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 | |
1 | 국토종합개발 |
2 | 인그로이즘Ingroism |
3 | 단일민족 |
4 | 수익성, 안전성, 환금성 |
5 | 전세제도와 선분양제 |
6 | 편리성 |
7 | 신분상승의 사다리 |
지혜를 사랑했던 존재의 철학자 하이데거(Heidegger.M)는 “집은 인간 실존의 본질이자 존재의 기본적 특성이다. 오늘날의 집은 왜곡되고 비뚤어진 현상이다. 집이 우리의 손아귀에서 금전적 가치로 쉽게 측정되고 표현될 수 있게 되었다”고 한탄했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에서, 특히 우리나라에서 집은 신분상승의 보증수표가 된 지 오래다.
주로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에서 아파트는 중산층의 상징을 너머 사회적 계급의 표상이다. 또한 자산증식의 수단이자 부가가치창출의 원천이었다. 단순히 잠을 자고 밥을 먹고 휴식하는 곳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세계 10위의 경제 규모에 걸맞게 갈수록 통화량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통화량이 늘어난다는 것은 화폐가치가 하락한다는 의미다. 부동산 역시 화폐가치의 하락만큼 그 가격은 높아진다. 흔히 집값은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오른다고 한다. 실제 올랐고 오를 수밖에 없다. 집값 그 자체가 올랐다기보다는 유동성이 증가하여 돈 가치가 떨어졌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집값이 그대로이거나 조금 하락하더라도 화폐가치가 더 빠르게 떨어지면 집값이 오르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2020년 국가 예산은 500조 원을 돌파했고 일본은 1000조 원이 넘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세금이 500조 정도 걷혀 세금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균형재정에 가깝다. 그러나 일본은 국가 예산 1000조 중 500조 정도만 세금으로 걷히고 나머지 500조는 빚이다. 그래서 혹자들은 일본 부동산 시장이 폭락하고 결국 머지않아 나라가 망해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아파트 사랑은 수치를 들먹이지 않아도 불타는 사랑이자 영원한 사랑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한때 소설가 이외수는 아파트를 일컬어 “인간 보관용 콘크리트 캐비넷”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했지만 대도시의 아파트 거주 비율은 60%를 넘긴 세계 제일의 아파트 공화국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직장이 생기면 가장 먼저 만드는 통장이 청약통장이다. 이같은 ‘아파트홀릭’aptholic 현상은 개인의 선호도 그 너머 좁은 땅덩어리와 높은 인구밀도도 한몫하고 있다. 사실 75%가 넘는 산지를 제외하면 쓸모있는 땅은 아주 적다. 그러니 수요공급의 윈리에 비춰봐도 땅따먹기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남한의 면적은 99.720㎢, 북한은 122,762㎢이다. 일본은 377,915㎢이므로 남한과는 약4배 차이가 난다. 그러다 보니 아파트는 주거의 수준을 넘어 가장 선호하는 투자처가 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단기간에, 이처럼 대규모로 아파트가 보급되고 확산된 원인에 대한 설명은 다양하다. 흔히 지적하는 요인으로는 좁은 국토와 인구과밀, 핵가족화, 세대변화, 여권신장, 중산층의 성장, 도시화와 교외화, 아파트 위주 주택정책, 민간아파트 건설의 높은 수익성 등이 있다(아파트에 미치다, 전성인, 47쪽). 이에 대해 강준만 교수는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사회문화적 동질성을 가진 나라이다. 그래서 한국의 구별짓기는 매우 독특한 점이 있다. 사회문화적 동질성 때문에 구별짓기를 할 만한 게 없어 구별짓기가 아파트, 학교, 자동차, 명품 등에 몰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흔히들 한국에 아파트가 많은 이유로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좁은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라는 앵무새 같은 대답을 한다. 이에 반기를 들었던 대표적인 사람이 한국의 아파트를 연구한 결과물로 2007년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책을 출간했던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이다. 대부분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이 발레리 줄레조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1983년 출간된 장편소설 <아파트 공화국>의 저자 신석상인데, 1983년 제9회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소설은 콘크리트 벽으로 차단된 이웃, 굳게 닫힌 철문 등을 통해 비윤리적이고 황금만능주의가 낳은 결과라고 묘사하면서 아파트 문화의 병폐를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다. 이로부터 25년 후 발레리 줄레조의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그녀의 주장에 대해서는 후설하기로 하고 한국에서 아파트가 많은 이유는 여러 가지 복합적으로 분석해 봐야 한다.
외국은 아파트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거주공간이라는 인식이 짙은데, 한국은 고위층들도 아파트를 선호한다. 이는 아파트가 가진 수익성을 무시할 수가 없고 또한 강남지역의 초고층아파트 도곡동 타워팰리스, 삼성동 현대아이파크,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85층 부산 해운대 Lct더샵아파트 등과 같은 초고층아파트는 부를 상징하는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든 거주의 해결을 위한 수단인 집에 대한 중요성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외국의 '이용'과는 다르게 집에 대한 소유욕이 강하다. 그래서 재산 1호로서의 가치에다 감성적 가치까지 더하여 아파트는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경제적 가치이자 부의 척도이고 또 심리적으로도 대단히 큰 안정감을 준다. 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상류층이 아파트를 선호하게 된 이유는 결국 소유라는 주거형태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집 한 채’의 의미가 재산 1호가 될 정도로 소유욕이 강한 상태에서 단독주택보다 가격이 월등하다면 누구라도 아파트 소유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자세하게 살펴보자.
1. 국토종합개발
유럽이나 선진국들의 경우 주거단지는 오직 주거만을 위한 목적으로 계획을 수립한다. 다시 말하면 각종 편의시설 없이 그야말로 조용하게 잠자고 출근하는 주거형태를 선호한 것이다. 따라서 상업시설이나 각종 편의시설과 주거시설이 구분된 도시계획을 수립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반대다. 한국전쟁의 잿더미에서 당장 먹고 자는 문제가 시급했기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기치로 좁은 땅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우선순위에 두고 국토종합계획을 수립하였다.
2020년 4차까지 모두 마무리된다. 가장 상위의 국토종합개발계획에 의거 광역도시계획 및 도시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2025년 또는 2030년 계획까지 수립이 완료된 지자체도 있다. 한국전쟁과 보릿고개를 그치면서 시골의 젊은이들이 서울에 대한 꿈을 안고 모여들었다. 거주할 곳이 부족하다 보니 지하 셋방은 물론 연탄가스 우려가 있는 방까지 몸을 뉘었고 화장실은 공동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주거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도 없고 좀처럼 해결되지 못하자 판잣집과 무허가 주택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도로는 말할 필요도 없다. 차가 다니기는커녕 두 사람이 지나가면 어깨를 부딪힐 정도의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 많았다. 집 한 채 갖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였다. 결국 정부가 나섰다.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위한 효율적 방안으로 아파트가 등장한 것이다. 수세식 화장실에 따뜻한 물도 나오고 난방도 되는 신기하기만 했던 아파트는 서민들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청약당첨 되어 셋방살이를 탈출한 서민들은 만세를 불렀다. 아파트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로 한국이 아파트 공화국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자랑할 만한 건축 유산이다. 머지않아 유네스코 미래 문화유산에 등재될 날을 기대해본다.
