생각이 아니라 그를 사로잡고 놓지 않는 생각, 즉 지금까지 말해진 것이 아직 충분히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말해지지 않았다는 생각이라고 했습니다."(59)
"자신을 중시하라면서도 계속 남과 비교하게 만드는 이상한 세상에 살면서 자존감을 잃지 않으려면 자신에게 있는 고유함을 하찮게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60)
"나의 삶이란 것도 누군가에게는 자기 삶을 이야기하기 위한 하나의 기억이 아닐까요?
어머니는 아들의 기억이 될 테고 선배는 후배의 기억이 될 것입니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기억이 될 것입니다. 우린 그런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이야기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의 삶이란 것도 누군가의 삶에 끼어든 이야기 아닌가요? 그렇다면 결국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가 있는 것 아닐까요? 파트릭 모디아노는 우리의 삶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끼어든 하나의 이야기란 걸 말하는 형식으로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썼습니다. 그 소설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은 내 기억과 이야기는 절대적으로 타인을 필요로 한다는 데서 나옵니다. 우린 우리를 기억할 이를 찾아 어두운 거리로 걸어갑니다."(98~99)
"진정한 위로는 진정한 희망이 그러하듯, 상황을 좋게 보는 데서 생기는 게 아니라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는 데서 생겨나는 것입니다."(101)
"진짜 잠재력은 다른 사람이 될 가능성입니다. 다른 존재가 되려면 질문이 필요합니다."(116)
"책은 바로 그런 쓸모입니다.
좋은 책은 우리의 영혼에 형태를 부여하고 고통에 한계를 주고 잘못된 생각을 끄집어내고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는 마술 피리입니다. 책은 이 시대에 모든 인류의 피부를 뚫고 들어가 살을 파먹는 벌레들, 즉 우리 모두 다 같이 앓고 있는 그 온갖 불안과 고통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합니다. 책은 불안과 고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피리를 통과하는 공기의 선율과 리듬과 언어로 말함으로써, 불안과 고통을 극복하게 합니다. 책이 불안과 고통을 말하는 이유는 바로 미래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118~119)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모두가 괴로움에 다 같이 시달린다는 사실을 깨닫게만 된다면" 구원은 오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은 우리 영혼을 통해 꿈을 꾸는 존재입니다. 책은 누군가 미래를 위해, 다가올 세대를 위해, 한마디 남겨 놓은 흔적들입니다."(123)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는 디지털 세계에 살면서도 우리에겐 뭔가 남과 진정으로 공유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괴로움이 있습니다.
우린 공감이 중요하다는 말을 합니다. 그건 상대방이 달라도 그냥 너그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상대방이 달라 보여도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입니다."(142)
인간은 누구도 모든 능력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본성에 맞는 능력을 가질 수 있을 뿐입니다. 또 인간은 누구도 자기 혼자서는 능력을 키울 수 없습니다.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스피노자의 생각과 같습니다. 스피노자는 능력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인간은 외부의 도움을 빌어 서로 떨어져 있던 것들을 연결시키는 능력을 갖게 된다고요. 이때 외부의 도움 중 책이 줄 수 있는 도움이란 멘토링이나 컨설팅 같은 도움이 아닙니다. 연결을 위해선 모든 것을 새롭게 볼 수 있어야 할 텐데, 바로 이것이야말로 책이 가장 잘 도와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책은 진부한 것들을 담고 있어도 그것들을 새로운 디테일과 새로운 태도로 보여주니까요."(144)
"책과 삶에는 치명적인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운명에 대한 것입니다. 한 권의 책. 이 책의 운명은 언제 결정 나는가? 저자가 마침표를 찍었을 때? 서점에 진열했을 때? 인쇄소에 넘어갈 때? 도서관에 불이 안 날 때?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던져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운명은 언제 결정되나요? 부모님이 나를 낳았을 때? 대학에 갔을 때? 취업을 했을 때? 결혼을 했을 때? 버스를 잘못 탔을 때? 그 남자에게 우산을 빌려 주었을 때 보르헤스는 각각의 책은 각각의 독서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고 말했습니다. 즉 누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의미가 무한하다고 했습니다. 책의 운명은 쓰인 시간, 혹은 작가가 출판한 연도, 독자가 책을 구입한 그 시기에 결판나지 않고, 어떤 사람이 책을 읽는 바로 그 순간에 결정 난다고 했습니다. 책이 완료형이 아닌 것처럼 사람 또한 완료형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어떤 ‘의미 부여’를 기다리는 형식입니다."(157)
"우린 죽음이란 운명을 의식하고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아킬레우스는 분명히 새로운 명예를 얻었어요. 그것은 동료 인간에게 보여 준 관용에서 나온 겁니다. 동료 인간에 대한 존중과 동정심에서 나온 거에요. 이렇게 해서 아킬레우스는 인간의 운명과 더불어 인간의 성장 가능성, 거기서 비롯되는 위대함을 보여줬어요. 우린 죽기 때문에 신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거에요. 죽음이란 얼마나 소중한지, 사랑이나 용기도 우리가 죽기 때문에 나옵니다. 죽을 수밖에 없아는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것이 우리에게 신적인 위치를 부여하는 일이에요."(176~177)
"<인간의 대지>에서 '나'는 길을 잃기 전날 밤새도록 지도를 탐독합니다.
