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경영/헐렁한 군주론

인문학큐레이터의 <헐렁한 군주론>-나보다 약한 놈과 동맹을 맺어라

김부현(김중순) 2013. 2. 1. 13:59

서로 전쟁 중인 두 나라의 세력이 미약하여 누가 이기든지 위협이 되지 않을 경우에도 전쟁에 개입하는 것이 현명하다. 왜냐하면 당신이 한 군주의 도움을 받아 다른 한 군주를 몰락시키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만약 그 군주가 현명한 인물이라면 다른 한 군주를 그대로 두었을 것이다. 어떻든 당신이 힘을 합쳐 이김으로써, 당신의 도움을 받은 군주는 당신의 처분에 따를 것이다. <군주론>21장

 

약한 군주와의 동맹은 유익할 것이다

 

<한비자>에서 초나라 도왕이 모든 조건을 갖추고서도 줄곧 가난한 약소국 신세를 면치 못함을 개탄하자 오기吳起가 “분본한 토지가 지나치게 많고 귀족이 권력이 막강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위로는 군주를 위협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학대하니, 군주의 통치력은 약해지고 백성은 생산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한 군대의 상. 벌이 불분명하고 전쟁에서는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장수를 선택하니 이것이 바로 초나라가 부국강병을 이루지 못하는 근본원인입니다.”라고 답했다. 군주가 현명하면 나라는 자연히 강성해진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결국 도왕은 원칙주의자이면서 재능이 출중한 오기를 재상으로 봉한다. 그는 왕의 신임에 부응이라도 하듯 관직을 정비하고 왕실 친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특권을 누리며 호사를 부리는 자들을 내쫓는 등 남다른 수완을 보여준다. 이렇게 되자 왕실 재정이 튼실해 졌고 군사력도 강화됐다. 전쟁터에서는 승전보가 잇따랐으며 정국은 순식간에 초나라가 쥐게 된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원칙론자인 오기가 왕실 친척들에 대해 귀족의 권리만 누리지 말고 사회적 의무를 다하라며 요즘 말로 ‘오블리스 노블리제’를 강조하며 이들을 몰아붙이자 그를 시기하고 모함하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결국 나라를 말아먹을 인물이라는 소리까지 나왔다. 그렇지만 도왕은 끔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기의 든든한 후원자인 도왕이 죽자 이들은 쿠데타를 일으켜 오기를 제거해 버린다.

하지만 오기가 죽는 걸로 사건이 마무리되지 않았다. 쿠데타 세력들이 도왕의 시체위에 누워 있던 오기를 죽이기 위해 마구 화살을 쏜 것이 불행하게도 이미 죽은 도왕의 시신에도 꽂혔다. 결국 죽은 왕을 다시 확인 사살한 꼴이 되고 말았는데, 이것이 또 다른 사화를 불러들이는 도화선이 됐다. 도왕의 아들 숙왕은 즉위하자마자 이 문제를 다시 언급하며 오기를 쏴 죽인 자들을 모조리 붙잡아 처형해 버린 것이다. 이때 왕족 중 대代가 끊긴 가문이 무려 70여 가家에 이르렀다. 오기는 죽어서 복수를 한 셈이다.

나보다 힘이 부족한 두 놈이 싸울 경우 어느 한쪽 편을 들어 다른 한 쪽을 파멸시켜야 한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생각이다. 약자들끼리의 싸움에는 관여하되 나보다 강한 자와는 동맹을 맺지 말아야 한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 때문이다. ‘동양의 군주론’으로 불리는 <한비자>에 나오는 말이다.

“상대방이 등을 돌리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고, 그가 배신하려고 해도 배신할 수 없는 태세를 갖추어라. 상대방이 속이지 않을 것이라 기대하지 말고, 그가 속이려 해도 속일 수 없는 태세를 갖추어라”

인간 본성을 꿰뚫은 한비자의 가르침이자 인간불신의 통치 철학이다. 권력의 본질과 인간 본성을 정확히 분석하여 군주가 놓여 있는 곤란한 처지를 부각시킴으로써 권력 유지의 방도를 모색한 것이다. 그래서 한비자를 제왕학의 교과서라 부른다.

