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파트 역사

15.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아파트, 세운상가아파트(1967년)

김부현(김중순) 2020. 6. 14. 09:05

2018년 4월 6일 오전, 대기업 본사들이 밀집한 서울 세종로사거리를 지나 종로3가로 들어서자 빽빽하게 들어선 낡은 상가들이 나타났다. 그 사이로 지난해 9월 일부 리모델링을 마친 세운상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리모델링 했다는 세운상가 일부 건물 외관은 깨끗하게 정비돼 허름한 주변 건물과 대비됐다. 세운상가는 세운·청계·대림·진양 등 총 7개 동(棟)의 대형 상가를 통칭해서 부르는 말이다. 세운상가 건설 당시에는 7개 상가의 2층에 사람들이 걸어다닐 수 있는 보행로가 설치됐다. <땅집고 투자리포트> 2018.4.11.

 

세운상가는 1968년 준공한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건물로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했다. 강남의 타워팰리스보다 30년 더 빠른 셈이니 놀라울 따름이다. 최첨단 고급 복합 타운. 다양한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 만큼 단순한 아파트가 아니었던 세운상가에는 당시 드물었던 실내 골프 연습장과 피트니스 클럽도 있었고 교회와 학교도 들어설 예정이었다. 준공 후 언론과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순식간에 서울의 명물로 떠올랐는데, 한 신문에서는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것이 부를 상징하는 것이라 유명인과 스타들이 앞다퉈 입주했고, 서울 중심에 있어 종로와 중구로 걸어서 출퇴근하기 편해 인기가 더했다고 보도했다. 세운상가는 하나의 건물 이름이 아니라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1.8km에 이르는 4개의 건물군 8개 건물을 통칭한다. <월간 디자인>, 2016년 4월호

 

세운전자상가, 사진 머니투데이. 2013.12.12.

 

1967년에 우리나라 전자기기 시장을 바꾼 역사적인 일이 생겼다. 바로 종로 3가에 세운전자상가가 들어선 것이다.‘세계의 기운을 가진다’는 의미를 담은 세운전자상가는 일제 강점기 때 군사시설로 사용하던 곳이었는데 광복 이후 불법 판자촌이 우후죽순 들어서는 것을 보고 ‘불도저 시장’으로 불렸던 당시 김현옥 시장이 주도하였다. 서울 중구청 6급 공무원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대형프로젝트인 서운상가아파트는 청계천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이 일대 무허가 판자촌 시민들을 성남으로 대거 강제 이주시키며 시작됐다. 현대를 비롯한 여러 건설사가 공동으로 진행한 대규모 건설 사업은 획기적인 설계와 규모로 여전히 서울의 역사적 상징물로 남아 있다.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아파트였던 세운전자상가는 부유층이나 정부 고위인사 등이 주로 거주했으며 상가는 1970~1980년대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메카’로 불리었다. 이곳에는 1945년 조선총독부가 도심 폭격시 대형 화재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폭 50m 약 1Km 정도로 설치한 화재방지용 도로와 공터였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피란민과 실향민들이 대거 몰려들어 무허가 판잣집 2,200여 채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이 판자촌을 건축가 김수근이 맡아 상가이자 주택, 자동차 도로인 동시에 보행로라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여 탄생한 것이 세운전자상가다. 삼보컴퓨터가 설립된 곳으로도 유명한 데‘사람도 만들고 인공위성도 쏘아올린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그야말로 없는게 없었다. 그렇게 유명세를 탔지만 서울 곳곳이 개발되고 세운전자상가를 대체할 백화점 등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점점 빠져나갔고, 게다가 비효율적인 건물의 구조 때문에 점점 슬럼화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도심재개발 차원에서 이뤄진 세운상가와 낙원상가, 청량리 대왕코너(롯데백화점 청량리점)는 요즘 주상복합아파트의 원조격이다. 특히 세운상가 아파트는 1960년 후반부터 동부이촌동 한강맨션이 들어서는 1970년대 초까지 상한가를 쳤다. 18~25평의 작은 평수였지만 대규모 상가와 엘리베이터를 갖춘 이 아파트에 사회 저명인사들이 앞다퉈 입주했다. 사대문 안에 밀집된 직장에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는 상류층 집결지였다. 세운상가는 세계 최대 규모의 집창촌으로 알려졌던 ‘종삼’과 무허가 판자촌 철거로 얻어진 1만 3000평의 공지 위에 종로~청계천~을지로~퇴계로까지 무려 1km를 8개의 건물이 남북으로 관통하는 도심의 괴물이었다.(서울신문, 2014.3.10.)

 

2008년 서울시가 녹지사업의 일환으로 상가를 철거하였으나 부동산 침체로 나머지 구간은 방치되다가 금융위기 등으로 철거계획 자체가 취소되었다. 그러다 2011년부터 개발이 다시 재개되었는데 세운상가재개발은 크게 8개 구역, 세부적으로 169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는 서울 최대의 정비사업이다. 박원순 서울시장하에 2014년 사업수정 후 잘 진행되는 듯하다가 2019년 1월 을지면옥 보존 논란으로 전면 재검토 상황이지만 일부는 개발이 완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