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3.12. 한반도의 중심, 충주 탄금대!
일 때문에 충주에 다녀왔다.
혼자 나섰다.
운전을 해서 가는 것은 왠지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하기를 싫어하는 탓도 있지만 또 왔다 갔다 운전한다는 게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계절에 맞게 가벼운 복장으로 나섰다.
강변역 동서울터미널로 향했다. 그냥...
강남터미널은 몇 번 가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동서울터미널에서 어디로든 가보고 싶었다. 그냥...
고속버스를 타고 책 읽고, 봄이 오는 풍경을 느끼면서 느슨하게 가고 싶었다. 그냥...
누구를 배웅하고 맞이하는 것은 아니지만 터미널은 이별과 만남의 선으로 분주했다.
처음 가보는 곳이라 왠지 설레고 가볍게 흥분되기까지 했다.
덩달아 마음도 한 뼘 쯤 허공에 떠있는 느낌이었다. 오가는 차량들로 거리는 분주했다.
시내를 걷기 시작하면서 언제부턴가 자동차 소음이 음악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도시의 소음을 시끄러운 음악으로 받아들인다.
구내를 두리번거리다 가판대에서 책을 한 권 샀다.
가져간 책이 있었지만 혹시 다 읽고 모자라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에 욕심을 부렸다.
이미나의 <사랑, 고마워요, 고마워요>...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따사롭게 느껴졌지만 커튼을 치는 대신 온 몸으로 받아냈다.
늘 보는 빌딩과 한강이었지만 잠시나마 새로운 세상처럼 보였다.
하루를, 일하는데 여덟 시간, 좋아하는 일에 여덟 시간, 잠자는데 여덟 시간 이렇게 삼등분으로 나눌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인생이 좀 더 심플해지는 것 아닐까? 스트레스도 없어지고, 치고받고 다툴 일도 없을 텐데...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 이젠 슬픔도 아주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나이인데, 아직도 추상적으로 느껴짐은 무슨 이유일까.
기쁨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인데, 자꾸 왜곡하려고 하는 건 또 무슨 연유인가.
언제쯤이면 슬픔과 기쁨의 무게를 정확히 잴 수 있을까.
늘 마른 장작타듯 바쁜 일상을 언제쯤 내려놓을 수 있을지.
언제쯤이면 마른 수건에 물기가 촉촉한 일상을 맞을 수 있을지.
좋은 일 때문에 가는 길이 아닌 탓에 여행가는 기분은 금새 사라지고 기분이 꿀꿀해지고 미운 사람들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아무것도 아닌데도 지워지지 않는 얼굴이 있다.
또 별 일 아닌데도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얼굴도 있다.
느긋함을 인정하지 않는 서울이라는 도시, 떠나기만 하면 긴장감이 옅어질 것 같았는데 또 다른 생각들로 머리의 안테나는 주파수 맞추기에 바빴다.
잠시 여행 갔다 온다고 생각하기엔 마음이 너무 무겁다.
사실 죄를 모두 솎아내 버리고 나면 우리에게 남는 것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죄를 짓고 있다.
감옥에 있는 죄인은 아니지만 그보다 좀 더 넓은 도시라는 감옥에서 살아가고 있는 죄인들인지도 모른다.
마흔이 지나면서부터는 왠지 나도 모르게 나이가 들어간다는 기분이다.
클라이막스도 없었고, 밑바닥도 없이 지나온 나, 갑자기 두려워진다.
이미 나이 듦으로인해 다가올 찬란한 이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고...
그래도 다행이다. 난 꿈이 있으니까...
꿈을 향해 가고 있으니까...
그래도 너무나 행복해서 다가올 날들이 기대된다면 더 좋겠다 싶었다.
1시간 30분은 생각보다 짧았다. 책에 형광펜을 칠하다, 바깥 경치를 제대로 느껴보기도 전에 벌써 충주터미널에 도착했다.
성큼 다가온 봄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날씨였다.
근처 '남원밥상'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음식은 깔끔하고 정갈했다.
YTN 정오 뉴스를 보며 느긋한 점심을 먹고 있었다.
"트로트 가수 000 일산 자택에서 목매 자살"이란 자막 뉴스가 지나갔다.
엊그젠 탤런트 000 자살...
자살율 세계 1위인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대한민국... 부끄럽다.
무엇이 문제일까?
그들도 힘들었을 것이다.
이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우리가 감당할 책임이 너무 큰 것 같다.
너무 안타깝다.
버섯, 어묵, 김치, 숙주나물, 멸치, 꽁치 한 마리, 된장 뚝배기, 밥 한 그릇... 어느 것 하나 남김없이 해치웠다.
시간이 남아 파리바게트에 들러 커피 한 잔을 시켰다.
1,500원이었다.
무지하게 싸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커피맛도 향도 좋았다.
커피를 들고 자리에 앉아 책에 형광펜을 열심히 칠하고 있는데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가 금방 구운 마늘빵이라면서 두 조각을 갖다 주었다.
아주머니의 말대로 맛있었다.
충주 파리바게트 1호점 아주머니 정말 고맙습니다.
택시를 타고 일을 처리하기 위해 약속 장소로 향했다.
13시 반... 일이 끝난 시간은 15시. 햇살이 절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아지랑이만 피어오르면 영락없는 봄이었다.
큰 숨을 들이쉬고 내뱉기를 수차례, 마음이 쓰려왔다.
택시를 탔다.
