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얼마전 일에 지친 우리에게 던진 모 카드회사의 광고카피다.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말이었다.
우리가 이 광고에 유독 열광했던 이유는 열심히 일하고도 떠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억울함 때문이었다.
세상은 늘 우리에게 '열심히 일한 당신, 더 열심히 일해라! 감히 떠나긴 어딜 떠나! 니가 떠나면 니 책상은 없어질 것이다'라며 꼼짝달싹 못하게 우리를 옥죄고 있다.
열심히 일해서 직급이 올라가고, 지금 이 중요한 프로젝트만 끝나면 떠날 수 있겠거니 했는데, 웬걸 더 급한 일이 늘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
무더위에 지쳐 녹초가 되어 퇴근하지만 몸만 퇴근할 뿐, 정신은 회사에 남겨두고 퇴근한다.
퇴근할 때는 정신까지 함께 퇴근시켜야 한다.
몸은 퇴근했지만, 걸어가면서도, 지하철에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집에서도 늘 정신은 일을 하고 있다.
정신을 몸과 함께 퇴근시킬 수 있는 방법은 선택과 집중이다.
즉 회사에서의 나와 퇴근 후의 나를 분리시키는 것이다.
업무시간에는 집중하고 퇴근 후에는 회사와 회사관련 일에서 무관심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쉽지 않다고 볼멘소리를 하지만 때론 무관심이 최대의 관심이다.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은 OECD국가 중 최고수준이다.
하지만 업무집중도와 시간 대비 효율성은 최하위다.
일을 하는 사람도 일을 시키는 사람도 뭔가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이는 산업화 과정의 업무스타일이 지식정보화사회인 지금까지도 그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근무시간이 어느 정도인가를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얼마나 결과물을 내 놓았는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결과물없이 그저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는 말로 대충 얼버무리려 해서는 안 된다.
'열심히 했다'와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경쟁을 포기한 사람들이 쓰는 말이다.
동시에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핑계에 불과하다.
새로운 술은 새로운 부대에 담아야 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일하는 스타일이 일부 개선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과거스타일을 고집한다.
퇴근 후의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하지 못한다면 다음날 업무집중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안양에 있는 대학동창을 만났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아이들 이야기가 나왔다.
결론적으로 아이들에 대한 그의 교육철학은 "무관심"이라고 했다.
무관심이라....
관심을 가져도 모자랄 판에 어린 아이들에게 무관심이라니...
조금 놀랐다. 의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친구이기 이전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동지를 만났다는 것이 기뻤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하는 것에까지 무관심하라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나와 아이들은 성장환경은 180도 다르다.
따라서 20세기 부모의 사고로 21세기의 아이들에게 코치할 것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공부해라', '학원가라'와 같은 말들이 아이들에게는 잔소리요, 간섭으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간혹 부정적인 것들이 도드라지는 세상이지만 지금 세대의 아이들은 대부분 밝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을 할 때까지 '공부해'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목표다.
대신 틈날 때마다 산으로 바다로 자연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이 아이들에게 내가 하고 있는 전부다.
솔직히 아빠로서 크게 코치할 일이 없다.
지금까지는 그 목표를 잘 지켜오고 있다.
아이들 성적표를 본 적도 없다.
학원을 다닐지 말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 역시 아이들의 몫이다.
이것이 나만의 개똥철학 이른바 "무관심교육법"이다.
덕분에(?) 사실 아이들의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지만 밝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으니 그만이다.
아침에 일어나고, 씻고, 가방 챙기고, 학원을 가고, 저녁밥 챙겨먹는 것과 같은 것들은 모두 아이들 스스로 한다.
무관심의 바로 옆에 '스스로하기'가 있다.
부모가 때론 조금 무관심하면 아이들은 자신의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스스로 잘한다.
'성적은 행복순이 아니쟎아요'라는 말도 있지만, 때로는 성적이 행복순일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행복은 참행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사IN>이라는 주간지 제89호(2009.5.25)에서 <초등학생들 꿈이 없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특집기사로 실었다.
-출처 : <시사IN> 제89호 "초등학생들 꿈이 없다"의 특집기사에서,
무한경쟁 시대에 내몰린 서울 소재 초등학생 700여 명에게 어떤 꿈을 꾸는지 물었다.
현재 바라는 소망은 무엇인지, 꿈을 이루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겠는지?
부모님이 초등학생에게 바라는 꿈은 무엇인지도 물었다.
꿈을 먹고 살아야 할 초등학생이 꿈을 꾸고 있는지, 어른의 욕심이 아이들의 꿈마저 빼앗아버린 건 아닌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에게 아이가 어떤 꿈을 꾸기를 바라는지도 질문했다.
꿈이 없다는 학생이 과거보다 더 늘어났다.
아무튼 결과는 참담했다.
꿈이 없다는 것이 어찌 아이들의 잘못이겠는가.
문제는 초등학생들만 꿈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꿈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교육, 이런 말은 초등학교에서조차 의미를 잃은 지 오래다.
이제 초등학생도 경쟁의 정글에서 지옥의 경주에 나서는 처지다.
성적과 등수에 옥죄인 이 아이들에게 어쩌면 꿈을 꾼다는 것은 사치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꿈을 갖지 못한다면 그것은 어른인 우리의 책임이다.
독일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는 “어린아이에게서 배워라. 그들에게는 꿈이 있다”라고 말했다.
만일 헤르만 헤세가 무덤에서 나와 우리 초등학생을 만난다면 당황해 할 것 같다.
아이들이 꾸는 꿈의 크기가 곧 우리나라의 크기다.
아이들에게 꿈이 없다면, 대한민국도 꿈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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