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나라의 교육은 음모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음모의 교육제도이다. 초등학교부터 대학입시를 치를 때까지 학생, 학부모, 교사들에게 온갖 노력을 다하게 하여 모두 탈진시키고, 마지막 순간에는 학생의 95%를 도태시키는 파괴적인 제도이다. 2004년 우리나라 고등학교 졸업생 수는 대략 60만 명이었다. 일류대학이라고 지칭되는 전국 10개 정도의 대학의 신입생 정원수는 3만 명 정도이다. 3만 명 정도의 학생들이 입시 경쟁에 성공했다고 인정을 받지만, 나머지 57만 명의 학생들은 주위로부터 좌절을 맛본 학생으로 취급된다. 대다수 학생의 기를 죽이려는 음모의 교육이라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소수를 위해 다수가 희생하는 교육시스템인 것이다.
입시생을 둔 학부모는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다. 마치 전쟁터로 출격을 대기하고 있는 전투장병과 같다. 다른 집 자녀에 비해 뒤떨어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자녀 교육에 온갖 것을 다 희생하다 보니 학보모의 도덕성과 윤리관도 영향을 받는다. 어차피 전투 아닌가? 나 혼자 지킨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나? 내가 안 하더라도 남들이 한다면 내 자식만 손해 아닌가? 그러나 자식을 대학에 보내고 나니 지난 일은 모두 잊고 싶어진다. ‘이제 내 문제는 아니다’ 학부모들의 이기심이 조금만 덜했어도 고쳐질 수 있는 시행착오가 반복된다.
대학에 들어온 신입생들은 격전을 치루며 쌓였던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를 털며 자유를 만끽한다. 학부모들은 성취감과 함께 허탈감에 시달린다. 그 동안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도 생긴다. 동시에 신입생이 된 자녀에 대한 관심도 급격히 사라진다. 이는 30Km 지점에서 경기를 포기한 마라톤 코치와 같다. 선발된 5%도 학부모의 꾸준한 관심이 없으면 큰 희망이 없는 법이다.
그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서울대에 입학한 선발된 5%의 근황이 궁금하여 자연대, 경영대, 공대에 재학 중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능시험 문제를 다시 한 번 풀어보자고 제안했다. 입학 당시 받았던 점수에 비해 약 30~35점씩 떨어졌다. 수능 1등급에서 대략 3등급으로 떨어진 것이다. 서울의 하위권 또는 수도권에 있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점수에 불과했다. 시험이 끝난 후 학생들이 소감을 말했다. “너무 세세한 것까지 따진다.”, “단순 암기형 문제는 정말 필요가 없다.” “풀면 풀수록 그 과목에 회의가 든다.” “수능을 본지 6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사회탐구, 과학탐구는 거의 생각이 나지 않았다.” 등이었다. 99%의 관문을 통과했던 학생들이 짧은 기간이 지난 후 80%의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점수를 알려주자 모든 학생들이 놀랐다.
1945년 우리나라 전체의 대학 수는 19개였다. 1965년에는 약 200개로 늘어났고, 2000년에는 1,000개에 다다르고 있다. 그 동안 재단의 비리도 있었고, 입학부정도 있었고, 각종 민원도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정부가 생각해 낸 것이 모든 대학을 일괄적으로 획일적으로 관리하겠다는 발상이다. 대학의 전통, 시설수준, 교수수준, 교육수준을 따지지 않고 획일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지난 50년간 정부는 35회에 걸쳐 교육제도를 바꾸어 왔다. 제도가 바뀔 때 마다 획일적 입시관리, 적성과 자질을 무시한 입시제도, 평준화 시비, 변별력 문제, 과외 열풍, 사교육비 증가 등의 문제가 지적되었다.
계속 제도가 개선되어 왔는데 왜 문제는 점점 복잡해지는가? 입시제도의 바탕에 깔린 생각은 무엇인가?
첫째,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
둘째, 한정된 인력과 노력으로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채점 과정이 신속하고 간편해야 한다.
넷째, 학부모들이 불평하면 그 원인을 찾아 근본적으로 제거한다.
다섯째, 이로부터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그때그때 바꿔 나간다.