 

혼자의 힘으로 강자가 될 수 없다

 

김삿갓은 조선 후기의 풍자·방랑 시인이다. 본명은 김병연인데 그가 김삿갓이라는 필명을 가지게 된 이유는 과거시험에서 어느 선비를 욕하는 글을 써서 장원급제를 했기 때문이다. 과거시험을 끝내고 집에 와서 어머니로부터 시제에 나온 인물이 아버지임을 알고, 조상을 몰라본 배은망덕한 죄인이라 생각하고 평생 하늘을 보지 않기로 작정하고는 삿갓을 쓰고 방랑시인으로 떠돌면서 많은 풍자와 해학시를 남기게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김삿갓은 한양 한복판에서 요즘으로 치면 학원이라는 것을 경영한 적이 있다고 한다. 체질에 맞지 않아 오래 운영하지는 않았지만 한때는 종각에서 잘 나가는 보습 서당이었다. 서당이 잘 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서당 앞에 걸었던 대형 현수막 덕분이었다고 한다.

“自知면 晩知고, 輔知면 早知라”

한글로 읽으면 ‘자지면 만지고, 보지면 조지라’이다. 언뜻 들으면 무슨 음담패설 같지만 그 뜻은 심오하다. “혼자서 알려고 노력하면 오래 걸리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빨리 깨닫는다.“는 뜻이다. 풍자 시인답다. 혼자 끙끙대기보다는 모르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 상책이다. 세상은 빠르고 다양화 되어 가는데 독불장군 식으로 혼자 해결하겠다는 것은 욕심이다.

<LG경제연구원>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시키는 대로만 하라'는 독불장군형 리더, 칭찬은 박하면서 필벌만 강조하는 리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식의 우유부단한 리더, 조직을 위해 무한한 개인 희생을 요구하는 리더, 책상에만 앉아 있는 현장 경시형 리더는 실패하기 쉽다고 했다.

이른바 ‘선보다 악이 낫다’는 마키아벨리즘은 어느 하나만 고집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선과 악을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매사에 독불장군 식으로 접근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직원들의 업무 스타일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에 맞추도록 강요해서는 지속적인 성과를 내기 어렵다. 또한 변화의 필요성과 방향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무조건 '바꾸라, 변해라'고 요구하는 것도 리더가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이다.

좋은 인재가 오래 머물지 않고 떠나는 조직을 보면 칭찬에는 인색하면서 잘못에 대한 질책은 매우 엄격한 '필벌' 중심의 사고를 가진 리더가 많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리더들은 책임감과 열의를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을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

개인 희생을 무한정 강요하는 리더들은 직원들이 갖는 잠깐의 여유도 용납하지 않으려 하고, ‘어떤 직원이 오래 근무하는가‘로 성실성을 평가하려고 든다. 한 리서치 전문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일하고 싶은 회사의 첫 번째 조건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라고 답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능력과 성과를 제대로 인정받고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려는 직원이라면 그런 조직에서 견디기 힘들 수밖에 없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인 로버트 서튼의 <굿 보스,배드 보스(good boss,bad boss)>에 따르면, 좋은 리더가 되려면 부하 직원들을 얼마만큼 조이고 풀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메이저리그 토미 라소다 전 LA다저스 감독은 "비둘기를 너무 꽉 쥐면 죽고,너무 느슨하게 쥐면 달아나버린다"고 했다. 적당히 쥐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으로 조직을 통솔하는 리더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사를 어느 정도 조이고 어느 정도 풀어야 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조직의 목적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어야 한다. 끈기와 열정, 근성과 결속력은 기본이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서 부하들에게 신바람 에너지를 나눠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따라서 리더라면 함께 손바닥을 마주칠 사람이 있어야 한다. 유능한 선장 옆에는 성실한 선원들이 있고, 위대한 장군 밑에는 용감한 병사가 있듯이 위대한 아들 뒤에는 눈물겨운 어머니가 있다.

생리학적으로 보면, 우리 몸에 있는 모든 세포는 다른 세포들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각각의 세포가 만들어진 이유는 다른 세포들이 그 기능을 다 하도록 서로 서로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일하게 자기혼자서 존재하는 세포가 바로 암세포라고 한다. 혼자서 성공하는 사람은 없다.

덩치보다는 속도가 중요한 시대적 가치다. 따라서 먼저 속도를 갖춰야 덩치를 키울 수 있다. 아프리카 초원지대에 사는 동물을 봐도 큰 놈이 작은 놈을 먹어치운다. 과거에는 그랬다. 이젠 빠른 놈이 큰 놈을 먹어치우는 시대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130년 전통의 코닥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듯 변화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크기에 상관없이 생존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