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인재들은 많은데 지도자들은 이러한 역량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결투나 백병전에서 보여주는 이탈리아 국민들의 힘과 기술 그리고 섬세함은 대단하다. 그러나 군대라는 형태가 되면 적군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이 모든 것들은 지도자들의 나약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불가피하게 수행하는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이며, 무력에 호소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을 때, 무력 또한 신성한 것이다. <군주론>26장
전쟁터에서 가장 많이 죽는 계급은 소위다
전쟁터에서 가장 많이 죽는 계급이 갓 임관한 신참 소위라고 한다. 사관학교에서 배운 교과서대로 뛰어다니다가 쉽게 총에 맞아 죽는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는 교실에서 배운 교과서가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다. 교과서가 가장 통하지 않는 곳이 바로 전쟁터다. 원칙도 규칙도 없고 반칙과 기만술도 용인되는 무법천지이기 때문이다.
“중국 춘추시대, 노(魯)나라에 미생(尾生)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는 사나이였다. 어느 날 미생은 애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는 정시에 약속 장소에 나갔으나 웬일인지 애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미생이 계속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져 개울물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생은 약속 장소를 떠나지 않고 기다리다가 결국 교각을 끌어안은 채 익사하고 말았다.”
<한비자>에 나오는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는 고사성어의 유래이다. 이것은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다는 뜻으로도 쓰이지만 때로는 신의가 깊다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지나치게 교과서에 의존한 경직된 전술은 전쟁터에서는 무용지물이다. 한 번 써먹은 전술을 폐기하는 것이 전략 수립의 시작이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마키아벨리의 말이 가장 절실한 곳이 전쟁터다. 따라서 군주론은 리더나 정치인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해관계나 목적 달성이 필요한 조직이나 개인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전쟁터에서 가장 좋은 전술은 지금까지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전술이다. 손자도 한번 써먹은 전술을 재탕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상황에 맞는 임기응변이 교과서와 원칙보다 더 중요한 곳이 전쟁터다. 직장도 전쟁터와 다를 바 없다. 차이점이 있다면 총과 칼 대신 경제성과 효율성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것뿐이다. 이익과 효율은 상호불가분의 관계다. 이익 없는 효율성은 존재할 수 없고 효율성 낮은 이익도 무의미하다.
한비자도 “인간은 이익을 찾아 움직이는 동물이다.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동기는 사랑도, 배려도, 의리도, 인정도 아니다. 오로지 이익뿐이다.”라고 했다. 의리도 인정도 결국은 이익이 밑바탕이 되어 있을 때 가능하다. 잠만 쿨쿨 자는 당나귀도 제 먹을 콩 실으러 가자고 하면 따라 나선다.
기업에서 사람을 움직이는 핵심은 결국 당근과 채찍으로 귀결된다. 마키아벨리는 지나친 당근책으로 기업이 망하기보다는 적절하게 채찍을 가해 회사가 발전하게 하는 경영자가 진정한 리더라고 했다. 당근과 채찍은 회사가 먼저냐, 직원이 먼저냐 하는 설익은 논쟁거리가 아니다. 양자 모두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가 망하면 개인도 존재할 수 없다. 회사의 목적은 번영이다. 환경에 적응하여 번영하는 기업이 승자다. 비록 과정이 일부 비민주적이고 비도덕적이라 하더라도 살아남는 기업이 현명하다. 강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자라는 케케묵은 경구를 들추지 않더라도 결국 살아남는 자가 승자다.
마키아벨리도 군주론 전반에 걸쳐 적자생존의 법칙을 강조한다. 밥을 위해서는 고지식하게 도덕이나 원칙에 매몰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그것을 탈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뜬구름 잡는 허황된 도덕논리보다는 현실적인 목구멍 논리가 더 말이다. 밥은 도덕보다 강하다. 밥은 현실이고 도덕은 이상이다. 밥 위에 도덕이 존재하지 도덕 위에 밥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 현실 위에 이상이 존재한다. 경영자가 한 달만 직원 월급을 주지 않아도 노동청에 불려가고 악덕기업인, 무능한 경영자로 낙인찍힌다.
내가 아는 한 지인은 몇 해 전 2년 정도 신설 중소기업의 CEO로 재임한 적이 있었다. 독일에 주문한 기계값이 환율변화로 눈덩이처럼 불어나 기계구입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자금은 묶이고 급여 지급이 미루어지자 직원들은 다른 어떤 이야기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강구할 생각이 없었다. 오직 밥을 달라는 것이다. 어제까지 알랑거리며 회사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던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180도 태도가 돌변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 회사는 문을 닫았고 직원들은 떼를 지어 노동청에 대표이사를 고발했다. 직원들은 회사자산을 처분하여 밀린 급여는 물론 퇴직금까지 모두 받았다. 그러나 회사 대표였던 지인은 여러 차례 노동청에 불려가 임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았다고 해서 결국 재판에 회부되어 벌금형을 처분 받고 사건은 종결되었다. 배고픈 직원은 존재할 수 있지만, 밥 굶는 직원은 존재할 수 없다는 밥의 진리를 새삼 깨달았던 계기였다고 침을 튀기며 설파했다.
임진왜란 당시 한 포르투갈 신부의 전언에 의하면, 조선군은 고구려처럼 청야전술로 일본군을 괴롭혀 씨를 말렸다고 한다. “조선인들은 산성으로 피신하면서 갖고 갈 수 있는 것은 모두 갖고 갔고, 심지어 추수하지 않은 들판의 곡식까지 깡그리 먹지 못하게 망쳐 놨다. 밤에 물을 길으러 가보면 못물에 시체가 떠 있다.” 식량을 없앤 것은 물론이고 물도 마시지 못하게 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군은 급한 마당에 물에 시체가 떠있든 말든, 썩었던 말든 일단 물이라면 목구멍으로 넘겼다. 마침내 조선군에 투항하는 일본군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가장 큰 이유는 밥이었다. 아무리 군기로 무장된 군인이라 해도 밥을 못 먹는 데는 버틸 재간이 없다. 밥 앞에서는 국가도 애국심도 없다. 밥은 이처럼 무서운 것이다.
'독서경영 > 헐렁한 군주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문학큐레이터의 <헐렁한 군주론>-나보다 강한 놈과는 동맹을 맺지 마라 (0) | 2013.02.07 |
---|---|
인문학큐레이터의 <헐렁한 군주론>-타인의 힘에 의존한 개혁은 모래성이다 (0) | 2013.02.06 |
인문학큐레이터의 <헐렁한 인문학>-마키아벨리와 한비자는 난세가 만든 영웅이다 (0) | 2013.02.06 |
인문학큐레이터의 <헐렁한 군주론>-성공은 운과 우연의 산물이다 (0) | 2013.02.06 |
인문학큐레이터의 <헐렁한 군주론>-여우의 꾀와 사자의 힘을 동시에 활용하라 (0) | 2013.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