생각해 보라. 산업화에 발맞춰 아파트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한 마디로 끔찍하다. 산동네 판잣집과 무질서한 무허가 주택들이 지금처럼 탈바꿈 할 수 있었을까. 유럽 선진국들은 서민이 주로 사는 아파트인데 한국에서 계층을 불문하고 각광을 받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것은 그들의 관점에서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그들이 이해할 필요도 없고 이해시킬 필요도 없다. 한국의 아파트는 단독주택과 서구 서민아파트의 장점이 한국 실정에 맞게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걸작이다.
건축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성냥갑 같은 아파트, 공동감옥 운운하는 것은 헛소리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정부에서 아파트로 주택문제를 해결한 것은 신의 한 수에 가깝다. 게다가 과거와는 달리 민간건설사들이 수요자들의 선호를 고려하여 설계된 아파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분양타입도 과거와는 다르다. 과거 정부 주도의 주공아파트들이 기본형 한 타입으로만 설계되어 획일화되었지만 이제는 판상형, 2베이, 3베이 등 다양한 타입으로 지어지고 있고 층간소음 문제도 해결되고 있다. 사실 주택문제는 수요자보다 공급자 위주의 시장이다. 선진국이나 일본에서 단독주택 문화가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공급자들이 단독주택을 공급했기 때문이다. 단독주택은 내 집만 번듯하게 짓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주변이 슬럼화되면 같이 슬럼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 인그로이즘Ingroism
2018년 ‘알쓸신잡3’라는 TV 프로그램에서 패널 간에 ‘개인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한 패널은 아파트와 개인주의를 연결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로 ‘개인주의’를 꼽았다. 아파트는 익명성과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는 동시에 단절된 자기만의 공간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견 공감 가는 면이 있지만 ‘아파트 선호=개인주의’로 연결시키기에는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아파트 공화국’이니 ‘아파트 천국’이니 하면서 평가절하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우리나라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단세포적인 지적에 불과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파트는 우리나라의 역사이자 상징이고 자부심이다. 한국이 곧 아파트이고 아파트가 곧 한국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파트를 선호하는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인그로이즘Ingroism’때문이라 생각한다. 인그로이즘은 개인주의individualism와 집단주의groupism를 혼용한 말이다. 즉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절묘한 조화로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이다. 즉 농경생활의 영향으로 집단주의 문화에 익숙한 나머지 미국식의 개인주의는 왕따 당하는 것 같아 싫고, 그렇다고 새마을운동 시절과 같은 집단주의는 사생활 침해 때문에 싫은 것이다. 따라서 적절하게 모여 살면서 프라이버시를 유지할 수 있는 대안으로 아파트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관련한 국가들의 대처를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개인주의를 우선하는 미국이나 이탈리아를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은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 등과 같은 우리나라의 방역지침이 좀처럼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러한 국가의 방역지침을 따르지 않을 경우 방역 당국보다 국민들이 먼저 나서 개인주의적이라며 사회적 지탄을 내린다.
개인주의란, 사전적 의미로는 국가나 사회보다는 그것을 구성하는 개인의 의의와 존재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하는 정치 철학 및 사회 철학이다.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을 거치면서 개인의 가치를 자각하게 된 이후 근대 민주주의의 발달에 따라 개인의 정치적 권리와 자유를 중시하면서부터 널리 정착되어 이제는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가 되었다. 개인주의는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면서 동시에 사회에 대한 개인의 자율적 책임을 강조하기 때문에 극단적인 개인주의는 이기주의로 전락할 위험은 존재한다.
심리학에서도 '문화'를 이해하는 유용한 방법으로 집단주의와 개인주의라는 축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모나리자 미소의 법칙>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회심리학자 에드 디너(Ed Diener)에 의하면, 개인주의 사회와 집단주의 사회는 다음과 같은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개인주의적 사회에서는 집단보다는 '개인'이 기본적이고 중요한 단위가 된다. 모든 사람들은 고유하고 특별한 존재이며, 개인의 욕구가 집단의 목표와 상충되더라도 개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내릴 권리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개인주의 사회는 집단주의에 비해 직업, 배우자, 학교 등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선택한다, 일반적으로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나 북유럽 국가들이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집단주의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존재 그 자체의 의미를 찾기 위해 혼자 있음을 두려워한다. 혼자 있음을 견뎌 나가기 어려운 존재인 것이다. 그런 나약한 개인의 심리를 파고드는 것이 집단주의다. 특히 우리나라는 혼자 놀고, 혼자 밥 먹고, 혼자 산책하는 것과 같은 ‘고독을 씹는’ 철학적 역량이 부족하여 집단에 의지하려는 경향이 높다.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아인 랜드(Ayn Rand)는 “집단주의는 인종, 계급, 국가에 상관없이 개인이 집단에 종속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기본적으로 집단주의의 정당성은 평등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것을 이루기 힘들다. 영화 <마스틱 리버Mystic River>에서는 “누가 더 불쌍한가보다 더 중요한 메시지는 세상은 원래 불평등하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태어날 때부터, 출발선부터, 세상은 불공평하고 불평등한데 모든 사람이 각자가 만족하는 평등을 이룬다는 것이 가능할까? 집단주의 문화에서 중요한 것은 가족, 학교, 회사 등의 '집단' 이다. 개인들은 고유하고 개별적인 욕구를 가진 자유로운 존재이기보다는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그 역할과 의무를 수행하는 존재로 여겨지는 것이다. 인간관계도 개별적이고 고유한 개인들의 1:1 관계이기보다 책임과 권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엮이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집단주의와 유사한 집산주의collectivism가 있는데 대부분 집단주의는 알지만 집산주의는 생소하다고 한다. 집산주의도 결국은 집단주의의 한 부류이기 때문에 집단주의로 이해해도 큰 무리는 없다. 집산주의는 경제사상에서 나온 용어인데 개인보다도 집단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존중하는 경제 정책의 원리를 말하는 것으로 주로 경제적 측면에 한정되어 사용된다. 심리학자이자 <집단역학 group dynamics>의 저자인 도넬슨 포세스(Donelson R. Forsyth)는 집산주의를 이렇게 정의했다. "각 개인의 방향성과 자유보다는 집단과 공동체의 우월성을 강조하며 전통과 이데올로기를 상위 개념으로 둔다." 여기서 그는 집단, 즉 국가, 공동체, 그리고 인종과 계급 등이 현실의 기본 단위이며, 가치의 궁극적인 기준이라고 보는 것이다. 즉 공동체의 우월성, 도덕성, 정의를 개인의 자유와 가치관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이 분산되어 있는 만큼 삶에 대한 결정권도 다른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넘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개인들의 삶의 지분이 각자에게 온전히 있는 게 아니라 타인에게도 어느 정도 나누어져 있는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미국에 거주하는 과학자 중 특정 국가 사람들끼리 집단을 형성하는 두 개의 국가가 있다고 한다. 한국과 중국이다. 한국인들은 KSEA라는 단체가 있고 지역별로도 미주 한인 과학자 모임이 따로 있다. 물론 이것은 ‘좋다, 나쁘다’라는 이분법적 구분이 필요치는 않다. 대신 왜 그 많은 국가 중에서 유독 한국과 중국만 이런 집단을 미국 내에 만드는 것일까? 아마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문화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집단주의가 창의력을 요구하는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인가이다. 세계 역사를 봐도 집단주의 문화가 창의적 학술 활동에 도움이 된 적은 별로 없다. 창의적 활동은 개인주의 문화의 역사와 흐름을 같이 한다. 과학 연구를 하는데 국적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야 하는 이유는 없다.