하지만 무 소용 없는 일이었습니다.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모르면 지도도 쓸모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나'는 그럼에도 '종교 시설',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인간의 존재를 드러내는 모든 기호들 위로 몸을 숙여 들여다봅니다. 제겐 아마 책 읽기도 비슷할 겁니다. 책이 당장 직접적인 도움은 주지 못할 수 있어도 그래도 인간의 흔적을 들여다보고 거기서 길을 찾으려 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192)
"우리에겐 사랑이 있어도 애써 봤자 세상은 그대로라는 체념도 있습니다.
누가 알아줄까라는 생각도 있습니다. 과연 될까, 라는 생각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콤플렉스가 강한 인간은 주어진 것이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 중에 있습니다. 가장 냉소적인 사람은 인간의 힘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믿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냉소적인 인간이 된 것은 냉소적인 인간을 낳는 사회 속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책은 지루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책은 정말 지루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삶 자체가 지루한 사람도 존재합니다. 지루하단 말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성공이나 이익 말고는 추구할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있습니다."(232)
"우리 앞길에도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쉬운 길과 어려운 길입니다.
쉬운 길은 다수가 택하는 것을 다수가 택한다는 이유만으로 택해 그 사회의 일부가 되는 겁니다. 나중엔 그것이 지옥 같은 것이란 것도 알아채지 못하게 되지만 그래도 그것은 선택하기 훨씬 쉽습니다. 어려운 길은 지옥 같은 세상에 살면서도 마치 지옥이 아닌 것처럼 살고 있는 사람을 찾아내 그 사람들이 살도록 자리를 넓혀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려운 것은 그런 사람이 드물어서가 아닙니다. 분명히 주위에 있습니다. 그것이 어려운 것은 그걸 지키기 위해선 나도 지옥과 싸워야만 하기 때문입니다."(233)
"이렇게 반복되는 것은 우리에게 일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을 살면서 어딘가로 옮겨 갑니다. 반복하면서 새롭게 바뀝니다. 한 스텝, 다시 한 스텝, 또다시 한 스텝. 춤 추듯이. 우린 반복되는 삶 속에서, 자주 던지는 질문 속에서 오로지 그 질문 안에서만,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하고 고유한 자기 자신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238)
먹고 살기도 바쁜데 언제 책을 읽나요?
책 읽는 능력이 없는데 어떡하나요?
삶이 불안한데도 책을 읽어야 하나요?
책이 정말 위로가 될까요?
책이 쓸모가 있나요?
책의 진짜 쓸모는 뭐죠?
읽은 책을 오래 기억하는 법이 있나요?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이런 질문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저자가 던지는 명쾌한 답보다는 자신에게 스스로 답해 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는 저자에게 그렇게 많은 책을 읽었으니 어쩌면 우리의 이런 어설픈 질문들에 대해서도 군말없이 수긍할 만한 답을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를 가지고 있다.
