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기를 잃은 이탈리아는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롬바르디아에서 자행되는 약탈 및 나폴리 왕국과 토스카나 왕국에서 일어나는 수탈에 종지부를 찍고, 그토록 오랫동안 당한 고통을 치유해줄 수 있는 누군가를 찾고 있다. <군주론>26장
마키아벨리와 한비자는 난세가 만든 영웅이다
한비자와 군주론은 모두 난세에서 태어난 책이다. 나라가 강대국들에게 짓밟히고 백성들은 전쟁의 고통으로 힘들어 하는 것을 직접 겪은 한비자와 마키아벨리는 뜬구름 잡는 도덕논리 대신 현실적인 법을 중시하게 되었다.
한비자는 전국시대라는 혼란한 사회를 구원하는 길은 유가의 덕치(德治)나 순자의 예치(禮治)를 통해서는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오직 강력한 힘에 의해서만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말한 힘은 바로 국가의 힘을 가리킨다. 국가의 힘은 부국강병에 의해서만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부국강병을 위해서는 강력한 군주의 힘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그는 군권(君權)의 강화를 바탕으로 하는 강력한 법치(法治)를 주장하게 되었다.
한비자의 법치설은 순자의 ‘성악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한비자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어서 오직 이해득실만을 따질 뿐이지, 선악(善惡)의 의식은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군주는 ‘법(法)’을 통하여 백성들을 개조(改造)하고, 통제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군주가 백성을 통치하려면 법 이외에 술(術)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술은 통치술을 뜻하지만, 주로 신하를 통솔하는 용인술(用人術)을 가리킨다. 한비자는 이러한 술의 개념에 노자의 허정무위(虛靜無爲)의 사상과 연결시킨다. 원래 노자의 허정무위가 인위적인 통치를 반대하는 것이었지만, 한비자는 도리어 인위적인 통치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그래서 한비자에서는 노자의 무위가 아랫사람을 부리는 술책으로 전환되었고, 도가의 지혜는 권모술수로 변질되었다.
그래서 한비자는 “현명한 군주가 신하를 제어하기 위하여 의존할 것은 두 개의 권병뿐이다. 그것은 형刑과 덕德이다. …… 처벌하여 죽이는 것을 형이라 하고, 칭찬하여 상 주는 것을 덕이라 한다.”는 단호한 통치술을 주장했다.
<한비자>는 한마디로 군주의 통치 논리를 기술한 것이다. 전국 시대는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대였지만 문화적으로는 오히려 여러 사상을 꽃피우기도 한 시대였다. 한비자는 이와 같은 혼란한 시대에 군주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현실적으로 제시하였다.
한편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통하여 어떻게 하면 정권을 잡을 수 있고, 또 어떻게 하면 이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가에 관심을 집중하였다. 그러나 그는 도덕적 문제에 대하여서는 한마디도 언급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도덕적인 차원에서 정치 행위를 생각하는 것은 교활한 정적들이 만들어 놓은 함정 속에 스스로 몸을 내맡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한비자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악하다는 관점에서 출발한 다. 그렇기 때문에 군주의 도덕적 훈계보다는 교활한 속임수를 더 높이 평가한다. 군주들이 권모술수를 사용해야 하는 것은 바로 여우의 책략과 사자의 힘에 능숙한 자만이 불확실한 지배체제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주는 국가의 존립이 보장될 때에 한해서 신의를 지켜야 하지만, 때때로 국가가 혼란에 빠지거나 무질서 할 땐 신의를 지키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통치자는 모든 덕을 다 갖출 필요는 없지만 “마치 모든 덕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교묘하게 위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키아벨리의 이러한 현실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사상은 그 뒤 토마스 홉스의 정교한 철학적 접근을 통하여 한 걸음 더 발전하게 된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20세기 역사는 마키아벨리의 수단을 그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극단으로 몰고 간 지배가들의 출현이 낳은 비극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1532년, 마키아벨리가 죽고 난 후 몇 년이 지나 출간된 군주론은 즉각적인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피터 본다넬라 Peter Bondanella는 그러한 논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군주론은 주로 ‘최초’라는 수식어로 다양하게 평가받고 있다.
즉, 최초로 정치지도자의 역할을 분석한 책, 최초로 신학으로부터 정치학을 독립시킨 책, 최초로 정치에 무관심한 대중을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책, 외교관을 위한 영원한 규범을 담고 있는 최초의 실용적 통치교본, 그러나 무엇보다 최초의 사악한 정치지침서라는 평을 가장 많이 들어왔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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