세계 각 국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의 개인주의 점수는 100점 만점에 18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대상국 중 최하위그룹에 속한다. 세계에서 개인주의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91점인 미국이었고 가장 낮은 나라는 과테말라로 6점이었다. 결론적으로 아파트는 한국의 집단주의적 문화와 개인주의적 문화가 조화롭게 집약된 주거공간이다. 갈수록 개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은 집단의 방식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집단적으로 서열을 매기고, 집단적 여론몰이를 통해 비교하고 평가하며, 집단 이기주의 아래 함께 뭉치며 무리 짓고 배제를 생활화한다. 최근에는 가격 담합에 나서는 등 아파트는 그 집단주의의 전초기지처럼 활용되는 면이 있다. 이것을 어떻게 바꾸어나갈 것인가가 앞으로 주어진 중요한 과제다. 아파트의 기본은 주거공간이다. 주거공간을 지나치게 탈피하여 집단화되거나 상품화될 경우 결국 폭탄 돌리기로 전락하여 언젠가는 터지기 마련이다.
3. 단일민족
아파트는 국가별로 호불호가 심하게 갈린다. 날씨가 추운 북유럽의 경우 난방문제로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의 경우 제설작업의 어려움 때문에 아파트를 선호, 두레, 계 등과 같은 집단주의 의식 강해, 단일민족이라 무리에서 이탈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높은 '고립불안'을 지니고 사는 한국인들에게 아파트는 동질감을 부여한다. 물론 우리나라가 역사학적으로 보면 단일민족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단일민족으로 불러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같은 배를 타고, 같은 형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안심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고립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정신적 무장을 하려고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 이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 연유로 한국인들은 공동체적 모임이 너무 많다. 어떤 모임에 많이 소속되어 있을수록 외톨이가 아니라는 위안을 삼고 또 사회적으로도 인정받고 인간다운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공동체적 관계망이 강하다 보니 개인은 무시되기 일쑤다.
이렇게 많은 사회적 모임이 개인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없애고 나아가 국가발전을 저해할 수 있어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다. 오래 전 한 언론에 기고한 황주홍 전남 강진군수의 <저녁 6시 이후가 달라져야 한다> 기고 글이 심금을 울리는 이유다.
일본 열도가 떠들썩하다.
물리학상은 3명 모두 일본인이었고,
화학상은 일본과 미국의 학자들이 휩쓸었다.
일본은 되는데 한국은 왜 안 될까?
결론은 하나다.
열심히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을 쏟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성과는 노동시간에 비례한다.
일본인이 특별히 우수해서가 아니라,
연구한 시간이 더 많았기 때문에 노벨상을 휩쓰는 거다.
그뿐이다.
한국인은 선진국 사람들보다 훨씬 덜 연구하고, 덜 공부한다.
한국 성인 1인당 독서량이 192개국 중,
166위라는 UN 통계가 이를 입증한다.
한국인들은 이 부족분을 인맥과, 로비, 그리고 ''배째라''라는
저돌성으로 충당하며 사는 것 같다.
대한민국은 ''소모임의 박람회장''이다.
한국인의 모임 성격은 딱 두 가지다.
친목모임 아니면 접대모임이다.
친목모임은 과거지향적이다.
같은 곳에서 태어난 이들의 향우회,
같은 해 태어난 이들끼리의 동갑계,
교문을 같이 드나든 사람들의 동문회,
미국 같이 다녀온 직장인들의 찬미회,
시청 총무과를 거친 공무원들의 총우회,
배낭여행에서 만난 젊은이들의 배사랑회....
우리들의 소모임은 과거 어느 한때의 인연을 매개로 한다.
당연히 주된 활동과 이야기도 미래보다는 과거를 향한다.
반면 접대모임은 안면 터서 청탁하는 것이다.
고위험 사회에서의 일종의 "보험들기"다.
공식적으론 안 되는 일을 사사롭게 해결하는 모임이다.
거의 매일 저녁 접대를 하고 접대를 받는다.
밥 먹고 술 먹고,
1차 가고 2차 가고,
노래방 가고 찜질방 가고,
폭탄주 마시고 건배하고...
공무원이건, 직장인이건, 사업가건, 교수건,
법조인이건, 예술인이건 예외가 없다.
찾아다녀야 할 모임이 너무 많고,
만나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진짜일"을 할 시간이 없는 나라가 한국이다.
문제는,
다른 선진국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퇴근해서 집으로 직행하는 한국인 드물고,
퇴근해서 1차 2차로 직행하는 선진국 사람 드물다.
발렌타인 한번 안 마셔본 교수가 드문 게 한국인 반면,
발렌타인 한번 마셔본 교수가 드문 게 일본이고, 미국이다.
그 차이에서 승부가 크게 갈린다.
낮 시간에 일하는 것은 한국이나 선진국이나 별 차이 없다.
결정적 승부처는 오후 6시 이후의 "자유시간"에서다.
긴긴 자유시간을 우리는 과거를 위해,
편법을 위해 소비한다.
선진국 사람들은 마치 낮 시간의 연장처럼 저녁과 밤 시간을 보낸다.
그들의 생활은 밋밋하고 심심하고 외롭다.
재외동포들은 한국을 "즐거운 지옥"이라 한다.
야간생활이 어쩌면 이리도 위태위태 박진감 있고, 육감적인지...
힘들지만 재밌어 죽겠다는 거다.
하지만 노벨상은 평생을 외롭게 살아온,
장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내 단언이 틀리기를 바라지만,
한국에선 노벨상이 나올 수 없다.
공부하지 않고, 공부할 수 없는 나라에서,
무슨 용빼는 재주로 노벨상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우리들의 6시 이후가 "선진화" 되지 않는 한,
노벨상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일이 될 것이다.
노벨상뿐이랴.