'YES' 혹은 'NO' 식의 단답형을 기대한 사람이라면, 또는 정확한 '방향'을 기대한 사람이라면 저자가 내놓은 답변들이 다소 '모호하게 다가올 지도 모르겠다. 정답의 제시가 아니라 자신만의 정답을 향해 논리적으로 이끌어가는 사고의 제시였으니 말이다. 그녀가 그동안 읽었던 수많은 책들의 내용과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있다.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다양한 시각들을 수용할 수 있는 말랑말랑한 마음이 생긴다는 점이다.
고급 언어로 표현하면, 창의력이 배가된다는 말이다. 창의력이란 엉뚱함이다. 극도로 경직된 사고로는 엉뚱함을 만나기 어렵다. 계절이 몇 번 바뀌었는데도 내 곁에서 맴돌고 있는 <책은 도끼다>라는 박웅현의 책은 딱딱한 내 머리통을 조금은 말랑말랑하게 해 주었다. 무심히 지나쳐버리는 사소한 일들 하나 하나가 어느 순간부터 내 예민한 촉수레이더에 하나 둘 걸려들기 시작하면서 결국 삶이 풍요로워지고 있다.
우리 각자에게는 남들과 비교할 수 없는 고유의 능력이 있지만 먹고 살다보면 자신의 고유한 능력을 아예 잊어버리고 산다. 그런데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세상과 분리되어 나의 고유함과 내 마음을 사로잡는 그것을 잊지 않고 지속적으로 기억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나를 키우는 시간’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책을 읽으면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통해 결국 나를 돈 버는 기계가 아닌 열정과 소망을 갖고 있는 인간적인 인격체로 대하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것을 새롭게 보는 능력을 갖게 된다.
저자는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난 과연 책을 읽고 무엇을 했는지 ‘실천’의 문제를 강조했다. 하지만 책을 통해서 나의 고유함을 되새기고 내 주위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되는 능력을 얻는 것, 이것이야 말로 내가 짬날 때얻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점일게다.
저자가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누군들 일을 하면서 자아가 확장되는 기쁨을 원하지 않겠는가.
누군들 직장에서 대체 불가능한 유일한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데 살다보면 어느 순간 사소한 일에 환멸과 절망을 느끼게 된다.
내 마음을 사로잡는 기쁨을 잊고, 내 고유함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다른 사람이 몰라주더라도 내가 정말 이루고 싶은 성취에 대해 좀 더 고민해봐야겠다. 그리고 저자가 강조한 것처럼 나만의 독서리스트를 제점검해봐야겠다. 베스트셀러나 후기 등에 좌우되지 말고 순수하게 나의 삶이 필요로 하는 책 위주로 말이다. 어쨌던 이 책을 만난 건 행운이다.
나는 이 책을............ "삶을 바꾸는 책읽기라 쓰고 삶을 치유하는 힐링이라 읽는다."
저자가 출판사와 한 인터뷰 중에서,
책과 삶은 “너 없인 못 사는 사이”
성공을 위한 책 읽기가 아닌,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진정성 있는 책 읽기에 대한 물음과 답
그동안 서평 집을 비롯해 책을 주제로 많은 책을 쓰셨는데, 이번 책은 책과 삶에 대한 익숙한 물음과 비범한 답으로 가득합니다. 일종의 독서론이자 독서법인 동시에 인생론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이 책을 쓰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네, 이번 책은 독서론이자 독서법, 인생론입니다.
이 책엔 중요한 아홉 가지 질문이 담겨 있습니다. 이 질문은 제 머릿속에서 나온 게 아니라 제가 강연을 갔을 때나 혹은 사석에서 정말로 많이 받았던 질문들입니다. “바쁜데 책 읽을 시간이 있어요?” “책은 읽을 때뿐 던져 놓고 나면 쓸 데가 없지 않나요?” “읽어도 다 잊어버려요. 어떻게 기억해요?” “마음이 쫓기고 불안해서 못 읽겠어요.” 같은 질문들을 받으면 처음엔 장난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받았던 질문들은 이를테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위대한 개츠비>의 내용이 뭐예요, 같은 것이 아니었던 거죠.
그러다 어느 날 밤 갑자기 책상에 앉아서 이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독자들이 책의 내용보다도 알고 싶어 했던 그것, 그 질문의 실체가 퍼뜩 다가왔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누구에게나 유한한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고민이 있고, 누구에게나 자신의 능력이 부족한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어디선가 도움을 받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이런 질문들은 우리의 열망(좀 더 살아 보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잘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본원적인 떨림과 두려움을 품고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결국 독자들이 제게 던졌던 질문은 ‘독서의 기술’에 대한 것이자 동시에 ‘삶의 기술’에 대한 것이었던 셈입니다.
