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파트 역사

14.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이별한다, 정동아파트(1965년)

김부현(김중순) 2020. 6. 13. 09:18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가수 이문세가 부른 <광화문 연가>의 노랫말 일부이다. 1999년 서울시에서 ‘서울의 걷고 싶은 거리 1호’로 지정했을 뿐만 아니라 2006년에는‘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던 서울시 중구 정동길. 가을에는 낙엽을 쓸지 않는 길로도 유명하다. 싱글이든 연인이든 낙엽지는 가을이면 더 걷고 싶은 거리 서울 정동길, 100년이 넘은 건물들과 아름드리 가로수, 잘 정돈된 도로가 어우러진 풍경은 아늑하고 포근해서 산책로와 데이트 장소로 사랑받는 길이다.

 

덕수궁 돌담길은 소담스럽고 정감 있는 역사의 길이자 연인들이 가장 걷고 싶은 동화 같은 길이 되었지만 한때‘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이별한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예전에는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면 가정법원이 있었다. 그래서 이혼을 앞둔 남녀들이 종종 돌담길을 따라 손잡고 들어가 나올 땐 남남이 되어 나온다고 해서 생긴 속설이었다. 그러나 가정법원은 이미 이전했고 법원의 등기소만 남아있다.

 

또한 덕수궁 옆 정동길은 정동교회, 옛 러시아공사관, 이화여고, 신아일보 별관 등 구한말 한양의 100년 역사가 숨 쉬는 이곳에 숱한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정겨운 곳에 정동아파트가 살갑게 서 있다. 프란치스코 교육회관과 주한캐나다 대사관 건물 사이에 있다. 지상 6층 1개 동에 36가구로 건축된 정동아파트는 1965년 일본인 건축가의 설계로 당시 대한주택공사가 지었다.

 

정동아파트, 사진 뉴스원

 

'동대문아파트'와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만큼 '고급아파트', '중앙정원형 구조'라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동대문아파트가 'ㅁ자형' 구조라면 정동아파트는 'ㄴ자형'으로 설계됐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대한주택공사가 동대문아파트에 이어 두 번째로 지은 고급아파트였다. 최근 리모델링을 한 덕에 건물 외관은 상태가 좋으며 역사적인 가치로 인해 동대문아파트와 마찬가지로 서울 미래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정동길을 산책하는 사람들도 주변 풍경을 감상하다 보면 그냥 지나칠 정도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정동아파트는 마포아파트와는 달리 분양 당시부터 인기가 꽤 높았다. 1964년 12월 4일 마감한 분양 신청 결과, 35가구 모집에 179명이 신청해 평균 5.1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입주금은 50만 8000원이었다고 한다. 몇 년 전에는 현 외교부 장관인 강경화 장관후보자의 인사청문회 당시 한 언론에서 후보자의 장녀를 자신의 모교에 진학시키려고 위장전입을 한 아파트로 거론되기도 하여 주목을 끌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