한국과 한국인이 6시 이후의 긴 시간을 이렇듯 철저히 과거 찾기,
그리고 인연 만들기에 사용하는 한,
조국에 더 큰 희망은 솔직히 어렵다.
한국의 선진국 반열 진입은 6시 이후의 과거몰입적,
인맥제일주의적 행태의 변경 없인 불가능하다.
백약이 무효다.
그동안 우리는 한민족, 백의민족, 단일민족이라는 단어를 자부심으로 여기며 교육을 받고 자부심과 긍지의 바탕이 되었다. 혹자는 한국은 단일민족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근거로“이미 한국은 임진왜란 끝난 후부터 단일민족이 아니었다. 참전한 일본과 명의 군사들 대부분이 자기네 나라로 철수하지 않고 그대로 현지에 눌러앉아 조선인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적어도 50만 정도였다. 임란 끝날 당시 조선인구의 10분의 1 정도다. 남자노동력이 전쟁으로 현저하게 줄어버린 조선정부도 이를 반겨 이들의 귀화를 크게 허용하였다.”는 내용을 들었다.
한 마디로 우리의 역사는 국난극복이 생활화인 역사였다. 수없이 많은 침략과 전쟁을 슬기롭게 이겨낸 우수한 민족이었다. 역사속에서 많은 기간을 전쟁을 치르며 정복 당하기도 했었는데 단일민족이 맞냐는 이야기도 있지만 역사적, 문화사적 관점은 차치하고 지금과 같은 국제화, 초연결사회에서 단일민족이라는 것이 얼마나 메리트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170년 넘게 식민지 시절을 겪은 미국이 300년도 안돼 어떻게 해서 세계 1등 강대국이 될 수 있었을까.
미국은 다민족국가이다. 그 나라에서 태어나면 어느 나라 국민이건 조건없이 미국 국적을 취득 할 수 있고 인종 차별이 있어도 지금의 미국을 만든 건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고 수용한 자유와 민주주의 체제를 선택 했기 때문이었다. 아메리칸 드림, 기회의 땅이라는 용어가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다. 2007년 7월 UN 산하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는 “한국이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것은 국제적인 기준으로 볼 때 인종차별에 해당할 수 있으므로 한국 정부는 다른 국가 출신, 다른 인종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고 한국 정부에 권고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과 분단의 과정 속에서 단일민족이라는 민족주의적 의식은 심한 굴절의 과정을 거치면서 종종 배타주의나 국수주의적 인식으로 표출되기 때문에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
4. 돈이 되고 안전하고 현금화가 쉽다
우리나라에서 아파트가 귀족 대접을 받는 여러 요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주거라는 본래 목적 외에 수익성, 안정성, 환금성 측면에서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아파트를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지속적인 가격상승의 역사로 압축된다. 아파트가 탄생한 이래 하락한 시기가 없지는 않았지만 장기적으로는 지속적인 가격상승의 역사를 이어왔다. 1994년 5대 신도시가 입주하면서 공급초과로 인한 하락,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인한 폭락,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한 폭락 등과 같은 경우인데 대부분 주택 자체에 대한 문제였다기 보다는 인위적이거나 불가항력적인 외부충격에 의해 폭락이었다.
다른 나라도 인플레이션의 영향 등으로 주택가격이 꾸준히 상승하기는 하지만 상승률에 있어서는 우리나라를 쫒아올 수 없는 수준이다. 경제성장과 맞물려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증가하고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이것이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로 이어진 것이다. 흔히들 투자의 3요소로 수익성, 안정성, 환금성을 꼽는다. '수익성'은 말 그대로 어느 정도의 수익이 창출될 수 있는지를 뜻하며, '안정성'은 투자한 자금이 묶이지 않고 꾸준하게 수익이 발생 가능한지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환금성'은 투자한 상품의 현금화 가능 정도를 말한다. 이렇게 3박자가 갖춰진 부동산이라면 투자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이 중 투자에서 부동산이 가지는 가장 큰 약점이 바로 환금성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에 대한 높은 선호도로 인하여 환금성이 용이하여 투자재로서의 장점을 갖추게 된 것이다.
집에 대한 집착은 주택에 대한 끊임없는 수요를 창출하고, 전세제도와 선분양제도는 이러한 수요를 과도한 레버리지 효과로 소비시장으로 끌어들였고, 높은 환금성으로 인하여 엄청나게 빈번한 거래가 발생하게 되면서 재료 상호간에 상승효과를 이루면서 끊임없이, 아주 가파르게 우리나라 주택시장은 상승에 상승을 거듭하며 불패신화를 경신해 왔다. 상승의 과정도 폭등과 강보합의 연속이었다.
도심 거리를 걷다보면 종종 현란한 아파트 분양광고 지라시를 만난다. 지하철 1분 거리, 완벽한 편의시설 등 요란한 말로 아파트 구매를 부추긴다. 대형아파트는 환금성이 낮으니 소형아파트가 유리하다느니 하면서 끊임없이 아파트를 사라고 꼬드긴다. 삶의 터전이자 가족의 가치와 이웃과의 공동체를 실현하는 공간이 되어야 할 아파트의 기본 가치는 이미 철지난 도덕책에나 등장할 소재로 전락했다.
환금성이란 현금화 가능 여부를 말하는데 환금성이 좋다는 것은 구매를 희망하는 수요자가 많다는 뜻이다. 아파트가 환금성이 좋은 이유는 아파트의 특성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먼저 아파트는 규격화되어 있다. 빌라나 단독주택의 경우 비슷한 건물은 있어도 개별적으로 다 다르다. 자기의 개별성을 갖고 있다. 개별성은 부동산의 특징이지만 아파트의 경우에는 그 개별성의 성질이 약간 다르다. 아파트는 몇 개의 정형화된 구조를 대규모로 구성해서 좁은 면적에 집약적으로 지은 건축물이다. 같은 동에 층만 다른 같은 호는 집 내부만 보면 어디를 가도 똑같은 구조다. 구조가 같다는 것은 구조를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구조가 같다는 것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공산품이나 다름없다. 아파트 보급이 대세인 지금 갈수록 환금성에 대한 중요성은 높아지고 있다. 바야흐르 아파트는 공산품화 된 것이다. 아파트를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팔고 싶을 때 좋은 가격으로 빨리 팔 수 있어야 한다. 우선은 배후 수요가 풍부하고 교육환경과 평의시설 등이 집중되어 있는 역세권과 같은 입지조건이 좋은 곳이 현금화가 쉽다. 도심권과 가까운 직주 근접지역일수록 수요가 많아 환금성이 우수하다. 배후 수요가 풍부하고 실거주나 임대수요가 많아 대체로 청약경쟁률이 높고 주변 부동산에도 호재로 작용한다, 지방은 대규모 산업단지나 기업도시 .혁신도시 공공기관 이전지역 등 젊은 층 인구가 늘어나는 도시가 배후수요가 풍부해 수요가 늘어난다. 교육환경과 교통여건이 좋은 곳도 중장기적으로 투자성이 배가되어 환금성 면에서 우수하다. 도심의 접근성은 부동산 값을 좌우하는 중요요소이다. 유명 학원가나 학교가 들어선대다 접근성도 좋아지면 실수요자뿐마 아니라 투자자들까지 끌어들이기 쉽다. 특히 신설 역세권은 수요자들이 점차 늘어나기 때문에 침체기에도 부동산 상승이 꾸준하다.