많은 사람이 시간, 능력, 불안 등을 이유로 쉽게 책을 읽지 못합니다. 더구나 책 밖에서도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고 있고요. 그럼에도 우리가 책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신기한 일이 있습니다.
똑같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뉴스를 보는데 왜 당신은 당신이고 저는 저지요? 어떻게 우리 둘은 이렇게 다르지요? 그것이 인간이 되는 화학작용입니다. 인간은 계속 변화 생성 중입니다. 책뿐만 아니라 우리가 곁에 가까이 두는 것이 우리를 만듭니다. 우리가 곁에 가까이 두고 사랑하는 것이 우리에게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아무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겠다고 작정한 사람이 느끼는 감정, 그것이 권태와 지루함입니다. 그것은 바로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느낌입니다. 우린 살면서 많은 선택을 합니다. 그런데 선택을 하려고 해도 잘 알 수 없기 때문에 답답한 마음에 점도 보러 가고 친구에게 조언도 구합니다. 책 읽기는 믿을 만한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과 같습니다. 책은 세계가 어떻게 이 세계가 되었는지 내가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 봐야 하는지 알려 줍니다. 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에 슬퍼하고 무엇에 기뻐하고 무엇에 두려움을 느껴야 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누구와 우정을 나누고 연결되어야 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자기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당황하지 않고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인생의 지혜는 제 책에도 언급했지만 인생 경험과 ‘생애 커리큘럼’에서 나옵니다.
누구나 현재보다 나은 삶을 원하고, 많은 이들이 자기계발서를 읽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진정한 자아실현, 자기계발이란 무엇인가요? 정말로 책이 삶을 바꿀 수 있을까요?
자기계발이란 말은 창의성, 상상력이란 말과 더불어 이 시대에 가장 오염된 말입니다.
자기계발은 자격증 취득과 스펙 쌓기를 통한 경쟁력 강화로만 오해되어 쓰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자기계발은 잠재력의 발견입니다. 잠재력은 “나는 미술에 숨겨진 재능이 있더라.” 같은 말이 아니라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것 같은 겁니다. 조개껍데기를 열었더니 진주가 나오는 것과 같은 겁니다. 현대는 자기계발과 정신병의 시대라고도 합니다. 얼마 전에 제 지인은 자기계발서를 가리켜 물에 빠진 사람에게 솜사탕이나 눈깔사탕을 내미는 것과 같다는 표현을 했는데요. 자기계발서는 우리의 다급하고 불안한 마음을 파고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딘가에 도움을 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도움을 청하는 그 마음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마음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린 한 축을 버려 버린 셈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 만하게 살 수 있는지 계속 길을 찾는 것이 진정한 자기계발입니다.
좋은 책은 삶을 바꿉니다. 좋지 않은 책은 삶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만 확인시킵니다. 좋은 책이 어떻게 삶을 바꾸냐고요? 책은 우리를 죽지 않게 할 수는 없어도 다시 태어나게 할 수는 있습니다. 우릴 늙지 않게 할 수는 없어도 청춘을 되찾을 수 있게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청춘은 반드시 돌아오니까요. 자신이 한 일들 속에요.
작가님은 책을 읽고 삶이 어떻게 바뀌었나요?
“책만 아니면 그자는 나와 마찬가지로 돌대가리이며, 부릴 수 있는 정령은 단 하나도 갖지 못할텐데.”라고 세익스피어의 <템페스트> 한 구절을 빌려서 대답하고 싶네요. 책이 아니라면 저는 돌대가리, 로봇, 소금기둥이었을 것입니다. 책을 읽고 저는 사람을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위대한 책을 쓴 건 인간이니까요. 그리고 사람도 세계도 한 권의 책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내 앞에 있는 사람도 해석 못 한 페이지, 건너뛴 페이지, 두 번은 읽어야 겨우 이해되는 페이지들로 넘쳐 난다고 생각하면 좀 더 알고 싶고, 듣고 싶고, 애틋해집니다. 그리고 저는 이 세상에서 뭔가 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 뭔가엔 이 책을 쓴 행위도 들어 있습니다.
