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경영/헐렁한 군주론

인문학큐레이터의 <헐렁한 군주론>-도덕군자보다는 사악한 리더가 되라

김부현(김중순) 2013. 2. 1. 14:06

군주가 신의, 인정, 자비, 친절, 신앙심과 같은 여러 훌륭한 성품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인간인 이상 모든 성품을 갖추기 어렵다. 그렇다 하더라도 가능하다면 악덕은 피하는 것이 좋다. 만약 이 악덕조차 피할 수 없다면 나쁜 평판에 대해서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여러 사례를 보면 미덕으로 보이는 일을 해도 파멸하는 경우도 있고, 악덕으로 보이는 일을 해도 안정과 번영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사에 도덕을 내세우는 사람은 악인들에게 당한다. 그래서 권력을 유지하려는 군주는 선하기만 해서도 안 되며 악인이 되는 법도 알아야 하며, 또한 이러한 태도를 필요에 따라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군주론>15장

 

도덕군자보다는 사악한 리더가 되라

 

문화가 번성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궁정처세서 중 외교관이었던 카스티글리오네Baldassare Castiglione의 <궁정인론>은 궁정 문학의 필수 텍스트이자 처세서의 바이블이었다. 1528년에 출간된 이 책은 150년에 걸쳐 유럽 전역의 궁정, 외교 및 상류사회의 행동양식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크롬웰도 이 책을 읽었고, 셰익스피어도 이 책을 탐독했다. 카스티글리오네는 궁정인이 어떻게 군주를 섬겨야 하는가를 가르친 반면,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궁정인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해 글을 쓴 것이다.

카스티글리오네는 자서전을 썼다고 말할 수 있다. 바로 자신이 책 속의 모델이었다. 이탈리아 만토바 지방에서 귀족 집안의 후손으로 태어난 그는 르네상스 시대의 특징인 팔방미인답게 외교관, 시인, 학자, 군인이었다. 평생 궁정인으로 살았던 그는 종종 자신마저 기만하는 이상적인 실용주의자였다. 빈틈이 없을 정도로 실리적으로 움직일 때든, 기회주의자로 움직일 때든 항상 이상주의자로 자신을 포장하고 기회를 엿보았다.

그는 <궁정인론>에서 진정한 궁정인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한다. “자신이 섬기는 군주를 기쁘게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간파하는 분별력, 적절한 행동의 수준을 파악하는 재기와 판단력, 그리고 감정적으로 싫은 것을 좋아하게 만드는 속 깊은 배려심과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 궁정인은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았거나 기분이 좋지 않은 때, 또는 우울한 상태일 때는 군주를 알현하지 않는다… 궁정인은 마치 바보인 듯 오만한 자세를 버린다. 궁정인은 추한 소문의 희생자가 절대 되지 않을 것이고, 스스로 기쁘게 하려고 애를 쓰기 보다는 기분 나쁘게 들릴 수 있는 일은 가급적 말하지 않는다… 그는 게으르지 않을 것이고, 수다쟁이가 되지 않을 것이며, 어리석은 아첨꾼이나 허풍선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그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군주에 대한 예를 철저히 지키고 겸손하게 행동하며 되도록 말을 삼갈 것이다.”

아부가 가미된 언어의 연금술사 같은 표현이지만 일견 고개가 끄덕여 지는 건 지금도 이러한 일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사회에서의 조직 생활과 궁정은 겉으로 보기에는 차이가 많다. 그러나 15세기에서 18세기까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궁정에서 생활했던 쟁쟁한 귀족들의 글을 읽어보면 험란한 사회에서 생존하는 비결을 터득하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이들은 은퇴한 뒤 자신들의 생각을 신랄한 경구 스타일로 정리해두었는데, 이런 냉소적인 글들은 계속 우리를 흔들어 우리가 남들에 대하여 믿고 싶어 하는 것들을 믿게 만들어준다. 마키아벨리, 구이차르디니, 라로슈푸코, 그라시안이 쓴 글들은 조직의 피라미드를 성공적으로 기어오르려고 할 때 공식적이고 정규적인 역할 외에 어떤 책략을 구사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현대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 역시 자신이 맡은 일에서 최고라기보다는, 문명화 된 삶에서는 지침을 얻기 힘든 여러 가지 음침한 정치적 기술이 가장 능숙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철지난 고전에 심취하는 이유는 역사는 돌고 돈다는 것과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진실의 힘 때문이다.