그리고 교통, 교육환경 외에 그 지역의 랜드마크 아파트가 환금성이 뛰어나고 갈아타기도 쉬워진다. 랜드마크 아파트는 입지여건이 뛰어나고 규모가 크고, 인지도가 높아 지역 부동산값을 주도하는 선행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수요층이 다양하고 두텁기 때문에 환금성 측면에서는 아주 유리하다. 여기에 브랜드 선호도가 높은 대형건설사의 아파트라면 그 가치는 더욱 올라간다. 브랜드파워로 인한 단지 가치상승으로 인해 시세가 주변 단지보다 높은 수준으로 형성될 뿐만 아니라 부동산 상승기에는 먼저 매매가가 오르고 하락기에도 대체로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는 점에서 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높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시적 지표인 인구가 증가하는 지역이라면 투자뿐만 아니라 환금성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지역이라면 생활 기반시설이 확충되고 주변에는 교통여건과 학교, 공원 등 공공시설이 발달되는 등 각종 개발 호재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지금처럼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임대하기에도 유리한 중소형 아파트에 대한 관심은 계속될 것이다. 대출규제 강화와 보유세 부담이 커지면서 대형보다 환금성이 높은 중소형 아파트로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제 전용면적 85㎡ 이하의 중소형 아파트를 찾는 수요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2019년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전체 54만5,061건으로 이중 중소형 아파트(전용면적 85㎡이하)가 전체의 85.44%를 자치했다. 이를 면적별로 보면, 전용면적 85㎡이하 46만5747건, 85㎡초과는 7만9,314건이 거래되었다.
마지막으로 새아파트일수록 투자나 환금성 측면에서 유리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2020년 시작부터 주택시장 지표는 악화하고 있지만, 서울과 수도권의 청약시장 열기는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실물경기가 위축돼도 새집에 대한 미래 가치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란 수요자의 심리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마치 불황에도 버텨주는 미국 달러나 금 같은 ‘안전자산’으로 새집을 생각하는 셈이다. 사실 주택 경기가 나빠지면 입주 후 집값이 내려갈 수 있다는 공포가 생기기 마련이다. 중도금·잔금 등의 대출 부담이 더 크게 느껴지는데다 나중에 집을 팔려고 해도 매수자가 쉽게 나타나지 않아 현금화가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나타나는 청약 열기는 이런 현상과 동떨어져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2020년 4월 첫째 주 기준 서울의 주간 아파트 매매가는 1주일 만에 0.04% 하락했다. 특히 강남(-0.24%), 서초(-0.24%), 송파(-0.18%) 등 강남 3구 하락폭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수도권 규제지역인 과천과 성남 분당구 역시 내림세다. 또한 주택산업연구원의 전국 주택사업경기실사지수(HBSI) 전망치도 42.1로 전달보다 8.9포인트 하락했다. 서울도 8.6포인트 하락한 59.6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그럼에도 청약 시장이 들끓는 이유로 ‘새집은 안전자산’이란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꼽는다. 새집을 중심으로 서울과 수도권 집값이 크게 오르면서 이를 주식시장의 ‘블루칩’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익성과 환금성 외에 안정성 측면에서도 아파트는 다른 투자재보다 낫다. 위험이 낮다는 의미다. 상가나 오피스는 조금만 잘못되면 공실로 이어지고 큰 손실을 볼 수 있다. 반면 아파트는 임대를 놓을 때도 주위보다 금액을 조금 낮추면 공실 위험이 거의 없다. 경제가 고도성장을 이어갈 때는 수익성이 중요하지만 경기 침체기에는 환금성이 중요하다. 불황기에는 사는 것보다 파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5. 전세제도와 선분양제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선분양제도는 한국의 독특한 분양제도인데 아파트 분양 투기를 촉진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분양제도는 1970년대 박정희 정권 당시 산업화, 도시화, 핵가족화로 도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데다 장기 집권에 따른 정치적 불안정을 중산층 육성을 통해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도시로의 인구 급증으로 집 없는 서민의 주택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였지만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의해 중화학공업 투자를 우선시하던 정권은 공공주택 건설에 정부 재정을 투자하기보다는 민간의 돈을 동원하기 위해 분양가 상한제와 주택청약제도, 선분양제도를 결합한 ‘손 안 대고 코 푸는’ 독특한 정책을 도입하였다. 무주택자의 로망이었던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서는 주택청약저축에 가입해야 했고, 일정 기간의 저축을 하면 추첨을 통해 분양자로 선정되면 아파트를 짓기도 전에 집값을 먼저 내야 하는 선분양제가 도입된 것이다. 서민들에게는 큰 돈 인데 집도 보지 않고 집을 짓기도 전에 미리 돈을 내야 하는 희한한 구조가 탄생한 것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민간에 떠맡기다 보니 이런 특혜성 제도가 탄생한 것이다. 정부는 주택청약예금에 국고를 쥐꼬리만큼 보태 건설업체에 저리로 빌려주는 대신 분양가를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여 건설사의 폭리를 견제했지만 갈수록 분양가는 상승했고 결과적으로 건설사들의 배만 불리고 말았다. 건설사는 정부지원금과 입주자들의 선금으로 땅을 구입하고 아파트를 지어 분양했기 때문에 자체 자금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 꿩 먹고 알 먹는 사업이었다. 정부도 주택건설에 드는 비용을 민간에 떠넘길 수 있고, 서민의 경우 정부가 분양가를 강력히 규제할 경우 시가보다 싼 가격으로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게 하는 구조였다. 즉 무주택자, 정부, 건설사라는 세 주체의 이해관계를 절묘하게 반영한 것이었다.
그러나 종종 분양가를 놓고 건설사와 입주자간 불화가 생기기 일쑤였고, 계약금, 중도금을 낼 수 없거나 청약저축부금을 납부할 수 없는 저소득층은 아파트 공화국에서 배제되었다. 즉 안정된 일자리와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 보장된 사람들을 위해 도입된 중산층 육성정책이 아파트였던 것이다. 주거를 넘어 투기와 욕망의 분출구가 된 아파트 먹이구조 사슬의 밑바닥을 형성한 빈곤층은 아파트에 입주하기가 어려웠다. 분양가가 높아지면 인근 집값도 오를 뿐 아니라 전세 보증금이나 월세도 덩달아 올랐다. 이제 도심지에 더이상 아파트 지을 땅이 없자 재개발 재건축으로 눈을 돌리지만 이 역시 분담금을 낼 형편이 되지 않는 저소득층은 점점 도시 외곽으로 내몰리고 있다. 최근 재개발 원주민 입주율이 30%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 해준다. 신축 아파트가 인근 아파트 가격을 덩달아 올리는 악순환이 반복되지만 점점 더 많은 아파트가 도시를 숲으로 뒤덮고 있다.