그럴듯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 결과는,
첫째, 정부 중심의 입시관리
둘째, 객관식 출제
셋째, OMR채점
넷째, 평준화
다섯째, 1년반 마다 바뀌는 입시제도를 양산했을 뿐이었다.
1974년 실시된 고교평준화 정책은 명문고의 몰락을 가져왔다. 고교평준화의 기본 발상은 무엇인가? 명문고 출신들이 일류 대학 입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 학부모의 불만이 커지는 것 아닌가? 명문고를 없애면 학부모들의 불만도 해소될 것 아닌가? 그래서 없애 버렸다.
그러나 명문고가 없어지고 나서 생겨난 후유증은 무엇인가?
첫째, 공교육의 몰락을 가져 왔다. 평준화된 학생들의 분포는 1등급 378점부터 9등급 172점인데 교사는 어떤 수준에 맞추어 수업을 해야 하는가? 수업 내용이 어정쩡한 것이다. 학생들이 말을 안 듣기 시작하고 학부모들이 주저 없이 공교육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둘째, 특수 목적고, 사립고 등 새로운 명문고가 탄생했다.
셋째, ‘명문지역’이 형성되었다. 학생들의 실력 차이를 인정하지 않기로 정해놓고 한숨 돌리니 학부모들의 경제력의 차이가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넷째, ‘명문학원’이 등장했다. 1970년에 약1,400개 1980년에 약 2천 개 1990년 약 5천 개 2000년에 집계된 학원 수는 무려 6만개에 이른다. 입시제도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내용이 추가될 때마다 학원수가 늘고 학원비가 인상되었다. 이 과정에서 학원들은 신상품을 계속 개발했고 지금은 스타 강사 군단을 키우고 있다.
다섯째, 사교육비의 무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사교육비를 낮추는 대책으로 TV과외 수업이 운영되고 있다. 학원 강사는 인지도를 높이고자 방송에 나가고 인지도를 얻은 강사는 다시 학원가로 재 영입되어 더욱 강화된 스타 강사 군단을 형성한다. 이제 명문학원학생, 명문지역 학부모로 구성된 이른바 새로운 ‘명문계층’이 출현한 것이다.
다른 대책은 없는가? 또, 있다! ‘대학평준화’는 어떤가? 몇 개 안 되는 명문 대학 후보들 마저 없애면 어떻게 되는가? 국가 경쟁력의 기반이 사라질 것이다. 요즘 상황을 보면 명문대의 명분을 제공해주던 이공계 분야가 우수한 인재들로부터 일제히 외면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명문대를 찾던 수능 1등급의 우수한 인재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개인적 부의 축적이 약속되는 ‘명문학과’로 몰리고 있다.
이제 명문학과를 없애버릴 차례 아닌가? 무언가 만들 생각은 아니고 쫓아다니며 없애기만 하면 잘하는 일인가? 선진국은 명문대 하나라도 더 만들려고 애쓰는데 갈 길이 먼 우리는 명문대 후보마저 없애려 하는가?
2.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자.
구공탄 공장에서 100% 경쟁력을 올린다고 해서 도시가스를 이길 수 있겠는가? 대학이야 말로 정부, 기업에 앞서 교육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대학의 창의적 교육이 시작되어야 정부와 기업의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작되는 것 아닌가? 사회 발전은 진화와 변혁이 번갈아 반복되면서 이루어져 왔다. 요즘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것은 변혁이다. 변혁의 내용은 기술혁신, 정보 혁명, 국제화 조류, 경제권역의 형성 등이다. 이 같은 시대 급류에 살아남으려면 대학의 교육철학, 교육목적과 교과과정의 대대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IMF 사태를 맞아 산업계는 왜 이공계 출신들을 주로 퇴출시켰는가? 산업계는 바보가 아니다. 이공계 인력이 필요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 산업계는 해외 기술도입에 의존하여 산업발전을 이루어 왔다. 연륜이 쌓인 이공계 출신들이 많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학부모와 학생들도 바보가 아니다. IMF 과정을 거치며 이공계를 졸업해도 제대로 큰 희망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공계 위기는 국민의 위기다. 우리는 제품 수출로 국가의 수입원을 마련해왔다. 우수한 인재들이 국가 수입원을 창출하는 분야로 진출하지 않는다면 국가가 먹고 살 길이 없어지는 것이다.