 

영웅은 과거를 살고, 악당은 미래를 산다

 

최근 문화평론가 김헌식이 쓴 <나는 악당이 되기로 했다>라는 책이 있다. 세상이 규정하는 악당의 다양한 캐릭터를 분석했다. 그는 영웅과 악당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영웅과 악당을 둘러싸고 만들어진 이미지는 어쩌면 사회가 우리에게 심어준 거대한 착각인지도 모른다. '영웅'과 '악당'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은 주류세력, 즉 보수층이 만들어낸 것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언제나 영웅을 앞세워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이 있었고, 이들은 사회질서를 위협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려는 자들에게 '악당'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배척해왔다. 영웅이 보수라면 악당은 진보다. 영웅은 고독하지만 악당은 뜨겁게 사랑한다. 영웅은 무표정하지만 악당은 마음껏 웃는다. 영웅은 얽매이지만 악당은 자유분방하다. 영웅은 유니폼을 고집하지만 악당은 스타일을 추구한다. 악당을 지지하는 세력이 확대돼 사회가 변화하면, 소외당하던 악당은 어느 순간 추앙받는 영웅이 된다. 정신분석학을 주창한 프로이트, 냉혹한 통치론을 펼친 마키아벨리, 여성의 참정권과 자립을 외친 울스턴크래프트는 당대에 숱한 비난과 손가락질을 감당하면서도 인류의 진일보를 이뤄낸 대표적인 악당들로 꼽았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의 유전자는 이기적이어서 자신의 생존과 번식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실제로 다윈이 “자연 선택은 한 생명체에 이로운 점보다 해로운 점이 많은 구조를 만들어내는 법이 없다. 자연 선택은 각 생명체에 유리한 방향으로만 작용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유기체는 유전자 적이고 생물학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서 생존과 번식의 기회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또한 진화생물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의 몸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감정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작용한다. 따라서 친절, 애타심, 관대함 등과 같은 감정도 엄격하게 따지고 보면 우리 유전자에 눈곱만큼의 이익이라도 안겨주려는 교묘한 진화적 전략인 것이다. 우리는 자식과 가족을 더 사랑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우리와 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유전학적으로 보면, 그들의 성공이 곧 우리의 성공이다.

진화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동일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 감흥한다. 그 유전자가 몸에 감정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사랑, 공감은 다른 몸들에 심어진 유전자를 연결시켜주는 보이지 않는 끈이다. 따라서 우리가 친척을 돕는 것은 같은 유전자가 서로 돕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

생물학의 이런 관계를 도덕의 세계에 적용하면 자존심, 즉 자기애를 정확히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미덕이라 규정하는 어떤 덕목이라도 말해보라. 라 로슈푸코는 마키아벨리와 마찬가지로 그 미덕의 어두운 면을 까발리고 이기적 관점에서 풀어낸다. 모든 삶이란 끊임없이 계속되는 자기애의 거대한 작동이라고 본 것이다.

왜 우리는 곤경에 빠진 친구나 가족을 도우려는 것일까? 라 로슈푸코의 잠언으로 변형시켜보면, 그들을 염려하는 순수한 마음 때문이 아니다. 연민은 다른 사람의 불행에서 우리 자신의 불행을 비춰 보는 감정의 표현이다. 언젠가 우리에게 닥칠지도 모를 불행을 미리 경계하는 마음인 것이다. 결국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우리가 비슷한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다. 엄격히 말해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도움은 언젠가 되돌려 받기 위한 선행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