-전세제도
전세제도라는 것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이한 주거계약형태이다. 부동산이 가지는 레버리지 효과를 더욱 배가시킨다. 즉 획득할 자산의 전체 가격에 비해 소액으로 자산의 획득이 가능한 것이다. 그동안 투기를 조장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되기도 했다. 전세제도는 보증금을 맡기고 남의 집에 임차한 뒤 계약기간이 끝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 독특한 주택임대차 유형으로서 월세를 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월세와 차별화된다.
우리나라 전세제도의 기원(다음 백과)은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비롯되었는데, 당시 부산, 인천, 원산 등 3개 항구 개항과 일본인 거류지 조성, 농촌인구의 이동 등으로 서울의 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주택임대차 관계가 형성되었다. 조선 말기 전세가격은 기와집과 초가집에 따라 달랐으며, 보통 집값의 반 정도로 전세값이 매겨졌고 비싼 곳은 집값의 70∼80%에 육박했다. 당시 전세기간은 통상 1년이었으나 기간을 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후 6·25전쟁과 산업화 과정에서 도시의 주택난이 심화되었고 이 과정에서 전세제도가 완전히 자리 잡게 되었다.
전세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주택임대차 유형으로써 무주택 서민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으로 임차주택에 거주하고, 목돈을 만들어 내집 마련을 용이하게 하는 역할을 해 온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전세제도가 발달한 건 60~70년대 고도성장기 제도권의 주택금융시스템이 거의 갖추어져 있지 않았던 영향이 크다. 값비싼 사채나 대출 대신 주택 사용권을 내주고 목돈을 융통하는 사적인 금전대차 방법으로 전세제도가 활용되면서 전세가 확산되었다.
최근 들어 점점 전세가 감소하고 있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주택부족이 상당 부분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경우 2006년 29.7%로 정점을 찍고 2014년 28.1%까지 비슷한 수준으로 이어졌지만, 2016년 22.1%를 기록하며 급격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전국적으로도 2006년 전세거주 비율이 22.4%로 정점을 찍은 후 조금씩 감소하다 2016년 15.5%를 기록하며 급격한 감소세로 돌아섰다. 특히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와 고령화로 인해 집주인들이 전세보다는 매월 임대수익이 보장되는 월세를 선호하고 있어 전세의 감소세는 지속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전세제도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그간 주택가격이 계속 상승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오르지 않는 주택을 살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주택가격이 상승하면 소유자는 주택매수에 필요한 자금의 일부를 전세자금을 통하여 무이자로 빌리는 효과를 누릴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가격상승에 따른 자본이득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주택가격이 상승하지 않는다면 주택소유자는 전세금에 대한 이자수익에 의존해야 하는데 주택을 임대하는 것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아파트 구입과 전세를 투자에 비교한다면, 전자는 주식에 후자는 채권에 투자하는 것과 비슷하다. 장기적으로 볼 때 전세보다는 아파트 구입이 정답이다. 전세는 주택가격 하락 리스크는 회피할 수 있지만, 집값 상승에 따른 혜택을 누릴 수 없다. 즉 기업의 소유권을 의미하는 주식은 회사가 망해서 휴지가 될 수 있는 리스크가 존재하지만, 큰 수익을 올릴 가능성도 크다. 반면 채권은 휴지조각이 될 가능성은 적지만, 잠재적인 수익폭도 제한적이다.
따라서 전세제도가 이어지려면 필요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바처럼 아파트 가격이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전세금을 바탕으로 다른 집을 사들이는 투기분위기가 조성이 될 때 더욱 활성화 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출금리가 비교적 높게 유지되어야 한다. 아파트를 투기하려는 사람들에게 은행의 대출금리는 가장 큰 변수이다. 마찬가지로 투기가 아닌 투자목적의 아파트 보유자들에게 전세제도가 매력적인 재테크 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시중금리가 높아야 전세자금을 은행에 예금해서 이자를 받는 메리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세제도가 아파트 가격을 계속 떠 받쳐 줄수 있을까? 앞으로 이런 전세가격의 상승은 새로운 양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하우스 푸어의 고통을 고스란히 세입자가 떠안게 되는데, 문제는 세입자가 정부가 장려하는 전세자금 대출의 이자비용을 부담하는데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만 가격이 상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아파트 가격의 상승이 아파트 매수자들이 금융비용을 부담할 한계에 다다르면서 하락이 시작되는 것처럼 세입자의 이자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발생되는 한계상황에서는 이제 전세금을 반환할 능력이 되지 않는 집주인이 집을 대신 떠안게 하는 비정상적인 혼란이 본격적으로 가격 하락을 부추키게 될 것이니까요. 받아들이기 싫지만 전세자금에 대한 부담 여부의 문제를 떠나 전세자금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서도 이제 월세가 새로운 대세가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선분양제도
우리니라의 선분양제도는 전세제도와 더불어 세계 그 어느 국가에서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주택시장의 묘수가 되었다. 6.25 전쟁 후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압축산업화의 시기였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도시로 몰려드는 근로자들의 주택공급 문제가 정부의 최대 현안이자 사회문제였다. 주택 선분양제는 1977년 아파트 분양가 규제가 도입됨에 따라 주택건설업체들의 채산성이 악화될 것으로 판단한 정책 당국이 주택건설업체들의 금융비용을 줄여준다는 명목으로 도입한 제도다. 주택건설업체들이 제도권 금융에 이자를 물지 않고 주택 수요자로부터 주택건설자금을 무이자로 직접 조달해 주택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같은 선분양제는 당시 민간 주택건설업체들이 모두 영세하고 자금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급속한 도시화와 수도권 인구유입 가속화에 따른 주택공급 부족을 비교적 단기간에 해소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한 측면도 있다.
선분양제는 물건을 살 때 물건을 보지 않고 먼저 돈을 내는 방식이다. 즉 완성품이 아닌 견본주택이라는 샘플만 보고 물건을 예약하는 방식이다. 공급자 입장에서는 자기자본을 가지고 있지 않고도 소비자에게 돈을 받아 그것으로 건설비 등을 조달하고 주택을 공급해 엄청난 수익을 내는 희한한 방식이다. 선분양제는 어떻게 보면 실수요자의 정확한 부동산 흐름을 왜곡하기도 하고 가계부채 증가의 단초를 제공한 측면도 있다. 분양부터 입주까지 최소 3년 가까이 걸리는데 이 모든 리스크에 대한 부담을 소비자가 져야 하기 때문이다.