학부모들로부터 받는 질문이 있다. 도대체 유망산업, 유망학과, 유망직업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유망산업은 시대를 따라 변천해왔다. 60년대 면방산업 70년대 봉제, 신발, 가발산업 80년대 전자, 자전거 90년대 반도체, 자동차 2000년대 휴대폰, 인터넷 등 이처럼 유망분야는 끊임없이 바뀌어 왔다. 현재 유망하다고 인정되는 직업은 얼마 지나지 않아 10년 이내에 사양길을 걸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느 것이 유망하단 말인가?
이제 정답을 말하겠다. 가장 유망한 분야는 본인이 하고 싶은 분야이다. 10년 단위로 빠르게 변하는 분야보다 평생 마음이 끌릴 분야가 유망한 것 아닌가? 교수에게 자꾸 물어야 별 대답을 얻지 못한다. 자녀에게 물어야 한다. 자녀가 즉시 대답을 못하면 시간을 주어야 한다. 조선조 한 왕이 정승에게 물었다. “광풍이 몰아치는 벌판에 초가삼간을 보존하는 방법이 무엇이냐? 영의정이 대답했다. “사방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광풍이 쇠잔해지기를 기다리면 됩니다.”
우리나라 지도계층의 철학을 잘 보여 준다. 초가집은 무너지지 않겠지만 방 안에 있던 민초들은 다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런 방식으로 5천년을 끈질기게 버텨왔다. 임진왜란 7년에 절반에 가까운 민초들이 사라진 것이 대표적인 예다. 1904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의 무적함대인 극동함대를 물리친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은 평소 이순신 제독을 무척 존경했다. 승전 기념식에서 이순신 버금가는 위대한 해군제독이라는 칭찬을 듣고 영국의 넬슨에 비교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으나, 이순신과는 비교할 수 없다.
이순신은 내가 감히 따라갈 수 없는 훌륭한 제독이다. 헤이하치로는 그 이유를 네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넬슨이나 나는 국가에서 만들어준 전함을 가지고 전투에 나가 이겼으나 이순신은 국가의 지원은커녕 각종 모함과 질시 속에서 스스로 거북선과 같은 우수한 전함을 만들어 전투에 이겼다.
둘째, 넬슨이나 나는 국가에서 훈련한 수병을 데리고 나아가 전투에 이겼으나, 이순신은 스스로 수병을 조련하여 전투에 나가 이겼다.
셋째, 넬슨이나 나는 국가가 보급한 각종 화기와 장비를 사용하여 전투에 이겼으나, 이순신은 국가의 의심어린 감시 속에서 각종 화기를 스스로 제작하여 전투에 나아가 이겼다.
넷째, 나는 함선 수에서 3배가 넘는 러시아 해군과 싸워 이겼으나, 이순신은 12척의 배로 300여척, 즉 30배에 가까운 적과 상대하여 승리했다. 넬슨의 영국 하노버 왕조, 헤이하치로의 일본 메이지 왕조는 마땅히 정부가 할 소임을 다했을 뿐이다.
이순신의 조국은 그때 무슨 일을 했나?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20여 차례 대승전을 통하여 조국을 여러 차례 구한 구국의 영웅을 여차하면 잡아들였다가, 급하면 다시 전장으로 내치기를 몇 차례나 반복했다. 지금 우리 정부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전통으로 간주하기에는 너무 슬프지 않은가? 우리의 정부를 미워할 필요는 없다. 단, 정부가 하는 일을 잘 주시해야 한다.
3.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있는가?
IMF 위기는 우리에게 정부와 기업 그리고 금융기관에 부패와 부조리가 횡행하면, 벌이에 비해 소비가 높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 동안 잘못 기재된 가계부를 대충 정리하는데 150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부었다. 역사책에도 음모가 스며들어 있다. 우리 역사책은 흐름은 어떤가? 허약한 왕조, 문벌간의 세력 다툼, 지배 계층의 수탈사, 외세침략, 민중봉기, 쇄국정책, 제국의 멸망, 열강의 침입, 아관파천, 식민지 시대, 동족상잔 아닌가? 식민사관에 물든 사학자가 기본 틀을 만들었을 것이다.
