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지정전 추진위 설립시 "조합설립 동의 다시 받아라"…패스트트랙 대혼란
국토부 유권해석 후폭풍…업계 반응과 대응책
구역지정전 추진위 동의는 추진위 승인만 유효
추진위·조합설립 중복 동의…사실상 이중절차
사업속도 높이기 제동…법개정·제도 보완 시급
추진위·조합설립 중복 동의…사실상 이중절차
사업속도 높이기 제동…법개정·제도 보완 시급

정부가 ‘정비사업 신속 추진’을 기치로 도입한 패스트트랙 제도가 현장에서 사실상 무력화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최근 내린 “구역 지정 전 추진위원회 동의는 조합설립 동의로 의제되지 않는다”는 해석 때문이다. 정비업계는 “결국 조합설립 동의서를 다시 받아야 한다면 패스트트랙은 이름뿐인 제도에 불과하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비사업의 속도를 높이기는커녕 오히려 ‘슬로우트랙’으로 전락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국토부 “구역 지정 전 동의는 조합설립 동의로 인정 불가”=서울시는 지난 6월 정비계획 입안 동의서 양식에 “추진위 동의는 조합설립 동의로 간주한다”는 내용을 넣었다. 현장에서 동의서를 한 번만 받도록 해 주민 피로도를 낮추고, 사업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는 지난해 말 개정 후 올해부터 시행된 일명 패스트트랙으로 불리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 내용을 반영한 것이다.
현행 도시정비법 제31조 제3항에는 ‘추진위원회의 구성에 동의한 토지등소유자는 조합의 설립에 동의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같은 법 제36조의3에는 △정비계획의 입안 요청을 위한 동의 △입안의 제안을 위한 동의 △추진위원회 구성에 대한 동의 중에서 하나만 동의하더라도 나머지도 동의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구역지정 전 정비계획 입안 동의로 추진위원회 동의를 받았다면 조합설립 동의로 간주할 수 있다고 해석하고 동의서 양식을 수정, 지난 6월 마련한 정비계획 입안제안 동의서와 입안요청 동의서 양식에는 추진위 구성 동의에 서명하는 경우 조합설립인가에도 동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일부에서 법적 해석의 불명확성을 지적하자, 서울시는 국토부에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시는 국토부에 “정비계획 입안 동의로 추진위 동의 인정을 받은 경우 조합설립 동의까지 갈음되는지 ”여부를 질의했고, 국토부는 지난 7월 15일 회신에서 “구역지정 전 추진위 동의는 어디까지나 추진위 승인 단계까지만 유효하다”며 “조합설립 동의는 별도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도시정비법 제36조의3이 규정한 동의 특례는 △정비계획 입안 요청 △입안 제안 △추진위 구성에만 한정된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특례에 따라 구역지정 전 추진위 동의를 받은 경우에는 조합설립을 위한 동의서를 다시 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 국토부, 제도 도입 배경과 기대 효과에 어긋난 해석=패스트트랙 제도는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도심 주택공급 확대 정책’의 핵심 장치 중 하나였다. 정비구역 지정 이후에만 가능했던 추진위 구성을 지정 전으로 앞당기고, 정비계획 입안 단계에서 통합 동의를 허용함으로써 사업기간을 1~2년 단축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당시 국토부는 “주민 동의 절차의 중복을 최소화해 정비사업 속도를 높이겠다”는 점을 강조했고, 서울시는 이를 근거로 ‘추진위 동의=조합설립 동의’라는 해석까지 곁들여 제도 효과를 극대화하려 했다. 그러나 이번 국토부 해석은 정부 스스로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자충수’가 되면서 현장은 혼란에 빠졌다. 지난 6월 추진위 단계에서 이미 토지등소유자 50% 이상의 동의를 받아놓고도, 조합설립 단계에서 다시 동의를 받아야 한다면 패스트트랙이 도입되기 전과 차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강북구의 한 재개발 추진위원장은 “법을 개정하면서 추진위 승인 동의시 조합설립 동의로 간주하는 내용과 구역지정전 추진위 동의가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이 둘 다 담겼다”며 “신속한 정비사업 추진을 위해 도입된 제도로 당연히 가능하다는 해석을 해야 하는데 단순 법 조문만 따져 불필요하게 이중으로 동의서를 걷게 되면서 패스트트랙이라는 의미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국토부가 법적 분쟁을 우려해 소극적인 해석을 내렸다며 비판하고 있다. 진상욱 법무법인 인본 대표변호사는 “현행 법령이 조합설립 의제까지 명확히 규정하지는 않았다지만 입법 취지가 ‘신속한 사업 추진’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유연한 해석이 가능했다”며 “국토부가 법 도입 취지보다 법리적 안전만 택한 소극적인 해석”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추진위 동의가 곧 조합설립 동의로 이어지는게 제도 설계의 본래 목적이었고 조합설립을 반대하거나 철회하는 장치도 이미 마련돼 있었기 때문에 적극적인 해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 역시 국토부의 해석에 당황한 기색이다. 서울시는 패스트트랙 취지를 살리기 위해 조합설립 동의 의제까지 인정한다는 입장이었지만, 국토부의 정반대 해석으로 황급히 조치에 나섰다. 이에 서울시는 동의서 양식에서 조합설립 자동 동의 문구를 삭제하고, 조합설립을 위한 별도 동의서를 받도록 지침을 수정했다. 이에 현장에서 주민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서울시가 마련한 초기 동의서에는 조합설립 동의 내용이 있었는데, 뒤늦게 문구가 삭제되면서 아예 동의서를 새롭게 징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자 “이미 동의한 건 어떻게 되는 거냐”는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 패스트트랙 취지 살리려면 법 개정 해야=전문가들은 결국 입법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행 도시정비법 제31조에 “정비계획 입안 동의로 추진위 동의 인정을 받은 경우도 조합설립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조항을 명확히 추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도 “국토부 해석대로라면 패스트트랙은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며 “제도 취지를 살리려면 국회 차원에서 법 개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도 정부가 해당 제도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패스트트랙 없는 패스트트랙’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행정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법령 자체의 불명확성에서 비롯된 만큼 국회 차원의 입법 보완이 절실하다는 설명이다.-자료 : <하우징헤럴드>, 202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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