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4.11. 토요일이다.
휴일의 기분을 만끽하고 늦게서야 눈을 떴다.
09:30분, 건질거리는 발을 움직이기 위해 집을 나섰다.
일주일 전부터 예정했던 대모산과 구룡산 그리고 구룡마을을 가보기 위해서였다.
분명 일기예보에서는 화창한 날씨라고 하는데 서울 도심은 희뿌연 연무가 남아 있었다.
도심과 자연이 가장 잘 어우러진 대모산과 구룡산은 서울 강남에 위치하고 있는 산이다.
지하철은 생각보다는 붐볐다.
신사역을 출발하여 일원역에 내렸다. 일원역에서 일원터널 입구까지 10여분을 걸어 대모산 자연생태공원입구에 도착하였다.
입구에서부터 남쪽지방에서는 살짝 철이 지난 벚꽃이랑 진달래, 개나리가 절정을 치닫고 있었다. 발자국으로 다져진 등산로는 많은 사람이 다녀간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연일 기상청에서는 4월 낮 최고기온을 경신하고 있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이내 온몸으로 땀이 젖어들었다. 도심 한 가운데 자리한 탓인지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운동 삼아 오르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았다.
40여분을 오르자 대모산 정상이었다.
그런데 안.계.셨.다.
분명 대모산엔 큰 어머니(大母山)가 계셔야 하는데 안 계셨다. 정상은 293미터에 불과했지만 정상에서 본 도심은 아주 조용해 보였다. 그렇게 치열한 삶의 모습들이 조금 높은 곳에서 보니, 참으로 평온해 보였다.
-<대모산 정상 표지판>
대모산에서 구룡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동서남북으로 도심을 끼고 있어 눈은 즐거웠다. 대모산 정상에서 출발하여 40여분 정도 지나 구룡산 정상에 올랐다.
-<구룡산 정상 표지판>
-<구룡산 정상에서 본 타워팰리스>
여기에도 없.었.다.
구룡산엔 아홉 마리의 龍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백과사전을 보면, 구룡산에는 9개의 계곡이 있다고 한다. 전해내려 오는 전설에 따르면, 염곡동을 감싸 안은 구룡산은 옛날 임신한 여인이 용 10마리가 하늘로 승천하는 것을 보고 놀라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1마리가 떨어져 죽고, 9마리만 하늘로 올라가 구룡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하늘에 오르지 못한 1마리는 좋은 재목, 좋은 재산인 물이 되어 양재천(良才川)이 되었다고 한다.
정상보다 낮은 이 산의 주봉은 국수봉(國守峰)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 전부터 정상에 봉수대가 있어 국가를 지킨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하늘에 오르지 못한 그 한 마리의 용을 타고 하산했다.
하산길에 들른 구룡마을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평온해 보였다.
지붕 위를 감싼 천조각들을 보면서, 지난 겨울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거주민들의 노력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듯했다.
-<구룡마을>
혹자는 구룡마을 거주자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아니라, 소위 보상금을 노리는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임시로 거주하는 곳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내 생각엔 그건 지나친 확대해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중에 그런 사람도 몇몇 있을 수 있지만 내가 만난 50대 아저씨에 의하면, 대부분은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구룡마을로 찾아들었다고 했다.
그는 3년 전 세상에 떠밀려 이 마을로 오게 되었다고 했다. 채소를 심기위해 땀 흘리며 땅을 일구고 있던 그의 모습은 생각보다는 편안해 보였다. 눈만 뜨면 길 건너 타워팰리스가 떡하니 버티고 있어 처음에는 자책을 하고 세상을 원망도 했지만 이제는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땅을 믿기로 했다면서 오늘도 밭고랑을 만들고 있었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극한 대조를 보이고 있는 곳,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양분시키는 곳,
도심 속에서 도시와 농촌을 모두 보여주는 곳,
강남의 심장 타워팰리스와 강남의 이방인 구룡마을은 마치 분단 조국의 38선처럼 그렇게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만났던 그는 삶을 비관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는 조금 힘들지만 땅을 일구며 새로운 삶을 체험하고 있다고 했다.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자연과 함께 생활하다보니 건강도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다고 했다.
-<구룡마을 입구>
30여분 정도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며 세상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던 그를 보며 만족이란 어쩌면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100을 가져도 부족한 사람이 있지만 10을 가져도 행복한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먹고 사는 것이 최대의 과제였던 탓에 그동안 먹고 사는 물질적인 면에 올인해 왔다. 그 덕에 지금은 대부분 먹고 사는 것은 어느 정도는 해결되었지만, 그에 비해 정신은 늘 물질 뒤편으로 밀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잠자코 있던 우리의 정신이 드디어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멋진 레스토랑에서 온 가족이 외식하는 것에는 그렇게 관심이 많았지만, 온 가족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을 사는 데는 인색하기만 했던 우리들이다. 물질의 풍요만큼 정신이 따라가지 못하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최대의 과제는 물질이 아니라 정신을 가다듬는 것이다. 마음을 다스리는 노력을 자꾸 미룬다면 우리는 또 다른 사회문제와 성장의 발목을 잡는 치명적인 허점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우선 나 자신부터 바뀌어야 한다. 나 역시도 그렇게 살아 왔으니 말이다. 내가 바뀌면 상대방도 바뀔 것이고 나아가 우리나라 전체가 바뀔 것이다.
다가오는 주말에는,
멋진 레스토랑에서의 외식보다는 온 가족이 서점나들이를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인터넷에서 본 "대한민국" 관련 글을 인용해 본다.
■ 세계의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일본을 "쪽바리"라하며 우습게 보는 유일한 나라
■ 암사망율, 음주소비량, 양주수입율, 교통사고, 청소년 흡연율, 국가부채율 등 각종 악덕 타이틀은 3위권 밖으로 절대 벗어나지 않는 독한 나라
■ IMF경제위기를 맞고도 채 2년 남짓한 사이에 위기를 벗어나 버리는 기상천외한 나라
■ 자국축구리그선수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축구장은 엄청 썰렁하지만 월드컵 때는 700만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외신으로 부터 '조작'이라는 말까지 들었던 마피아 나라
■ 월드컵에서 1승도 못하다가 갑자기 4강까지 후딱 해치워 버리는 미스테리 나라
■ 미국인들로 부터 돈벌레라 비아냥 받던 유태인족을 하루아침에 게으름뱅이로 내몰아 버리는 엄청 부지런한 나라
■ 조기영어 교육비 세계 부동의 1위를 지키면서 영어실력은 100위권 수준의 덜 떨어진 나라
■ 매일아침 7시 40분까지 등교해서 밤 10시, 11시까지 수년간을 공부하는 엄청난 인내력의 청소년들이 버틴 청년 돌격대 나라
■ 물건은 비쌀수록 잘 사는 희한한 나라
■ 아무리 큰 재앙이나 열 받는 일이 닥쳐도 1년 내에 잊어버리고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메멘토 나라
■ 해마다 태풍과 싸우면서도 다음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똑같은 피해를 계속 입는 대자연과 맞짱 뜨는 나라
■ 세계인터넷 접속 1위를 차지하는 할 일 없는 나라
■ 기름 한 방울 없으면서 누구나 자동차 한대씩 있는 간 큰 나라
<대모산,구룡산 그리고 구룡마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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