별 생각 없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우리 민족에 대해 자조적인 생각을 품게 될 것이다. 21세기를 대비하는 노력의 첫 단추는 민족정체성의 재정립과 고유문화의 자부심을 회복하는데 집중되어야 한다. 우리는 산업 규모의 팽창에 따라 기술의 해외 의존도 점차 심화되어 왔다. 기업은 결과가 불확실한 연구개발 투자보다 단기간에 수익성이 확보되는 해외기술 도입에 중독되어 왔다. 노력을 하면 할수록 더욱 더 남의 신세를 지게 되고야 마는 악순환의 인생을 살아왔다. 그 동안 우리는 의미 없는 경제지표와 낭비가 앞서는 국민소득에 현혹되어 안주한 채 방만하게 지내 왔다. 이제 대안이 없는 막바지 상황에서 시도해 본적이 없는 기술혁신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동북아 3국의 인구를 보면, 한국은 4천8백만, 일본은 1억2천만, 중국은 13억이다. 한중일 3국이 15억의 거대한 시장을 이루고 있다. 화교 네트워크가 주도하고 있는 동남아 인구까지 계산에 넣는다면 동아시아 인구는 22억이다. 세계 인구 60억의 3분의 1이 넘는 인구가 실질적인 동북아 경제권 규모인 것이다. 이 지역은 문화와 정서면에서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지역이다. 한중일이 협력하여 만든 동북아 경제권은 북미 자유 시장, 유럽연합과 더불어 서로 협력하고 교류하고 기여하는 3대 경제권을 이룰 것이 틀림없다.
4. 우리에겐 변혁의 힘이 있다.
우리는 문화관, 가치관이 뚜렷하고 창조적 사고를 지녔으며 이를 증명하는 문화유산도 많다. 우리 선조들의 과학기술의문화의 특징은 다른 문화권의 모방품이 없다는 점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석가탑은 직선만 사용했다. 그러나 보는 위치에 따라 탑의 날개는 곡선으로 보이며 하늘로 치켜 날아오른다. 에밀레종 소리의 공명 설계는 컴퓨터 분석으로도 어려운 기술이다.
소리가 끊어졌다가 다시 살아나기를 10여 차례 반복한다. 거북선은 쇠못을 쓰지 않고 곡선의 나무못을 사용했다. 배가 항해하면 못이 물에 불어 연결부위의 빈틈을 없에 준다. 왜군 선박 세키부네는 쇠못을 사용하여 바닷물에 부식되어 틈새가 넓어진다. 항해하는 동안 교대조가 계속 물을 퍼내야 한다. 거북선과 충돌하면 부서진다. 거북선은 충돌 시 방패면 밑으로 노를 숨길 수 있지만 세키부네는 충돌 시 노가 부러진다. 거북선의 길이는 짧고 폭이 넓어 물살이 센 곳에서는 기동성이 뛰어나다. 이순신 제독은 물살이 센 곳만 골라서 전투했다. 1000년이 지나도 지질이 변하지 않는 종이는 우리나라 닥종이 밖에 없다.
궁중에서 사용한 책의 접착제도 600년이 지나도 새로 만든 화보집처럼 경쾌한 소리를 낸다. 종이를 먹는 좀에게 접착제는 독약이기 때문이다. 고려청자는 1,000년이나 바닷물에서 건져도 신비로운 색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우리는 선조들의 창의력을 재현함으로써 21세기 정보 혁명 시대에 인류복지 향상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첫째, 이제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대안은 창의성 밖에 없다.
둘째, 우리 선조들은 국가의 지원은 고사하고 억압과 멸시 속에서도 찬란한 과학기술문화를 이룩하였다.
셋째, 기술주도 시대의 세계 시장은 관존민비의 차별도 없고, 사농공상의 서열도 없다.
우리 젊은 세대의 우수한 창의성을 확신하게 된 동기는 ‘하이터치’라는 산학협동 연구를 진행하면서부터이다. 출신학교, 전공분야, 학교 성적 등 여러 면에서 보통 수준이라고 평가받아 오던 기업체의 연구원들은 올바른 연구 목표를 세우자마자 주위의 예상을 뒤엎고 폭발적인 창의력을 발휘했다. 이들과 함께 개발한 신제품 중에 ‘코보(Kobo)’라는 세계 최초의 유아용 컴퓨터가 있다. 세 살짜리 유아가 한 시간 안에 사용법을 익혀 쓸 수 있는 컴퓨터를 개발하자고 공언하고 시작했다. 한 달 안에 개발하자고 했고, 실제로 한 달 만에 개발했다. 이 제품은 전국 유치원에서 유아들 컴퓨터 교육에 쓰이고 있다.