기사님께 터미널 근처에 바람 쐴 곳이 없냐고 물었다.
'탄금대'가 괜챦다고 해서 탄금대로 가자고 했다.
'탄금대'는 1592년(선조 25년) 4월 26일~28일까지 일본을 상대로 신립장군을 선봉으로 한 조선군과 왜군이 전투를 벌인 곳이다.
강과 산 그리고 도시가 적당히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었다.
걸었다.
그냥 걸었다.
산책길을 따라 그냥 걸었다.
아무 생각없이 산책길을 따라 그냥 걸었다.
탄금대는 누구든지 인생의 계기판에 빨간 연료 경고등이 켜질 때 찾으면 금상첨화일 것 같았다.
오가는 사람이 없어 혼자 공원을 통째로 빌린 것 같았다.
사진을 찍으며, 낙엽을 밟으며, 벤치에 쉬면서, 강을 보면서, 나쁜 놈들을 떠올리면서 걸었다.
공원 내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라디오 디제이는 여전히 삶은 행복한 것이라면서... 기분 풀라고 한다. 마치 나에게 말하는 것처럼...
길 위에서 또 다른 길을 꿈꾸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물을 보자 집에 있는 관음죽과 고무나무 화분에 물을 안 준 지가 꽤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무심했다.
하긴 나에게도 너무 오랫동안 물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메말라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밤엔 꼭 화분에 그리고 나에게도 물을 듬뿍 주어야겠다.
한참을 걸어 탄금대에서 중턱으로 내려갔다.
강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동안 경치 사진 찍는데만 열중한 나머지 내가 나오는 사진이 너무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 지나는 사람에게 한 장 찍어 달라고 했다.
오랜만에 사진속의 나를 보며 또 한 번 놀랐다.
내가 내가 아닌듯 했다.
사진 속의 나는 왠지 낯설어 보였다.
앞으로는 내 사진도 좀 찍어야겠다.
정말 나한테도 너무 무심했다. 미안하다. 나씨야.
경치 좋은 곳 벤치에 나를 쉬게 했다.
바라보고 있자니 강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몽롱했다.
눈을 감고 과거로 과거로 천천히 간다.
내가 사람으로 인해 힘들고 외로울 때 나를 진정으로 위로해 준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말없이 흐르는 강이었고,
차가운 바다였고,
품이 넓은 산이었고,
낯선 길이었다.
우리는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는 데 익숙하지 않다.
세상에서 떠밀려 나왔다는 조바심 때문일까?
아니면, 다수의 무리에서 뛰쳐나왔을 때의 두려움 때문일까?
끊임없이 전화를 하고,
메신저를 하고,
문자메시지를 날린다. 그래야 살아있음을, 혼자가 아님을 느끼기 때문인가.
며칠쯤은 세상으로부터 떠밀려 나와 보는 건 어떨까.
일부러 혼자가 되는 건 어떨까.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길을 걷고,
혼자서 잠을 자보는 건 어떨까.
그러면 또 다른 나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조금 걷다가 또 햇살에 반해 잔디밭에 앉았다.
몇 장 남은 책을 쫑내기 위해 책을 꺼내 빨강, 파랑, 노랑의 삼색 형광펜을 열심히 칠했다.
난 책을 읽을 때 언제부턴가 형광펜을 칠하는 버릇이 생겼다.
세 가지 펜을 적재적소(?)에 칠한다.
지식을 얻을 목적으로 빨강을, 아름다운 말에는 파랑을 그리고 노랑색 형광펜은 다시 보고 싶은 부분에 칠한다.
그야말로 책이 휘황찬란하다.
그래서 책을 빌려달라는 사람을 제일 싫어한다. 나의 속살을 고스란히 내보여야만 하니까...
보통 형광펜은 다섯 개 정도 들고 다닌다.
형광펜이 없으면 책을 아예 읽지 않는다. 형광펜이 책보다 우선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탄금대는 푸석한 마음을 위로받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치열하게 달리는 경주마도 발굽을 갈아야하듯 우리의 인생도 발굽을 갈아 줄 휴식이 필요하다.
바나나보트 타는 곳과 국궁장을 지나 버스터미널까지는 걸어서 돌아왔다.
한쪽에는 가방을 메고 다른 한 쪽에는 카메라를 메고...
충주 방송국과 평화공원과 야구장을 거쳐 터미널까지는 25분이 걸렸다.
17시발 서울 강남행 고속버스를 탔다.
오늘 밤엔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라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그 미움이 좋음으로 바뀔 테니까.
어렵지만 단순하고 우직하게 버티자.
누군가가 그랬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라고...
결국엔 버티는 자가 이긴다. 버티는 자가 살아 남는다.
소금창고는 지 몸뚱아리가 썩는 줄도 모르고 소금을 안고 버티고 있지 않는가.
시간이 한 뼘만 나면 배낭을 메고 멀리 떠나보고 싶다.
그래서 인도의 한 순례자의 말을 직접 체험해 보고 싶다.
"당신이 외롭다면 당신의 외로운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줄 사람은 여행자다.
여행자는 당신의 외로움을 가지고 먼 길을 걸어가 바다에 던져버리거나 깊은 숲 속에 묻어버릴 테니까."
그 여행자를 만나러 가고 싶다.
나의 마른 마음에 물을 줄 수 있는 그런 여행자를...
나의 외로움을 멀리 바다에 대신 버려줄 수 있는 그런 여행자를...
탄금대 사진 찍찍 모음(2009.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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