책을 너무 어렵지 않게,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가님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모든 책을 하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입니다.
저는 책을 하늘을 떠다니는 처녀 귀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은 저에게 “너에게 할 말이 있어! 내 말을 도망가지 말고 들어 줘!” 라고 하는 거죠. 그녀들은 무슨 원한을 풀어 달란 말을 한다기보다는 자신에게 일어난 온갖 일을 제게 이야기합니다. 경고도 하고 호소도 합니다. 저를 믿고 속마음을 다 털어놓습니다. 책은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스크루지 영감님 앞에 나타나는 유령이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책은 숨구멍이고 확대경이고 마술사의 중절모입니다. 저는 마술사의 중절모에서 토끼가 튀어나올지 비둘기가 튀어나올지 생쥐가 튀어나올지 지켜보는 중입니다.
저자는 관심만 가진 채 읽지 않고 두었던 책, 혹은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행위를 통해 자신도 모르는 성장의 흔적을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책장에 처박아둔 책을 다시 꺼내 보는 것은 정말 맛있는 독서입니다. 만약 작년에 본 책을 다시 볼 때 예전엔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눈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작년과 지금 사이에 나에게 뭔가 변화가 일어난 것이지요. 인생의 지혜는 책에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모든 책을 다시 읽을 필요는 없지만, 다시 꺼내 본 책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나에게 싹튼 지혜의 흔적입니다.” 그리고 책을 오래 기억하는 법으로 “맘에 들었던 구절을 필사해보라”고 조언했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언제 책을 읽느냐는 질문에 저자는 ‘자율성의 시간’을 갖자고 대답한다.
원하지 않는 시간들로 점점 채워지는 우리 삶을 지키기 위해서, 자율성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이다. 그것은 기쁨에 몰두하는 시간이며, 곧 나를 키우는 시간이 된다. 그 시간을 위해서는 의지가 필요한데, 그것은 명령이 아닌 사랑으로 생긴다고 말한다. 단잠을 자지 못할 수도, 수입이 줄어들 수도, 쓸쓸해질 수도 있지만, 뭔가를 사랑하여 그것에 사로잡힌 사람은 시간 자체를 다른 방식으로 경험한다고 덧붙인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굳이 스스로 해 보는 경험.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키워 보는 경험이며, 그녀에게는 책을 읽는 시간이야말로 한 인간으로 생생하게 살아있다고 느끼는 시간이라고 한다.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할지 길을 잃을 때 우리가 가치를 두는 것을 더 잘 사랑하기 위해서 조금씩 나를 바꾸어 가는 것이야말로 힘 있게 존재할 수 있는 방식이며, 그녀는 책을 통해 배운 것들로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시간과 의도치 않게 벌어지는 상황 속에서 나를 지켜가는 것. 의지와 사랑을 들여 나무를 키우듯 내가 사랑하는 것으로 나를 키워보는 시간. 그 시간은 원하지 않는 삶을 원하는 삶으로 바꿀 수 있는 시작이 될 것이다. 사랑하는 것들을 자발적으로 지켜내는 건 생각보다 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때마다 같은 고민과 생각이 담긴 책들이 나를 지켜줄 것을 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함께 지키기 위해 기꺼이 애쓸 것을 안다. 아무에게도 팔아 넘기지 않을 나만의 코아를 위해.....
책장을 덮으면서 나는..........
내가 같은 질문을 누군가로부터 받았을 때, 나는 어떻게 대답을 할 수 있을지, 내 대답에 대한 근거를 세울 수 있어야 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나의 '지속 가능한 책 읽기'를 위한 목표가 생긴 셈이다.
나는 이 책을 집어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애초부터 정답일랑 있을 수가 없는 여덟 가지 질문들에 대한 명쾌한 대답을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대답을 정리할 수 있게 되는 능력이 곧 자신의 삶을 고민하고 들여다 보는 과정 중에 나온다는 것을 유념하면서, 자신만의 답변을 세워보기로 결심하게 되는 '그런 생각' 말이다.
아마도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런 생각을 하길 원한 건 아닐까.
"나는 비참했다. 그러나 나에게 태양이 있었다."
-알베르트 까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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