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파트 역사

17. 한국 최초로 옥상 헬리포트를 설치한 아파트, 남산외인아파트(1972년)

김부현(김중순) 2020. 6. 16. 09:29

힐탑아파트만으로는 몰려드는 외국인과 미8군 수요를 맞추기에 부족했던 정부는 본격적으로 외인아파트 공급에 나선다. 당시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1백70달러, 연간수출액도 5억 달러에 불과했다. 지하자원 하나없는 우리나라는 수출이 국가적 과제였다.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바이어 등 외국인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는데, 정작 이들이 머물 곳이 마땅하지 않아 힐탑아파트와 남산외인아파트를 짓게 된 것이다.

 

서울에서 가장 풍광이 좋은 남산에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던 17층짜리 고층아파트가 등장했다. 힐탑아파트의 동생뻘인 남산외인아파트다. 풍광 좋은 남산기슭에 1970년 착공해 1972년 완공되었는데 면적은 92.5~115.7㎡(28~35평), 16~17층 규모의 2개동 아파트로 온수난방방식을 적용해 세대별로 온도조절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층아파트(17층)였다. 주택공사 발주로 삼환이 시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17층짜리 고층아파트였다.

 

공사과정도 원만하지는 않았다. 1년 동안 골조공사만 하다 1년간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다시 시작하여 공사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졌다. 기초공사에 있어 남산에 위치한 까닭에 암반 등으로 인해 발파작업에 애로가 많았고, 남산이 울린다거나, 심지어 흔들린다는 말들이 무성했다. A동은 16층 28평형 120호, 32평형 60호, 40평형 30호이고, 17층인 B동은 28평형 124호, 33평형 62호, 35평형 31호로 총 427호였다. 연건평 9,700평의 규모로 건물의 경량화를 위해 바닥도 얇게, 블럭도 얇은 것을 사용하는 등 경량골재를 사용하여 건물의 경량화를 시도했다고 한다. 현장에서는 우리나라 최초로 골재계량장치가 부착된 시멘트 혼합기인 뱃쳐 플랜트가 설치되었고 화물용 리프트를 설치하여 자재운반을 했고, 동棟마다 타워 크레인을 설치했는데 이방법은 우리나라 아파트 건설에서는 처음 사용되었다고 한다.


최초의 설계는 엄덕문설계사무소에서 맡아 32,600여평의 남산기슭의 대지에 5동의 16층 고층아파트와 3동과 3층 저층아파트 및 부대건물 2동을 포함한 각종생활편의 시설 등이 갖추어진 연건평 44,800여평에 사업비 91억 원이 소요되는 어마어마한 대단지 아파트를 계획하였으나 남산의 경관을 너무 가리게 된다는 반대여론이 빗발치자 그중 2동만 건설하게 된 것이다.


특히 화재 등 비상시 대피를 위해 옥상에다 헬리포트를 설치한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이다. 남산 고지대에 있어 어디서나 눈에 잘 띄었던 남산외인아파트는 남산을 가로막는다는 이유로 김영삼 정부 때 ‘남산 살리기’ 일환으로 1994년 11월 20일 오후 3시 입주 22년만에 발파하여 철거되었다. 철거비로만 15억 원이 소요될 정도로 큰 폭파공사였다. 2개 동이 먼지 속에 무너지던 발파 장면은 전국에 TV로 생중계 될 정도였다. 하얏트호텔 주변 등 한남동 일대에 몰려나와 해체과정을 지켜본 수만명의 시민들은 아파트가 예고된 대로 좌우끝에서부터 무너지는 순간, 환호와 함께 탄성을 터뜨리며 모처럼만에 시원함과 뿌듯함을 만끽했지만 철거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1천억 원이 넘는 보상비 마련이 어려워 난항을 겪던 남산 제모습찾기 사업 중 핵심 사업인 남산 외인 아파트 철거 문제가 해결될 전망이다. 서울시는 18일 관계자 대책 회의를 열고 주공 소유인 남산 외인 아파트(2개 동 4백37가구)의 철거에 따른 보상 방법을 지금까지 추진해온 현금 보상에서 대물 보상 방식으로 변경하고 철거 시기도 92년 말까지에서 94년 초까지로 늦추기로 결정했다. 시의 이같은 결정은 감정 결과 보상비가 당초 책정했던 6백억 원에서 1천1백억 원으로 크게 늘어난 데다 올해 예산으로 책정한 6백6억 원 마저 지난해말 시의회 예산 심의에서 3백60억 원으로 삭감돼 조기 사업 추진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데 따른 것이다.

 

대물 보상으로 할 경우 서울시는 시 소유 택지 개발 지구내에 남산 외인 아파트와 재산 가치가 비슷한 규모의 아파트를 건설해 주공측과 소유권을 맞바꾸게 된다. 서울시는 이같은 대물 보상 방법을 채택할 경우 6백억원의 예산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시는 이를 위해 6월말까지 주공측과의 협의, 아파트 신축 부지 선정을 끝내고 94년 초까지 아파트를 건립, 주민 이주와 함께 철거 작업을 끝마칠 계획이다. 한편 외인 아파트와 부근의 남산 맨션 아파트(1백27가구)는 바로 인접한 미군 종교 휴양 소의 이전 시기인 97년 이후 현금 보상을 한 뒤 철거키로 했다.(중앙일보,‘남산 외인 아파트 대물보상’, 1992.2.18.자)

 

남산외인아파트 철거, KTV방송화면, 1994.11.20.

 

당시 어린 아이들이 "헬로 기브 미 초콜릿"을 외치며 초콜릿의 단맛을 보기 위해 남산외인아파트와 미군 종교 휴양소 근처를 기웃거려야 했다. 1975년 개봉했던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 등장했던 당시 최고의 첨단아파트인 남산외인아파트에 영화속 전경과 자동차가 흔치 않았던 1970년대 주차장에 자동차들이 즐비했던 모습을 보면 딴나라 세상 같기만 하다. 현재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인 남산 야외식물원이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