하이터치(High touch) 연구팀이 보여준 교훈은 무엇인가? ‘죄수부대’로 불린 이들 중에는 명문대 출신이 거의 없었다. 내가 처음 들어본 대학들도 있었다. 그러나 세계 최초의 신제품만을 만들겠다고 명확한 포부를 밝히자마자 잠자고 있던 창의력을 발휘했다. 이들은 신바람나게 일했다. 죄수부대에 차출되기 전 이들은 회사에서 줄곧 외국 제품을 모방하는 일을 해왔다.
외국 전자제품 하나 모방하는데 1~2년 걸렸다. 이들이 자주 듣던 이야기는 “일정에 맞춰 출시해야 한다.” “부품 국산화로 원가를 낮추자.” “가격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등이었다 모두 베끼기 과정에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다. 그런데 죄수부대는 첫해에 신제품 5개, 두 번째 해에 신제품 6개를 개발했다. 이들의 활약상은 뉴욕타임즈(NewYork Times)를 뒤이어 영국, 프랑스, 일본의 기획기사로 연결되었다.
1992년, 하이터치의 성공경험을 바탕으로 <W이론을 만들자>라는 책을 냈다. W이론이 강조하는 내용은 ‘민족의 창의성’이다. W이론의 핵심은 무엇인가?
첫째, 보이는 것을 포기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
둘째, 변할 것과 변하지 않을 것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셋째, 빠른 변화에 집착하지 말고, 느린 파동에 집중해야 한다.
5. 우리도 세계적인 지도자를 배출하자.
비전이란 멀리보고, 넓게 보고, 없는 것도 보는 것이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성취하고 싶은 목표가 있기 때문에 활기가 넘치고 신념이 생긴다. 비전이 없는 사람에 비해 어려운 일을 잘 견뎌내고 크고 작은 좌절감을 극복한다. 그러나 비전은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자녀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강조하건대, 자연스러운 방법이어야 한다.
‘성적을 올려라”, “좋은 대학을 가라”는 말은 지시와 명령이지 동기부여가 아니다. ‘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 동기의식이다. 성과가 나타나면 신바람이 나게 되고, 주위의 칭찬을 들으면 성취감으로 연결된다. 성취감을 느끼면 어려운 일을 하면서도 전혀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는 법이다. 자녀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을 대신사다 주는 부모가 있다. 자녀들이 좋은 훈련과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뺏는 것이다.
스스로 결정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자녀의 모든 문제를 나서서 해결해 주는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남들에게는 자식 사랑이 대단한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러나 부모가 죽으면 자식도 살아남지 못하게 될 터이니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닌가? 나는 비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황포돛대 이론’으로 설명한다. 이 이론은 한 줄로 설명된다. ‘어디로 가는 배일지 모를 때는 절대로 노를 젓지 말아야 한다.’ 어디로 가는지 모를 때는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어디로 갈까만 생각해야 한다.
* 자녀교육 십계명 *
1. 지도자를 대하듯 자녀를 깍듯이 예우하라.
2. 순종하는 자녀보다 고집이 센 자녀를 집중 지원하라.
3. 칭찬을 하더라도 남과는 비교하지 말라.
4. 작은 일에 성공한 자녀보다 큰일에 실패한 자녀를 더욱 격려하라.
5. 선택의 자유, 결단의 고통, 결과에 대한 책임 이 모든 과정을 반복 훈련시켜라.
6. 사람이 주는 상을 탐내지 말라고 가르쳐라.
7.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창의성임을 가르쳐라.
8. 외로움을 극복하는 법을 가르쳐라.
9. 세계 최고의 전문가가 될 것을 당부하라.
10.부모는 자녀에게 최후의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
-이면우 교수의 KBS 강의 <대한민국 길을 묻다> 및 그의 저서 <생존의 W이론>, <W이론을 만들자>, <신사고 이론>에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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