건설사들이 은행에서 대출받아 사업비를 마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선분양 방식은 모든 비용을 소비자가 부담하는 구조였다. 소비자에게 돈을 받아서 사업을 하는 것이기에 쉽게 집을 공급할 수 있고 또 가격을 인위적으로 책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건축의 질도 상당히 떨어지고 심지어는 샘플과 다른 아파트를 양산하기도 했다. 수요자 입장에서는 분양제 방식에 따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청약당첨을 위해 과당경쟁을 벌여야 하고 그 결과 분양권 자체에 프리미엄이 붙는 등 여러 가지 폐혜들도 나타났다.
한 마디로 선분양제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주택공급 방식인데 자금이 없는 건설사들도 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건설사에게 많은 혜택을 주는 방식이다. 물론 늘 주택이 부족하여 공급 부족을 해결해야 하는 정부의 고충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러다 보니 종종 주택 시장은 건설사들의 놀이터가 되었고 자신들의 이해타산에 따라 주택공급의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보니 소비자가 늘 불이익을 떠안는 처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말 도입된 선분양제가 40년 넘게 개선 없이 유지될 수 있었던 건 건설사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일정 부분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며 분양 시장 볼륨을 키우는데 중추적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대단지 아파트를 짓기 위해서는 수천 억에서 수조 원 수준의 막대한 비용이 든다. 중·소규모 건설사는 물론 대형건설사도 일시에 자금 확보가 쉽지 않다. 지금껏 건설사들이 공격적으로 아파트를 지을 수 있었던 건 부지매입을 끝낸 후 선분양제를 통해 건설 자금을 소비자들로부터 미리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선분양제는 정부가 무주택 서민들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을 해결해 준 묘수였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이다. 선분양제는 분양권과 입주권 전매, 이른바 물딱지 등 많은 부작용을 가져왔고, 투기꾼들이 일확천금을 노리는 수단으로 전락하여 부동산 불패 신화의 장본인이 되었다.
이로 인해 선분양제는 시장가격 이하로 책정된 분양가와 실제 시장거래가격 간의 차익을 노리는 투기적 가수요를 유발시켰으며 공급자 우위 시장을 고착화했다는 점에서 부정적 측면 또한 적지 않았다. 반복적인 부동산 투기 파동과 경기 침체기에 미분양 증가에 따른 주택 구입자 피해가 두드러지자 그 부정적 측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져 왔다. 이 때문에 1995년 선분양제의 문제점을 지적한 감사원의 권고에 따라 정부가 1997년부터 시장원리에 맞게 후분양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었지만, 주택건설업계는 시장원리에 입각해 후분양제를 시행하려면 먼저 시장원리에 어긋나는 분양가규제도 함께 자율화하라고 요구하면서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게다가 선분양제는 분양에서 완공에 이르기까지 긴 시차로 인해 부동산 시장의 구조적 수급 불군형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선분양제 하에서는 아파트 분양 시점에서 입주 시점까지 빨라도 3년 정도의 시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사업기획 및 토지 매입 기간까지 포함하면 입주 시점까지 4~5년 정도 걸리는 것은 보통이다. 이 같은 시차는 근본적으로 부동산 경기의 진폭을 키우는 폭탄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는 선분양제와 후분양제하에서 주택건설업체가 하는 사업 판단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선분양제하에서 건설업체는 금융비용의 상당 부분을 분양계약자에게 전가할 수 있으므로 자신들의 자금 규모를 초과하여 무리한 사업을 벌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후분양제였다면 매년 평균 2개의 주택사업을 벌일 주택업체가 선분양제에서는 3개 이상의 사업을 벌이게 되는 식이다. 또한 3년 후 분양시점이 아니라 바로 당장의 분양률만 높이면 되므로 상대적으로 근시안적인 사업 판단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모든 상품은 공급자가 제작을 완료한 후에 소비자에게 판매를 하는데, 우리나라는 주택보급이라는 국가적과제를 이유로 공급자 위주의 정책을 펴다보니 주택 지을 계획만 승인되면 분양, 즉 쪼개서 팔수있고, 계약금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생겨났습니다. 이는 상당한 투기적 요소를 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공급자 위주로 생겨난 제도이다 보니 자금력이 부족한 영세한 건설업자들이 주택건설을 함으로써 발생하는 중도 부도사태 등의 폐해는 역사적으로도 엄청났습니다. (세계적인 호황과 함께 1988년 노태우가 '주택보급 200만호 공급'을 국가주요정책으로 내세우면서 주택건설촉진법을 통해 주택공급자에게 아주 쉽게 주택건설을 하도록 하는 길을 열어준 것이죠. 쉽게 말뚝만 박으면 돈 벌던 시절이었죠.
6. 편리성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사는 이유로 편리함을 꼽는다. 거주하기에 주택보다 편하다는 것이다. 주차문제도 없고 경비도 절감된다. 모여 살면서도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인그로이즘 때문이다. 아파트 단지 내에 마트, 헬스장, 골프장, 수영장, 독서실, 사우나 등 각종 편의시설에 교육, 안전, 직장, 교통, 네트워크와 같은 편리성이 이른바 원스톱 One-Stop으로 해결되기 때문에 아파트를 선호하고 있다.
또한 서구식 고등교육을 받은 젊은 세대들이 아파트를 선호했기 때문이었다. 단독주택에 비해 젊은 층들의 취향과 선호에 딱 들어맞아 아파트에 산다는 것 자체가 로망이 되었던 것이다. 서성린의 <겨울손>을 보면, 시골 촌구석의 주택과 도시의 아파트를 비교하면서 아파트 공간의 편리함을 강조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정하는 옷을 갈아입고 부엌으로 나간다. 좁고 일하기 불편한 구식 부엌이다. 날이 추워지면 비좁은 부엌 한쪽에 쭈그려 앉아서 세수를 해야 한다. 연탄아궁이 위에 놓인 커다란 들통에서 물이 끓고 있다. 정하는 세숫대야에 물을 퍼 담아 얼굴과 발을 씻는다.(...) 조리대와 개수대, 냉장고와 식탁이 디귿 자로 놓인 편리하고 쾌적한 공간, 365일 내내 더운 물이 나오는 욕실과 난방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은 아늑한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가면 필요한 물건은 거의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슈퍼마켓에 가서 식료품을 사고 비디오 가게에 들러 영화 한 편을 빌려올 수도 있고, 혼자 저녁을 먹어야 하는 날은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햄버그 세트와 감자 튀김을 사먹을 수도 있다.”
1980년~1990년대 초에 지어진 아파트 단지들은 대부분 단지내 상가가 00프라자와 같은 식의 편의시설이 크게 지어졌는데 이러한 편의시설에 대한 접근성도 아파트 선호도를 높여 주었다. 단독주택의 경우, 재개발을 할려고 해도 건설사의 간섭이 심하고 부지가 작아 사업성도 높지 않아 추진이 쉽지 않다. 주택의 경우 냉난방의 어려움에 인구밀집도도 낮아 핵심상권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다 보니 아파트를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세계 10위 권인 경제 규모답게 일부에서는 웰빙을 중시하여 고급 단독주택을 선호하기도 하지만 아파트의 대세에 비할 바가 못된다. 그리고 단독주택은 수요가 제한되어 있어 아파트처럼 규격화된 집을 공급하는 회사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단독주택을 지으려면 전문업체에 시공을 맡겼다 하더라도 엄청 피곤하다. 건축허가 단계에서부터 직접 챙겨야 하고 설계도면대로 지어지는지, 내장재와 같은 자재는 당초 계약 내용대로 사용하는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공사비 역시 상승하기 마련이다. 어렵게 집을 지어도 문제는 계속 발생한다. 하자와 A/S라는 문제에 부딪힌다. 집을 짓는 것도 어렵지만 관리도 어렵다.
아파트는 대규모 가구들이 모여 살기 때문에 관리사무소가 있어 왠만한 하자는 관리비만 납부하면 즉시 해결된다. 비용도 단독주택에 비해 저렴하다. 나홀로 아파트보다 대단지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층간소음이나 흡연문제 등 불편한 부분도 있지만 이것 역시 아파트라는 대세를 멈추기에는 크게 문제가 없다. 예를 들어 마을버스도 다니지 않던 산동네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면 버스노선이 생기고 각종 편의시설도 들어선다. 투표소도 별도로 설치되고 유치원과 학교도 들어선다.
2000년대 들어 인터넷이 급속도로 보급되면서 속도도 엄청 빨라졌다. 이 역시 아파트로 인한 높은 인구밀도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총알 배송, 당일 배송 등과 같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것도 대단지 아파트 덕분에 가능하다. 단독주택 100곳을 배송하는 것과 한 아파트단지에 100곳을 배송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갈수록 고밀도 개발의 고층아파트가 대세를 이루고 있어 녹지공간 부족이나 화재에 취약하다는 등의 지적은 있지만 아파트는 하늘로 하늘로 바벨탑을 쌓고 있다. 고밀도 개발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장점도 많다. 예를 들어 운정신도시의 경우 인근 일산보다 동간 거리를 늘리고 녹지공간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 넓은 공원도 배치했지만 수요자들의 호응이 신통치 않다. 저밀도 개발에 따른 인구감소로 각종 편의시설도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저밀도 개발로 인한 부작용은 일본의 신도시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일본의 아파트단지는 대부분 지형적인 문제도 있지만 저밀도 개발이다. 동간 거리도 넓히고 녹지공간도 많이 확보하고 층수도 낮춘 것이다. 노인층들이 주로 거주하다보니 동간 거리가 길어 이동도 불편하다. 결국 슬럼화되고 대부분 빈집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종종 저밀도 개발은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이지 못하다.
7. 신분상승 욕구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소비의 사회>에서 현대인들이 소비하는 것은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의 계급 질서와 상징적 체계’라고 진단했다. 생산된 재화의 기능보다는 차이적 소비를 통해 기호를 소비한다. 생산물 그 자체에 대한 소비가 아닌 계급적 제도를 소비하는 것이다. 나아가 인간은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르게 보이기 위해 돈을 쓴다. 가구와 자동차를 넘어 이제는 아파트도 과시적 소비와 욕망의 분출구로 둔갑한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신분상승의 상징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외국과는 달리 모든 계층이 아파트를 선호하지만 아파트라고 모두 아파트가 아닌 시대가 되었다. 국토연구원의 주거실태 조사를 보면, 소득이 높을수록 아파트 거주비율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한국에서 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나 좀 산다’‘밥은 먹고 산다’는 말의 다름 아니다. 아파트에 살면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된 것으로 생각하고 사회에서도 그렇게 인정해주었다. 그러나 요즘은 아파트 거주비율이 60%에 이르다 보니 어느 지역의 아파트에 사는지, 어떤 브랜드의 아파트에 사는지에 따라 아파트 간에도 계층구조가 형성된다. 사실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집집마다 생활수준이나 소득이 다른데도 우리는 어느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하면 퉁쳐서 같은 급으로 분류한다. 그래서 기를 쓰고 소위 명품, 고가아파트, 고층으로 가려고 하는 것이다. 특히 서울에서 목좋은 강남의 재건축단지들이 이에 합세한 것이다. 오래된 아파트를 헐고 새집을 짓는 재건축이 진행되는 곳은 어김없이 반목과 시기로 아귀다툼의 현장이 되기 일쑤다. 그만큼 먹을 게 많다는 반증이다.
“아빠, 저게 뭐야? 효민이의 목소리가 그를 상념에서 깨웠다. 녀석이 가리킨 건너편 아파트 옆 벽엔 긴 현수막이 세로로 걸려 잇었다. 그 위에 짙푸른 글씨로 쓰여 잇었다. ‘도장 한 번 잘못 찍고 평생동안 후회한다.’ 이어 조금 작은 검정 글씨로 ‘남서울 아파트 재건축 비상대책위원회’라고 쓰여 있었다.(...) 너도 알지, 우리 아파트를 헐고 새로 짓기로 한 거? 응. 25층짜리 아파트를 짓는다던데. (...) ‘재건축 추진위원회’에서 아파트 주민들에게 내놓은 조건이 좋지 않다는 거다. 건설회사와 짜고서 그렇게 했다는 거다. 그렇게 조건이 나쁘니까, 동의서라는 서류에 도장을 찍지 말라는 얘기다.”
복거일의 <마법성의 수호자, 나의 끼끗한 들깨>에 나오는 재건축이 진행 중인 아파트 이야기다. 지금의 재건축 현장도 그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조합과 건설사에 의한 민간개발방식인 재건축은 조합원의 기대이익이 분출하는 욕망의 화신이다. 공공의 개입없이 철저하게 조합원의 결정으로 진행되다보니 빈번하게 조합원간 반복과 이해충돌이 빚어지기도 한다. 때로는 돈을 놓고 폭력사태로 번지기도 한다. 돈 잔치가 많은 곳일수록 이해충돌이 심하다.
그럼에도 갈수록 도시가 아파트단지로 변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지나친 아파트 사랑 때문이다. 대도시에서 60% 이상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 특히 새 아파트에 대한 선호현상은 가히 폭발적이다. 부동산 114 자료(2019.3~2020.3)를 보면 전국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은 입주 5년 이내 새 아파트와 10년 초과 아파트의 가구당 평균 가격차이는 새 아파트가 11.04%로 가장 높았다. 입주 6~10년 이하 아파트는 7.2%, 입주 10년 초과 아파트는 7.3% 상승에 그쳤다. 업계에서는 이를 주택 시장이 실수요자 중심으로 급격하게 재편되면서 새 아파트에 대한 편익을 중점적으로 보는 경향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여기에다 공급감소로 인한 희소성과 전국적으로 아파트가 노후화 되고 있는 추세여서 새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는 갈수록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아파트는 말이 없다.
아파트는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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